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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극우 팔레스타인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왜 극우는 트랜스젠더 혐오를 이용하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대표다.

요즘 많은 거짓말을 들었지만 그중 가장 기막힌 거짓말은 최근 영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노동당 정부의 논평이다. ‘여성’과 ‘성’의 법률상 정의를 생물학적 차이로 한정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명확성과 자신감”을 높여 줄 것이라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권리를 방어하라!” 국제적으로 젠더는 극우에 맞서는 중요한 전장이 됐다 ⓒ출처 Guy Smallman

오히려 그 판결은 트랜스젠더들을 불확실성과 공포의 소용돌이로 내던졌다. 그 판결이 2010년 평등법[차별금지법] 해석에 관한 것일 뿐이라는 협소한 법리적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 그 판결로 기세등등해진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예컨대 평등·인권위원회의 가증스러운 의장 포크너)은 그 판결을 기회 삼아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여성들의 공간에서 몰아내려 한다.

포크너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제3의 공간”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면 된다고 말하지만 무책임한 소리다. 트랜스젠더 권리라는 근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와 [재무장관] 레이철 리브스가 또 긴축 재정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지금, 그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그리 쉬울까.

일부 좌파가 이번 판결을 환영한 것은 여성 차별 문제를 늘 생물학적 차이로 환원해 온 급진 페미니스트들에게 수치스럽게 굴복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기초는 역사 유물론이다. 역사 유물론은 인간의 변화하는 생물학적 기초를 조금치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더 큰 역사적 과정 속에 통합시키고, 그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인간들이 사회를 형성해 가면서도 사회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트랜스젠더 해방을 지지하는 것은 “정체성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영국의 트랜스젠더들을 향한 공격은 극우가 펼치는 세계적 공세의 일부다. 판결 직후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한 법적 공격이 대서양 양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주 헝가리 의회는 성소수자들의 공개 행사를 금지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 체육 선수들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메인주를 고발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DEI) 정책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공격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첫째, 인종차별로, 정부 웹사이트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선주민의 공로를 일절 언급하지 않게 한 것이 그 사례다. 둘째, 트랜스젠더들이 사회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강박적 노력이다.

얼핏 불합리한 과잉 대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극우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상대로 공세를 펴는 것은 이성애를 규범으로 하는 전통적 가족을 복원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남성과 생물학적 여성, 그리고 그들이 낳은 자녀들로 이뤄진 가족 모델이다. 대법원 판결도 정확히 이를 전제로 깔고 있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이 점을 잘 요약했다.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상적인 가부장 질서의 회복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생물학으로 성별화된 정체성이 불변하고, 여성이 ‘날 때부터 여성인 존재’로 규정되어, 가정 안의 자연스럽고 ‘도덕적인’ 지위로 돌아가고,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이 도전받지 않는 그런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다.” 흔히 지적되듯이 “젠더 반대론자들이 복원시키려는 과거는 몽상이자 희망 사항, 심지어 환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덜 위험한 것은 아니다.

두 폴란드 페미니스트인 아그니에슈카 그라프, 엘주비에타 코롤추크의 탁월한 연구는 “젠더 반대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극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그들의 책이 2022년에 출간된 이래 극우는 훨씬 강력해졌다. 트럼프는 백악관으로 복귀해서 훨씬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철저히 반동적인 정부를 이끌고 있다. 파시스트 지도자 조르자 멜로니는 이탈리아 총리가 됐다. 아르헨티나의 자유지상주의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는 트랜스젠더들을 향한 악독한 공격을 시작했다. 카스 무데 같은 정치학자들이 “극우의 주류화”라고 부른 과정에는 중도 세력이 트랜스젠더 배척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된다. 스타머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 것은 그 최신 사례일 뿐이다.

그라프와 코롤추크가 옳게 단언했듯이, “젠더 문제는 현실 정치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한 쟁점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정치의 핵심 문제인데, 구체적 정책 쟁점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상징적 투쟁의 중심 고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사람들의 삶과 몸에 혹독한 물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혁명적 좌파라면 투쟁에 응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해방을 위한 투쟁은 우리의 투쟁이다. 차별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투쟁이자, 반동적 악몽을 사회에 강요하려는 괴물들을 물리치기 위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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