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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내란 청산과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긴 글 삼성전자 파업의 진정한 쟁점:
계급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집단으로 나뉘어 있음을 경험으로 안다. 평범한 사람들은 기업주 등 권력자들의 주거지나 라이프 스타일에 범접할 수 없다. 그런 차이는 태어날 때부터 시작돼 교육 환경과 일자리로 이어지며 질병과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함께 계급 문제가 얘기되기도 하지만, 계급이라는 용어를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몇 해 전 ‘금수저/흙수저’라는 말을 유행시킨 신계급사회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물려준 조건을 극복하기 힘든 현실에 주목하며, 계급을 세습된 특권이나 신분이라고 보았다. 물론 부의 대물림은 계급 분단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계급 문제의 핵심은 출신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지위이고, 부의 격차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이다.

계급에 관한 사회학의 접근은 특정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다. 가령 소득이나 재산을 기준으로 부유층, 중산층, 저소득층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또는 직업에 따라 육체직은 노동계급, 사무직·관리직·전문직은 중간계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 맞는 좀 더 세련된 분류를 자처하는 계급 모델은 라이프 스타일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더 세분화하기도 한다. 소득이 얼마인지, 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 달에 외식을 얼마나 하는지, 오페라를 관람하는지, 변호사나 의사 친구가 있는지 등등을 종합해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다. 심지어 ‘당신은 어느 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접근법들은 사회가 불평등하고 위계적으로 이뤄져 있음을 보여 주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의 작동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 전혀 보여 주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 생산관계 속 위치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은 이와 전혀 다르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생산에 참여하면서 맺는 관계에 따라 계급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주관적으로 자신이 어느 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생산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계급이 결정된다. 즉, 생산수단(공장, 기계 등)을 소유 또는 통제하는가 아닌가, 생산 과정에서 하는 구실은 무엇인가(착취하는가 착취당하는가), 타인이나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는가 통제당하는가에 따라 계급이 결정된다.

자본주의는 기존의 모든 것을 혁신하고 옛 노동 방식도 파괴했다. 장인, 상인, 농민 등 이전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생계를 꾸려 온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점점 압박을 받았다. 그중 극소수는 자본가 계급의 일부로 편입됐고,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계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는 계속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의 내부 구성도 변한다 ⓒ출처 쿠팡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통제(지배)하는 사람들은 자본가 계급이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그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이윤을 얻을 수 없다. 노동자들을 고용해 생산수단을 가동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뿐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노동계급이다.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그들이 받는 임금은 그들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잉여가치)는 사용자가 가져간다. 이것이 착취이다.

이처럼 두 계급은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적대적인 착취 관계를 맺고 있다.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가 “노동자와 자본가가 각각 자기 몫[임금과 이윤]을 끌어 내야 할 유일한 원천”이다. 그 둘은 “한쪽이 더 많이 받으면 그만큼 다른 쪽은 적게 받게 되는’ 관계에 있다.(마르크스, 《임금, 가격, 이윤》) 그래서 자본가들은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로부터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되도록 많이 뽑아내려 하고, 노동자들은 자신이 창조한 가치를 되도록 많이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

자본 소유자뿐 아니라 고용된 경영인도 자본가 계급에 포함된다. 그들은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노동 착취를 위한 업무를 관장한다. 국유 기업의 고위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고위 국가관료도 사회적 수준에서 자본 축적의 관리자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자본가 계급에 속한다.

계급을 생산관계로 볼 때 드러나는 것

계급을 서로 유기적 관계가 없는 집단들의 서열로 보는 사회학과 달리, 계급을 생산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함의가 있다.

첫째, 계급을 생산관계 속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두 주요 계급이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임을 알 수 있고, 그 두 집단이 적대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취 관계 속에서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는 끊임없이 투쟁하게 된다. 특히,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자본가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여 이윤 몫을 늘리려고 안달한다.

반면, 사회학(특히 막스 베버)의 계급론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의 관계를 핵심으로 보지도 않고, 적대 관계로 보지도 않는다. 베버는 계급 갈등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시장에서 분할된 위치에 따라 다양한 집단 간에 특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일 뿐이다.

둘째, 계급을 생산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하고 보면, 계급이 객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개인의 계급 위치는 주관적 자기 규정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지 여부에 달린 것이다. 노동계급은 계급의식이 있든 없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처한 객관적 조건(피착취) 때문에 투쟁에 나서도록 거듭 내몰린다. 이런 압박에 직면해서 노동자들은 저항에 나서고 스스로 조직하며, 투쟁하는 과정에서 집단적 힘을 자각하고 의식이 변할 수 있다.

반면, 계급을 객관적 위치보다 의식의 측면에서 정의한다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내재한 경향으로부터 어떤 세력이 사회를 변혁할 힘을 갖게 되는지 흐리거나 잊기 쉽다. 특히, 노동자들의 현재 의식만 보면서 노동계급에게 안녕을 고하고 사회 변혁의 새로운 주체를 찾아 나서게 되기 쉽다.

노동계급은 정말 줄어들었는가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계급관은 많은 반박을 받았다. 사회학자들은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의 두 주요 계급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계급 구조가 양극화했기는커녕 피고용자 중 노동계급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중간계급의 규모가 커졌고, 노동계급 내 이질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선,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와 비교해 전 세계 노동계급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날 세계 노동계급은 약 20억 명이 넘는다. 한국 노동계급의 규모도 지난 60여 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 산업화 초기에만 해도 압도적이었던 자영업자 비중은 2010년대 중반에는 22퍼센트로 줄었다. 반면 노동계급은 2010년대 중반 1700~1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1960년대 초반의 7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다.

계급 구조의 양극화 주장이 현대 사회에 맞지 않다는 반론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증가한 관리직·전문직·사무직 등의 일부를 노동계급으로 보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의 급진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스는 관리직·전문직·사무직 등을 모두 ‘화이트칼라’라고 불렀는데, 기술·교육·면허증 보유 같은 시장 능력 덕분에 높은 보수와 승진을 누리는 새로운 중간계급으로 본 것이다. 한국의 많은 진보 사회학자들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이 집단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그중에는 중상층 관리자나 전문가로서 상당한 자율성과 재량권을 갖고 높은 임금을 받는 신중간계급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다수는 노동계급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문직 분야에서 상당한 변화가 생기면서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화가 진행됐다. 교사, 간호사, 대학 강사 등이 그런 사례다. 의사도 그런 변화의 전철을 밟아 왔다. 개업의에 비해 취업 의사 비중이 늘고 있고, 취업 의사들은 위계적으로 조직돼 그 말단인 전공의의 처지는 다른 전문직 노동자들과 엇비슷하다.

변하는 노동자상, 변하지 않는 본질

노동계급이 축소되거나 이질화했다는 주장은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라는 본질보다는 현상에 집착한 결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계급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대개 이런 것이다. 거친 손으로 육체 노동을 하고, 일이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며 제대로 된 휴가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런 인식 방법의 문제점은 정태적이어서 자본주의의 역동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구조조정을 통해서 산업과 직업 구조를 계속 변화시키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계속 기존의 전형적인 노동자 상이 남아 있다. 그래서 전통적 산업이 쇠퇴하고 새로 떠오른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거나 ‘특권적’ 노동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산업의 노동자들은 흔히 기존 산업의 노동자들보다 더 세련되고 교육 수준도 높고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IT 노동자나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노동자들이 그런 사례다. 수십 년 전에는 섬유 노동자나 탄광 노동자들에 비해 자동차나 중공업 노동자들이 그렇게 여겨졌다. 그러나 어떤 노동자들은 소득이 많을 수 있지만 노동계급의 일부이고 전투적으로 싸울 수 있다.

소위 ‘전통적 노동자’라는 것도 없다. 새로운 산업과 그 고용 조건도 변하게 마련이다. 한때 교사는 전문직 중간계급 또는 특권층으로 여겨졌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그들 대다수의 처지는 점점 여느 노동자들과 별로 다를 바 없게 변했다. 임금, 노동조건,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 결여 등 모든 측면에서 말이다.

계급을 사람들이 생산수단과 맺는 관계로 파악해야만 자본주의의 역동적 변화와 그에 따른 계급의 구성과 조건 변화 속에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생산관계 속에서 점하는 이런 위치 덕분에 낡은 질서를 폐지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된다.

첫째,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가들은 노동계급을 (세계적 규모로) 창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운영이 필수불가결하게 그들의 노동에 의존한다는 점은 노동계급에게 막강한 잠재력을 부여한다. 자본가들은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자를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은 이윤을 얻으려면 노동자가 필요하다. 자본과 노동의 상호의존 때문에 노동자들은 이윤 체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고 자본주의를 타도할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대규모 파업을 할 때 그런 힘이 드러나며 사회가 순식간에 위기에 빠져든다. 다른 어느 계급도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농민이나 영세 자영업자는 노동자들보다 더 가난하고 종종 더 고통받지만, 그들의 투쟁이 체제를 위협하지는 못한다. 차별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성이나 섹슈얼리티나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착취는 이윤 체제에 타격을 입힐 힘을 착취받는 사람들에게 부여한다.

물론, 노동계급에게 막강한 잠재력이 있다고 해서 다른 세력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은 평범한 중간계급 사람들이 처한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그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 중간계급의 하층 일부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또, 노동계급은 노동자들을 성이나 섹슈얼리티나 인종에 따라 분열시키는 지배계급에 맞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데에 차별받는 사람들과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집단적으로 조직된 계급

둘째, 노동계급은 집단적으로 조직된 계급으로서 동질적 운동을 조직하고 집단적 해결책을 추진할 능력이 있다. 자본주의는 거대 도시의 일터로 노동자들을 불러모으고 서로 협동해 생산하도록 조직한다. 자본주의 생산 자체가 노동자들에게 협동과 규율을 가르치는데, 이것은 기업주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자산이 된다. 노동자들은 대규모로 투쟁할 때,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 조직하며 투쟁 기구를 만들고 통제할 수 있음을 유감 없이 보여 준다. 지역이나 산업을 넘어 전국적 규모로 조직할 능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는 과거 피착취 계급들과의 차이다. 농민은 각자 자기 땅에 묶여 있었고 서로 고립돼 있었으며 세계관은 협소하고 국지적이었다. 사회적 투쟁이 불붙을 때도 한데 결속하기보다는 분산적 대안을 지향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농민들을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감자”에 비유했다.

반면 자본주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임금 노동자로 편입시키며 동질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서 서로 다른 직무를 담당하지만, 전에는 노동자처럼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도 여느 노동자들과 엇비슷한 처지로 내몰리며 투쟁에 나서곤 한다. 자본가들의 이윤 경쟁이 노동계급의 동질화를 촉진한다.

집단적으로 조직돼 있고 동질화하는 경향 덕분에 노동자들은 개별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켜 지주의 땅을 빼앗아 각자 나눠 경작하려 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이나 병원을 쪼개어 각자 나눠 갖거나 운영할 수 없다.

투쟁 속에서 드러나는 힘

셋째,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내모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 일부 계층에 양보를 해서 포섭하고 길들인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위기를 반복하는 체제로 그런 양보를 안정화하기가 어렵다. 위기가 오면 그동안의 알량한 양보조차 거둬들이고, 이윤을 계속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한층 더 압박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투쟁이 거듭 일어나고, 때로 거대한 사회적 투쟁으로 폭발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일단 대규모 투쟁에 나서기 시작하면, 평소 생각과 관계없이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는 경향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점거 투쟁 등으로 사용자들의 생산수단 통제에 도전하고, 사용자들을 지켜 주려 경찰력을 투입하는 자본주의 국가와도 대결하게 된다.

어떤 조건에서는 투쟁이 급격히 확산돼 보편화될 수 있는데, 그러면 생계와 치안을 민주적으로 조직하는 기구들이 기층에서 구축되고 공공을 위해 운영되면서 기존 국가 권력과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혁명적 분출 때마다 이와 같은 노동자 권력 기관을 만들었다.

농민과 소상공인 같은 소소유자들은 자본주의적 소유에 맞서 보통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데로 나아갈 수 없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그런 구실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계급에게는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으로

마르크스는 일상적 시기의 노동자들이 혁명적이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현재의 노동계급과 그들의 잠재력을 구분했다. 그는 착취당하는 존재 그 자체로서의 노동계급을 ‘즉자적 계급’이라고 불렀고, 노동자들이 착취에 맞서 저항하며 계급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자각할 때 ‘대자적 계급’이라고 불렀다.

노동자들이 대자적 계급으로 돼 가는 과정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그것이 승리뿐 아니라 패배로도 점철된 매우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임을 잘 알았지만, 노동자들은 오직 그런 투쟁을 통해서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은 오직 스스로의 투쟁을 통해서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조승진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모순돼 있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무력하고, 분열돼 있고, 개별화돼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기 계급의 이익과 충돌하는 관념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한편,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감, 투쟁의 기억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다. 둘 사이의 모순 때문에, 노동계급 내에서 보수성이 조장될 수도 있지만, 일단 대규모 투쟁이 일어나면 노동자들은 급격히 의식을 발전시킨다.

계급을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의식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현재 의식에 실망해 노동계급의 역할에 대한 회의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체제가 가하는 압력 때문에 노동자들은 의식과 관계없이 투쟁에 빨려들게 된다. 그리고 일단 투쟁에 참여하면, 동료 노동자들과 자신을 결속시키는 공통점을 깨닫게 되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집단적 힘을 자각하게 된다.

이때, 혁명적 좌파의 개입은 계급 투쟁과 계급 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울 잠재력이 있는 계급이라면, 혁명가들의 구실은 그 잠재력을 현실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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