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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 운동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스타머(영국 노동당 소속 총리)와 트럼프의 운명적 만남

영국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는 2월 27일(목)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 꽤나 까다로운 줄타기를 해야 할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그 만남이 스타머의 임기를 “규정짓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타머는 영국을 유럽연합 쪽으로 다시 밀착시키려 한 전임 보수당 정부의 총리 리시 수낙의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스타머는 트럼프가 유럽연합에 퍼붓겠다고 위협하는 관세 폭탄 세례에서 영국만큼은 예외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의 덕을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종전을 둘러싼 러시아와의 협상에 우크라이나 대표와 유럽 대표를 불참시키기로 하면서, 스타머의 이런 줄타기는 위태로워지고 있다. 스타머는 종전 후 우크라이나에 영국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보내겠다는 제안으로 트럼프 정부의 환심을 사려고 해 왔다.

또, 스타머는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갑절 이상으로 증액하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부응해 영국 국방비를 GDP 대비 2.5퍼센트로 늘리겠다고 곧 발표할 듯하다. 이 때문에 또 다른 줄타기가 엎어질 수 있다. 스타머의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는 긴축 정책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금융 시장을 만족시키려 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스타머는 복지가 아닌 전쟁에 재정을 사용하려 한다.

그러나 스타머는 곤경에 처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 대한 영국의 지지를 재확인시켜 주면서, 종전 후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유럽 병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는 그런 말을 그다지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곳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스타머와 그보다 먼저 워싱턴을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처럼 미국에 로비를 하는 이유는 트럼프가 서유럽 안보 보장을 중단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은 1949년 나토 창설 이래로 서유럽 전체의 안보를 보장해 왔다. 그러나 지난주 트럼프는 미국과 유럽이 “아름다운 대양”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서반구[남북 아메리카와 태평양, 대서양 등 — 역자]를 지배하고 중국에 맞서는 것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최근 트럼프는 고위급 장성 둘(합참의장, 해군 참모총장)을 해임해서 운신의 폭을 좀 더 넓혔다. 그 동기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일지 몰라도(한 명은 흑인이고, 다른 한 명은 여성이다) 국방부에 대한 트럼프의 장악력을 키운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면 스타머는 자신의 안보 수뇌부가 마련한 각본을 고수하며, 영국이 러시아에 맞서 재무장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점에서 스타머는 유럽 내 으뜸가는 트럼프 동조자들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한때 우크라이나를 열렬히 지원했지만 지금은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G7 정상들과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스타머(사진 왼쪽) ⓒ출처 Number 10 (플리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정설과 트럼프계 극우 사이에서 벌이는 이런 식의 줄타기가 국내 정책에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스타머가 그의 장관들에게 보내는 메모를 입수했다. 그 문서에서 스타머는 “안온한 엘리트의 세계관”과 “세계화 만능주의,” 시장의 기능에 대한 “자만,” 이주민 유입을 “무한정 좋은 것”으로 보는 견해 등을 비난했다.

이런 견해들은 모두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시절 신노동당 정부와 관련있는 것이다. 물론 그 정부들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주민을 공격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하듯이 스타머 정부에는 블레어주의자들이 득실거리고, 특히 지난해 10월 모건 맥스위니가 총리 비서실장이 된 후에는 더욱 그렇다. 신노동당을 설계한 피터 맨덜슨도 지금 주미 대사로 가 있다.

스타머는 앞서 말한 메모에서 유권자들이 “변화와 혼란에 목말라 있다”고 썼다. 이는 트럼프와 그의 동맹 일론 머스크가 쓰는 언사다. 스타머는 “푸른 노동당” 류의 사상을 기웃거리는 듯하다. 당내 우파인 “푸른 노동당”은 2010년 노동당의 총선 패배에 대응해 신자유주의에서 한 발 물러서는 대신 범죄·이주민 문제에서 보수당 류의 정책을 적극 수용했다.

푸른 노동당의 창립자인 모리스 글라스먼은 이제 열성 트럼프 지지자가 됐다. 스타머 정부는 트럼프의 정책 일부를 미리 보여 준 바 있다. 난민 신청자들을 체포하고 추방하는 내용의 역겨운 영상을 제작한 것이 그런 사례다. 스타머는 극우에 타협함으로써, 현재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영국개혁당의 진격을 멈출 수 있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독일의 차기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정말로 이뤄내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대서양 양안의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타머는 워싱턴[트럼프와의 정상회담 — 역자]에서 큰 곤경에 처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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