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유혈낭자한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더한층 위험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 전황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5월부터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 5월 무력 시위 차원에서 모스크바로 드론을 날리기 시작했다. 9월에는 러시아 영토 내 군사 관련 목표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우크라이나가 자체 생산한 공격 드론은 러시아의 정유소·저장소 10곳과 금속 공장 및 광산 시설 3곳을 공격했다.”(〈파이낸셜 타임스〉 4월 2일 자)

이런 공격으로부터 러시아가 입은 피해는 별로 크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의 반격은 가공할 만했다. 예컨대, 러시아군은 4월 11일 미사일과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국영 트리필스카 화력발전소를 완전히 파괴했다. 트리필스카 발전소는 키예프(키이우)에서 남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수도와 인근 지역에 전기를 공급해 왔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국영 트리필스카 화력발전소 ⓒ출처 Centrenergo

러시아는 옛 소련제 재래식 폭탄에 비행 날개와 위성항법시스템을 단 신형 무기인 ‘활공 폭탄’을 개발했다. 러시아 공군 전투기에 실려 투하되는데, 최대 1500킬로그램에 달하는 폭발물을 싣고도 비행 거리가 60킬로미터를 넘는다.

도네츠크 전선의 한 우크라이나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활공 폭탄은] 매우 무섭고 치명적인 무기다.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 건물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위력이다.” 활공 폭탄이 지상에 떨어졌을 때 너비 20미터, 깊이 6미터에 달하는 구멍을 남길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고 한다.

게다가 미사일과 일반 포탄에 비해 생산(개조) 비용이 저렴해 러시아 입장에선 가성비 높은 효자 무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등 격전지에 활공 폭탄을 퍼붓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요충지 아우디이우카를 장악한 것도 활공 폭탄 수백 발을 발사해 마을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활공 폭탄의 사정거리와 파괴력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도록 놔둘 수가 없다. 미국 등 서방은 성가신 평화보다는 끝없는 전쟁이 자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미군은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굴욕적으로 철수했다. 미국은 거의 20년을 끈 전쟁에서 패배하고 탈레반에게 권력을 넘겨줬다. 미국이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세계에 강요할 능력이 저하됐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반년 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했다.

물론 미국 등 서방 지도자들은 푸틴의 도전에 응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서방 권력자들은 나토와 러시아 간의 직접 교전 금지라는 금기를 깰 의향은 없었다. 세계적 핵 전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장기전이 벌어지는 이유다.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고, 그 대신 우크라이나는 청년들을 갖다 바쳐 동부 전선에서 부상당해 불구가 되거나 죽어가도록 만든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에 있는 제국주의 정치

핵 잠수함 등 러시아 군함 4척이 6월 12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의 턱밑에 있는 쿠바에 도착했다.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았지만 러시아군은 17일까지 머물며 쿠바군과 함께 미사일 훈련을 실시했다.

이것은 5월 하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조기경보시스템 레이더 기지를 공격한 것에 대한 무력 시위였다.

미국의 턱밑에 있는 쿠바로 향하는 러시아 군함 ⓒ출처 러시아 국방부

서방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6월 14일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500억 달러(약 68조 5000억 원)를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지난달에 자국 지원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했고, 이달 초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동부 접경 도시 벨고로드에 있는 미사일 발사대를 하이마스(미국산 다연발 로켓포)로 타격했다.

2022년 2월 푸틴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결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아님을 보여 주는 가장 최근 사례들일 뿐이다. 실제로는 세계 최대 핵 강국인 미국 등 나토와 세계 2위 핵 강국인 러시아 간의 대리전이다.

러시아 본토로 발사되는 미국산 다연발 로켓포 하이마스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 본토를 자국 지원 무기로 공격할 수 있게 허용했다 ⓒ출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이 61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예산안에 서명하면서, 폴란드에 보관돼 있던 무기들이 5월부터 키예프(키이우)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 장교들은 전선의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러시아군의 진격을 격퇴시킬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늦출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미국 등 서방의 지원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610억 달러는 큰 금액처럼 보이지만 우크라이나가 올해 미국에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대규모 지원 패키지다.

유럽의 한 고위 소식통은 우크라이나군이 미국(과 유럽연합)의 새 지원을 받으면 러시아군의 주요 적진 돌파를 향후 12개월 동안 막을 공산이 “꽤 높다”고 말했다(로이터, 4월 23일 자). 결국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병력 부족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 인구는 약 1억 4500만 명으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많다. 매달 대략 3만 명의 신병을 어렵지 않게 충원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인구는 약 4400만 명으로 러시아의 3분의 1도 안 된다.

젤렌스키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징집 연령을 낮추고 징병법을 개악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은 청년들의 반발을 부를 뿐이었다.

“끊임없는 포격과 첨단 무기의 부족, 전투 패배로 인해 군대의 사기가 바닥이다. 전쟁 초기에 전선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도시들에서 입대하려고 줄을 섰던 청년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요즘에는 징집 대상자들이 징집을 피해 나이트클럽에서 오후를 보내고 있다. 많은 청년들은 아예 나라를 떠났다.”(〈폴리티코〉, 4월 17일 자)

공화당이 6개월 동안 반대하다 4월 20일 결국 입장을 선회한 것도 이런 우크라이나 전선의 사정 때문이었다. 이 지원안의 통과를 주도한 자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이었다. 존슨은 바이든이 표를 훔쳐갔다는 트럼프의 2020년 ‘선거 사기’ 주장을 지지하는 자이다.

그럼에도 미국 하원에서 6개월 동안 지루하게 벌어진 다툼과 갈등은 우크라이나 전선의 교착 상태를 반영한다. 그와 동시에, 미국 제국주의의 전반적인 난맥상을 반영한다.


전망: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를 포기할까?

트럼프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반대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에 양도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항복해야 한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고립주의, 편협함,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아예 트럼프를 “친러시아파”라고 비난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를 패배하도록 놔둘 거라고 생각한다.

6월 13일 나토 국방장관 회의는 7월에 열릴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매년 400억 달러(약 55조 원)를 지원하는 합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나토 국방장관 회의의 주요 안건에는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파트너국(AP4)과의 협력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는 이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이 트럼프의 귀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할 경우 미국 중심의 우크라이나 지원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스톨텐베르그의 목표는 트럼프의 “고립주의”로부터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나코 국방장관 회의 나토는 매년 400억 달러(약 55조 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했다 ⓒ출처 NATO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한 1991년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유일한 전선이 아니다. 미국의 후원을 받은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에서 고전하며 수렁에 빠져 있다.

또, 예멘에서는 10년 동안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의 진정한 주역은 지역의 두 강대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다. 이란은 러시아의 동맹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드론은 이란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동맹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는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2028년께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역사를 보면, 경제력 수준에서 강대국들 간의 세력 재편이 진행되면 그와 동시에 지정학적 영향력과 군사력 수준에서도 세력 재편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졌다.

미국 지배자들은 경제력의 상대적인 쇠퇴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체제의 피라미드 꼭대기를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다. 이것이 조지 W 부시 정부를 지탱하고 미국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이끈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구상한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이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인들은 중국을 러시아·북한·이란과 묶어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단절하려고 애썼지만(디커플링) 실로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 드러났다. 미국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이 주도해 4월 20일 하원을 통과한 동맹국 안보 강화 지원 패키지에는 중국해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대만에 81억 달러(약 11조 원)를 지원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서방 제국주의의 위세뿐 아니라 미·중 간의 세력 균형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설령 11월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운명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적의 손에 넘겨주기보다는 차라리 파괴되는 것이 낫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오랜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