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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내란 청산과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임금이란 무엇인가? 오늘의 문제들: 마르크스의 관점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성과급 투쟁은 임금 문제를 우리 사회의 핵심 화두로 올려놓았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치고 나가자, 통계 수치로만 떠돌던 생계 문제가 살아 움직이는 쟁점이 돼 다른 노동자들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지난 수년 동안 노동자들은 임금 하락을 감내해 왔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실질임금이 하락(-0.98퍼센트)했음을 보여 주었다.(〈윤석열 정부 3년: 생산성 정체, 실질임금 하락〉)

지난해 한국은행도 전체 국민소득 중 노동자 몫이 3년 만에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피용자보수비율이 감소한 것인데, 이는 소득분배 악화를 뜻한다. OECD 통계를 봐도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54퍼센트 정도로 OECD 평균(60~65퍼센트)보다 크게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를 끝장내면서 노동자들이 염원한 변화 중에는 분명 생계 문제 개선이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여 동안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 실질임금은 더 하락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발표를 보면, 2026년 1월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9.4퍼센트나 감소했다.

노동자가 만든 부가가치는 계속 늘어났지만, 실질임금은 오히려 삭감됐다 ⓒ자료 출처 〈윤석열 정부 3년: 생산성 정체, 실질임금 하락〉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을 올리고 생활 수준을 개선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삼성전자 노동자들도 코로나19를 경과하며 억제됐던 보상을 받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첨단기술 산업 분야의 노동자들이 높은 성과급을 쟁취하자 맹비난이 쏟아졌다. 경총, 주주, 친기업 언론, 정부는 떼로 달려들어 이 노동자들이 외부 요인들로 발생한 성과를 부당하게 독식한 것처럼 몰아갔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배를 불리는 것처럼 이간질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목소리를 보탠 것은 씁쓸하다. “초과이윤은 자본과 일부 대기업 노동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며 삼성노조에 “연대의 성숙함을 보이라”고 훈계하기까지 했다. 투쟁 속에서 연대를 받아 본 노동자들이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는 법인데, 민주노총은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이 집중포화를 받는 동안 지지와 연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좌파 대부분도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성과급 투쟁을 방어하지 않고 외면하고 회피했다. 이것은 그들이 계급정치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 준다.

임금과 착취

기업 이윤이 노동자의 노동이 아니라 투자된 자본이나 외부 요인으로 창출된다는 주장은 착취를 은폐하는 거짓말이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그저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이윤을 얻지 못한다.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수단을 가동해야만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고용된 노동자는 자본가의 통제를 받으며 상품을 생산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거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을 따라 ‘은밀한 생산 장소’로 들어가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노동자가 노동으로 창출한 가치는 임금보다 훨씬 크다.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일 뿐이다. 노동자는 하루 노동시간 중 일부만 일해도 이 비용을 충당할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자본가는 노동자가 임금 가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더 오래 일하도록 강제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임금 이상으로 추가 생산한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몫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이윤의 원천이며, 요컨대 이윤은 노동 착취의 결과물이다.

임금과 이윤은 반비례한다. 마르크스는 《임금, 가격, 이윤》에서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각각 자신의 몫을 끌어내야 할 유일한 원천”이라며 “한쪽이 더 많이 받으면 그만큼 다른 쪽은 적게 받게 된다”라고 밝혔다.

또한 《임금노동과 자본》을 통해 “자본의 몫인 이윤은 노동의 몫인 임금이 하락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상승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며 “이윤은 임금이 하락하는 만큼 상승하고, 임금이 상승하는 만큼 하락한다”라고 강조했다.

마르크스가 ‘공정한 거래’라는 외관 뒤에서 무보수 노동 수취, 즉 착취가 벌어지고 있음을 밝혀낸 것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착취는 흔히 생각하듯 악덕 기업주의 예외적인 악행이 아니라, 자본과 임금노동 관계에서 ‘정상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는 ‘자유로운’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데 기반하며, 자본 간 경쟁은 착취를 극대화하도록 추동한다. 자본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를 더 오래, 더 열심히, 더 적은 노무비로 일하게 만들고,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결국 자본가는 개인의 성품과 관계없이 냉혹한 착취자로서 노동자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착취적 생산관계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근본적으로 대립하며, 그 충돌로 끊임없이 투쟁한다.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다. 이는 사회학자들이 사회를 본질적으로 조화롭다고 보거나, 아니면 갈등을 조정해 계급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관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충돌의 근본 원인은 착취적 생산관계에 있다. 즉,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노동에서 나오는 잉여 생산물(이윤)을 체계적으로 수취하기 때문이다. 이 충돌은 임금과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며, 복지, 교육, 법질서, 외교 등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된다.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

마르크스의 착취 이론은 특정 노동자 집단이 얼마나 빈곤한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노동자가 얼마나 착취당하는지는 임금이나 생활 수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착취 정도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에 비해 얼마나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지에 달렸다.

고임금 노동자라고 해서 착취당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덜 착취당하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고임금 노동자가 저임금 노동자보다 임금 대비 잉여가치 비율이 높다면 그가 더 많이 착취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과 훈련 수준이 높은 고임금 노동자가 생산성이 더 높고 착취율도 더 높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노동운동과 좌파 측에서는 착취를 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고임금 노동자는 독점과 원·하청 불공정 거래에서 비롯된 ‘초과이윤’을 누린다고 본다. 초과이윤을 얻은 기업이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주어 이들을 매수했고, 이에 따라 노동자가 특권화돼 보수화됐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고임금 노동자는 대부분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더 많이 착취당하고 있다 ⓒ출처 삼성전자

그러나 독점이 경쟁을 대체하고, 독점기업이 초과이윤을 고용 노동자와 나눈다는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첨단산업 대기업조차 치열한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은 고용 노동자에게서 잉여가치를 최대한 많이 뽑아내야만 한다.

삼성전자가 성과주의 임금제를 고집하는 이유도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성과급제 아래에서 사용자는 임금이 노동자의 업무 수행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노동자 개개인이 스스로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성과급은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 임금 인하를 위한 지렛대로 작용한다.

따라서 고임금 노동자의 성과급 투쟁 역시 자신의 무보수 노동을 덜 빼앗기려는 정당한 투쟁이다. 이들 또한 착취당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의 다른 집단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착취가 모두에게 균등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성별, 성적 지향, 인종, 국적 등에 따른 차별은 착취를 강화한다. 차별로 인해 취약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는 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기 쉽다.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개인의 능력과 노동시장 내 위치에 따라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실제로는 능력과 무관하게 단지 여성이나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또한 차별은 특정 노동자 집단만 취약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계급 전체를 약화시킨다. 노동자를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과 계급을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오류다. 노동계급은 성별, 성적 지향, 인종에 따라 노동자를 분열시켜 착취를 강화하려는 지배계급에 맞서 차별 반대에 동참하는 것이 유리하다.

임금 격차의 확대/해소 역학

착취당하는 처지라고 해서 연대와 단결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착취는 은폐돼 있는 데다, 노동시장은 노동자를 서열화하고 분절해 경쟁시키며,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를 이간질해 분열시키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내부의 임금 격차에도 이러한 요인이 작용한다. 임금 격차는 부분적으로 개별 노동자의 가치 생산 능력 차이에서 비롯하지만, 관습과 관행, 그리고 자본가의 노동자 분열 전략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노동력은 일반 상품과 달라서, 자본가가 이를 구매했을 때 마주하는 대상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가가 책정하는 가격을 아무런 의문 없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노동력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이 최저 생계 수준만이 아니라며 “역사적·사회적 요소”를 강조했다. “[노동력 가치는] 이런 육체적 요소 외에도 각 나라의 전통적 생활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이 수준에는 단순한 육체적 생활 욕구 충족뿐 아니라, 사람들이 생존하고 양육되는 사회적 조건으로 발생하는 욕구 충족도 포함된다. ··· 이 역사적·사회적 요소는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있고, 나아가 육체적 한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만큼 완전히 소멸할 수도 있다.”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해 투쟁하며, 이 투쟁의 누적 효과는 노동력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임금 수준은 결국 투쟁 당사자(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힘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노동자 투쟁은 전반적인 임금 상승을 이루고, 임금 격차를 줄일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출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수년 동안 임금을 대폭 올린 한국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이 투쟁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준 증인이다. 투쟁 과정에서 생산직과 사무직, 숙련과 미숙련의 임금 격차도 축소됐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국 사회주의자 고(故) 토니 클리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임금이 올라가는 방식은 꽤 단순하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산업과 숙련 부문의 잘 조직된 노동자가 강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한다. 그러면 노동계급의 나머지 부문은 이들과 임금 수준을 비교하며 이를 따라잡고자 애쓴다.

물론 특정 노동자 부문이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 나머지 노동자 부문과의 격차가 일시적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 그러나 추세로 보면 노동자 임금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격차를 좁힌다. 선도적인 투쟁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를 고무해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주기 때문이다.

임금 투쟁과 의식 변화

그러나 노동운동에서도 개혁주의가 강화되고 계급정치 대신 특권이론 등이 득세하면서, 노동자 투쟁이 해당 부문에만 득이 되고 격차만 늘릴 뿐이라는 주장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적정 임금 수준과 격차 해소를 보장하는 제도 마련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그중 하나인 스웨덴 연대임금제의 문제점은 뒤에서 살펴본다.)

마르크스는 일찌감치 이런 견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파업을 ‘노동자 자신’의 이익에 유해한 것으로 보면서, 자신들의 위대한 목적이 영구적 평균임금을 확보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에 있다고 보는 일단의 박애주의자와 심지어 일단의 사회주의자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국면들로 이루어지는 산업순환의 현실을 감안할 때, 그와 같은 평균임금 개념은 말도 안 된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임금제도 아래서는 생산비가 서로 다른 노동력에 대해 노동시장에서 서로 다른 가격을 매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임금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허망한 소망이자 천박한 급진주의의 산물이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임금제도의 토대 위에서 평등한 보수 또는 적어도 공정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노예제도의 토대 위에서 자유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더 나은 임금을 위한 투쟁을 경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정반대로 나는 임금의 상승과 하락의 교대, 그리고 그로 인한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지속적 갈등은, 산업의 현재 조직에서 노동계급의 정신을 지탱하고, 노동자를 지배계급의 침탈에 대항하는 하나의 거대한 연합으로 단결시키며, 노동자가 무감각하고 아무 생각 없는 잘 먹인 생산도구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라고 확신한다. ··· 우리는 그(파업과 결사) 경제적 결과가 겉보기에 하찮다고 해서 눈감아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도 도덕적·정치적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당대 좌파들과 달리 임금 투쟁을 중시한 이유는, 노동자가 그런 불가피한 ‘유격전’ 속에서 근본적 사회변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식과 조직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임금 투쟁은 처지를 일시적으로 개선할 뿐이라며 포기한다면 “구제할 도리 없는 패잔병의 무리로 타락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노동자가 자본과의 일상 투쟁에서 비굴하게 굴복한다면 그 어떤 더 광범한 운동을 일으킬 자격도 잃고 말 것이다.”

연대임금제 문제: 결론을 대신해

노동운동 안에서는 연대임금제가 격차 해소 방안으로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특히 노동조합의 고위 상근간부층은 그 수단으로 중앙 및 산별교섭을 중시하는 스웨덴 모델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최근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임금 격차 해소 방안으로 꺼내 놓은 것이 바로 스웨덴 연대임금제다. 그는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는 개별 기업의 지불 능력과 관계없이 노동자 임금을 균등화하는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연대임금제가 시행된 것은 고용주연합(SAF)과의 중앙교섭이 이뤄진 1952년 이후였으나, 스웨덴 노총은 그전부터 준비를 갖췄다.

핵심 내용은 내수 부문(특히 건설 노동자)의 고임금을 억제하고 수출 부문의 저임금층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스웨덴 노총은 1951년 총회에서 고임금층 임금 인상 자제를 위한 조정자 역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연대임금 모델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임금 억제와 산업 평화가 강요되면서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축적하며 거대해졌으나, 노동자의 불만은 켜켜이 쌓였다.

연대임금제는 격차를 줄이는 균등화를 표방했으나 결국 전반적인 임금 억제 효과를 냈다. 스웨덴 연대임금 전문가인 신정완 교수는 “노동과 자본 간 기능적 소득분배 측면에서는 노동 측의 임금소득 증가를 억제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라고 지적한다.

스웨덴 노총은 연대임금제를 추진하면서 산하 노조의 임금 쟁의를 통제했다. 가령 고임금층인 건설 노동자의 파업은 임금 격차를 심화시키는 해로운 행위로 규정돼 규제 대상이 됐다. 이와 같은 노동조합 기구의 통제 강화는 현장 노동자의 수동화를 낳았다.

격차 해소 방안 중 급진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스웨덴 연대임금제가 임금 억제와 노동자 수동화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청 간담회 중앙 교섭을 중시하는 ‘연대임금제’는 임금 억제와 산업 평화 강요로 노동자 수동화의 위험을 키운다 ⓒ출처 청와대

노동운동 내부에는 기층 노동자의 투쟁이 기껏해야 협소한 부문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므로, 노조 상층기구나 개혁주의 정당을 통해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더는 노동자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처지가 낫고 잘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을 이기적인 행위로 규정해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격차 해소와 연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전체 노동자의 투쟁력 훼손과 수동화 위험만 키운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진행 중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적으로 처지가 낫고 잘 조직된 노동자의 힘이 사업장과 부문을 넘어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연대와 단결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계급정치를 바탕으로 노동운동 내부에서 연대와 단결을 설득하는 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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