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쿠데타 미수 후폭풍의 전망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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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가디언〉 지는 한국의 두 얼굴에 대해 보도했다. K-Pop과 한류만 있는 줄 알았더니 독재자들도 있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만 두 얼굴이 아니다. (관련 기사: 본지 529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군사 쿠데타는 과거지사가 아니다) 미국도 바로 몇 년 전에 극우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친트럼프 폭동을 일으켰다. 트럼프 재집권 시기에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꽤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는 파리도 바르니에 내각이 붕괴되면서 생긴 공백을 마크롱이 모종의 권위주의적 수단을 동원해 메우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 되면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을 고무해 그들은 세력을 더욱 확장하게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파리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낭만적인 탱고 음악만이 아니라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가 윤석열의 실책에서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 두 얼굴의 도시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당(PO)의 대표는 이 사실을 본지에 전하며 건투를 빈다고 격려했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다는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양극화’라는 낱말을 선정했다. 사회의 양극화, 즉 빈부격차 심화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므로 메리엄웹스터는 특별히 정치의 양극화를 말한 것이다. 사실 사회 양극화는 정치 양극화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세계 모든 곳에서 정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다. 그중 극우가 날뛰고 있다. 중도좌와 중도우가 몰락하고 남긴 공백을 급진 좌파가 메우지 못하자 극우가 메우고 있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재집권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윤석열의 섣부른 쿠데타 기도도 이런 국제적 맥락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윤석열은 대선에서 당선되자마자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건물로 옮겼는데, 그때 본지는 윤석열이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 같은 일을 겪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그 같은 대규모 반대에 부딪히면 군사 쿠데타로 맞설 거라는 예측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1월 주말마다 열린 10만 명 안팎 규모 시위들에 직면해서 그렇게 섣부르게 일을 저지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어설프고 어리석은 시도였다. 극우 유튜브나 시청하더니 총선 부정의 증거를 찾겠답시고 암살 전문 특수부대 HID를 선관위로 보내는 등 윤석열은 실로 황당무계한 짓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윤석열의 섣부른 쿠데타 기도도 많은 사람들이 득달같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 막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들 윤석열의 제2 계엄 선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 윤석열과 쿠데타 일당이 수사받고 처벌받을 것 같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하고 있다.
이런 대중 의식의 모순은 현실의 모순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 우파들은 윤석열이 탄핵될 경우에 대비해 ‘포스트 윤석열’ 전환 과정을 관리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윤석열’을 단순히 불연속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우파 내에는 윤석열의 친위대격인 군 지휘관들과 국가 관료들이 여전히 강력하게 포진하고 있다. 그들이 윤석열을 지키기 위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윤석열을 자리에서 쫓아내는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윤석열 축출은 탄핵을 통할 수도 있고, 하야를 통할 수도 있다. 후자가 친민주주의 운동 측에 유리하다. 탄핵 후 헌법재판소의 인정으로 가는 과정에는 국지적 전쟁이나 친위 쿠데타의 위험 등 복병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야, 그것도 즉시 하야를 선호한다. 그래서 본지는 헤드라인으로 “쿠데타 미수범 윤석열은 즉시 물러나라!”를 내놓았다.
하지만 본지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풀리지 않을 수 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그랬다. 그러므로 탄핵을 너무 강하게 비판해 마치 반대하기라도 하는 양하게 보이면 종파주의자들로 보이게 된다. 종파주의는 대중 운동과 스스로 차별화되는 것을 강조해 스스로를 있으나 마나 한 조직으로 만드는 미련한 태도다.
탄핵을 통한 것이든 하야를 통한 것이든 정말 중요한 것은 투쟁의 원동력이다. 지금의 투쟁을 두고 사회주의 정치의 전통적인 용어로는 민주주의적 투쟁이라고 한다. 그런데 20세기 초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와 폴란드계 독일인 마르크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주주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상을 지금 현실에 적용해 보자.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고, 일터에서도 사용자와 싸우는 게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처음에 윤석열 쿠데타와 맞닥뜨렸을 때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한 것은 옳았다. 그런데 계엄이 금세 해제되는 바람에 철도 노동자들만이 파업을 했다. 그런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를 중재하겠다고 한 것은 투쟁의 진정한 동력을 강화하는 길이 아니었다.
민주노총과 진보당은 공공연한 친자본주의 야당 민주당이 하는 이런 일을 동맹 관계 때문에 비판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조합이 무한정 투쟁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교섭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노동자들도 파업하도록 하는 것이 현 정국에서 중요한 일이다. 철도 노동자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전체 노동계급을 생각해야 한다. 윤석열을 완전히 격퇴하지 못하면 그나 그의 동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철도 노동자 한 부분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전 노동계급을 생각해야 한다. 윤석열 일당은 애초에 민주당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노동운동과 좌파를 분쇄하기 위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윤석열 자신의 재쿠데타든 다른 누구에 의한 친위 쿠데타든 아니면 경찰국가의 부상이든 적들은 반격을 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그러한 반동을 막기 위해 노동자 투쟁은 고양돼야지, 통제돼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너무 나서면 망친다, 역풍이 분다”는 소심한 주장이 모든 정치적 투쟁의 결정적 고비마다 제기된다. 그러나 극우들은 다음번에는 섣부르고 어설픈 일이 되지 않도록 애쓸 것이다.
노동자 투쟁을 확산시키고 지속시키는 과제에서 소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좌파적 또는 급진적 학생들이 노동자 투쟁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학생들이 혁명적 조직을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다. 본지 지지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시위 현장으로 불러내어 서로 만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인데, 본지 자체도 그런 기능을 한다.
‘포스트 윤석열’ 전환 과정에는 우파의 내분과 혼란과 모순들이 첨예하게 불거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측에서도 민주연합 노선과 계급투쟁 노선이 충돌할 수 있다. 진보당과 민주노총은 두 노선 사이에서 동요할 것이다. 북한과 한반도 상황을 둘러싼 태도도 첨예한 갈등 쟁점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군사 쿠데타 이전의 정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겠지만 군부도, 경찰도, 안보 기구도, 국힘당도 다 마찬가지이다. 앞으로의 한 시기는 위태로우면서도 (위기는 또한 기회이므로) 희망을 키울 수도 있는 한 시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