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 불명예 사임:
긴축, 인종차별, 가자 집단학살 지지의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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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가 사임했다. 지난주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당내 유력 차기 총리 주자인 앤디 버넘이 승리하자 스타머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당 대표 선출 일정은 7월 9일 시작되는데, 그러면 9월에 새 총리가 선출될 것이다.
버넘은 출마 의사를 밝혀 왔다. 노동당 우파 웨스 스트리팅도 경선 출마에 필요한 추천인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스타머는 퇴임 연설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악상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난 2년의 “치적”을 늘어놓았다. 스타머는 눈물을 삼키며 “2년 만에 우리가 이룬 성과를 보라”고 말했다.
스타머는 노동당 정부가 “긴축을 끝내고” 노동자들과 세입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총리 취임 후 처음 그가 한 일은 전임 보수당 정부가 아동수당을 자녀 두 명까지로 제한한 것을 유지해 100만 명 넘는 아이들을 빈곤 속에 방치하고, 연금 수급자 1,000만 명의 겨울 연료비 지원금을 삭감한 것이다.
고용권리법은 대기업들을 달래면서 누더기가 됐고, 임차인권리법은 세입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인 높은 월세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스타머가 나열한 “성과들” 중 실질적인 것들은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고 극우와 인종차별을 부추겼다.
스타머는 “냉전 종식 이래 국방비 최대 증액,” “이주민 유입 저지,” “난민 숙소 폐쇄”를 성과로 자랑했다.
아동성애범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틴의 친구 피터 맨덜슨을 주미 대사로 임명했던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전기와 수도를 끊을 권리가 있다’는 발언과, 이스라엘의 인종학살을 지원한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당이 트랜스젠더+ 사람들과의 전쟁을 격화시킨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스타머는 어떻게 2년 만에 이토록 처참하게 몰락했을까?
주기적인 위기가 정치 시스템을 거듭 휩쓸고 있다. 2007년 이래 영국 국가는 세계 금융 위기, 브렉시트, 코로나19, 이스라엘 지지에 따른 정당성 상실로 타격을 입어 왔다.
지난 10년 사이에 총리가 여섯 번 갈렸다. 반면, 2007년 금융 위기 이전에는 30년 동안 총리가 고작 세 번 교체됐다.
이런 불안정의 뿌리는 1970년대의 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기는 세계적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하락하며 영국 국가가 휘청이던 가운데 이윤율 위기가 다시 찾아온 때였다.
그에 대한 영국 지배계급의 대응은 신자유주의였다. 보수당과 노동당 사이의 차이는 갈수록 줄어든 반면, 양대 정당과 유권자들 사이의 괴리는 깊어져 갔다.
서민들은 정치적·경제적 결정권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에도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2007년 세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각국 지배계급들은 긴축 재정을 추진하고 이민자 희생양 삼기에 열을 올렸다. 이는 극우의 인종차별을 정당화해 줬고 극우에 “권력층 반대” 세력을 자처할 기회를 줬다.
그러나 정설 신자유주의도 살아남지 못했다. 현재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국가 개입에 훨씬 더 의존하는 운영·조직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과정은 1945년 이래 서방에서 우세했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의 붕괴와 결합되고 있다.
그에 따라 스타머와 그의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는 “바이드노믹스”를 모방하고 싶다고 했다. 바이드노믹스란 미국의 전임 바이든 정부가 국가의 경제 개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대(對)중국 경쟁력을 높이려 한 것을 일컫는다.
지난 10년 간 영국은 경제 성장이 더뎠다. 노동당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려면 증세와 차입으로 투자를 늘려야 했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는 부유층과 금융 시장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러지 않았다. 대신 긴축 2.0을 추진했다. 그후 국정 ‘쇄신’과 우향우가 거듭됐다.
스타머는 노동당 정치 전통의 가장 매력 없고 밥맛없는 대표자의 한 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동당이 노동계급 사람들을 저버리는 것은 “노동당식 개혁주의”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 변화를 이루는 데서 의회가 노동자 투쟁보다 중요하다는 노선이다.
노동당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노동계급의 염원을 표현해 왔지만, 영국 국가의 운영권을 갖고 ‘국익’에 따라 통치하고자 한다.
문제는 은행가·기업주·건물주와 노동계급 사람들이 공유하는 국익이란 없다는 것이다.
‘국익’에 따라 통치하는 시도는 결국 지배계급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호황기에는 이윤 추구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개혁을 제공할 여지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시스템 전체가 경기 부진, 기후 혼란, 전쟁 위협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제 대기업들은 쥐꼬리만한 양보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온건하기 짝이 없는 개혁도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누더기로 만들라고 노동당에게 요구해 왔다. 스타머와 리브스는 여기에 기꺼이 응해 왔다.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개선할 충분한 부가 있지만, 그렇게 사용할 수 있으려면 대기업과 맞서고 시장과 단절해야 한다.
노동당 차기 대표에 도전하는 버넘은 스타머와 달리 부자들의 권력에 맞설 의지가 있을까? 모든 정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해 버넘은 노동당이 채권 시장의 포로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내내 버넘은 그 발언을 희석시키고 대기업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버넘은 기업주들의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말이 와전됐다고 주장했다. “그 발언의 취지는 우리가 경제의 근본 동력을 통제하기를 아예 포기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경제를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버넘은 리브스가 노동당의 긴축 재정을 정당화하려고 세운 “재정 준칙”에 손댈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버넘은 기업주들과 은행가들에게 자신의 “재정 책임성”을 확인시켜 주려고 주류 경제학자 세 명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그중 한 명은 영란은행(영국의 중앙은행) 수석 경제학자 출신인 앤디 홀데인이다. 다른 한 명인 리처드 휴스는 예산책임청장을 지냈던 자다.(예산책임청은 보수당 정부 시절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 긴축 정책을 감시하려고 만든 기구다.) 나머지 한 명인 짐 오닐은 보수당 정부의 장관과 골드만삭스 애셋매니지먼트의 회장을 지냈던 자다.
온갖 “연성 좌파” 행세에도 불구하고 버넘은 스타머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중도 정치를 대표한다.
버넘은 노동당의 재정 준칙을 고수하고 긴축 재정을 지속하겠다는 뜻만 밝힌 게 아니다.
버넘은 노동당의 인종차별과 권위주의 강화와 단절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해 왔다. 단절은커녕 오히려 정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궐선거 선거운동에서 버넘은 내무장관 샤바나 마흐무드의 이민자 단속 계획을 지지했다. 이민 문제에서 영국개혁당보다 한 술 더 뜸으로써 영국개혁당을 앞서겠다는 스타머의 전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뒤 버넘은 트랜스젠더+ 사람들을 저버리고 평등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적 지침[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 — 역자]을 준수하겠다고 했다.
이는 버넘이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영국개혁당·영국재건당 등 극우에 맞선 장벽이 되지 못할 것임을 보여 준다. 새 정부는 오히려 극우·파시스트의 인큐베이터 구실을 할 것이다.
스타머의 몰락에 기뻐하자. 그러나 한 명의 중도 정치인을 다른 중도 정치인으로 바꾼다 해서 수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아래로부터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계급 투쟁을 건설해 변화를 쟁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