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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는 어떤 정당인가?

이스라엘이 또다시 레바논을 노리고 있다. 자신들이 공표한 하마스 궤멸이라는 목표가 갈수록 달성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자 전쟁을 키워서 그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또,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예멘의 후티와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편에서 군사 행동을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이래 레바논 남부를 수시로 폭격하고 확전을 위협하고 있다.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피한다는 “기존의 대(對)레바논 군사 교리를 이제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1978년, 1982년, 2006년 세 차례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스라엘은 1982년 이후 18년 동안 레바논 남부를 직접 점령했다. 그러다가 2006년 전쟁에서 패배하고 레바논 남부에서 철군해야 했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를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에 버금가는 수모”라고 묘사했다.

헤즈볼라가 그 저항을 주도했다.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 권력자들)이 헤즈볼라를 증오하는 이유다.

반제국주의 저항 주도한 민족주의 정당

헤즈볼라(‘신의 당’이라는 뜻)는 1982년 레바논 남부에서 창당됐다. 창당 당시 헤즈볼라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레바논 남부에서 쫓아내고 국경선을 1967년 이전 상태(이스라엘이 서안지구·가자지구·골란고원을 점령하기 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었다.

헤즈볼라 창당의 기반은 시아파 집단이었다. 종단·종파별로 권력을 분점하는 레바논의 지배 체제하에서 시아파는 가장 가난하고 정치적·경제적으로 배제된 집단이었다.

레바논의 종단·종파별 권력 분점 체제는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 지배의 산물이자, 레바논 지배계급이 자신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 대중을 분열·지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970년대에 레바논 사회가 심대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 레바논 지배계급은 대중 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종단·종파 간 갈등을 부추기는 전략을 취했고, 그 결과는 유혈 낭자한 내전이었다.

그 내전에 대해 레바논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고(故) 바셈 치트는 이렇게 지적했다. “종단·종파 간 갈등은 단지 종단·종파 집단들 간 증오의 표현이 아니다. 그 갈등의 근원은 다른 집단에 맞서 한 집단에 특권을 부여하는 체제에 있다. 그러나 내전이 전개되는 동안 일반 대중은 빈곤과 고통으로 내몰렸고, 굶주림은 종교적 정체성을 가리지 않았다. 레바논의 최대 분단선은 종교가 아닌 계급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헤즈볼라는 창당 당시 비교적 협소한 시아파 이슬람주의를 표방했지만, 헐벗고 굶주린 사회 집단을 대변하고 이스라엘에 맞서며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 정당이 됐다.

시아파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집단이 헤즈볼라에 속했고 그 지도자들이 헤즈볼라의 핵심 간부층을 형성했다.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 무장 저항에 참가했고 레바논 곳곳의 난민촌에 살던 팔레스타인 투사들이 헤즈볼라 군사 조직의 중핵이 됐다.

헤즈볼라가 태동하던 1980년대 초,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서 활동하던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 그곳을 침공했다.

점령에 맞선 저항이 헤즈볼라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헤즈볼라는 점령군에 맞서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벌였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수모를 안겨 준 바 있다. 2000년 이스라엘 철군을 기뻐하는 레바논인들 ⓒ출처 moqawama.org.lb

십수 년간 계속 저항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은, 2000년에 점령지 바깥의 레바논 마을을 공격했다. 이는 레바논에서 학생 반란과 파업이 분출하는 기폭제가 됐고, 이후 점령 지역 내 봉기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점령을 포기해야 했다.

그 후에도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를 거듭 유린했고, 2006년 7월에는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민간인을 대량 살상하는 이스라엘의 군사 교리 ‘다히야 독트린’의 잔혹성이 이때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럼에도 헤즈볼라는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 1948년 건국 이래 가장 수치스런 군사적 패배를 안겼다.

이스라엘에 타협하지 않으면 패배할 뿐이라는 ‘공식’을 깨뜨린 것이다. 헤즈볼라의 승리는 아랍 세계를 크게 고무했다.

승리의 길이 갈림길로 이어지다

승리를 거둔 헤즈볼라는 갈림길에 서게 됐다.

2006년 승전을 이끈 헤즈볼라는 전국적 주요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레바논 자본주의 수호에 일조하라는 압력에 노출됐다.

헤즈볼라는 선택에 직면했다. 레바논의 부패한 기존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이 시스템에 적응하고 레바논의 국익을 가장 잘 수호하는 세력이 될 것인가? 이는 역사적으로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이 흔히 직면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헤즈볼라는 전후 재건 비용을 위한 구제금융의 대가로 신자유주의적 법을 제정하라는 서방의 요구에 타협했다.

헤즈볼라는 자기 정당이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를 확대해 신자유주의적 충격을 완화하려 시도했다. 헤즈볼라는 무장 저항 세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당 이래로 빈곤층에 의료와 교육, 물자 유통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온 정당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운영하는 데에 외부 세력(특히 이란과 카타르)의 후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헤즈볼라는 저항 운동과 덜 교감하게 됐다. 복지 서비스도 신흥 중간계급의 필요에 점차 부응하게 됐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지배 체제 내에서 일정한 지분을 확보하며 새로 등장한 시아파 부유층을 갈수록 대변하게 됐다. 정당 내 관료화도 진척됐다.

이러한 헤즈볼라의 변화는 2011년 아랍 혁명 때 그들이 취한 행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헤즈볼라는 아랍 혁명 초기에 그 혁명을 환영했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헤즈볼라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까지 위협하자, 헤즈볼라는 아랍 혁명과 충돌하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는 시리아 혁명을 “외세의 책동”이라고 비난했고, 시리아 내전에 헤즈볼라 전사들을 보내어 아사드 정권의 편에서 싸우게 했다.

급기야 나스랄라는 시리아 혁명에 우호적이던 이집트의 무르시 정권이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로 타도되고 이집트 혁명이 패배했을 때 이를 환영하는 입장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9년 10월 물가 급등에 항의하며 레바논 역사상 최대 항쟁이 분출했을 때도 헤즈볼라는 ‘사회 안정’을 위해 항쟁 진압에 동참했다.

헤즈볼라의 위상을 보여 주는 최근의 또 다른 사례는 2022년 10월 레바논-이스라엘 간 해저 가스전 공동 개발 협정이다. 헤즈볼라는 이 협정을 앞장서서 추진했다. 이스라엘을 대화 대상으로 인정한 이 협정으로 레바논은 향후 가스전 수익의 17퍼센트와, 인접한 카리시 유전을 얻게 됐다.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고 레바논으로 확전하려는 이스라엘

그러나 이처럼 헤즈볼라가 레바논 지배 체제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았다고 할지라도, 서방과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계속 적대한다.

서방은 레바논 국가의 군대가 헤즈볼라의 균형추 구실을 하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 모든 세력을 통틀어 가장 효과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헤즈볼라는 시온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레바논 남부를 방어하는 구실을 계속 수행함으로써 계속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남부 시아파 주민들뿐 아니라, 레바논 곳곳에 있는 난민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동북부의 기독교인들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저지할 세력이라고 여긴다.

레바논 남부의 한 거주민은 외신에 이렇게 전했다. “이스라엘이 쳐들어오면 도망치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런데 저 같은 [가난한] 사람은 도망칠 수도 없어요.

“여기 남으면 누가 저를 지켜 주죠? 헤즈볼라뿐입니다.”

따라서 헤즈볼라는 제국주의에 굴종하기 어렵고, 이스라엘이 확전을 감행할 경우 레바논 남부에서 대(對)이스라엘 전쟁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가자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는 갈수록 확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상대로 또다시 전쟁을 벌일 경우,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서방도 이를 우려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서방이 자신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와 레바논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려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인 유린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그런 충돌이 벌어질 시 헤즈볼라의 승리를 바라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 전선에서 패배한다면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계 마르크스주의자 시문 아사프는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헤즈볼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이미 헤즈볼라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병력을 잃었고, 최고 간부들을 일부 잃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완전 무장한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이번에 헤즈볼라가 승리를 거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번에 승리를 거두려면 미사일만이 아니라 대중 운동이 필요하고, 또 2011년 아랍 전역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 혁명이 부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