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각한 위기를 보여 준 트럼프 암살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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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7월 13일(현지 시각) 암살 기도에서 살아남았지만, 이 사건은 심각하게 쇠락하고 있는 미국 정치 체제를 또 한 번 강타했다.
비밀경호국 요원들은 트럼프에게 총을 쏜 토머스 크룩스를 사살했다. 이날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트럼프 선거 유세의 참가자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다쳤다.
이 사건은 트럼프와, 미국과 전 세계의 극우·인종차별적 세력들을 흥분시킬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주 후반에 공화당 공식 대선 후보로 지명될 것이다.
“국민적 단결” 운운하는 주류 정치인들의 도움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이번 암살 기도를 이용해 트럼프의 극우·인종차별적 정치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인 마이크 존슨은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 “격한 표현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존슨은 트럼프 반대자들의 트럼프 “악마화”와 “매도”가 이번 암살 기도로 이어졌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도 민주당과 “그들의 언론계 친구들이 용의주도하게” 트럼프를 “사실상 히틀러”로 몰아붙여 왔다고 비난하는 글을 ‘엑스’(옛 트위터)에 게시했다.
영국의 극우 정치인 나이절 퍼라지는 다음 주 미국 밀워키에서 열릴 공화당 전당대회에 트럼프를 지지하러 참여하겠다고 했다. 극우 정당 영국개혁당의 대표인 퍼라지는 이렇게 만족스러워 했다. “트럼프는 당선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리고 오늘의 극악무도한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는 승리할 것이다.”
이번 암살 기도는 상시적인 것처럼 보이는 더 광범한 불안정의 한 징후다.
그 불안정의 근원은 미국 사회가 경제·정치·생태·제국주의적 위기로 인해 안으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는 데에 있다.
미국 국가는 자신의 헤게모니, 즉 세계 자본주의의 지도적 국가라는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갈수록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외에서 미국 국가는 3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중국 제국주의의 부상과 중동에서의 확전 위험, 우크라이나에서 실패하고 있는 대(對)러시아 대리전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미국 국가는 사회의 퇴락과 장기 불황, 정치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 국내의 위기들은 국외의 위기로 인해 더 악화되고 있다.
현 바이든 정부의 중도 정치는 그 불안정을 낳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국제 무대에서 이런 미국의 어려움은 이번 주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열린 전쟁광들의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타난 불안감으로 표현됐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가 직면한 도전들과 트럼프 재선 가능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대기업을 지원하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부 미미한 혜택만 주는 바이든의 정책은 사회적 위기를 완화하지 못함은 물론 미국 자본주의의 건전성조차 회복시키지 못했다. 올해 초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2퍼센트가 트럼프를 최선의 미국 경제 관리자로 꼽았다. 바이든을 꼽은 응답자는 31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리고 트럼프와의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이 보인 형편없는 모습과 그 후에도 이어진 잇따른 말실수가 바이든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바이든 자신의 대선 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은 심각한 불평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조세정책센터에 따르면, 2022년에 상위 1퍼센트의 평균 연 소득은 80만 달러가 넘었다. 상위 20퍼센트의 평균 연 소득은 약 28만 달러였다. 반면 하위 20퍼센트는 평균 연소득 약 1만 5000달러로 연명했다.
트럼프는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에 힘입어 부상했다. 트럼프는 노동계급의 임금을 삭감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3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에 대한 누적된 분노와 불만을 이용해 득을 봤다. 트럼프는 대중의 분노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결집시키려고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이민자를 희생양 삼고, 대중의 분노가 향하는 방향을 진짜 엘리트(억만장자·기업주·금융가들, 트럼프도 그 일원이다)가 아닌 “리버럴 엘리트”로 뒤틀었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미국 지배계급의 서로 다른 부문을 대표한다. 그 부문들은 위기에 처한 미국을 안정시킬 방안을 두고 견해가 엇갈려 있다.
서로 맞물려 있는 이 위기들은 ─ 한때 자유 민주주의의 모범이라 떠받들어지던 ─ 미국 정치 기구들 안에서도 표현됐다. 지난 4년 사이 미국에서는 극우가 국회의사당을 습격하고, 트럼프가 2020년 대선 패배를 부인하고,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계속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믿는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도 공화당에 대한 그의 장악력은 약화되지 않았다. 이는 기층에서 우익적 급진화를 심화시켰고, 상·하원 모두에서 극우를 성장시켰다.
지난해 1월,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에서 의장을 선출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당시 공화당이 내놓은 후보인 케빈 매카시는 트럼프를 지지했던 자였지만 일단의 공화당 의원들은 그가 충분히 우익적이지 않다고 여겼다.
투표를 몇 차례나 거듭하고 나서야 하원의장이 된 매카시는 결국 지난해 10월 해임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하원의장을 해임한 것이다.
매카시는 공화-민주 양당 사이의 막후 협상과 교섭으로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을 추구했다.
반면 극우 성향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올해 초 입법 과정을 사실상 마비시킬 수 있었다.
이 위기에서 우익이 득을 보는 것은 필연이 아니다. 거대한 사회 운동들이 미국 사회를 뒤흔든 바 있다. 예컨대 캠퍼스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지난 트럼프 정부 때 일어난 대중적 항의 운동 등이 그 사례다.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모임 ‘스쿼드’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런 기대를 민주당의 기성 정치로 흡수시켰고, 이번 대선에서는 바이든을 후보로 밀고 있다.
희망은 거리와 캠퍼스와 일터에, 그리고 민주당에 의존하지 않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