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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세계적으로 더 심각해지는 정치 위기와 양극화, 혁명적 좌파의 과제

지난해 트럼프 당선을 전후한 시기부터 우리는 역사의 전개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특히 윤석열 쿠데타 미수와 파면 사건을 겪으며 더욱 그렇다. 트럼프 2기 정부는 1기 때보다 훨씬 더 우익적이고 공세적이고 과격하고 정교한 정책들을 시행하며 세계 자본주의의 혼돈과 불안정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트럼프의 시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뾰족한 해법 없이 이스라엘의 전쟁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와 걸프 지역 그 동맹국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깊어지고 있고, 이는 걸프 지역 지배계급들(이제는 세계 자본주의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혼란과 패닉에 빠져 있고 아무런 전략적 합의도 도출하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대대적 군비 증강만큼은 공통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공격과 복지 삭감을 감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조율의 부재와 불확실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트럼프의 괴팍함 탓도 꽤 있지만 단지 그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오히려 세계 자본주의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더 넓은 위기와 분열의 증상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는 어떤 일탈이 아니었다. 그 전에도 4년 사이에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의 폭동(국회의사당 습격), 브라질판 트럼프인 보우소나루의 비슷한 시도(이 경우에는 군부의 지지를 얻고서)가 있었다. 각각 세계 최강대국과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사건들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구조가 약화되고 위태로워지는 가운데 지배계급의 극우적 일부가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지배 전략을 추구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혼돈스러운 전환기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세계가 전면적 국가자본주의 시기에 들어섰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물론 위기 관리와 경제적·군사적 경쟁을 위해 국가 개입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생산의 세계적 통합 수준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현재 이 통합이 와해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트럼프가 관세 전쟁에서 후퇴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국제 통화 시스템을 지탱하는 미국 국채가 폭락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애플 등의 기업들이 여전히 중국에 생산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세계가 전반적 국가자본주의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

전진하는 극우의 위협과 그에 맞선 투쟁

세계 수준에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정치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세계 곳곳에서 극우를 고무하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는 브라질에서 쿠데타 기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보우소나루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며 이를 관세 전쟁 명분의 하나로 삼기도 했다. 그보다 전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는 총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 네덜란드 극우 정당 자유당의 대표를 만나 그에게 힘을 실어 줬다. 한국의 극우도 마찬가지 지원 사격을 해달라고 트럼프에게 호소하고 있고, 최근 트럼프와 연계가 있는 극우 정치인 모스 탄이 한국을 방문해 그들을 고무했다.

때때로 트럼프의 간섭은 반트럼프를 표방하는 세력에 득이 되기도 했다. 관세 전쟁의 파장 속에서 캐나다 자유당이 집권을 연장한 것이 그런 사례다. 트럼프의 압박은 위기를 겪던 브라질의 룰라가 브라질 주권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지지율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런 애국주의는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공격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가령 캐나다 자유당은 이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퍼센트 수준으로 늘리고(사실 이것은 트럼프의 요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복지 삭감 공격을 하고 있다.

극우의 위협은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의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RN)은 현재 의회 의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정부 불신임이나 정부 구성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지난 총선에서는 100명에 이르는 RN 후보들이 파시스트임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RN은 극우 폭력 조직들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거리 운동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있다. 이제 RN은 거리 운동을 건설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곳곳에서 공개 회합을 조직하고 최근 파리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파시스트들의 폭력적 거리 운동이 급성장할 위험이 있다. 물론 그런 운동을 건설하려는 파시스트들의 노력은 품격 있는 의회 정당으로 인정받으려는 그들의 노력과 모순을 빚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인종차별적 공격과 모스크 방화, 활동가·시위대 공격이 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017년에만 해도 프랑스의 주류 자본가 정당들은 극우와 손잡기를 거부하는 듯했다(이른바 ‘방역선’). 그러나 이제 그들은 급진 좌파인 ‘불복종 프랑스’(LFI)를 주적으로 삼고 RN과 의회 표결에서 합을 맞추고 있다.

극우 ‘방역선’은 독일에서도 무너졌는데 올해 초 기민련(CDU)이 파시스트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표에 의존해 이민자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최대 야당이 된 AfD가 향후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이 현실적이라는 위기감을 자아내고 있다.

영국에서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 정부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 영국개혁당이 지난 보궐 선거에서 큰 소득을 얻었고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영국개혁당은 20만 명의 당원과 871명의 시의원을 보유하고 있고, 심지어 대표 나이절 퍼라지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극우를 물리칠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트럼프 자신이 취임 반년도 안 돼 만만찮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이는 양극화가 한쪽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뒤에서 살펴볼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도 중요한 대항 흐름의 하나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여름 조기 총선을 앞두고 RN의 집권 가능성이 대두하자 RN에 맞서 80만 명이 거리에 나온 바 있다. 올해 3월 22일에는 돌파구를 열었다고 할 만한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집회가 200여 개 도시에서 열렸다.

독일에서도 현 총리 메르츠가 ‘방역선’을 넘은 것(위에서 언급한)을 계기로 수십만 명이 AfD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이는 오랫동안 위기에 시달리던 좌파당이 다시 소생하는 계기가 됐다. 좌파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AfD에 맞설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됐는데,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기민기사련(CDU/CSU) 주도 연정에 참여하고 있고, 좌파당에서 나온 바겐크네히트의 신당(BSW)이 인종차별 문제를 둘러싸고 후퇴하는 노선을 밟아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좌파당의 위기를 낳은 모순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뒤에서 살펴보겠다).

논쟁을 피하면 안 된다

파시즘·극우에 맞설 방법을 두고 곳곳에서 첨예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 파시즘·극우 정당의 성격 규정 문제다. 예컨대 많은 프랑스 좌파들이 여전히 RN을 파시스트로 규정하지 않는다. 많은 노동계급 유권자가 RN에 투표하므로 RN은 파시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한 표 분석이 아닐뿐더러, 당의 핵심 인물들과 투표층을 구분해서 보지도 않는 피상적인 이해다.

이런 주장은 정책 대안(경제와 생활조건 문제를 해결할)으로 선거에서 극우를 물리쳐야 한다는 주장과 흔히 짝을 이룬다. RN은 노동자·서민의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그들의 표를 가져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인종차별에 맞서기를 회피한 채 생활조건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이에 인종차별은 계급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내므로 개혁주의자들의 계획은 성공해도 금세 수포로 돌아간다. 2023년 프랑스에서 연금 개악에 맞서 거대한 운동이 일어났고 프랑스인의 80퍼센트가 그 개악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 운동이 개악을 막지 못한 채 끝나자 몇 주 후 경찰의 아랍인 청년 살해에 맞서 소요가 일어났을 때는 통행금지령을 지지하는 여론이 다수가 됐다.

영국의 많은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인종차별에 맞서기를 회피한 채 생활조건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특히, 그들은 영국개혁당을 인종차별주의 정당이라고 규정하기를 꺼리는데, 노동조합 내 영국개혁당 지지·조합원들과 충돌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에 맞서지 않으면 경제 문제든 생활조건 문제든 해결할 수 없다.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신자유주의가 낳은 울분을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극우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극우는 그런 울분을 인종차별 등(한국 극우의 경우 반공주의와 중국인 혐오) 자신의 의제로 결집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프랑스 총선에서 RN이 제시한 경제 강령의 모순과 후퇴, 후보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은 그들의 득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인종차별이 표를 모으는 핵심 수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극우의 특별한 사상과 수단에 맞서는 특별한 투쟁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최근 민주당 뉴욕 시장 예비경선에서 조란 맘다니가 승리한 것으로부터 잘못된 교훈을 도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맘다니는 무상 대중 교통과 집세 동결 같은 경제적 문제들을 공약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맘다니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지지하는 후보로 여겨졌고, 선거 운동 내내 인종차별적 공격에 시달렸으므로, 인종차별 반대가 그의 선거 운동에서 불가결한 요소였다.

둘째, 극우에 맞서는 방법을 둘러싼 또 다른 쟁점으로 민중전선 문제가 있다. 지난해 프랑스 총선에서 마크롱은 신민중전선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극우와 손을 잡았다. 사회당도 신민중전선 덕분에 기사회생했는데, 올해 초 좌파(특히 불복종 프랑스 LFI)가 발의한 정부 불신임안을 지지하지 않고 마크롱 정부와 손을 잡았다. 그래서 LFI는 신민중전선의 활동 중단을 선언해야 했다.

이처럼, 프랑스 신민중전선은 극우를 물리치지 못했다. 게다가 선거에서 극우를 물리친다는 신민중전선의 노선은 오히려 RN이 다른 세력들과 나란히 토론할 자격이 있고 정책 대안으로 경쟁해야 하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더 강화시켰다.

이제 LFI는 내년 3월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신민중전선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압력을 당 안팎에서 받고 있다. 그 선거 연합은 LFI에 지난번과 똑같은 제약을 부과할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LFI는 신민중전선이 인종차별 반대를 분명히 하지 않고,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을 규탄하고, 결선 투표에서는 마크롱의 가장 고약한 장관들까지 지지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에서는 윤석열에 맞서 민주당과 진보당 등으로 이뤄진 민중전선(내란종식 민주헌정수호 원탁회의)이 형성됐다. 윤석열 쿠데타 미수 직후 그 전까지는 정치 언저리에 있던 극우가 크게 성장했을 때, 윤석열 반대 운동을 이끈 원탁회의는 노동자 투쟁을 피했다. 이는 국가기구 내 쿠데타 지지 세력에 더 넓은 운신의 폭을 허용했고 이는 윤석열 파면으로 이르는 과정과 대선 과정에서 위기를 낳았다. 대선 이후 대중 운동은 사실상 동원 해제 상태가 됐다. 그러는 동안 극우는 혐중과 반공주의로 기층에서 운동을 재건하고 있다.

영국의 코빈 등 노동당 탈당파 국회의원들이 주도해 설립하고 있는 ‘노동당 왼쪽의 대안 정당’ 프로젝트도 LFI 같은 범좌파 정당을 지향하는데, 녹색당(당내 좌파가 당권에 도전하고 있는)과 선거 연합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아갈 것 같다. 영국개혁당을 물리치려면 인종차별 반대와 이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동원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도 말이다.

극우를 물리치려면, 대중을 주로 수동적인 유권자로 취급하고 선거와 국가에 의존하게 하는 민중전선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키우고 대중에게 자신감을 주는 공동전선 방식이 필요하다.

셋째, 극우 반대 운동 내에서 국가가 극우 정당을 해산시키라는 요구가 종종 제기된다. 한국에서 제기되는 국민의힘 해산 법안 입법 문제나 독일에서 제기되는 AfD 해산 요구가 그런 사례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런 요구는 극우 대항 행동의 동원을 해제시킬 위험이 있고, 그 요구를 놓고 헌법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절차도 순조롭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요구에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지난 5월 독일에서는 AfD가 정보 기관에 의해 ‘극단주의’ 단체로 분류되자, AfD를 해산시키라고 요구하는 수만 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그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AfD에 맞서 거리에 나온 사람에게서 비켜서 있어서는 안 되고, AfD 해산을 반대하는 오른쪽으로부터의 공격에도 맞서야 한다. 혁명가들은 극우 정당 해산을 바라는 사람들과의 공통점에서 출발해야 하고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극우에 맞선 동원을 건설할 수 있는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개혁주의의 위기와 좌파 개혁주의

2010년대 중엽부터 좌파에서 우세해진 견해는 득표를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이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계급과 청년이 급진적이 되는 동안 좌파가 우경화하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는 개혁주의의 위기를 낳았다. 조란 맘다니의 민주당 뉴욕 시장 후보 예비경선 승리를 이런 맥락 속에서 볼 수 있다. 미국 민주당 자체는 개혁주의가 아니고 순전한 부르주아 정당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진정한 개혁주의자들과 노동조합 관료층에 헤게모니를 행사함으로써 미국 정치에서 개혁주의 노릇을 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등장과 지금 그의 정부는 민주당의 약속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보여 줬다. 맘다니는 그 공백을 이용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1년 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영국의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는 이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한편으로 노동당 우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면서 기층의 반감을 사고,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의 등장과 극우의 부상에 우경화로 대응하면서 극우를 키워 준 결과다. 이런 이유로 코빈의 ‘노동당 왼쪽 대안’ 프로젝트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류 개혁주의의 위기와 대중의 급진화가 동시에 벌어지는 가운데 좌파적 개혁주의 측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독일 좌파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말까지 좌파당은 오랫동안 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자 전쟁이 시작된 이래 좌파당은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것조차 회피해 많은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의 환멸을 샀다. 심지어 지난해 말에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분명하게 지지했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 활동가를 출당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AfD의 연정 참여 가능성이 현실적이 된 지난 2월 총선에서 좌파당은 득표를 크게 늘리고 젊은 활동가들이 대거 입당했다. 좌파당 당원들은 최근 열린 독일 최대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도 상당한 대열을 이뤘고 그중 많은 수가 신입 당원이었다. 이런 압력 속에서 좌파당 전국 지도부는 NGO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열겠다고 하고 있다.

프랑스의 LFI도 신민중전선의 가동 중단을 선언한 이후 인종차별 반대 거리 동원을 호소했다. 특히, LFI는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가 관여하는 인종차별 반대 공동전선 ‘연대 행진’의 3월 22일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집회를 키우는 데 동참했다. 덕분에 그 집회는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로 열리게 됐다.

이런 변화는 개혁주의가 죽었으며 그 공백이 자동으로 혁명가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착각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혁명가들에게도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에 빠진 개혁주의가 급진화 압력 때문에 좌경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개혁주의의 성격 때문에 좌파 개혁주의의 좌경화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 좌파당 지도부는 여전히 선거에 상대적 무게를 실으며 연립정부 참여를 통해 변화를 이루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민당·녹색당과 연정을 꾸릴 전망이 가까워질수록 좌파당 지도부는 좌파적 목소리를 자제시키려 할 것이다. 이는 특히 사민당·녹색당의 지지로 추진되고 있는 대대적 재무장을 반대하는 일에서 모순을 낳을 것이다. 이런 모순은 혁명가들에게 개입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혁명가들은 급진화의 그런 표현을 환영해 공동 투쟁을 구축하려 하면서 자신의 정치의 효과성을 입증해 나아가야 한다.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정치 양극화 속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항 흐름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다.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대중 여론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 지배계급들의 입장 차이가 어느 때보다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격차는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강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반트럼프 운동의 발판이 됐다. LA 항쟁에는 이민자 이웃들을 지키려는 지역사회 성원들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으로 급진적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독일에서는 지난 6월 21일 처음으로 수만 명 규모의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렸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규모는 다시 늘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연관된 기업들을 겨냥한 직접 행동에 대한 지지가 늘었다. 노동당 정부는 그 행동을 조직하는 한 주요 단체(Palestine Action)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려 하고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는 여느 때와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전쟁 전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여러 차례 공격해 왔고 그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국제적 연대를 촉발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정권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죽이거나 자기 땅에 살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가자지구에서 어느 정도 그렇게 했고 지금 서안지구에서도 그렇게 하려 한다. 얼마 전 언론에는 거대 컨설팅 기업 보스턴 컨설팅과 토니 블레어(노동당 소속 영국 전 총리) 연구소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재배치”된 이후의 가자지구 재개발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는 완수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엄청난 고통과 참상을 계속 낳을 것이다. 이에 대한 세계 지배계급들의 외면은 수많은 사람들을 급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인종 학살이 2년이나 지속되면 사람들은 단지 네타냐후 같은 악당들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쉽다.

이를 힐끗 보여 주는 최근 사례는 영국의 한 좌파 측 페스티벌이었다. 그 축제에서 펑크 듀오 밥 빌런(Bob Vylan) 등 음악인들이 “IDF(이스라엘군)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자 권력 핵심부와 주류 언론들은 그들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그 음악인들에 대한 대중의 광범한 지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급진화를 자극하는 데에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위기라는 더 근본적인 배경도 있다. “냉전 이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주장은 1990년대 중엽 이후 인도주의를 내세운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이뤄지는 “새로운 국제법의 시기가 시작됐다”는 주장과 결합됐다. 그런 개입은 (특히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특히 인종 학살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뒷받침됐고, 홀로코스트의 이미지가 서방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지난 30년 동안의 이런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를 산산조각냈다. 두 국가 방안도 그 비전의 일부였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앞으로도 한동안 사람들을 급진화시키고 거리로 불러내는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 노동계급의 핵심 기구인 노동조합 지도층의 행동은 현재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물론이지만,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가장 크게 벌어져 온 영국에서도 혁명가들은 노동조합을 움직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층에서는 어느 정도 진전을 봤지만, 상층에서는 어려움이 훨씬 크다.

물론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인종 학살을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이따금 집회 발언을 하는 것에 그치고 거리 동원은 하지 않는다. 또, 어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정부의 외교 정책 문제로 풀어야 한다며 회피한다. 또, 방위산업 일자리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와 대결하지 않는 축도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를 지켜봐야겠지만, 영국의 경우 두 번째로 큰 노조인 유나이트의 지도자들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

조직 노동계급의 기구가 잘 움직이지 않는 탓에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내에서 노동계급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먹히기가 쉽지 않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은 혁명적 좌파에 의해 추동될 때가 많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는 ‘부문간 기층위원회’(Si Cobas)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파업을 벌였는데, Si Cobas는 보르디가(안토니오 그람시와 갈등을 빚은 초창기 이탈리아 공산당 좌파 지도자) 전통에 속하는 혁명적 좌파 ‘혁명적 국제주의 경향’ 회원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이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측이 ‘일터 행동의 날’을 호소했을 때도 대부분의 행동은 일터에서 활동하는 혁명가들에 의해 추동됐(는데, 행동의 수위는 파업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기층 노동자들의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혁명가들의 정치적 역할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군비 증강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리전임은 이제 좌파에서는 널리 인정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2014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전반에 걸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경쟁이 점증하다가, 2014년부터는 우크라이나 국가가 나토·미국과 군사·정보적 측면에서 깊숙이 얽히게 되고, 이후 러시아의 침공으로 그 관계가 더 깊어진 것이다.

전쟁의 완급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미국이 정해 왔다. 이 전쟁의 핵심 역학은 제국주의 간 경쟁인 것이다.

이제 유럽 지배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대대적인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복지 삭감, 연금 개악, 노동시간 연장 등 노동계급의 조건을 공격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지지하는 입장이 얼마나 재앙적인지를 잘 보여 준다. 비극이게도 국제 극좌파의 많은 부분도 이런 친서방 진영론에 빠졌다. 특히, 유럽의 중요한 극좌파인 제4인터내셔널 경향,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트로츠키주의 조류인 모레노주의의 주요 조직들(다행히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 PTS는 제외), 한때 미국의 최대 혁명 조직이었던 국제사회주의단체(ISO) 소속 회원들의 일부 등이 친서방 진영론에 굴복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지지하는 좌파들은 자신들도 나토를 비판하고 군비 증강을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재무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군비 증강을 반대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군비는 지지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입장이다.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고, 제국주의에 손가락을 내주면 제국주의는 팔 전체를 잡아채 가려 할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 개전 때인 1914년 8월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 우고 하제(Hugo Haase)의 의회 연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화주의자로서 그는 군국주의 반대와 무기 거래 반대, 민중의 우애를 운운하면서도 결국 전쟁 공채 발행을 지지했다.

역사의 급변 속에서 혁명가들에게 필요한 것

첫 머리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사태 전개가 빨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레닌이 남긴 가장 뛰어난 저작들은 제1세계대전 개전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 분열의 시기에 쓰여진 것이다. 그 저작들에서 레닌은 “역사의 급변”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먼저, 레닌은 분석을 위한 명료한 이론적 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레닌의 경우, 그것은 제국주의와 그 모순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인류의 위기와 좌파의 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뜻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현대 제국주의와 그 모순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의 급변” 속에서는 좋은 분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때를 놓치지 않고 그 변화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극좌파와 좌파 일반 모두 갑작스러운 변화를 그저 관망하다 때를 놓치는 사례가 허다했다.

소규모인 혁명가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 즉, 공동전선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사실, 공동전선에 관한 트로츠키의 기여는 흔히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의해 계승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파시즘과 극우에 맞선 투쟁 등에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한편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도 공동전선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다. 공동전선 건설 때문에 더 어려워지는 면도 있는 과제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오늘날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시류를 거스르는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자율주의가 마르크스주의와 나란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전선을 건설하더라도 다른 전장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면 공동전선 투쟁도 약화될 때가 많다.

한편, 어떠한 성공적인 공동전선 활동도 결코 자동으로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적 수준을 높이려는 매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론과 실천이 통일돼야 하고 이론이 현 시기에 필수적임을 강조해야 한다.

혁명가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극우에 맞선 공동전선과 대항 행동을 건설하는 것은 단지 임기응변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형태의 자본주의적·제국주의적 지배가 무너지고 있는 혼돈스러운 전환기를 거치고 있는 현 시기에 대한 분석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이론은 실천의 대체물이 아니다. 루카치가 《레닌》에서 강조했듯이, 이론과 실천을 매개하는 것은 조직이다. 활동과 행동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조직을 통해 이론을 실천과 결합시켜야 한다.

이론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추상적인 교조주의자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이론에 기초해서 활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추상적인 교조주의자들이 득을 볼 것이다. 이론은 실천의 등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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