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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역사학자 일란 파페 강연:
인종청소 국가 이스라엘과 제2의 나크바

아래는 저명한 유대인 역사학자 일란 파페가 ‘나크바의 날’(5월 15일)을 앞두고 5월 3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 주최 포럼에서 한 강연과 청중 질의에 대한 답변을 글로 옮긴 것이다.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80만 명이 추방된 사건을 뜻한다.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해 온 유대인 역사학자로서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등을 저술했다.

연설을 기사로 싣게 허락해 준 ‘팔연사’에 감사드린다. 영상은 ‘팔연사’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포럼에서 연설하는 일란 파페 ⓒ이미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아침이어서 ”굿 모닝”이고 여러분께는 “굿 애프터눈”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인종청소라는 주제로 발표해 달라고 요청받았습니다.

약 20년 전에는 인종청소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의 역사나 1948년 이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다루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2006년 제가 《팔레스타인 인종청소》[국역: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교유서가, 2024)] 를 출간할 때 출판사는 “인종청소”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고 제게 제안했습니다. 그 용어가 너무 도발적이어서 세계의 독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죠.

명백히 반인륜적 범죄인 인종청소를 감히 유대인 국가와 결부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였습니다. 유럽 유대인의 역사, 특히 제2차세계대전 때 그들이 인종청소와 인종 학살을 당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요.

그러나 인종청소라는 용어의 정의를 검토한 저는 국제법상 정의를 따르든, 학자나 철학자들의 정의를 따르든 1948년 이스라엘이 자행한 일이 명백히 인종청소에 해당한다고 봤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인종청소 외에는 이스라엘의 정책과 그것의 실행, 그 효과를 달리 규정할 방도가 없습니다.

인종청소의 정의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인종청소란 기존 주민들을 그들의 인종이나 민족, 종교적 정체성을 이유로 제거하는 정책입니다. 기존 주민들의 행위가 아닌 존재가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런 정책은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사는 곳을 단일 인종이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사람들의 인종만이 사는 곳으로요.

이러한 인종청소 규정이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라는 사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인종청소는 정책으로 구체화되기에 앞서 어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로서 출발합니다. 대략 19세기 후반에 생긴 시온주의 운동도 초창기부터 인종청소 이데올로기 성격이 뚜렷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이 아닌 토착 주민들이 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팔레스타인을 유대인들의 미래 국토로 본 것이죠.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운다는 야심과,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제거할 필요성 사이의 연관성은 이처럼 초창기부터 시온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유럽의 어떤 이데올로기적 운동이 유럽 바깥의 나라를 장악하여 그곳에 유럽식 국가를 세운다는 발상은 시온주의 운동의 고유한 특성이 아닙니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도 그렇게 세워진 국가입니다. 유럽에서 온 난민이나 이주민들, 즉 식민들이 대대적인 토착 원주민 추방이나 때로는 인종 학살을 통해 유럽식 국가를 세운 것이죠.

인종청소 실행의 조건

인종청소 이데올로기가 현실로 구체화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첫째, 토착 원주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대거 강제 이주시키고, 때로는 말살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종청소 사상을 실행에 옮길 역사적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시온주의 운동의 경우 그 순간은 1948년에 찾아왔습니다.

1948년에 일어난 여러 변화는 시온주의 운동과 그 지도자들이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인구 구성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겠다고 판단하는 배경이 됐습니다.

하나는 30년 동안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영국이 떠나기로 하면서 팔레스타인의 미래가 기로에 놓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홀로코스트가 끝나고 3년 후 유럽, 더 정확히는 미국을 포함하는 서방이 유대인들의 고통을 배상하는 차원에서 유대인 국가를 수립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국가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1948년에 인종청소를 가능케 한 또 다른 요인은 영국이 30년간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면서 시온주의 정착자들이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할 수 있게 해 줬다는 것입니다. 그 군사력으로 시온주의자들은 1948년 인종청소를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팔레스타인 측에는 그런 군사력이 없었습니다. 주변 아랍 국가들도 시온주의 정착자들에 대항할 군사력을 구축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떠날 것임이 이미 명백해진 1947년 2월부터 시온주의 정치·군사 지도부는 팔레스타인 인종청소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후인 1948년 2월부터는 실행에 착수했고 그것은 1948년 말까지 아홉 달 동안 이어졌습니다.

나크바의 결과

그 아홉 달 동안 팔레스타인 인구 절반이 추방당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마을의 절반과 거의 모든 도회지가 파괴됐습니다.

인종청소 작전이 한창인 1948년 5월에 아랍 국가들은 인종청소를 막으라는 자국 내의 압력에 밀려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재앙을 막기에는 너무 소규모였고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오늘날까지 그 재앙을 “나크바”라고 일컫습니다.

한편, 국제사회 또한, 유엔이든 서방 강대국들이든, 심지어 소련조차도 인종청소를 저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인종청소 작전을 멈추라는 압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집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인종청소를 은폐하기 위해 파괴된 마을 위에 새 유대인 정착촌을 세우고 때로는 숲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종청소를 면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두 지역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오늘날 서안지구로 불리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가자지구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서안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인종청소를 면한 것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맺은 합의 때문이었습니다. 그 합의에 따라 요르단은 인종청소를 저지하려는 범아랍적 시도에 매우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대가로 서안지구를 자기 영토로 챙기기로 했습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종청소를 면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 지역을 거대한 난민촌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중부와 남부에서 몰아낸 팔레스타인인 수십만 명을 그곳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래서 가자 주민들은 살던 곳에 그대로 남게 됐지만 수많은 난민들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가자지구 주민의 70퍼센트는 1948년에 피란 온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1948년 인종청소의 결과로 팔레스타인인 80만 명이 추방당하고 팔레스타인 마을 절반이 파괴됐다

나크바 이후의 인종청소

아랍 나라인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나라로 만드려는 시도는 1948년에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인구의 절반이 여전히 팔레스타인 땅에 남았고, 당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78퍼센트밖에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종청소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더 정확히는 무반응에 고무된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에 착수한 일을 완수할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전쟁을 통해 적어도 영토 면에서는 1948년에 착수한 일을 완수하게 됩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식민 정착자 지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낳았습니다. 식민 정착자 국가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할수록 그 국가가 국민에 포함시키기를 바라지 않는 주민들이 그 영토에 딸려 오는 것이죠. 그러나 1948년의 인종청소를 1967년에 되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역사적 조건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67년부터 오늘날까지 57년 동안 이스라엘은 1948년과 같은 대대적 추방이 아니라 더 점진적인 인종청소 방법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는 1948년에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에서 벌였던 일을 가자지구에서 벌일 수 있다는 발상이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1948년에 시작된 역사적 과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토착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그 과정의 핵심입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과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청소를 멈추게 하고 이후의 강탈 정책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국제법에서 반인륜적 범죄로 규정하는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는 것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은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상황을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대로 상황을 이해해야만 지금 가자지구에서 인종 학살이 벌어지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 학살을 막을 최상의 방법을 찾을 수 있고, 향후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자행될 또 다른 잔혹 행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토론 정리

청중 토론 시간에 나온 순서대로 질문들에 답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미국과 소련의 태도

첫 번째 질문은 1948년 당시 두 냉전 진영에 관한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 모두 당시 유대인 국가 수립과 팔레스타인의 분할을 지지했습니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 그랬는데, 미국은 기존 로비의 영향을 받아서 유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랍 세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기를 바랐죠.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는 미국 내에서 유대인 국가 인정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강력한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목소리는 밀려났고 미국의 정책은 오늘날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스탈린이 이끌던 소련은 당시 유대인 국가가 공산주의 국가나 적어도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냉전 정치의 일환으로 소련은 — 적어도 스탈린은 — 유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면 그 국가를 소련 블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내에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과 그 다음에 나온 비슷한 질문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정치 지형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의 비전이 무엇이고, 그들의 정책·비전에 대한 반대가 얼마나 있냐는 것입니다.

먼저, 지난 몇 년 동안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들의 성격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한때 이스라엘 정치에서 보잘것없었던 훨씬 인종차별적이고 파시즘적이고 열광적인 세력이 지금은 중심부에 진출해 이스라엘의 정책, 전략, 비전을 결정하는 데서 우세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과 메시아적 신념을 결합한 그들은 1948년에 못다 한 일을 완수할 천재일우의 역사적 기회가 지금 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완수할 일로 여기는 것은 단지 팔레스타인 전체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게 아니라 레바논 남부와 시리아 남부, 심지어는 요르단까지 뻗어 나가는 대이스라엘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그들은 지금이야말로 가자지구에서 군사 작전과 인종 학살을 자행하고 기근을 일으켜서 인종청소를 할 기회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십중팔구 가까운 미래에 서안지구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할 것입니다.

그런 이데올로기를 모든 유대인계 이스라엘인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인종청소적 요소 때문에 거부하는 게 아닙니다.

비종교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유대인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 이데올로기가 더 종교적인 유대인 국가를 만든다는 비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만 명의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이 이스라엘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가자지구에서 자행되는 인종 학살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메시아적이고 열광적인 부류의 시온주의자들이 꿈꾸는 유대인 국가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전술의 층위에서 반정부 시위대는 이스라엘 정부가 인질과 관련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반정부 시위대는 모든 인질의 귀환을 포함하는 합의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거기에 관심이 없죠.

이스라엘에도 그 전쟁의 범죄적 성격 때문에 전쟁 반대 시위를 벌이는 소수의 유대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시위를 벌이자마자 체포되고, 이스라엘 사회의 극소수일 뿐입니다.

따라서 유대계 이스라엘인 사회 내에서 가까운 미래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회가 이데올로기를 바꾸기를 거부하는 것이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회들은 결국 무장 항쟁이나 국제적 압력, 또는 둘 다에 밀려 이데올로기를 바꿨죠. 이것의 최근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입니다.

팔레스타인 문화유산에 대한 위협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취급하느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특히 질문자는 악카(보통은 “아크레”라고 부르죠)라는 도시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에 관해 제가 드릴 말씀은, 토착 원주민의 문화유산을 없애는 것은 모든 식민 정착자들의 지배와 그들이 가진 그 비전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런 만행은 추방, 인종 학살(아파르트헤이트), 인종 분리와 함께 자행되죠. 오늘날 악카도 놀랍고 장엄한 아랍·팔레스타인의 유산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카에 사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은 굉장한 용기를 발휘하며 팔레스타인 문화 유산을 지키려고 백방으로 애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내의 다른 마을과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 유대인들의 태도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 유대인들의 태도에 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미국 등지에서는 유대인 청년 세대의 태도가 분명 변화하고 있는데, 그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향후 유대인 국가의 안정성과 정당성에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대인 청년들은 유대교를 시온주의가 규정하는 대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비종교적인 유대인들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이고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변화시킬 조건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누구의 목소리가 필요한가? — 다큐멘터리 영화 〈노 아더 랜드〉를 둘러싼 논쟁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무슨 영화인지 모르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헤브론산 남쪽 마을에서 자행되는 팔레스타인인 인종청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올해 오스카 수상작인 〈노 아더 랜드〉를 말함 — 역자] 그리고 [유대계 이스라엘인이 공동 감독을 했다는 점 때문에 — 역자] 그 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있습니다.

물론 원리상, 팔레스타인인들은 스스로를 대표해야 하고 다른 어느 누구도 그들을 대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어떤 영화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당하는 일에 관해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인이 느끼는 바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그 영화가 그런 경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헤브론산 남쪽 마을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자신들이 오히려 그 영화에 대한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오히려 그 주민들은 그 영화를 공동으로 감독한 유대계 이스라엘인을 형제이자 미래를 함께할 사람으로 본다고 말합니다. 그 영화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의견은 단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리상, 해방을 위한 투쟁은 정의를 위한 투쟁이자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투쟁입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가장 우월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그 투쟁을 수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부정의의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게 할 뿐 아니라 가해 집단의 구성원이 그러한 범죄가 자행됐음을 시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법정에서는 피해자만이 자신이 당한 범죄를 판사에게 증언할 뿐 아니라 범죄자도 자신의 범죄를 시인할 때 유죄 판결이 더 강력한 근거를 얻습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지를 온 세계에 알리는 투쟁에 이런 목소리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국제법의 위기

국제법에 관해 좋은 두 질문이 있었습니다.

현존하는 국제법은 서방,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이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시 여전히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많은 나라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국제법은 의심을 샀습니다. 특히 저개발국들에게서요. 그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지 않고, 서방과 서방의 우방이 저지른 범죄에는 그 법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죠.

그러한 의심을 불식시킬 기회를 찾는다면 지금의 가자 위기야말로 국제법 시스템의 보편성을 입증해 보일 마땅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국제법 시스템은 그러는 데에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실로 세계적 위기입니다. 모두가 신뢰하는 국제적 시스템이 없다면 세계는 국제 협력으로만 해결 가능한 문제들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나 빈곤, 이주 등이 그런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 국제적 시스템을 재건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미래가 걸린 국제적 난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온주의는 유대인의 피난처를 마련할 유일한 방법?

유대인 국가 수립, 즉 시온주의 프로젝트 외에는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을 구할 방법이 없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첫째, 홀로코스트를 피해 달아난 많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피난처로 삼지 않았습니다. 많은 수가 영국과 미국, 라틴아메리카, 심지어 중국으로도 갔죠.

둘째, 유대인들이 그저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난민으로서 팔레스타인에 왔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온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피해 달아난 난민으로서 그곳에 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기를 바라는 식민으로서 온 것이었습니다. 죽음을 피해 온 난민들은 모두가 구해 줘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난민으로 오는 것과 삶의 터전을 강탈하기 위해 오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 구분은 매우 중요한데, 일찍이 1933년에 마하트마 간디도 그런 구분을 했습니다. 간디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과 공존하기를 원한다면 자신도 시온주의를 지지하겠다고 했죠. 그러나 팔레스타인으로 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과 공존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체하려 했죠. 그래서 간디는 시온주의를 결코 지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국가’ 방안이냐 ‘한 국가’ 방안이냐

마지막 질문은 ‘두 국가’ 방안이냐 ‘한 국가’ 방안이냐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두 국가’ 방안은 죽었습니다. 실행 가능한 해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 국가’ 방안에 관한 논의는 이스라엘이 식민 지배를 심화시키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범죄적 정책들을 추구할 기회를 줬습니다. ‘두 국가’ 방안은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20퍼센트와 전체 팔레스타인인의 절반만을 논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죠.

국제사회, 더 정확히는 국제사회의 정치 지도자들은 ‘두 국가’ 방안을 지지합니다. 지난 60년 가까이 ‘두 국가’ 방안이 실현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방안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방안은 정치인들에게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방안은 시민사회로부터 올 것입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시민사회와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들은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과 그곳에서 추방당한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로운 팔레스타인 단일 국가에 미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사실 지금도 그 땅에는 단일 국가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로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죠. 그 국가는 인종 학살을 자행합니다. 그리고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그 국가에 맞서 저항하고 있죠. 그러나 국제사회가 도움에 나서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과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이 지난 불의를 바로잡고 평등을 바탕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도록요.

그런 미래가 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기 전까지, 가까운 미래에 이스라엘은 자신이 자행하던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를 포함한 국제사회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움직일 방법을 우리가 찾기 전까지는 말이죠. 우리는 이제 세계의 역할이 평화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는 것이고 지금 당장, 그리고 세계의 안녕을 위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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