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주노동자 사건 일지 3:
불법파견: 정부와 사용자의 책임 회피로 멍드는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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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화재 참사에서 한 쟁점이 불법파견이다. 참사 직후 아리셀 사용자는 도급이라며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고, 메이셀은 노동자들을 파견한 것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도급이란 일의 완성에 대해 보수를 지급받는 것으로 업무 지휘 권한과 책임이 도급업체(이 경우, 메이셀)에 있다. 반면, 파견의 경우 파견업체가 노동자들을 일할 곳으로 보내면 업무 지휘와 책임은 사용사업주(이 경우, 아리셀)에 있다. 이 때문에 책임 회피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파견은 고용 유연화의 한 형태다. 사용사업주는 물량이 몰릴 때 직접고용의 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고도 노동자를 제공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한국에서는 파견 자체가 불법이었는데, 1998년 김대중 정부가 파견법을 제정하면서부터 파견이 허용됐다. 그럼에도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 등은 파견이 허용되지 않아 왔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등에서 '불법파견'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직원이라고 주장하며 싸워 정규직 전환을 쟁취했다.
이 때문에 사용자 단체들은 파견 허용 업종과 기간을 확대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악의 한 의제도 파견 확대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은 아리셀 참사 직후에도 파견 규제 완화 방침을 고수하겠다고 했다. 이런 정부가 불법파견 감독과 처벌에 진심일 수 있을까?
불법파견은 일용직 고용과 같은 불안정한 고용관계와 임금체불이나 산재 발생 시에 사용자 책임 회피 등의 문제를 낳는다. 한국 체류가 불안정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사실,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런 고용 형태는 ‘브로커’ 또는 ‘에이전시’의 매개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인데, 아리셀 참사가 이를 비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누가 책임질까?: 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사례
A 씨는 인도네시아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아리셀 참사가 터지기 열흘 전쯤에 2개월 치 임금이 체불됐다고 연락이 왔다. 그는 충북의 한 산업단지 제조업체에서 근무했다. 필자와 거리가 멀어 관련 자료를 사진으로 전송받았는데 자신이 작성한 근로계약서와 2개월간 근무 내역이 담긴 출퇴근 기록, 그리고 일했던 사업장의 정보가 겉면에 인쇄돼 있는 편지 봉투와 사업자등록증 사진이었다.
A 씨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의 상대방은 모 에이전시라는 업체였고, 이 업체 사용자의 이름은 없었다. 근로계약서의 업무 내용에는 용접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명백히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근로계약서에는 버젓이 첫 달 급여에서 커미션으로 20만 원을 공제하고, 매월 5퍼센트를 공제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A 씨가 보내 준 정보를 보면 실제 일했던 사업장은 전혀 다른 업체였다.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근로계약서 사용자란에 적힌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수차례 시도에도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 일했던 사업장 정보를 이용해 통화했다. 그 사업장은 명칭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기업은 그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명칭이 변경됐지만 A의 체불에 대해 얘기했을 때 이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고, 관할 고용지청에 임금체불과 불법파견에 대해 진정을 넣었다.
진정 이후 아리셀 참사가 터졌고, 출석 조사가 지지부진해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화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올랐다. A 씨가 실제 일했던 사업장의 사업주와 에이전시 사업주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아리셀과 메이셀의 책임 공방과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
수사와 출석을 재촉하면서 다시 통화했을 때 더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해당 기업들에 대해 진정들이 추가되고 있는데, A 씨가 실제 일했던 사업장의 사용자가 에이전시의 사용자와 동일 인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 저들에게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은 매뉴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자들이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이,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로 위장하고 배 째라 하는 사이 A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맘을 졸여야 하고, 2개월 치 급여도 떼여 경제적으로 힘들 것이다.
정부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용자들이 이렇게 활개칠 수 있게 해 준, 노동자를 이런 상황에 내모는 파견의 확대를 꾀하고, 불법파견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 말이다. 안전 관리·감독에 대한 직무 유기는 또 어떤가. 불안정한 일용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체류자격 제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식이 제2의 아리셀 참사를 막자고 했을 때, 윤석열이 아리셀 참사 직후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대해 명복과 위로를 말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