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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일 동안 놀라운 투혼을 보여 준 철도 파업 — 평가와 과제

철도 파업이 집행부의 일방적 종료 선언으로 아쉽게 끝났지만, 74일간 진행된 이번 파업은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더 악화시키고 퇴진 운동을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또, 퇴진 운동 내에서 박근혜 정부의 주요 ‘적폐’ 중 하나인 노동개악(성과연봉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키우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철도 현장 노동자들은 놀라운 투지를 발휘했다. 74일을 싸우는 동안 파업 이탈자가 아주 적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야당과 김영훈 집행부의 파업 종료 시도를 두 차례 막았다. 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고 파업이 종료되던 날도 자신의 실 사용자인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기 때문에, 사기가 크게 꺾여 현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일부 지부들은 복귀를 미루거나 항의를 벌여 노동조건 악화 조처(‘다이아’ 개악), 강제 전환배치 등의 공격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일부 지부들은 지금도 농성 등 항의를 이어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더 악화시키다

일부 보수 언론은 “주목 못 받고 조합원 손해만 눈덩이”라는 식으로 철도 파업의 의미를 깎아내렸다. 그러나 정말 그랬다면 기업주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는 〈조선일보〉가 철도 파업 종료 소식을 1면 기사로 싣지도 않았을 것이다.

철도 파업은 (‘필공’ 파업이어서)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극심한 위기를 배경으로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번 파업은 9월 하순 박근혜의 정치 위기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가운데 다른 공공기관 파업과 함께 시작됐다. 철도 노동자들이 그 투쟁의 선두에 섰다.

올해 4월 총선 참패로 박근혜 정부에 대중적 불신과 불만이 확인되면서 정부·여당은 내홍을 겪기 시작했다. 또, 경제 위기와 구조조정을 둘러싼 지배자들의 분열도 날카롭게 표출됐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파업 등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권의 위기를 더한층 가속화하는 구실을 했다.

철도 파업에 이어 화물연대와 현대차가 파업을 벌이던 10월에는 노동쟁의로 인한 근로손실일수가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11월 1일 기준 근로손실일수는 1백55만 일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백64퍼센트 증가한 수치다.(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파업 건수, 쟁의 지속 기간, 파업 참가자 수는 해마다 증가했다.) 이 속에서 박근혜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이번 파업은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앞세우면 지지 받기 어렵다’는 노동운동 일각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 저지 요구를 내걸고 정권에 맞섰는데, 박근혜 정부의 악행에 진저리를 치는 광범한 민중이 이 파업을 지지했다.

이렇게 철도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 운동이 솟구치기 전부터 그 길을 닦는 구실을 했다.

철도 파업과 박근혜 퇴진 운동의 상호 작용

철도 파업의 핵심 의의 하나로, 박근혜 퇴진 운동에 한 기여를 들 수 있다.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첫 거리 집회와 시위가 벌어진 10월 29일, 철도 노동자 수천 명이 사전 집회를 한 뒤 이 시위에 참가했다. 그 뒤로도 철도 노동자들은 매주 주말 시위에 열의 있게 참가했고, 특히 평일 촛불 시위의 핵심 대열을 이뤘다. 평일 촛불은 주말 대형 시위들 사이를 이어 주는 교량이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광주, 대전 등 전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주말 백만, 이백만 촛불의 불씨를 간직한 것은 묵묵히 평일 촛불에 참여한 우리”라는 철도 노동자들의 평가는 옳다.

요컨대, 철도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 운동 시작부터 그 중심에 조직 노동자들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줬고, 더 많은 노동자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견인차 구실도 했다. “2008년 촛불 운동 같은 이전 운동들에서는 노동조합과 좌파단체 성원들도 ‘개별 시민’으로서 참가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조직 노동자들이 시위대 전체의 환영을 받고 있다.”(〈노동자연대〉 185호 사설 ‘이렇게 생각한다’) 실로 수많은 촛불 대오가 철도 파업을 응원했고, 민주노총 내에서도 파업 노동자들의 생계비 지원을 위한 채권 모금이 성공적으로 조직됐다.

한편, 철도 노동자들 자신도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노동자들은 자신을 향해 맹공을 펴 온 박근혜 정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운동이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커다란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대중적 퇴진 운동 안에서 ‘철도 파업 힘내라’는 박수를 받을 때마다 힘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철도 노동자들은 “역대 어느 파업 투쟁보다도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파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철도 파업(경제적 투쟁)과 퇴진 운동(정치적 투쟁)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냈던 것이다.

기층 노동자들이 야당과 노조 지도부의 파업 종료 종용을 거부하다

따라서 철도노조가 박근혜의 위기를 이용해 투쟁에 나섰던 것은 완전히 옳았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이 상당했던데다 철옹성 같던 박근혜가 휘청대는 것을 보면서, 노조 집행부도 11월 중순 경까지는 이런 기조를 유지하며 파업을 이끌었다.

그런데 퇴진 운동이 1백만 시위로 나아가며 고양되자, 역설적으로 노조 집행부는 민주당 등 야당과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일방적 성과연봉제 추진 과정은 비판했지만, 애초부터 성과연봉제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또, 철도 파업 등 노동자 파업이 지속·확대돼 박근혜 퇴진 운동의 계급적 성격이 강화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정부에 노조와의 대화 채널 개설을 요구하는 동시에 파업 종료를 종용했다.

11월 12일 노동자대회와 민중총궐기가 1백만 시위로 발전한 직후, 민주당은 ‘내년 2월까지 성과연봉제 시행을 유보하고 국회에서 재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정부·여당에 제안했다. 물론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철회 요구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와중에도 경제 위기 고통전가, 즉 노동개악 강행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국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 추진은 불발됐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민주당의 중재 시도가 실패하자 이번에는 야3당이 파업 종료를 종용하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철도노조가 일단 파업을 접고 이후 ‘국정 정상화’가 되면 성과연봉제 문제를 우선 사항으로 다루겠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빈손 복귀 강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제안에 정의당까지 동참해 노동자들의 심정이 착잡했을 것이다. 철도 파업을 적극 지지했던 정의당이 부르주아 야당들과 한목소리로 파업 종료를 종용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정의당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김영훈 집행부는 야당들의 파업 종료 제안을 수용하려 했다. 국회 중재가 불발돼 더는 파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 문제를 논의하려던 확대쟁대위 회의장에 현장 노동자 1백50여 명이 몰려가 집행부의 파업 종료 시도를 좌절시켰다. 오랜만에 본 현장 노동자들의 놀라운 투지였다.

노동개악 폐기를 위한 효과적 대응

그런데도 김영훈 집행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차례나 더 파업 종료를 시도했다. 전국에서 2백32만 명이 퇴진 운동에 참가하면서 박근혜가 범죄 피의자로 입건되고 국회에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상황에서, 노조 집행부는 파업을 끝내고자 했다.

노동자들 수백 명이 달려가 집행부에 항의했지만, 세 번째 파업 종료 시도까지 막아 내지는 못했다. 집행부가 비민주적으로 언론을 통해 ‘파업 종료’를 기정사실화한데다, 집행부를 대체할 리더십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도부가 투쟁을 지속하고자 했다면 노동자들의 선택은 달랐을 것이다. 한 노동자는 “우리는 복귀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원장님이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굳건합니다” 하고 말했다.

즉, 퇴진 운동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파업 지속(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승리의 길이라고 봤다면, 김영훈 집행부는 현 정세를 이용해 야당과의 공조를 통한 해결책(위로부터의 개혁)을 찾았다. 요구를 성취할 수단을 달리 본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소추안 의결 이틀 전에 김영훈 위원장은 파업 종료를 선언했다. 투쟁을 더 밀어붙였다면, 더 유리한 위치에서 사측을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행부는 “미래 권력”을 믿고 퇴각을 결정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정당한 의심을 갖고 있듯이, 박근혜 탄핵 이후 ‘국정이 정상화’된다고 해도 부르주아 야당이 성과연봉제 같은 사용자들의 숙원을 반대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유리한 정세를 이용해 노동자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한편, 철도 노동자들이 74일이나 싸웠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성과연봉제 문제에서 한 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만큼 정부와 지배자들에게는 노동개악 관철이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김영훈 집행부가 마지막까지 고수한 “합법”적 투쟁 수단은 박근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꺾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파업이 70일을 넘기고도 파업의 이윤 타격 효과는 미미했다.

필수유지업무제도가 도입된 뒤로도 정부는 철도 파업을 단 한 번도 합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을 통한 사회적 합의 기구 구성, 법률 대응 등을 고려했을 때, 철도노조 집행부는 불법을 감수하며 필수유지업무제도에 도전하는 것은 이롭지 않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철도 최장기 파업에 대해 필수유지업무제도로 파업권이 극도로 무력화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다시금 제기되는 것을 봐야 한다.

따라서 필수유지업무제도를 “창조적으로 활용”해 사회적 비난을 줄이고 파업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이른바 “필공제도 역설” 운운하는 일각의 평가는 엉뚱하다.

현장 노동자들의 투지와 활동가들의 과제

이번 파업에서 철도 노동자들이 보여 준 투지는 매우 놀라웠다.

노동자들은 월급도 못 받으면서 지부마다 투쟁 기금을 모으고 사정이 어려운 동료들에게 제공해 줄 기금도 만들어 운영하며 버텼다. 필공 근무자들도 근무를 다 하고도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파업 동료들을 응원하며 자신들의 임금을 나눠 가졌다.

특히 파업 두 달을 넘기고도 파업 종료를 추진하는 위원장에 맞서 두 번이나 저항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일부 지부장들은 이런 항의를 주도했다. 이럴 때 기층에서 투쟁을 지속하자고 꾸준히 선동하며 실제 그런 운동을 건설할 영향력 있는 좌파적 구심이 있었더라면 대안적 투쟁 리더십 구축에 보탬이 됐을 것이다.

비록 성과연봉제 저지라는 요구는 쟁취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복귀하기 때문에 당장은 사측의 보복에 맞서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파업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부정확하다. 철도 노동자들은 2013년의 패배를 극복하고 3년 만에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지도부의 파업 종료 시도를 연거푸 저지한 것에서 보듯이, 노동자들은 3년 전보다 자신감과 사기가 더 올라갔음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사측이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거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만만찮은 현장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재개될 수 있는 투쟁을 효과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이번 파업의 교훈을 잘 이끌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