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임금 투쟁의 정당성을 역설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노동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 그 정당성을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주의의 답변은 명확하다. 임금 투쟁은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생존 조건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다. 그 정당성은 자본의 수익성 여부와 무관하다.
이 관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출발했다. 이후 레닌의 논설들과 트로츠키의 《전환적 강령》을 거쳐 현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으로 계승됐다.
1. 마르크스가 다진 기초
1)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자의 미지급 노동에서 비롯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윤, 이자, 지대 등 자본가의 수입은 그 개인의 근면함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일부가 임금으로 지급된 후, 남은 잉여 가치를 자본가가 점유한 결과다.
노동자는 일일 노동시간 중 일부를 자신의 노동력 가치에 해당하는 가치 생산에 쓴다. 이를 ‘필요 노동’이라 한다. 하지만 노동자는 해당 시간을 초과해 계속 일하며, 남은 시간에는 자본가에게 귀속될 가치를 생산한다. 이것이 ‘잉여 노동’이다. 마르크스는 이 미지급 노동이 잉여 가치이자 이윤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임금 인상 요구는 자본가의 재산을 부당하게 탈취하려는 행위가 아니다.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 중 임금 몫을 확대하라는 요구다. 자신이 생산한 가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자본가의 허락을 구하거나, 이윤 논리에 맞춰 정당성을 변명할 이유는 없다.
2) 임금의 본질: 노동력 재생산 비용
마르크스는 임금을 ‘노동 자체에 대한 대가’가 아닌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격’으로 정의했다. 그는 저서 《임금, 가격, 이윤》에서 ‘노동의 가치’는 엄밀한 개념이 아니며, ‘노동력의 가치’를 일컫는 통속적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가 이튿날 다시 노동을 지속하고, 노동계급이 다음 세대로 재생산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 비용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생활 수준, 관습, 교육 및 숙련 조건 등이 두루 포함된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자연적으로 고정된 수치가 아니며, 물리적 요소와 역사적·사회적 요소를 동시에 내포한다.
자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임금을 억제하고 노동 강도를 높이는 압박을 지속한다. 불황과 물가 상승, 실업이 겹치면 노동력 재생산 조건이 위협받는다. 이때 임금 투쟁은 탐욕이 아닌 생존을 위한 방어 기제가 된다.
2. 마르크스가 임금 인상 투쟁을 지지한 이유
1) 임금과 이윤은 새로 창출된 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충돌한다
마르크스 가치론에 따르면 상품 가치는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자 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상품 가치가 자동으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창출된 가치가 일정하다면 임금 증가는 자본가의 몫인 잉여가치와 이윤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임금 투쟁은 본질적으로 분배 투쟁이다. 생산된 가치를 자본과 노동이 각각 얼마나 점유할지를 두고 벌이는 대립이다. 자본가는 이를 ‘경제 파괴’로 규정하지만, 마르크스 관점에서 이는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발현이다.
2) 《임금, 가격, 이윤》의 적실성
《임금, 가격, 이윤》은 1865년 6월 제1인터내셔널 총평의회에서 존 웨스턴의 주장을 반박한 마르크스의 연설과 보고를 엮은 저작이다. 마르크스 생전에는 출판되지 못했다. 이후 딸 엘리너 마르크스가 편집해 1898년 세상에 나왔다.
웨스턴은 일반적인 임금 인상이 노동자에게 유익하지 않으며,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이 다른 산업 부문에도 해롭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이 주장을 반박하며, 임금 인상이 곧바로 상품의 가치나 평균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 이윤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르크스에게 임금 수준은 기계적으로 경제 법칙이 결정하는 단순한 종속변수가 아니었다. 노동력 가치에는 물리적 최저선이 존재하지만, 실제 임금 수준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지속적인 힘겨루기 속에서 결정된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싸우는 양측의 각각의 힘”의 문제라고 정의했다.
물론 마르크스는 임금 투쟁만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노동자들이 “공정한 하루 노동에 대한 공정한 하루 임금”이라는 보수적 구호에 머물지 말고, 궁극적으로는 “임금 제도 자체의 폐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임금 투쟁을 지지하되 그 한계도 분명히 지적했다.
임금 투쟁은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필수적인 방어전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은 노동시간 연장, 노동강도 강화, 기술 변화, 고용 불안정 등을 통해 이윤 극대화를 꾀한다. 노동자가 일상적인 임금 투쟁과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포기하면 생활수준과 조직력은 급격히 저하된다. 마르크스에게 임금 투쟁은 자본의 상시적 공격에 맞서 노동력의 인간적 재생산 조건을 수호하기 위한 필수 방어전이었다. 이 방어전을 포기할 경우 자본의 압력은 거세지고, 노동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조건을 강요받게 된다.
3) 임금 투쟁은 노동자의 조직과 의식을 고양하는 학교다
마르크스에게 중요한 지점은 경제적 이득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임금 인상이라는 당면 요구를 둘러싼 투쟁 과정에서 파편화됐던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결하며 집단적 행동의 힘을 체득한다.
또한 노동자는 반복되는 경제 투쟁을 통해 문제의 근원이 개별 자본가의 탐욕이 아닌 임금노동 체제 자체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단순히 처지가 비슷한 이들의 집합인 ‘즉자적 계급’을 넘어, 공동의 이해관계와 역사적 역할을 자각하는 ‘대자적 계급’으로 도약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분석을 통해 이윤의 원천이 노동자의 미지불 노동이며, 임금 수준은 계급 간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따라서 임금 투쟁은 부차적인 경제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침탈에 맞서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 조건과 존엄을 지키는 필수 투쟁이다.
3. 레닌, 계급투쟁에서 중립은 없다고 단언하다
레닌은 ‘파업론(1899)’에서 임금 투쟁의 의의를 강조한다. 자본가는 임금을 낮추려 하고, 노동자는 부양가족의 생계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높은 임금을 확보하려 한다. 따라서 임금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개별 노동자의 무력함을 극복하고자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저지와 인상을 위해 공동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특히 노동자들이 공동 요구안을 제시하며 사용자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할 때, 그들은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 인간으로서 행동하기 시작한다. 임금 요구를 ‘탐욕’이나 ‘특권’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당한 계급적 요구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1913)’을 통해 임금 문제에서 ‘중립적 심판’을 기대하는 태도의 순진함을 지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공정한’ 사회과학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자본의 이윤을 줄여서라도 임금을 인상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자본가의 공정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임금 문제는 본질적으로 이윤과 임금의 대립, 즉 계급적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이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본가나 친자본주의 여론이 수용할 만한 ‘공정한’ 논리로 변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레닌은 임금 인상 투쟁을 강력히 옹호했으나, 그것만으로 노동자 해방이 이뤄진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파업을 “전쟁 자체는 아니며 전쟁의 학교”라고 정의했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싸우는 법을 배우며 전쟁을 준비하고, 단결과 조직을 익히는 일종의 훈련소라는 뜻이다.
4. 트로츠키: ‘실현 가능성’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레온 트로츠키는 《전환적 강령》(1938)에서 자본주의 위기 속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시간 문제를 어떻게 제기해야 하는지 논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관점을 계승해 임금 인상 투쟁이 단순히 통장 액수를 늘리는 싸움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은폐한 착취 관계와 자본·국가의 동맹 구조를 노동자 경험 속에서 드러내며, 조직된 힘으로 더 넓은 정치 투쟁에 나서는 중요한 출발점임을 강조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회계장부 앞에서 주눅 들거나 자신의 요구를 자본의 논리로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생존 요구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노동자의 요구가 아니라 체제 자체에 있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물가 상승분만큼 임금이 자동 인상되는 물가연동임금제와 실업 방지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 요구로 제시했다. 자본가와 법률가들은 이런 요구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강변하며, 특히 몰락한 소자본가들이 회계장부를 들이밀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런 결론과 자료 제시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는 통상적인 ‘이해관계 조정’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의식과 인류의 미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활조건을 개별 자본가의 경영난이나 체제 수익성에 맞춰 낮출 의무가 없다. 요구의 실현 가능성은 장부 숫자가 아니라 계급 간 힘의 관계, 즉 투쟁이 결정한다.
5. 마르크스주의로 본 삼성전자 투쟁
삼성전자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고임금 노동자의 이기적 요구’라 비난하는 행위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분석에 따르면, 1 고도의 기계화와 높은 생산성을 갖춘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 지급된다고 해서 노동자가 착취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부문에서도 이윤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에서 발생한다. 오히려 자본은 높은 생산성과 시장 지위, 부문 간 잉여가치 이전을 바탕으로 막대한 이윤을 축적한다. 따라서 삼성전자 노동자의 성과급 요구는 하청 노동자의 몫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삼성 자본이 독점하는 막대한 잉여가치 중 일부를 노동자의 몫으로 되찾으려는 시도다.
‘삼성전자 노동자는 이미 고임금을 받으므로 추가 요구를 멈춰야 한다’라는 주장은 자본의 이윤을 보존한 채 노동자끼리 파이를 나누라고 압박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고임금 부문 노동자의 임금이 하청 노동자의 저임금을 초래하는 원인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 자본이 고생산성 노동과 하청·비정규직의 저임금을 동시에 활용해 막대한 이윤을 축적해 왔다는 점에 있다.
고생산성 부문의 고임금은 자본이 여전히 막대한 잉여가치를 점유하고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따라서 삼성전자 노동자의 임금 투쟁은 ‘특권 방어’가 아니라 자본에게 빼앗긴 몫의 일부를 되찾아오는 계급투쟁의 일환이다. 이 투쟁은 하청 노동자의 요구와 대립할 사안이 아니다. 원청인 삼성 자본의 막대한 이윤에 맞서 모든 삼성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투쟁으로 확장해야 한다.
후주
-
피에르 쌀라마 & 자크 발리에르, 《정치경제학 입문》, 정윤형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1). 또한 이 저자들이 편집한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Critiques de l’economie politique, 15-16호 (1981). 이 호의 제목 자체가 “고용의 분절인가, 임금노동자층의 분할인가?(Segmentation de l’emploi ou division du salariat?)”다. 안정 고용 노동자와 불안정·취약 노동자의 대립이라는 새 분할선을 다룬 특집으로, 안정적·상대적 고임금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자를 서로 대립시키는 관점을 경계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또한 같은 정간물의 제26호 (1977년 1~3월). 이 호는 특히 FIAT 노동자들을 다루는데, 1970년대 이탈리아의 FIAT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강하고 전략적 위치가 큰 대공장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조건이 더 나은 핵심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문제와 연결해 읽을 여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