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당국(PA)은 이스라엘 점령의 부역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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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의 친구’를 자처해 온 노르웨이를 비롯해 스페인·아일랜드가 최근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했다. 슬로베니아와 몰타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이는 서방 지배자들이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 국가들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이스라엘에 부역하는 팔레스타인 당국(PA)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 부여에 주의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의 산물이다. 1987년 1차 인티파다의 영향으로 다른 아랍 국가들로 저항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은 저항을 가라앉히려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대화를 시작했다.
PLO를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인티파다를 통해 얻은 기회를 허비해 버리고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역사적 후퇴를 했다. 그 보상으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일부를 관할할 팔레스타인 당국이 세워졌다.
그러나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신규 정착촌 건설은 오슬로 협정 이후 더욱 가속됐다. 1992~2000년 정착촌 인구가 갑절이 됐다. 이스라엘은 점령지 출입을 계속 통제하고, 이스라엘 군경과 정착자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고 살해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는 이스라엘 상품 판매처와 저렴한 노동력 공급처로 이스라엘 경제에 종속됐다.
‘평화 프로세스’ 실패에 대한 분노로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분출했다. 이런 저항을 단속하는 것이 팔레스타인 당국의 주요 임무였다.
“상징적 숫자”
2011년에 파타와 이스라엘의 1999~2010년 협상 내용이 담긴 팔레스타인 당국 비밀 문건 1600개 이상이 〈알자지라〉에 유출됐다. 협상에서 파타는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통치권과 불법 정착촌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인 난민의 귀환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상징적 숫자”의 난민 귀환과 비무장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에서 하마스의 저항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이스라엘 보안군과 팔레스타인 당국 간의 비밀 협력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2011년 아랍 혁명이 일어나자, 팔레스타인 당국 수반인 마무드 압바스는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와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팔레스타인 당국의 임시 수도 라말라에서 아랍 혁명들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압바스는 경찰에 시위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2021년 5월 단결 인티파다가 벌어지자 팔레스타인 당국은 미국·이스라엘과 협상하기를 바랐고, 이런 행태를 비판하거나 저항을 더 밀어붙이려는 활동가들을 탄압했다. 그중 한 명인 나자르 바나트가 구금 중에 경찰의 구타로 숨진 것으로 알려지자 6월 라말라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당국 보안군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지난해 10월 7일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인종청소와 팔레스타인 당국의 침묵에 대한 분노로 10월 17일 라말라 중심가에서 압바스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당국 보안군은 최루탄과 연막탄으로 시위대를 공격했고, 제닌에서 열린 시위에서는 보안군의 공격으로 12살 여아 라잔 나스랄라가 사망했다.
6월 2일 〈알자지라〉는 서안지구에서 새로운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이 늘고 있고, 여기에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파타 지지자들도 참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확대되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팔레스타인 당국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스라엘의 보조자로 여겨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팔레스타인 당국은 정치적 억압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대다수 팔레스타인 민중의 생활수준을 악화시켰다. 2007년 총리로 임명된 파야드는 1990년대에 팔레스타인 당국으로 파견된 국제통화기금(IMF) 측 대표였다. 그는 세계은행과 함께 계획한 급속한 시장화를 추진했다.
이스라엘 정착촌의 모습을 본떠 카타르 투기꾼들의 자금으로 건설된 고급 주택단지가 강제수용 법안에 따라 몰수한 촌락의 토지 위에 지어졌다. 서안지구 농부들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은 함께 공단을 만들고, 규제 없이 쓸 수 있는 팔레스타인인 노동력을 미끼 삼아 걸프 연안국 등에 투자를 호소했다. 거기서 제조한 상품들은 아랍 세계에 쉽게 접근하려고 ‘메이드 인 팔레스타인’ 딱지를 붙여 수출했다.
2012년 팔레스타인의 실업률은 27퍼센트에 달했고, 실질임금은 2006년 대비 10퍼센트나 낮았다. 반면 고위 관료들은 막대한 부를 모았다. 가자지구 보안기관을 지휘했던 무함마드 다흘란은 오슬로 협정 이후 10년도 안 돼 개인 자산이 1억 2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당국, 팔레스타인인 자본가들이 걸프 연안국 자본가들과 결탁해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에 맞서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제국주의와의 야합을 통해 부패의 고리를 형성했다.
부패한 파타를 몰아내고 다른 세력이 팔레스타인 당국을 이끌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이스라엘과 미국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당국을 주도하는 파타를 누르고 승리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사주로 파타가 장악한 팔레스타인 당국의 보안기관들이 가지지구에서 쿠데타를 기도했다. 하마스가 이를 제압하자,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에 가담했다. 가자지구 공무원들에게 급여를 지불하지 않았고, 가자지구로 가는 전기를 끊었다.
이런 팔레스타인 당국을 ‘국제 사회’가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발판 삼아 온전한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허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당국을 이용해 저항을 억누르려 한다. 이에 맞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연대하는 국제적 운동을 성장시켜, 중동 제국주의 질서의 일부인 아랍 국가들에서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고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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