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위기와 대중 불만 해결 못할 바이든의 경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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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 상황이다. 올해 3~4월에 일자리 2200만 개가 사라진 뒤 지난 몇 개월간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자리 1000만 개가 줄어든 채로 남아 있다.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 올해 11월에 710만 명에 달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제가 다시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불황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는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놓인 미국 세입자가 수천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2008년 위기 때 쫓겨난 사람 수보다 훨씬 많다. 당장은 미국 정부가 집에서 내쫓지 못하게 막고 있지만, 정부 지원이 중단될 경우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바이든은 이처럼 심각한 경제 불황 상황에서 집권했다. 불황의 뿌리는 깊다. 미국 경제는 2008년 이후 장기 불황을 겪어 왔고, 그 속에서 불평등은 더욱 커져 왔다.
또 세계 최대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은 장기적으로 하락해 왔고,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트럼프가 내놓은 대안은 기업주와 부자를 위한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 그리고 보호무역주의 정책 강화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책들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법인세를 거의 절반으로 깎아 준 정책으로 주식 시장은 활성화됐을지 몰라도 실제 투자는 별로 늘지 않았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지만 대중국 무역적자는 크게 줄지 않았고,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트럼프의 우익 포퓰리즘 정책은 미국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편에서 더욱 극성스러운 우익이 성장하는 것과 함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처럼 대규모 대중 저항도 터져 나왔다.
특히 트럼프는 코로나19와 심각한 경제 불황에 대처하는 데에 실패했고, 바이든에게는 트럼프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의 자본가들은 바이든에게 4배나 많은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온 전통적 지배층 다수는 바이든이 ‘안정적인 리더십’을 구축하기를 바란다.
바이든은 이런 과제를 위해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써서 경제를 회복시키고, 부분적인 개혁 조처들을 통해 대중의 불만을 달래고, 기존 자유무역 질서를 존중하며 동맹을 재건해 미국의 패권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바이든 경제 정책의 핵심 구호는 “더 나은 재건”인데, 경제 불황을 해결하고, 불평등이 큰 상황에서 중산층을 재건하며, 무엇보다 세계 패권 국가로서 미국의 위상을 재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미국 지배자들은 과제를 결코 쉽게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를 회복시키기에 부족할 경기 부양책
바이든은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가 감세라는 방식으로 케인스주의 정책(적자재정)을 썼다면, 바이든은 적극적인 정부 지출을 표방한 것이다.
바이든은 그린뉴딜 등을 위한 인프라에 2조 4000억 달러, 교육에 1조 9000억 달러, 사회안전망에 1조 5000억 달러, 헬스케어에 1조 5000억 달러 등을 포함해 총 7조 2000억 달러의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0퍼센트가 넘는 규모이다.
이렇게 표방한 액수만 보면 꽤 커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돈을 10년간 나눠서 투입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2020년 한 해에만 3조 1000억 달러를 쓴 것을 생각해 보면 바이든의 재정 지출 계획은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 계획조차 제대로 실현될지 미지수이다. 미국 상원에서 어느 당이 다수를 점할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데다, “통합”을 강조하는 바이든이 공화당과 타협해 정책을 대폭 후퇴시킬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미국 민주당은 올해 하반기에 2조 2000억 달러가량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키겠다고 했지만 최근 공화당과 논의 과정에서 9000억 달러로 후퇴했다. 공화당은 이조차 너무 많다며 더 삭감하려 하고 있어서 추가 부양책의 연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GDP 대비 미국 재정적자의 비율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수준과 맞먹는다. 재정적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고, 그 부담은 점점 커질 것이다. 재정적자 확대를 놓고 미국 지배자들 내에서 갈등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이는 바이든의 계획에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정 지출 확대로 경제를 회복하겠다는 계획 자체의 한계도 봐야 한다. 미국 경제도 낮은 이윤율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상황이다. 재정 지출 확대는 일시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을지라도 낮은 이윤율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수차례 대규모 재정 지출을 했는데도 여전히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말이다.
친노동 정책?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큰 상황에서 바이든은 기업과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1퍼센트에서 28퍼센트로 올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퍼센트에서 21퍼센트로 낮춘 것과 비교해 보면, 바이든의 법인세 증세 공약이 대단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이든은 버니 샌더스 등이 제안한 부유세 신설도 한사코 거부했고,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 계획도 애초 예상보다 크게 후퇴했다.
물론 바이든은 최저임금을 현재 7.25달러(약 8000원)에서 15달러(약 1만 6000원)로 올리고, 노조 조직화를 방해하는 기업주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개혁 입법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고, 노조 지도자들을 정부의 편으로 묶어 두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근거로 바이든이 친노동적이라고 규정하는 한국 언론들의 보도도 적잖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이 부통령이었던 오바마 정부 때도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말은 많았지만, 실상 미국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은 2009년 이후 지금까지 동결됐다. 오바마 정부는 연방정부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2015년 10.10달러(약 1만 원)로 인상했을 뿐이다. 이조차 미국 평균임금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노동계급이 강력한 투쟁으로 정부를 압박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인상 등이 쉽사리 추진되지는 못할 것이다. 심각한 경제위기 때문에 그런 정책이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첨예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국 문재인 정부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과거 민주당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대한 반감이 광범하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의 선심성 정책을 믿고 기다리려는 분위기는 한국보다 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수십 년간 협력해 온 노조 상층 관료들의 발목을 잡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을 할지라도 말이다.
자유무역 표방하면서도 보호무역 정책 강화하는 모순의 배경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자유무역 국제 질서를 존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개입을 강화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재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가치 수호자”로서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와 동시에 보호무역 정책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은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효과적으로 실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자신이 더 실질적인 “미국 제품을 사라”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트럼프처럼 유럽과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관세를 인상하는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겠지만, 바이든 정부도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 반덤핑 규제나 환경 규제 등을 이용한 보호무역 조처 등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이미 오바마 정부 때부터 강화되고 있었다. 오바마는 2009년 취임할 때부터 “미국 제품을 사라” 정책을 내걸었고, 정부 사업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수입산이 아닌 미국산 철강만 써야 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단지 트럼프 때문이 아니라 미국 경제의 더 깊은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에는 2008년 경제 위기가 남긴 심대한 상처가 있다. 미국뿐 아니라 각국 정부들은 위기에 빠진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 조처들을 강화했다. 특히 미국 기업들의 생산성 증가세가 하락하고 기술 격차에서의 우위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미국 지배자들의 급박한 이해관계가 반영돼 있는 것이다.
바이든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을 강화해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려 하지만, 동시에 보호무역 정책으로 미국 기업들을 보호하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모순은 바이든이 추구하는 동맹 강화와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동맹을 활용한 대중국 압박 심화는 세계 곳곳에서 긴장을 키울 것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중국의 패권 위협에 맞서는 것을 중시한다. 이는 최근 바이든이 미국의 무역대표로 캐서린 타이를 지명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캐서린 타이는 중국의 반발을 살 대만계 인사일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대중국 강경파를 자임한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같은 ‘자멸적’ 방법은 동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미 부과한 대중 관세를 철회할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반면 내년 취임 직후 중국·러시아 등을 제외한 동맹들을 모아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동맹을 통해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동맹을 복원해 대중국 압박을 강화하려는 방향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의 가능성을 키울 것이다.
그 단적인 사례를 보여 주는 곳은 바로 호주이다. 호주의 전체 수출 중 대중국 비중은 34퍼센트가 넘는다. 그러나 호주는 정치적·군사적으로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다. 올해 호주와 중국의 갈등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호주 총리는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고,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호주 소고기 수입을 부분 중단하고, 농산물·포도주·석탄·구리·랍스터에도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제재 조처를 하고 있다. 중국의 강경한 대응은 대중국 동맹을 구축하려는 바이든에 대한 경고의 표시일 것이다.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머지않아 한국에도 닥칠 가능성이 크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여러 나라들에서 심각한 경제·정치적 위기의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응하려는 바이든의 시도는 세계 곳곳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이에 따라 미국 지배자들이 세계 곳곳의 문제에 더욱 깊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키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최강 대국이라 할지라도 그 위상이 장기적으로 하락해 온 상황에서 미국 지배자들이 과연 이런 필요에 대처할 능력이 얼마나 있을까. 미국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의 한계에 직면할 수록 여전히 압도적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활용해 힘을 과시하려는 위험천만한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심각한 불황, 불평등 심화와 대중적 불만 증대, 세계적 패권 약화와 중국의 도전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바이든 앞에 놓인 과제는 그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다. 바이든 정부는 심각한 위기 속에 노동 대중의 불만과 우파의 압력을 받으며 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