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비판을 유대인 배척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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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사회주의 운동에 불균형적으로 많이 참가해 온 자랑할 만한 이력이 있다. 마르크스 자신과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등 대표적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유대인이었고, 노동자연대가 속한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창시자 이가엘 글룩슈타인(필명 토니 클리프)도 팔레스타인 유대인이었다.
사회주의 운동뿐 아니라 인종차별 반대 등 그 밖의 위대한 대의를 위해서도 유대인들은 특히 더 많은 인물이 헌신해 왔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사람들이다.(위대한 급진계몽 철학자 스피노자도 그러한 유대인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의 일부가 시온주의 운동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인종차별주의/인종분리주의 국가를 세워, 진짜 유대인 배척주의자들인 극우나 함 직한 짓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행해 왔다는 것은 비극이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노동자연대가 이스라엘을 반대(그리고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의 이스라엘 후원 반대)한다는 이유로 우리를 유대인 배척주의자인 양 왜곡하지만, 미국 등 서구의 수많은 유대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반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한 반대를 유대인 배척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온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그러한 터무니없는 연관짓기에 따라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다른 유대인들을 ‘자기 혐오’에 빠져 있다고 맞비판한다. 시온주의자였으면서도 이스라엘 건국에 반대한 한나 아렌트(1906-1975)가 그런 용어로 매도당했다.
그러나 2018년 7월에는 36개 유대인 단체들이 유대인 배척에 이스라엘 비판을 포함시키는 국제홀로코스트기억연합 IHRA의 정의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온주의자들은 아말감 전술을 구사한다. 즉, 전혀 상이하고 상반된 세력들을 ‘유대인 배척주의자’라는 범주로 뭉뚱그려 도매금으로 매도한다.
사실상 그들은 이스라엘 비판자들을 극우로 모는 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이 이스라엘 비판자들을 나치 또는 유사 나치로 모는 것에 맞서 ‘그들이야말로 나치’라고 맞받아치는 것은 효과적인 대응이 못 된다.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방위군”)와 나치의 군대(“국방군”)가 모두 대량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들어, 시온주의자들을 나치와 똑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홀로코스트 산업》(한겨레신문사, 2004),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돌베개, 2004), 《우리는 너무 멀리 갔다》(서해문집, 2012) 등의 저서로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알려진 노먼 핑컬스틴(핀켈슈타인)이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나치”라고 주장하는 것이 하나의 사례다.
핑컬스틴은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전 대표가 유대인 배척자라는 비방을 당할 때 그 비방이 거짓이라고 옳게 코빈을 방어하면서도, 홀로코스트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는 황당한 주장(신나치의 주장이기도 하다)을 해서 코빈 방어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도 10월 8일 이스라엘을 나치에 빗대는 바람에 두 정부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다.
극우와 시온주의
그러나 비록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전쟁 범죄자들일지라도 유럽 전역에서 하나의 인종 전체를 대량 학살 공장을 통해 절멸시켜 버리려 했던 나치와는 구별된다. 나치는 또한 유럽 전역에서 모든 좌파 조직과 모든 노동단체를 파괴해 버리려고 했다.
필자는 이스라엘을 변호하려고 그들을 나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이야말로 나치’라는 식의 반박은 진짜 나치의 존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주장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반대자들을 유대인 배척주의자라고 비방하는 것은 진정한 유대인 배척주의자들인 (신)나치의 위협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유대인 배척주의는 극우 이데올로기이다. 유럽 전역에서 나치 등 극우는 선거에서 꽤 많은 득표를 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이스라엘 국가의 강력한 지지자인 한편, 그가 고무하는 신나치 등 극우 단체들은 적의에 찬 유대인 배척주의자들이다.
현대의 유대인 배척은 러시아 등 동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하던 때 생겨났다. 프티부르주아지(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해 온 중간계급)는 파산과 몰락, 절망 속에서 속죄양을 찾았다. 유대인은 오래전부터 상업과 대출업에 종사해야 했는데, 이로 인해 ‘고리대금업자 유대인’이라는 기억과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이 기억과 이미지 때문에 유대인은 자본주의의 발흥(그리고 나중에는 그 위기)에 대한 중간계급의 분노를 달랠 속죄양으로 안성맞춤이 됐다. 특히 러시아의 전제군주들은 유대인 배척뿐 아니라 1880년대 초와 1900년대 초에는 끔찍한 유대인 대량학살을 부추겼다. 유대인 배척은 특히, 신생 노동계급의 투쟁을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는 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됐다.
그러자 유대인만의 국가 세우기 프로젝트가 시온주의의 이름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시온주의는 유대인 배척에 대한 하나의, 그것도 소수의 반응이었다. 훨씬 더 커다란 반응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나치가 부상하기 전에 시온주의는 주변적인 운동에 불과했다. 1880년부터 1929년까지 거의 4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러시아와 동유럽 바깥으로 이민을 나갔는데, 그중 12만 명만이 팔레스타인으로 이민 갔다. 3백만 명 이상은 북아메리카(미국과 캐나다)로 이민 갔다. 1914년 전미 시온주의 단체들은 1만 2천 명의 회원만을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당시 미국 사회당의 뉴욕시 남동지부만도 유대인 당원의 수가 그만큼 됐다.
사회주의자 유대인이나 공산주의자 유대인은 유대인 배척에 맞서 싸웠다. 반면 시온주의자 유대인들은 유대인 배척을 감수하거나 심지어 나치를 포함해 유대인 배척주의자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시온주의자들이 이렇게까지 타협적이었던 것은 유대인 배척을 물리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제국주의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소수 유대인 정착민들이 다수 토착민을 쫓아내고 그곳을 식민지로 만들려면 주요 강대국들의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1932년에도 팔레스타인 주민 중 유대인의 비율은 겨우 16퍼센트밖에 안 되었다.(1882년에는 4.8퍼센트였다.) 이스라엘 건국 전해인 1947년에조차 유대인의 비율은 3분의 1이 못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해 UN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땅의 55퍼센트를 주고, 아랍인들에게는 45퍼센트만을 주었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로는 그 유대인만의 국가 강화를 위해 인종청소가 시온주의의 유일한 길이 됐다.
맺음말: 한반도 평화와도 관계있다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옹호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노동자연대의 주장과 행동에 많은 우익 인물들이 크게 반발하며 수많은 악플들을 달고 집회 현장에서 욕설을 하고 지나갔다.
좌파 단체가 우익 단체나 개인들의 공공연한 배척과 증오 표현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그건 참으로 좌절스러운 일일 것이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정치적으로 별 영향력이 없거나 또는/그리고 우익들이 참아 주는 한계를 대체로 넘지 않는다는 반증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동자연대는 전자의 경우였을 테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쟁점에 관한 터무니없는 무지에도 거리끼지 않고 특유의 공격적이고 무례하고 거친 말투, 심지어 욕설을 앞세우며 우익들은 비교적 소규모 좌파 단체인 노동자연대에 달려들었다.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 있는 듯해서 뿌듯했다. 멀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우익은 웬일로 이곳에서 그랬을까.
우리가 보기에 한국 우익들은 미국의 친구인 이스라엘이 미국의 적인 하마스에게 한 방 먹은 게 분했을 성싶다. 여기에 북한이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 괘씸하고 다소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비록 북한이 하마스를 명시적으로 편들고 나서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북한이 하마스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유추일 뿐이고, 북한이 하마스에게 로켓 발사 무기를 제공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거짓이다.)
그러자 한국 우익 특유의 ‘친북 대(對) 대한민국’ 진영논리가 발동해 그들은 우리에게 신경질을 부렸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우리가 진보당 2중대인 양 왜곡 보도를 했다. 우리가 진보당을 스탈린주의와 좌파적 개혁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기회주의 정치 조직으로 여러 차례 묘사한 적이 있는데도 모른 척하고 말이다.
이제 미국이 이스라엘에 2천 명이나 파병한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은 또한 미국의 승리이다. 미국이 그 지역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미국 지배자들은 자신감이 증대해 동아시아에서도 더 공세적이 될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주민들이 더욱 실질적인 군사적 위험에 처하게 만들 것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공격과 학살을 멈추게 만들 이스라엘 규탄과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