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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재정 준칙’(긴축 규칙)에 매여 옴짝달짝 못하는 영국 노동당 정부

침몰하는 노동당 정부를 구제할 수 있을까? 노동당 정부의 침몰이 믿기지 않는다면 스타머 사단의 생존율을 보라.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한다.

“한때 ‘스타머 돌격대’로 알려진 충성자 무리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잔당들만 남았다.

“스타머의 집권을 도운 20명의 비선출 측근들 중 지금도 정부에서 일하거나 고문으로 있는 사람은 6명에 불과하다. 스타머 정부의 인사 교체 속도는 흡사 패스트푸드점과 같다.”

이를 두고 흔히 스타머의 가차없음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자기 부하를 속죄양 삼아 자신의 실수를 덮는 것은 비겁함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어쨌든 그 수법은 이제 더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주미 영국 대사 피터 만델슨의 해임으로 이어진 소동[미국의 상습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가까운 관계였음이 드러남—역자] 이후 스타머는 자기 당의 여러 국회의원들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지방 선거가 열리는 내년 5월까지 정부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쫓겨날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나 스타머를 제거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노동당에는 현직 당대표를 끌어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온갖 보호 장치가 있다.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지사 앤디 버넘은 이를 무시하고 진땀을 빼고 있다. 버넘은 스타머를 대체할 중도좌파의 대안을 재빠르게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의 전적은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한다. 2000년대에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의 노동당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버넘은 당권에 두 차례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도전인 2015년에는 제러미 코빈에게 완패했다. 그 후 버넘은 적당히 진보적인 주지사로 처신해 왔다. 스타머보다 더 좌파적이어 보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난주 버넘은 일종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타머에게는 없다는 ‘전략’을 제안한 것이다. 부유층의 소득세율과 지방세를 올리고, 정부 부채를 늘려서 공공임대주택에 400억 파운드[약 75조 원]를 투자하자는 것이다.

버넘은 〈텔레그래프〉지에 이렇게 말했다. “국채 시장에 저당 잡힌 신세를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스타머와 그의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가 스스로에게 채운 조임쇠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금융 시장을 달래려고 2029~2030년까지 국민소득 대비 순 정부 부채 비율을 줄인다는 “재정 준칙”을 채택했다.

ITV 방송의 로버트 페스턴에 따르면 영국 정부의 부채는 300억 파운드[약 56조 원] 늘어날 전망이고, 그 준칙을 지키기 위해 리브스는 올해 11월에 발표할 내년도 예산안에서 세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야 한다.

스타머와 리브스는 3년 전 보수당 정부의 총리 리즈 트러스의 운명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리즈 트러스는 재원 마련 방안 없이 대대적인 감세 계획을 발표했다가 국채 시장이 폭락하는 바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세계 각국 정부들은 2007~2008년 금융 위기와 팬데믹 때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부채를 크게 늘렸다. 그러면서 영국뿐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경제 전반에서 국채 가격이 떨어졌다. 그 결과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늘어났고 이는 다시 정부 부채 부담을 더 키웠다.

스타머와 리브스는 버넘의 발언을 물고 늘어졌다. 스타머는 버넘의 이름만 언급하지 않은 채 버넘을 트러스에 비유했다. 리브스는 버넘이 “경제를 추락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버넘은 금세 후퇴해 자신의 발언이 “악의적으로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버넘은 리브스의 재정 준칙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자기는 다만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을 되찾고, 국가 재정의 촘촘한 관리를 복원하고, 시장을 안심시키려”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버넘이 스타머·리브스와 똑같은 이데올로기적 틀을 공유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 준다. 그들 모두 시장이 지배하는 경제를 받아들인다. 다만, 버넘은 약간의 개혁을 실행할 운신의 폭이 있다고 보는 것뿐이다.

버넘은 스타머·리브스와 똑같이 재정 준칙이라는 조임쇠에 매여 있다. 진정한 좌파적 대안의 출발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복리·자유와, 이윤 추구로 추동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논리 사이에 근본적 충돌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개혁 강령조차 시장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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