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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헤즈볼라는 ‘테러리스트’ 단체인가?

이스라엘은 국경을 마주한 레바논의 남부에 있는 크고 작은 도시를 수시로 폭격한다. 그 폭격 하나하나가 헤즈볼라 전사들을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끌어들일 위험이 있는 일이다.

서방은 저항 단체 헤즈볼라를 로켓으로 무장한 이슬람주의 전사들이 추동하는 “테러리스트” 단체인 양 묘사한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그런 고정관념에 들어맞는 단체가 아니다. 헤즈볼라는 수십만 지지자를 거느린 대중 정당으로, 과거에 레바논 정부를 구성한 바 있다.

동시에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격퇴할 만큼 노련하고 무장을 잘 갖춘 군사 조직이기도 하다. 당시 헤즈볼라는 대중 봉기와 수준 높은 군사 전술을 결합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헤즈볼라는, 서방제 무기로 무장해 확고한 우위를 자부하던 이스라엘에 굴욕을 안겨 줬다.

2006년 헤즈볼라 깃발을 들고 이스라엘의 패배를 기뻐하는 레바논 사람들 ⓒ출처 가이 스몰만

지난주에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맞서 “제한 없는 전쟁”을 벌일 태세를 갖췄다고 경고했다.

1980년대 초반 창설 이래 헤즈볼라는 제국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 레바논을 수호하는 단체로 레바논인들의 광범한 지지를 받아 왔다. 주되게 이는, 종파에 따라 심각하게 분열해 있는 레바논 “국가” 자신은 대오를 갖춰 이스라엘에 맞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바논에서 국가 권력은 종단과 종파에 따라 여러 정당들 사이에 분점돼 있다. 분열 지배로 레바논을 통치하려고 조성된 이런 체제는, 1943년에 공식적 독립을 인정하기 전까지 레바논을 지배하던 프랑스 제국주의가 수립한 것이다.

각기 다른 종단·종파에서 배출된 정치인들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위해 서로 경쟁하며 레바논의 천연자원을 탕진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레바논 국가와 경제가 파국을 목전에 둔 상태가 여러 해 동안 이어지고 있다.

1982년에 창설된 헤즈볼라는 서로 쟁투를 벌이던 종단·종파 정당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애썼다. 아래로부터 저항으로 탄생한 헤즈볼라는 특히 시아파 무슬림처럼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고 레바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렸다.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 당시 헤즈볼라는 자신이 적과 타협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줄 수 있었고, 그로써 지지를 더 키울 수 있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난 이스라엘의 2006년 침공은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만 높였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줄곧 딜레마를 겪어 왔다. ‘레바논의 종단·종파 기반 체제에 도전해야 할 것인가? 혹은 그 일부가 돼야 할 것인가?’

헤즈볼라는 의회 체제가 부패했다면서도 1992년 의회에 진출했다. 그리고 헤즈볼라는 2006년 전쟁 이후 대중적 지지를 얻고서도, 변화를 이룰 급진적 해방 세력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종단·종파 기반 체제하의 다른 정당들과 비슷한 정당이 되기를 택했다.

딜레마

2019년에 레바논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기로 더한층 몰아넣는 긴축에 분노해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레바논계 사회주의자 시문 아사프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 봉기의 바깥에 있었다.”

아사프는 이렇게 지적했다. “심지어 헤즈볼라는 봉기 진압을 위해 자신의 병력을 다른 정당들에게 제공하기까지 했다.

“지난해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협정을 맺어 시온주의자들이 동지중해에서 천연가스를 시추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헤즈볼라가 극우 정당들과 공동 행동을 벌이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레바논 남부 지역 시아파 이외의 사람들에게서 헤즈볼라는 전과 같은 지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10월 7일 이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헤즈볼라에 모순이 있긴 하지만, 이스라엘이 국경을 넘어 레바논을 침공하는 것을 헤즈볼라가 저지하고자 하는 데에서는 레바논인들은 헤즈볼라를 지지한다. 이 점은 언제나 헤즈볼라가 다른 종단·종파 기반 정당들과 뚜렷이 다른 점이었다.”

아사프는 이스라엘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헤즈볼라가 할 수 있는 바는 제한적이다. 헤즈볼라에게 이 전쟁은 지금도 이미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헤즈볼라는 병사들을 잃었고, 사망자 중에는 최고위층 간부들도 있다. 그리고 미국에 의해 무장을 갖춘 이스라엘군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헤즈볼라는 사실 [군사적으로] 승리할 수가 없다.

“이번에 승리를 거두려면 미사일만이 아니라 대중 운동이 필요하고, 또 2011년 아랍 전역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 혁명이 부활해야 한다.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인들과 레바논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나크바 직후에 레바논의 난민촌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빈곤에 시달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의 탄압까지 받았다.

레바논 국가는 이스라엘과 거래를 하려 했었다.

그러나 1967년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東)예루살렘,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여러 아랍 군대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싸웠지만 모두 이스라엘에 패배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랍 지도자들이 자신을 구원해 주지 않을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전투] 훈련을 받았다. 1960~1980년대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레바논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 시기 PLO는 매우 강력해서 레바논 지배자들을 위협할 정도였다. 이스라엘은 PLO를 분쇄하려 1982년에 레바논을 침공했고, 이스라엘은 레바논 현지 동맹들에게 사브라·샤탈라 난민촌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하도록 청신호를 보냈다. PLO는 레바논에서 쫓겨났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레바논에 살지만, 이들은 레바논인들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