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일란 파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유대인 역사학자가 이스라엘의 거짓말을 낱낱이 들춰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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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 파페의 신간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는 서문부터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이 책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에서 식민지화되고, 점령당하고,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신해 권력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라면서 결코 “균형 잡힌 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이 떠오른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이스라엘 출신의 유대인인 일란 파페는 “부당한 현실을 지탱하는 신화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긴다. 그러면서 그는 가치 중립성이 역사학의 최고 미덕으로 여겨지는 풍조를 비판하면서 그런 의무감을 갖더라도 훌륭한 학술 연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렇게 논란이 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시온주의자들의 주장과 이스라엘 국가의 공식 입장 열 가지를 낱낱이 논박하는 것인데, 이스라엘 출신의 유대인 역사학자의 비판이라 더욱 무게감이 있다.
땅 없는 민족을 위한 임자 없는 땅?
일란 파페가 가장 먼저 다루는 신화는 이스라엘이 “땅 없는 민족을 위한 임자 없는 땅”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스만 제국 통치하의 팔레스타인이 농사짓기 힘든 사막화된 땅이고, 그나마 살 만한 땅에 유대인들이 섬처럼 거주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페는 팔레스타인 지역이 유럽과의 무역으로 번성했으며 내륙 평원은 풍요로운 농업을 영위하는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시온주의자들이 오기 전인 19세기 말에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50만 명이 살고 있었다.
일란 파페는 “19세기 팔레스타인은 근대화와 민족 국가화 과정이 진행 중인 풍요롭고 비옥한 지중해 동쪽 세계의 일부였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20세기 근대 사회로 접어들기 직전 팔레스타인은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식민지화됐다.
팔레스타인이 “임자 없는 땅”이라는 주장과 짝을 이루는 것이 “유대인은 땅 없는 민족”이라는 신화다. 기원전 6세기와 기원후 1세기에 유대교 성전이 파괴된 이후 세계 도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언젠가 성지로 돌아가야 할 ‘민족’이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이 로마 시대에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유대인의 진짜 후손인지, 민족이라는 개념을 초역사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 모세 5경이 실제 역사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파페는, 더 중요한 사실은 시온주의가 정치적 프로젝트로서 영국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동적 유대인 민족주의 운동으로서 시온주의가 처음 등장할 당시 대다수 유대인은 스스로를 “땅 없는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1897년 세계시온주의대회가 열릴 당시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유대인은 전체 유대인의 2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 각지에 살고 있었고, 그들 중 많은 수는 사회 개혁이나 혁명 운동에 가담해 자신들이 대대손손 살아 온 곳을 더 자유롭고 차별과 천대가 없는 땅으로 만들고자 했다. 반면, 시온주의는 차별과 천대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유대인들만의 땅인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로 가자는 “현실 도피의 한 형태”라고 파페는 정확하게 지적한다.
중동 유일의 민주 국가?
파페는 시온주의와 유대교를 동일시하거나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논파한다. 이스라엘이 유포하는 가장 황당한 주장 하나는 1948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1948년의 나크바(대재앙)는 이스라엘이 유대인만의 국가를 세우려고 자행한 체계적인 인종청소였다. 파페는 그의 책 《팔레스타인 비극사》에서 그 계획(플랜 D)을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또 다른 신화는 이스라엘이 중동의 유일한 민주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로 추방하고(1948년), 학살하고(1956년 카프르 카심 사건), 그들의 터전을 빼앗아 정착촌(점령촌이 더 맞는 말이다)을 건설하는 국가는 민주 국가가 결코 될 수 없다고 파페는 강조한다. 또,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약 150만 명)은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이나 주택 구입 및 고용에서 차별을 당한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귀환법에 명시했지만, 유엔 총회 결의 제194호가 인정하는 팔레스타인인 난민의 귀환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지독한 인종차별에 기초한 국가이기에 유대계 이스라엘인 공동체 내부도 ‘유대인성’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자신들 사이의 차별과 천대로 점철돼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북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이스라엘로 온 미즈라히 유대인들은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물론, 일란 파페가 지적해 왔듯이 그런 분열이 시온주의에 대한 유의미한 도전으로 나아간 적은 없지만 말이다.
오슬로와 가자의 신화
오슬로 협정에 대해서도 거짓말이 횡행한다. 하나는 오슬로 협정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 측이 테러를 벌이며 제2차 인티파다를 일으켜 의도적으로 ‘평화 프로세스’를 파탄 냈다는 것이다.
파페는 오슬로 협정 이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PA)이 관할하는 지역으로 나뉘는 데 그치지 않고 팔레스타인 측의 모든 지역이 작은 분리 거주 구역(반투스탄)으로 잘게 쪼개졌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관할하는 구역은 흔히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에 비유된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평화 프로세스’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세운 정착촌을 공식화할 뿐 아니라 공동 관리 지역으로 정착촌을 확대하는 기회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더 확대됐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생활 수준은 더 나빠졌다.
이스라엘은 PLO를 주도하는 파타에 허울뿐인 팔레스타인 당국을 허용하는 대신 저항 세력을 단속하는 일을 맡겼다. 작은 땅뙈기에서 행사하는 권력에 취한 파타는 꾸준히 타락의 길을 걸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했듯이 2000년의 “제2차 인티파다는 아라파트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두 국가 방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서안 일부를 자치 지역, 준(準)국가로 만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귀환이나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평등한 권리, 예루살렘의 운명, 고향에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희망 모두를 포기”하는 것을 뜻했다고 파페는 지적한다.
파페는 두 국가 방안이 “가끔 영안실에서 시체를 꺼내어 잘 차려 입히고 살아 있는 존재처럼 내세우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꼬집는다.
하마스는 오슬로 협상에 반대하고 무장 저항을 지속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테러리스트이고 이 때문에 가자지구 사람들이 불행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페는 용감하게도 “나는 하마스는 해방 운동이고, 그런 의미에서 합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고 강조한다.
오늘날 가자지구의 실상을 보면 누가 학살자인지가 너무나 분명하다. 2023년 10월 이후 8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는 3만 7000여 명이 죽었는데, 모두 미국이 지원한 무기와 이스라엘 군인들 때문이다.
물론 하마스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한 무장 저항을 펼치면서도 아랍 국가 지도자들과의 협력에 기대를 건다. 또 하마스는 1967년 이전 국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목표를 한정하는 것을 받아들인 바 있다. 전략적 한계에 부딪혀 두 국가 방안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단일 국가
파페는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라는 신화를 반박하며, 전 세계적인 BDS(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 운동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체에서도 ‘한 국가 해법’ 논의를 정치적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촉구한다. 파페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관계가 정의와 민주적 기반으로 다시 구성돼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한 가지 작은 아쉬움은 파페가 그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할지에 관해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변화 앞에 놓인 장애물들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가 가능하려면 중동 지역에서 제국주의 질서와 그 질서에 협력하는 현지 정권들에 맞선 노동자·빈민의 거대한 반란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시온주의의 거짓말을 논파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를 알리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무기가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