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유럽 지배자들은 트럼프가 아무리 모욕해도 굽실거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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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다.
지난주 수요일 영국 노동당 총리 앤디 버넘은 총리 관저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맞이하려고 아일랜드 근위대를 곰털 모자와 진홍색 상의까지 갖춘 정복 차림으로 도열시켰다. 그러나 이런 최고 수준의 의전과 우크라이나를 “흔들림 없이” 지지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버넘은 최근 젤렌스키와 도널드 트럼프 다툼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이런 줄타기는 유럽 자본주의의 위태로운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유럽 지배자들은 군비 지출 증대를 정당화하려고 블라디미르 푸틴 치하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에 관해 떠들지만, 여전히 트럼프와 미국의 권력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다. 제국주의 국가들(유럽 자신도 포함해) 사이의 경쟁이 격화하면서 유럽 지배자들은 그 파괴적 효과를 실감하고 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 일요일 트럼프는 이렇게 썼다. “유럽이 퍼 주고 있다고 소문난 그 많은 돈을 갖고도 … 그는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마 처음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벌어진 두 대통령 간의 유명한 충돌에도 불구하고) 이 갈등은 개인들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갈등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략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기적인 것이다. 첫째, 트럼프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 사이에서 커져 온 적대를 끝내고 싶어 한다.
백악관의 전략이 일관성과 정합성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파의 구상은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들인 미국·중국·러시아가 세계를 지역 세력권으로 분할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파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느낀다면 그들 스스로 군비 지출을 늘려 러시아를 억제해야 한다고 여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트럼프가 푸틴과 타협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푸틴과 타협하면 트럼프 일가와 측근들에게 이득이 되는 사업 거래의 길이 열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둘째, 백악관 전략의 일관성 결여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측면으로서, 트럼프가 1945년 이후의 모든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세계를 제 손아귀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지난 2월 베냐민 네타냐후와 함께 이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그 전쟁은 그들에게 매우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란 정권은 무너지지 않고 버텼고 드론·미사일을 이용한 정밀 타격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해 반격하고 있다.
이제 이란의 동맹인 안사르알라(예멘의 ‘후티’)가 같은 기술을 동원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아라비아반도 지배를 위협하고 있다. 그 결과 석유와, 경유 등 정제유의 가격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 이것이 물가를 끌어올려 각국 집권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의 공화당도 그중 하나다.
한편 우크라이나에서는 지상전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양측 모두 정밀 타격 기술에 갈수록 더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정유소와 데이터센터 등 러시아의 기간 시설을 타격해 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민간 목표물과 군사 목표물을 공격하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로부터 경유를 받는 대가로 러시아 제재를 완화하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다. 또, 러시아 정유소 타격을 중단하라고 젤렌스키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조처로 중간선거 전에 경유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기를 트럼프는 바란다. 그러나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이는 아마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에너지 위기의 근원이 중동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비용을 대는 일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한 우크라이나 관리가 말한 “미국의 3중 독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정보 독점, 탄도미사일 요격 체계의 독점, 스타링크 위성망과 그것의 군용 부분인 스타실드의 독점이다. 이런 것들 없이는 미사일·드론 전쟁을 치를 수 없다. 최근 며칠 사이 우크라이나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타실드가 느려졌다. 물론 스타링크 소유주 일론 머스크는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잡아뗐다.
이 갈등으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계속 싸우기를 바란다. 그래야 러시아라는 무시무시한 곰을 먼 곳에 묶어 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더러 러시아 영토를 더 무차별 공격하라고 부추기고 있음을 감안하면, 실제 결과는 정반대, 즉 핵전쟁을 향한 확전일 수도 있다.
이런 무시무시한 가능성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유럽 자본주의가 여전히 미국 제국주의에 안보를 의존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정치적으로 여전히 분열돼 있고, 유럽의 주요국들은 국내 정치의 마비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 국채 시장이 그 나라의 부채 수준을 불안한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다. 그래서 유럽 지배자들은 트럼프가 아무리 괴롭히고 모욕해도 계속 그에게 굽실거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