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사 파업:
교사들도 전투적으로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주다
〈노동자 연대〉 구독
미국 교사들의 파업이 주(州)를 넘어 번지고 있다. 2월 말부터 약 20일 동안 파업해 승리한 웨스트버지니아주 교사들이 그 진원지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이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교사들은 주 산하의 55개 모든 교육구에서 2만 명이 동시에 파업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주정부가 제시한 임금 2퍼센트 인상안(물가 상승률보다 낮다)에 반대하며 5퍼센트 인상을 요구했다. 주정부가 고용주의 피고용자 의료보험 부담률을 낮춘 것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고무적이게도, 교사가 아닌 학교 노동자 1만 3000명도 파업에 동참했다. 직종을 뛰어넘은 노동자 단결은 주정부의 이간책에도 흔들리지 않고 파업 끝까지 이어졌다.
단결된 노동자들의 전투성은 지도부의 온건함도 뛰어넘었다. 2월 말 주정부와 교사노조 지도부는 임금 인상 4퍼센트에 합의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며 파업을 이어 나갔다. 기층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현장 조직들이 파업 대열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파업이 단호하게 이어지자 연대도 커졌다. 주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제 밥그릇만 챙기는 교사들 때문에 아이들이 끼니를 거른다’며 비난을 퍼붓자(교육 재정을 감축해 식비 지원금을 줄인 것은 바로 주정부 자신이었다!) 파업 노동자들과 연대 단체들은 무료 푸드코트를 운영했다. 곳곳에서 파업 지지가 이어지자, 파업 비난 여론은 눈 녹듯 사그라졌다.
결국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5퍼센트를 성취하고, 고용주의 의료보험 부담률 인하 조처 시행을 유보시켰다. 현장 노동자들의 독립성과 전투성, 연대 확산이 승리의 열쇠였다.
확산
웨스트버지니아주 파업 승리는 다른 지역의 교사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미국 교사들은 수십 년 동안 낮은 임금 인상률, 치솟는 물가로 인한 생활고, 복지 삭감과 경쟁 강화, 구조조정에 시달려 왔다. 이제 교사들은 “고맙다, 웨스트버지니아!”라는 팻말을 들고 투쟁하기 시작했다.
4월 2일 오클라호마주 교사들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오클라호마주는 교사 임금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전체 피고용인 평균 임금의 3분의 2, 뉴욕시가 정한 4인 가족 적정 생계비의 절반에 불과하다.
교사들은 올해 임금 19퍼센트 인상, 향후 2년간 7퍼센트 인상을 요구한다. 파업 전에 오클라호마주 교육위원회가 제시한 임금 인상안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반문했다. “파업 안 한다고 해도 요구의 절반밖에 못 얻는데 파업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투쟁에서 배운 교사들은 스스로 파업을 조직했다. 조합원들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오클라호마 교사 파업 - 바로 지금!’은 개설 사흘 만에 3만 명이 가입했고, 파업 이틀째인 4월 3일 현재 6만 명을 넘어섰다.
페이지 관리자인 중학교 교사 알베르토 모레혼은 파업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오랫동안 눌러 온 분노가 터져 나와 열기가 뜨겁습니다. [교사들은] 주말에, 방과후에,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 저임금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투잡’을 뜁니다 ─ 모여 파업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지만, [웨스트버지니아주 승리로 열린] 이 기회에 싸워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합니다.”
이곳에서도 노동자들의 분노는 지도부의 온건함을 넘어섰다. 지도부는 애초에 4월 하순에나 파업하자고 제안했지만, 조합원들의 반발에 밀려 파업 날짜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파업 첫날인 4월 2일 교사와 학교 노동자 3만 2000명이 오클라호마주 곳곳에서 직장 이탈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애리조나주 교사들은 연가 투쟁을 벌였고, 켄터키주 교사 수천 명이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투쟁들의 앞날에 ‘꽃길’만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공교육의 현실이 워낙 열악해서) 주 교육위원회 일부조차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그들이 가하는 온건화 압력 역시 상당하다. 수십 년간 미국 노동조합 운동에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실용주의와 민주당 의존 등도 변수다.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사례처럼, 기층의 전투적 열기를 모을 수 있는 현장 노동자들의 독자적 조직의 구실이 중요할 것이다.
최근 몇 달 새 교사 파업이 분출한 웨스트버지니아·오클라호마·애리조나·켄터키주는 모두 공화당이 주정부를 운영하는 곳인데, 우연은 아니다. 파업에 나선 교사들은, 트럼프 정부 1년 동안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맞서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거대한 항의 운동에서 영감과 힘을 얻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점거하라’ 운동, 샌더스 열풍, 인종차별·성차별에 맞선 대규모 거리 항의 시위 등으로 힐끗힐끗 표현돼 온 저항의 정서는, 미국 노동운동의 갈증을 풀어 주는 단비 구실을 했다. 위스콘신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청사 점거 투쟁, 월마트와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의 투쟁,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치적 운동에 고무된 노동자들이 경제 투쟁에 나선 사례였다.
노동운동이 ‘가뭄의 단비’를 넘어 진정 비옥한 투쟁의 토양을 일구려면, 지금 미국 노동계급 좌파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많을 것이다.
투쟁의 정치화를 추동하는
미국과 멕시코 교사 파업
교사들의 전투적 투쟁에서 배울 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미국과 멕시코의 교사 파업은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미국 시카고의 두 차례 교사 파업(2012·2016년)은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울수록 힘이 커진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다.
당시 민주당 소속 시카고 시장 램 이매뉴얼은 교원평가제 도입, 학생 시험 성적에 연동한 성과급제 도입,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 인상 폐지, ‘무급휴직 권고’ 형식의 퇴직 강요 등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이에 맞서 교사 2만 6000명은 찬성률 98퍼센트라는 압도적 결의로 25년 만에 파업의 포문을 열었다.
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학교 앞에 피켓라인을 형성하고 오후마다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아침 피켓라인은 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하는 투쟁의 장이 됐고, 최대 4만 명이 참가한 도심 집회로 대로가 ‘붉은색(노동자들의 단체복 색상)의 바다’가 됐다. ‘점거하라’ 운동에 영감을 받은 청년들이 파업 지원에 나섰다.
피켓라인을 사수한 지 열하루째, 노동자들은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호봉제를 지키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시카고 교사들은 연대 투쟁의 전통도 되살려 냈다. 두 번째로 교사들이 파업한 2016년에는, 전미서비스노동조합 소속 패스트푸드 노동자들과 어린이집 교사들도 자신들의 요구를 걸고 파업해 교사들과 함께 싸웠다.
선도
멕시코 교사 파업은 노동계급 투쟁의 선도적 구실을 보여 준 빛나는 사례다.
2006년 5월 정부의 교육 민영화와 교육 예산 감축에 맞선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주(州) 교사들의 파업은 한 부문에서 시작한 노동자 투쟁이 정치 권력을 둘러싼 투쟁으로 발전한 사례다.
교사 7만 명이 벌인 파업이 같은 해 7월 멕시코 대선의 부정 선거 의혹으로 분출한 저항과 결합돼, 인구 350만 명의 주에서 40만 명이 결집한 대중 항쟁으로 발전했다.
거대한 운동에 놀란 주지사가 도망친 오아하카시(市)를 통제한 것은 오아하카민중의회(APPO)였다. 투쟁을 이끈 교사들을 필두로 각 부문의 노동자들, 사회·정치 단체들, 소작농들 등이 모인 민중회의는 5개월 동안 ‘민중권력’을 자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오아하카의 ‘이중권력’은 다섯 달 만에 군대의 탄압으로 진압당했지만, 이 운동이 준 영향은 심대했다. 멕시코 신임 정부는 오아하카 운동이 끝난 지 고작 3개월 후 부활한 대중 저항에 직면했다.
오아하카 교사들은 2013년에 반년 동안 이어진 전국적 교사 파업의 선두에 섰다. 무기한 전면 파업을 벌인 오아하카주 교사들은 학부모·학생들에게뿐 아니라 다른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도 각자의 요구를 걸고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다.
이들의 투쟁은 멕시코에서 그 이후 벌어진 민영화 반대 운동과 여러 부문 노동자들의 긴축 반대 파업에 적잖은 영향을 줬으며,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등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걸고 싸우는 교사들에게 모범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