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쿠데타 기도와 퇴진 운동 속에서 전개됐던 철도 파업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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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동자들이 12월 5~11일 7일간 이어진 파업을 종료하고, 18~20일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번 파업은 윤석열의 쿠데타 미수 이후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진행됐다. 퇴진 운동이 급성장했고, 이는 노동자들의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철도 노동자들은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가하며 거리의 활력을 흠뻑 느꼈고, 파업 종료 직전까지도 파업 참가율은 흔들림 없이 높았다.
퇴진 시위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도 철도노조가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지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주의를 공격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후퇴시켜 왔다.
철도 노동자들을 포함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그 공격을 직격으로 맞았다. 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해, 지난 3년간 이들의 실질임금은 무려 8퍼센트가 삭감됐다.
게다가 올해 철도공사는 다른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2.5퍼센트 임금 인상도 못 하겠다고 했다.
이에 맞선 파업은 생계비 위기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철도 같은 공기업 노동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싸우면 지지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번 파업에 대한 지지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게다가 인력 감축과 외주화를 중단시키라는 요구는 노동조건뿐 아니라 철도 안전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철도노조가 오랜 기간 민영화의 문제를 알리며 싸워 왔기 때문에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안전과 직결된다는 인식은 많이 확산돼 있다.
파업으로 인한 운행 차질 효과도 적지 않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화물열차 운행은 10~20퍼센트대에 불과했고, KTX 운행률도 7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필수유지업무(‘공익 사업장’에서 파업 기간에도 일정 비율의 업무를 해야 하는 것) 제도 때문에 제약이 있고, 정부가 군인 300여 명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해 파업 효과를 약화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철도공사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쉽사리 양보하지 않았다. 게다가 12월 6일 국민의힘 의원 서범수는 필수유지업무 범위를 확대해 파업 효과를 더 약화시키는 노조법 개악안을 발의했다.
정부와 우파들은 정치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노동자 파업에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재명의 중재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파업 5일째 되는 날인 12월 9일에 이재명과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철도노조를 방문해 정부와 철도노조 양측 모두에게 “양보할 부분”이 있는지 중재해 보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민주당의 한 인사는 “엄중한 시국”을 고려해 철도노조도 조속한 파업 철회를 위해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는 ‘퇴진 운동 참가자들도 기차를 이용해야 하지 않겠냐’ 하며 조속한 파업 철회를 압박했다.
이는 퇴진 운동 참가자들이 “불편해도 괜찮다”며 철도 파업을 지지한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재를 통해 나온 합의문은 노동자들에게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임금을 2.5퍼센트 올리기로 했지만, 올해가 아니라 내년부터 온전히 적용되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해 노동자들도 연차 보상을 양보해야 한다. 인력 충원은 구체적인 약속이 부족하고, 추후 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논란이 된 성과급 문제도 내년에 연구용역을 거쳐 확정하기로 했다.
4조 2교대제 문제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고, 승진포인트제도도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다만 전반적으로는 정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이 많다. 이 때문에 상당수 노동자들이 “확실한 게 없다” 하고 말했다.
또, 이번 합의문에 병가 사용 조건을 제약하는 내용이 담겨 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이재명은 파업 종료 후인 12월 12일(목)에 다시 철도노조 지도부와 만났다. 여기서 수서고속철도(SRT)와 코레일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겠다며 철도 노동자들의 불만을 달래려 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때도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당 지도부가 합동으로 압박을 가하고 당시 철도노조 집행부가 이에 응해 일방적으로 파업 종료를 선언했었다. 그래서 철도 노동자들은 당장 손에 쥔 것 없이 복귀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결국 쫓겨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성과연봉제도 폐기된 바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철도노조 지도부나 적잖은 노동자들은 당장 요구를 다 따내지 못해도 윤석열 탄핵 후 민주당 정부로 바뀌면 노동자에게 유리한 결론이 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2016년 당시 성과연봉제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었던 반면,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임금, 노동조건 개선이다. 그래서 두 쟁점의 성격이 다르다.
집권한 민주당 정부는 민영화 같은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서 국민의힘과 차이가 있을지라도 임금과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것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을 옥죄는 총액인건비제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부문에서 임금과 인력 억제 정책을 썼다.
즉, 민주당으로 정부가 바뀌더라도 임금, 노동조건 개선은 정부가 쉽게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극심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철도 노동자들에게 쉽사리 양보하지 않은 것은 철도 파업이 미칠 파급 효과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철도 노동자들이 승리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얻을까 봐 걱정한 것이다.
민주당이 중재에 나선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민주당도 계급투쟁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노동자 투쟁을 자제시키는 중재력을 발휘해 지배계급에게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윤석열의 쿠데타 기도에 맞서 퇴진 운동이 분출한 상황에서 노동자 투쟁이 전진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민주당과는 독립적으로 자체 대중 투쟁을 전진시킨다면 노동자들은 더 많은 것을 따낼 잠재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