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파병 검토:
“굴욕 외교”라는 비판은 왜 반쪽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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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향후 국력이 더 커지면 협상력도 더 커질 것으로 본 것이다.
22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무기 시장(천궁-II 등), 반도체(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해군력에 필요한 조선업에서 세계적 역량을 뽐내며 ‘국력’(한국 자본주의의 국제적 위상)이 커졌지만 파병 압박은 당시보다 더 크게 받고 있다. 이것이 단지 트럼프 때문일까?
그보다 더 장기적이고 커다란 두 가지 변화를 봐야 한다. 첫째, 미중 간 제국주의적 경쟁의 시대가 됐다.
둘째, 커진 국력만큼이나 한국 국가가 지켜야 할 자본의 이해관계도 커졌다. 대표적으로 기술, 통상, 군사 방면을 살펴보자. 이재명 정부의 1,500조 원 메가프로젝트는 국내 반도체 생산을 넘어 세계적인 AI 생산자 자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등에서 중국에 빠르게 추격당하고 있어 대책을 찾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한미동맹 현대화’를 추구하는 한편, ‘K-방산’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일즈 외교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모든 영역에서 미중 대결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메가프로젝트 진행은 미국이 앞서있는(그래서 통제하는) AI와 반도체 기술에 접근할 수 없으면 상상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재명은 이재용(삼성), 최태원(SK), 정의선(현대차), 이해진(네이버)과 함께 미국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했다.
통상에서는 ‘삼전닉스’의 중국 수출이 미국의 제재 압박 하에 있다. 조선사들은 마스가, 즉 중국과 대결하기 위한 미 해군 강화 사업을 수주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중기적으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는 ‘방파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도 있다.
군사적으로는 이재명이 “중국 잠수함” 대응을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 보유를 약속받았다. 전시작전권,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동맹 현대화’의 주요 의제는 모두 미중 갈등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재명 정부가 조달 협정에 공들이는 나토는 갈수록 러시아 견제라는 전통적 임무에 더해 중국 견제에 열을 올리며 태평양 국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국익’(한국 자본과 한국 국가의 이익)은 치열한 미중 대결 속에서 미국의 기술, 시장, 군사 동맹 네트워크라는 인프라에 어느 정도 접근할 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제한되면 한국은 커진 국력만큼이나 입을 타격도 더 커지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판돈’이 커진 것이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이란 전쟁 파병, 우크라이나에 천궁-II 판매,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에는 분명 외압의 요소도 있지만, 커진 판돈을 둘러싼 한국 지배자들의 욕구도 얽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메가프로젝트, 핵잠수함, 마스가, K-방산 수출은 모두 이재명 정부가 능동적으로 추진한 것들이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 자본주의를 도약시킬 사업들의 성공을 위해 파병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섣불리 결단하지 못하는 것은 이란 정부와 국내 좌파를 이반케 했을 경우에 일어날 다양한 후폭풍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이 연결될 가능성, 그 때문에 한국의 이란 참전이 중동에서의 반발뿐 아니라 북중러 밀착 강화로 한국의 안보 환경에 해가 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청와대가 내심 미국 지원을 결심하고서도 비전투 수단 지원이니 뭐니 합리화를 궁리하면서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재명 정부는, 중국과 노골적으로 거리를 뒀던 윤석열 정부만큼 미국 지배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계가 ‘미국 기업’ 쿠팡 보호를 운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쿠팡은 명분이고, 네이버를 겨냥해 구글을 지원하는 것이 실리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한국 지배자들 사이에서는 파병 방식에 대한 신중론과 함께, 파병이 “흔들리는 한·미동맹 신뢰 회복 계기 돼야”(〈중앙일보〉 9월 5일 자 사설)한다는 노골적인 목소리도 있다.
따라서 이재명의 파병 검토가 ‘미국에 끌려가는 굴욕외교’라는 민족주의적 비판은 진실의 반쪽만 말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에게 미국의 파병 요구를 거부하라고 일관되게 요구하려면,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국민적 이익으로 포장하는 국익론을 거부해야 한다.
끝으로, 국력이 커지면 파병 압력을 물리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 질서 변화에 따라서는 커진 국력만큼 오히려 국제적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는 압력에 더 민감해지게 된다는 것이 지난 22년간의 교훈이다.
“옳지 않은 전쟁에 대한 파병 요청을 거절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여당 자체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