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증강하는 이재명 정부:
군비가 아니라 복지를 늘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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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정부 예산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국방비 증액이다. 이재명 정부는 ‘한미동맹 현대화’와 군비 증강 기조 속에 내년 국방비를 올해보다 8.2퍼센트 증액한다. 2019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이재명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자주 국방’을 명분으로 군비 증강을 정당화한다. “북한 연간 GDP의 1.4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사용하고, 전 세계 5위의 군사력으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이 국방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다.]”
그러나 군비 증강은 끝없는 군비 경쟁과 동아시아의 긴장 고조로 이어질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군비 증강은 오늘날 점점 격화되고 있는 세계적 군비 경쟁의 일부다. 미중 경쟁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서 전 세계 군비 지출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24년 세계 군비 지출은 그 전해보다 9.4퍼센트 증가한 2조 7,180억 달러(3,916조 6,000억 원)로 냉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IMF 공황의 여파로 전반적 긴축을 시행했던 1999년을 제외하면, 한국의 국방 예산은 한 번도 삭감된 적이 없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도 군비 증강에 매진했다. 〈조선일보〉 주필 양상훈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 방위산업 기술 국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탄도미사일 국가가 된 것은 해방 후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없는 살림, 빠듯한 재정에도 막대한 군비를 쓰며 군사력을 강화해 온 덕분이다. ⋯ 만약 민주당 대통령들이 군사력 강화에 제동을 걸었다면 지금의 우리 군사력과 막강한 미사일 전력, 원잠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하는 대가로 한국의 국력과 위상을 강화하고자 한다. 핵잠수함 도입과 ‘한미동맹 현대화’의 일환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는 것도 그런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세계를 점점 더 위험한 화약고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이재명 정부의 군비 증강을 반대해야 한다.
‘자주 국방’?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군비 증강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을 하지 않는 경향이 좌파 일각에 있다.
정의당은 핵잠수함 도입과 국방비 증액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사실 정의당 지도부는 원내 정당 시절에도 군비 증강을 일관되게 반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군비 증강을 비판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군비 증강에 대해서는 국방비의 용처에 관해 비판했을 뿐 군비 증강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정의당보다 좌파적인 노동당도 이재명 정부의 군비 증강에 관해 별로 말이 없다.
반면, 진보당은 이재명 정부가 ‘한미동맹 현대화’에 협력하며 군비를 증강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경주 APEC 이후로 이재명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원내 유일 좌파 정당으로서 진보당이 이재명 정부의 친제국주의와 군비 증강을 비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진보당은 이재명 정부의 군비 증강이 ‘대미 종속’이고 진정한 자주 국방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에게 “국익,” “한국의 안보”를 제대로 지키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자는 민족주의 정치로는 이재명 정부의 군사주의를 일관되게 반대하기 어렵다. ‘진정한’ 자주 국방을 하라는 요구는 치열해지는 군비 경쟁 속에서 불가피하게 방위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 앞에 무력해진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가 중간 규모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국익,” 즉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한다. 독일, 영국, 일본 등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도 트럼프의 압박을 받지만 나름의 이해득실을 따지며 대대적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진보당이 선거와 국회 활동을 점점 중시할수록,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 ‘진보’ 정부의 군사력 강화 노력에 타협해야 한다는 유혹과 압력이 점점 커질 것이다.
한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군비 경쟁을 반대하면서 군축을 주장한다. 전쟁 무기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붓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군축 요구는 결국 각국 지배자들에게 지속적 군축을 호소하는 공상적 방향으로 나아간다. 서로 경쟁적으로 군비 증강을 하는 국가들이 협정을 통해 지속적인 상호 군축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공상이다. 마치 시장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에게 자본 축적을 덜 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설령 군축 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군비 경쟁을 추동하는 자본주의 국가 간 경쟁 시스템은 이를 머지않아 휴지 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 보유국들이 숱한 핵 군축 협정을 맺었지만 양국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핵 경쟁은 다시 심화되고 있다.
1916년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평화주의자들의 군축 요구의 선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투쟁은 공상적 개혁 방향으로 이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주요국 정부들이 미친 듯한 군비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군축 요구는 더한층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올해 대선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군비 축소로 평화 구축을 추동하는 정책적 전환”을 주문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은 대부분 국방력 강화를 공약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은 심지어 핵잠수함을 도입하고 ‘K-방산’ 지원을 강조하며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선거 운동 기간에 권영국 당시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만이 “K-국방 확대를 통한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다른 후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평화와 군축의 방향”을 말했다. 하지만 정작 지금은 군비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지 않고 있다.
군비 증강을 멈추려면 그것의 뿌리인 제국주의 경쟁 체제와 자본주의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자국 정부의 군비 증강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그것에 맞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런 필요에 비춰 봤을 때 11월 8일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진보당은 (국회에서뿐 아니라 노동자 집회에서도) 핵잠수함 도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어야 했다.
제국주의와 군사주의 반대를 노동계급의 당면한 필요와 연결시키는 주장과 활동을 해야 한다. 국제 반전 운동 역사에서 자주 등장해 온 “군비가 아니라 복지를(Welfare Not Warfare)” 구호가 지금 한국에서도 필요하다.
2026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복지 예산이 올해보다 늘지만, 대부분 자연 증가분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그대로 유지되거나 삭감되는 분야도 있다.
장기 불황과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지난 수년간 노동자 등 서민층의 생계비 고통이 커져 왔다. 양질의 주거, 일자리, 임금, 의료, 돌봄, 교육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핵잠수함이나 ‘K-방산’ 지원에 쓸 돈을 노동자 등 서민층의 생계비 고통 해결과 복지에 쓰라고 요구해야 한다.
무기와 전쟁 없는 자본주의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체제이자,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다.
자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끊임없이 이윤의 일부를 재투자한다. 그리고 경쟁 과정에서 강한 자본이 약한 자본을 집어삼킨다.
이를 마르크스주의 용어로 자본의 축적이라고 부른다.
자본의 축적이 심화되면 소수의 대기업들에 경제력이 집중된다. 기업들이 거대해질수록 한 나라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갈수록 대기업들의 이해관계는 국가의 이해관계와 통합된다.
경쟁에서 승리해 덩치가 커진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진출한다. 이때 자본주의 국가는 ‘국익’을 위해 자기 나라 기업들을 정치적·군사적으로 지원한다. 미국 대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데서 세계 곳곳에 있는 미군기지와 항공모함 전단의 엄호를 받는다.
러시아 혁명가 부하린(1888-1938)은 이렇게 지적했다. “자본주의 국가들간 투쟁이 군사력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이유는 군사력이야말로 서로 투쟁하는 ‘국민적’ 자본가 집단들의 최후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청난 국가 예산이 군국주의화의 완곡적 표현인 ‘국방’에 사용된다.
“경제적 충돌의 불가피성이야말로 무기의 존재 조건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 충돌이 이례적으로 격렬해진 우리 시대에 미친 듯한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군비 경쟁과 전쟁을 군산복합체(군부, 방위산업체, 보수 정치인, 보수 언론 등) 탓으로 축소해서 보는 것은 오류다. 특히 “죽음의 상인들”이 파렴치한 자들인 것은 맞지만, 군비 경쟁과 전쟁을 낳는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 강대국 간 경쟁 시스템에 있다.
그들 간 군비 경쟁에서 노동계급이 얻을 이익은 없다. 군비 경쟁은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자국 정부가 도입하는 첨단 무기는 다른 나라 노동계급을 죽이는 데 쓰인다.
따라서 좌파들은 자국 정부의 군사력 강화 노력을 반대해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역설했듯, “저들이 외국의 우리 형제들에게 맞서 우리가 살인 무기를 들기 바란다면, ‘아니, 우리는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