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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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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역학 변화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세계 제국주의 질서의 위기를 크게 악화시켰다. 트럼프의 정책에 관한 많은 논평들은 그의 개성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트럼프가 주의력 결핍으로 악명 높은 부패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적 양아치라는 사실은 사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이 트럼프의 별난 성미 때문이라고 축소하는 것은 어리석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위기의 결과다. 그리고 트럼프는 전임자들과 똑같은 문제, 똑같은 딜레마에 대처하고 있다.

레닌, 룩셈부르크, 제3인터내셔널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현대 제국주의는 자본 축적 과정의 결과로, 기업들의 경제적 경쟁과 국가들의 지정학적 경쟁이 맞물려서 나타나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서로 대립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인류를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상호 경쟁 시스템이다. 20세기 전반부에 그 각축전은 무시무시한 양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를 낳았다.

가속되는 쇠락

1945년에 그 시기가 끝나면서 패권을 잡은 자본주의 강대국은 미국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패권은 눈에 띄게 위기가 심각해졌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겪은 패배와 2007~2009년의 세계 금융 위기는 그 위기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미국은 “대등한 경쟁자” 중국의 부상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 갈수록 대등한 경쟁 상대가 되고 있는 중국의 도전은 경제와 군사 영역 모두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우위를 점하고 실리콘밸리가 독주하고 있던 첨단 기술 부문으로도 진입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특히 태평양에서 그 도전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중국은 대만을 자신의 지배하로 탈환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 결과 20세기 전반부 영국과 독일의 적대를 연상케 하는 제국주의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갈등이 낳은 긴장 속에서,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낡은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균열이 가고 있다. 서방의 믿음직한 국제기구 구실을 해 온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가자 전쟁과 관련해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정을 내린 것은 그러한 균열에서 비롯한 이데올로기 위기를 보여 준다.

자유주의적 질서의 균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미국 제국주의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펼쳤던 고전적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그 질서에 활력을 다시 불어넣으려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서방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을 러시아·중국에 맞서 결집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바이든의 노력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와 같은 핵심 동맹국들이 그 노력에 호응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가자 인종학살을 지지한 것도 그가 구출하려 한 낡은 국제 질서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한편, 바이든은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 중국의 경제 성장을 차단하려고 시작된 정책을 지속했다.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 1기 정부 둘 다 제재와 수출 금지를 수단으로 삼는 “강압적 외교”를 폈고,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에 차질을 일으켰다. 또, 바이든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기구의 최종심 판사 임명을 가로막는 트럼프의 정책을 지속하며 WTO를 마비시켰다. WTO는 신자유주의의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에 자유무역을 증진시키려고 미국 자신이 적극 힘을 실어 줬던 국제기구였는데도 말이다.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

트럼프 2기 정부는 1945년 이래 미국 대외 정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해 온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와 뚜렷하게 단절했다. 여기에는 국내적 차원이 있다. 트럼프와 그의 “총리”로 불리는 백악관 부비서실장 스티븐 밀러는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려 해 왔고, 그 노력은 삼권의 나머지 부문인 의회와 대법원의 큰 도움을 받아 왔다. 그 노력의 중심축 하나는 군대를 미국 국내에 투입하는 것이다.(아직 이것은 주로 주방위군에 한정돼 있다.) 이를 통해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자 단속을 지원하고 민주당이 운영하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저항을 굴복시키려 한다.

한 논평가가 지적하듯이, “이것은 ‘전쟁이 안방까지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와 꼭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1945년 이후 발전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거대한 국가 안보 기구를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킬 권한—이 이제는 미국 시민들을 상대로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과 쌍을 이루는 대외 정책으로서, 트럼프는 미국의 경쟁국뿐 아니라 전통적 우방을 상대로도 훨씬 대놓고 포식성의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대체로 미국 공화당의 전통적인 레이건식 경제 정책(감세, 복지 삭감, 규제 완화 등)의 연속이지만, 신자유주의와 급격히 단절한 측면도 있다. 바로 관세다. 많은 논자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미국의 무역 수지와 물가상승률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트럼프는 관세를 그가 싫어하는 정책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도 이용하고 있다. 인도가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한다든지,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가 쿠데타 기도 혐의로 기소된 것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관세를 이용한 것이 그런 사례다.

관세는 동맹을 재편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트럼프의 경제자문위원장 스티븐 미런에 따르면

우방국들은 안보 우산과 경제 우산 하에 있을 테지만, 고통 분담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그 고통 분담 정도에 따라 우방국들은 무역이나 환율 문제에서 우대받을 것이다. 안보 우산 바깥에 있는 나라들은 국제 무역과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우호적 합의에서 배제될 수 있다. 그 나라들에는 관세 등의 정책을 통해 더 공세적으로 비용이 부과될 것이다.

향후 맺게 될 관세 협상들도 포식할 기회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모두 미국에 상당한 투자를 결국 약속했고 트럼프가 그 투자처를 결정하기로 했다. 유럽연합과 일본이 이러한 합의를 한 것은 거대한 미국 시장에 접근해야 할 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 머무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편, 영국과 유럽연합은 트럼프를 나토에 계속 관여시키기 위해 나토 국가들이 국민소득의 3~5퍼센트 수준으로 군비 지출을 늘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무장 노력이 그저 트럼프를 달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유럽 안보에서 손을 떼는 상황에 만만찮게 대비하려는 것인지는 완전히 불분명하다.

유럽 재무장 노력의 그리 멀지 않은 배경에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래 격렬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바이든은 그 침공을 기회로 러시아를 상대로 대리전을 벌여 러시아를 고립·약화시키고 중국을 곤란하게 만들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완전히 실패했고, 러시아는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군을 슬슬 밀어내고 있다. 트럼프는 그 전쟁을 맹비난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트럼프가 원하는 바를 들어 주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단지 트럼프를 농락하는 푸틴의 솜씨 덕분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국무부 장관 마코 루비오는 “역(逆) 닉슨 전략”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다시 말해, 냉전 후반에 리처드 닉슨(1969~1974년 재임)이 1972년부터 마오의 중국을 소련에 맞서는 동맹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듯이 이번에는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중대 쟁점은 미중 관계일 것이다. ⋯ 러시아가 중국의 상시적 하위 파트너가 된다면 이것은 두 핵무장 강대국이 미국에 맞서 공조하게 된다는 뜻이다 ⋯ 그것은 러시아에게 이로운 결과가 아니고, 미국에도 이로운 결과가 아니며, 유럽이나 세계에도 이로운 결과가 아니다.

이러한 책략은 버락 오바마(2009~2017년 재임)가 지향한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바마는 유럽과 중동에 대한 관여를 줄이고 중국의 도전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트럼프가 겨냥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의 에드워드 루스는 이렇게 썼다. “가장 흔하게 간과되는 도널드 트럼프의 특징은 중국에 맞선 전투 본능의 부재다. 이 점에서 트럼프는 미국 권력 기관들은 물론, 자신의 행정부 내에서도 소수파에 속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엄선해서 지명한 합동참모본부 의장 댄 케인은 새 국가안보전략(이하 “NDS”)에 반대하고 있다. “전쟁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의 감독하에 작성되고 있는 새 NDS에 따르면 “국방부는 본토 위협으로 여겨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중국과의 경쟁은 범위를 좁히고,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역할을 줄일”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가 안보 핵심부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한” 케인은 중국을 억제하고 필요시 충돌을 통해 꺾을 수 있도록 대비하는 과제에 NDS가 계속해서 초점을 맞추도록 애쓰고 있다.

미국 본토와 그 일대로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트럼프가 딱히 유순한 것은 아니다. 9월 30일 트럼프는 버지니아주 콴티코로 약 800명의 장성들을 소집해 그들에게 “내부로부터의 전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국토 방위가 군대의 최우선 임무라는 근본 원칙을 재확립했다. 근래 몇십 년 전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치인들은 우리의 임무가 케냐나 소말리아 같은 변방의 치안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게 됐다. 미국이 내부로부터 침공당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다. ⋯ 그 위험한 도시들의 일부를 우리 군대, 즉 주방위군의 훈련장으로 삼아야 한다.

트럼프가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장악하려 하는 것도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확고히 한다는 목표와 부합한다.(그런데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는 중국과의 세계적 자원 경쟁에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또,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어마어마하게 키웠다.) 아르헨티나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를 지원하고(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군사적 압박과 중앙정보국(CIA)이 관리하는 더러운 책략들을 조합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도 그러한 목표에 부합한다. 한 미국 기업인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서 원하는 것은 석유와 광물, 금”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이래 카리브해에는 약 1만 명의 미군 병력과 8척의 군함, 1개 항모 전단, 공격용 고속 핵 추진 잠수함, B-52 폭격기, F-35 전투기가 배치됐다. 마두로는 차베스가 주도한 ‘볼리바르식 혁명’의 가장 급진적 표현들을 저버린,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의 교사 아래 마두로 정권이 타도된다면 남북 아메리카에서 해방을 위한 투쟁을 후퇴시킬 것이다.

중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

트럼프의 종합적인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트럼프는 전임자인 오바마와 바이든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오바마와 바이든 모두 유럽과 중동에서 빠져나와 중국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세계적 패권국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주요 지역에서 힘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주의력과 자원을 소진시킨다. 트럼프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빠져나오려는 지역들에 도로 빨려 들어갔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중동이다. 2023년 10월 7일 이래 이스라엘은 극단적 폭력을 자행하는 정책으로 모든 저항을 분쇄하고 자국 안보에 대한 외관상의 위협이든 실제 위협이든 모조리 제거하려 했다. 2024년 9월 베냐민 네타냐후는 그 정책을 중동 일대로 확대해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운동인 헤즈볼라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공격을 감행했다.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가자 인종학살과 중동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지원하는 바이든의 정책을 지속했다. 퀸시 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2023년 10월부터 2025년 9월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에 313억 5,000만 달러에서 337억 7,000만 달러에 이르는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이러한 지원은 서방 제국주의가 중동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서 이스라엘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반영한다.(특히, 유럽에게 중동 에너지 확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더 중요해졌다.) 또한 이스라엘이 첨단 군사·감시 기술 생산을 담당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중국이 걸프산 에너지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결과, 중동 상황은 아류제국주의 지역 강국들이 저마다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투는 훨씬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

트럼프 1기와 2기 정부는 모두 걸프 연안국 지배자들의 환심을 사는 것을 우선순위에 놓았다.(트럼프 일가는 그 지배자들과 갈수록 깊어 가는 오랜 사업적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걸프 연안국 지배자들은 중국 정부의 중재하에 오랜 숙적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과 관계를 개선하게 됐다. 이것이 트럼프가 이란 정권과의 새 핵 협정을 모색한 배경이다.(지난 임기 때 트럼프는 네타냐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로비에 따라, 오바마 정권 시절에 체결된 이란 핵 협정을 파기했었다.) 이번에 걸프 연안국 지배자들은 미국과 이란이 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네타냐후는 이를 어그러뜨리려고 6월 17일 이란의 군사 지도자들, 방공 시설, 핵 시설을 기습 공격했다. 지난 미국 정부들이 중동에서 벌인 “끝없는 전쟁”을 맹비난했던 트럼프는 이스라엘에 호응해 핵 시설 제거를 목표로 벙커버스터 폭탄과 순항 미사일을 이란에 쏟아부었다. 그 공격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그것과 상관없이 트럼프는, 네타냐후가 이란 정권 교체를 운운하고 1979년 이란 혁명 때 타도된 샤[이란 국왕—역자]의 한심한 아들을 예비 통치자로 내세우고 있던 것을 중단시키고 네타냐후에게 이란과의 교전을 끝내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정말로 선을 넘은 사건은 9월 9일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기습 폭격한 것이었다. 네타냐후는 당시 가자 휴전 협상에 관해 논의하러 모인 하마스 정치 지도자들을 살해하려 했다.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트럼프의 인내심을 넘어서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카타르는 거대한 미군 기지를 들인 미국의 가까운 우방국일 뿐 아니라 미국·이스라엘과 그들의 적성국 사이에서 핵심 중재자 구실을 해 왔고, 얼마 전 호화 전용기를 선물해 트럼프의 환심을 산 일이 있었다.

군사 역사가 로런스 프리드먼이 지적했듯이,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카타르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고 카타르를 선택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명에 따라 즉시 카타르 총리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고, 트럼프가 아랍 내 미국의 핵심 위성국들(걸프 연안국뿐 아니라 이집트와 요르단을 포함하는)과 작성한 “평화 구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구상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서안지구를 이스라엘에 병합한다는 이스라엘 극우의 강령을 거부하고, 가자지구를 미국을 따르는 국제기구의 통제하에 두기로 하고, 심지어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는 아이디어에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10월 7일 이래 “이스라엘은 가장 위험한 적들을 군사적으로 효과적으로 패배시켰지만 자신의 힘과 영향력도 용케 축소시켰다.”

물론 그 “평화 구상”은 허점투성이이고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그 허점들을 두고 논쟁과 전투를 계속 벌일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절반 이상을 계속 장악하고 있고, 그 장악력을 이용해 가자 주민들을 지치게 하고 가자에서 아예 내쫓으려 할 것이다. 가자지구를 “중동의 리비에라”(초호화 휴양지)로 만들어 자본들, 더 구체적으로는 트럼프 일가의 먹잇감으로 삼겠다는 꿈도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휴전 합의는 세력 관계의 연속성과 변화 모두를 보여 준다.

연속성은, 미국 제국주의가 여전히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네타냐후에게는 트럼프의 “평화 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변화는, 걸프 연안의 자본주의가 부상한 결과, 배신적이고 부패하고 비겁한 아랍 지배계급들이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들을 이스라엘과 함께 결집시키려 한다. 미 국방부에서 대(大)중동을 담당하는 중부사령부는 지난 3년 동안 이스라엘, 바레인, 이집트, 요르단,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를 포괄하는 “역내 안보 구조”를 구축하려고 애써 왔다. 이 국가들 사이의 증대되는 군사 협력은 “평화 구상”의 실행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긴장은, 특히 중동 내 중국의 영향력 증대라는 변수 때문에 미국의 관리 능력을 벗어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수렁에 빠지다

트럼프는 또한 우크라이나에서도 빠져나오지 못해 그 좌절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휴전은 가자 휴전보다 훨씬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푸틴은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데, 군사적 압력과 트럼프에 대한 개별적인 영향력을 이용해 돈바스 전체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어쩔 수 없이 맡고 있지만 혼자서 러시아와 대결할 군사적 능력은 없다. 미국과 유럽이 제재를 강화하면 푸틴이 협상장에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서방 내에서 러시아를 억제할 능력이 있고, 따라서 러시아 정부로부터 휴전 합의를 받아 낼 수 있는 강대국은 미국뿐이다. 트럼프가 지금까지 합의를 이뤄 내지 못했다고 해서 이런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주요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나름대로 제국주의 강대국이다. 영국이 미국과 함께 이스라엘의 전쟁을 유지시키는 데서 하는 구실이나, 유럽연합이 지중해 너머 아프리카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영국·프랑스·독일 모두 경제 침체에 빠져 있고, 유럽연합과 나토가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데서 무능을 드러내는 가운데, 유럽은 갈수록 화력이 달리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그렇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경제적 경쟁에서도 그렇다. 미국이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의 모회사인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을 계기로 네덜란드 정부가 넥스페리아의 경영권을 장악하자, 이에 반발한 중국은 유럽 자동차 산업에 쓰이는 전자 부품의 40퍼센트를 공급하는 수출을 중단했다. 이는 유럽이 미국의 압력에 순응하다가 십자 포화에 휩싸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중국의 전진과 미·중 경쟁

설사 트럼프가 정말로 중국과의 군사적 대결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트럼프는 중국을 경제 전쟁의 핵심 표적으로 삼아 왔다. 웃음거리가 된 트럼프의 “해방의 날”(4월 2일) 발표 이래 잇따른 맞대응으로 급속히 격화되던 관세 전쟁에서 미·중 양측은 일단 물러섰다. 중국 지배계급은 여전히 자신의 과잉 축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가 매우 높은 수준의 투자에 맞춰 편제된 것에서 비롯한 문제다. 그러나 그러한 투자는, 중앙 정부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는 지방 정부들이 촉진한 격렬한 기업간 경쟁과 결합돼 첨단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그 발전은 전기차 등 이른바 ‘녹색 전환’에 중요한 산업들에서 두드러졌다.

이는 세계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은 이제 중국 전기차 기업 BYD의 최대 해외 시장이다. 중국의 기술 발전은 힘의 원천인 동시에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기존 산업들을 위협한다. 트럼프의 해법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의존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하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국이 서방의 산업과 군사력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벌어진 다툼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의 60~70퍼센트를 채굴하고 세계 희토류 가공·정제 공정의 90퍼센트 정도를 통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유무역 지상주의 잡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한탄했다. “중국이 무역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 중국은 미국만큼 효과적으로 보복하고 판을 키우는 법을 배웠다. 중국은 자국 영토 바깥에 적용될 나름의 무역 규칙을 실험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세계경제의 경로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지경학적’ 경쟁은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제기하는 지정학적 도전과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 도전은 부분적으로 군사적이다. 미국의 국가 안보 핵심부의 내부 회보라고 할 수 있는 《포린 폴리시》는 중국이 제2차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며 거행한 열병식에서 전시된 새로운 무기 체계에 관해 이렇게 인정했다.

오늘날 중국은 로봇공학, 전기차, 핵반응로, 태양 에너지, 드론, 고속 열차, AI 분야에서 혁신을 이뤄 내고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은 심지어 군사 부문에서도 중국이 혁신을 이뤄 내고 기술을 선도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이제는 중국이 군사력 격차를 따라잡고 있다거나 해외 군사 장비의 설계를 베끼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중국은 혁신하고 앞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년 동안 미국과 그 파트너 국가들에 유리했던 역내 군사력 균형이 돌이킬 수 없이 변하고 있다.

《포린 폴리시》의 주장처럼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도전이 현재 자국의 해안과 국경 지역에 집중돼 있을지는 몰라도, 중국은 미국 주도의 “규칙 기반 국제 질서”가 아닌 대안적 국제 질서의 옹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것이 시진핑이 출범시킨 ‘글로벌 발전 구상’의 요체다. 그 구상은 저개발국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 블록을 구축하려는 것인데, 현재 중국은 선진국들보다 더 많은 상품을 저개발국들에 팔고 있다.

그 나라들 중에서 비교적 강력한 나라들은 브릭스(BRICS)로 묶여 있다. 물론 브릭스의 사정은 그 구성국들이 미국과 맺은 관계들이 얽혀 있어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가자 학살로 서방의 위선이 밝히 드러나고, 트럼프가 다른 나라들을 겁박하며 갈취하고, 미국이 세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자국의 지배력을 무기 삼아 지정학적 경쟁자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현실은 중국이 주장하는 새로운 “다자” 질서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달러는 여전히 기축 통화로 남아 있지만, 금값 상승은 미국 주도 시스템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다.

미국은 막대한 AI 투자와 그에 따른 낙관론이 키운 거품 덕분에 이러한 추세들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었다. 막대한 AI 투자와 AI 낙관론에 힘입어 주가는 급등했다. 이는 트럼프 관세의 파괴적 효과로부터 미국 경제를 보호했고, 단기적인 고성장을 촉발해 트럼프의 국내적 입지를 강화시켰다. 그러나 AI 거품이 터지면(이는 필연이다) 그에 따를 불황은 미국 내에서 정치적·사회적 양극화를 분명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 정치를 지배하는 제국주의간 경쟁에 피드백될 수 있다.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는 양국의 경쟁을 제어하고 싶어 하겠지만, 양쪽 모두 세계적 경기 둔화의 파장과 씨름하는 상황에서는 이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

연대의 힘

이 글은 제국주의간 경쟁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불완전하다. 가자에서 벌어지는 인종학살은 최악의 도덕적 파산을 드러냈다. 그 학살은 서방 자유주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공조하에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전개됐다. 동시에 그 학살은 제국주의 시스템이 아래로부터 도전받을 수 있다는 것도 힐끗 보여 줬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특히 영국에서 크게 일어났다. 그러나 그 운동은 세계적 현상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여러 서방 정부들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은 순전히 상징적인 것이고 철저하게 위선적인 행보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과 깊은 군사적·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 압박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다.

휴전이 합의되기 몇 주 전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지중해를 따라 파업 물결이 인 것이다. 그것은 이탈리아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9월 22일과 10월 3일 두 차례 팔레스타인 연대 총파업이 벌어진 것이다. 두 총파업을 주도한 것은 비교적 작은 좌파 노동조합들인 시코바스와 USB였지만, 그들의 노력이 상당한 압력을 형성한 덕에 두 번째 총파업 때는 이탈리아 노총(CGIL)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코바스의 경우 그 총파업들은 수년간 물류 부문에서 이주 노동자들(많은 경우 아랍 세계에서 온)을 주되게 조직해 온 결과이자, 앞서 조직한 여러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들의 결실이었다. 그 파업들은 계급적 연대를 위하고 계급적 힘을 발휘한 실천들이었다.

그러한 파업들은 어디에서나 쉽게 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가장 크게 벌어진 영국에서도 혁명가들은, 한 덩어리처럼 움직이는 노동조합 관료들이 노동조합 통제 법률을 두려워하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상황에 맞서 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파업은 연대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혁명가들은 교사들과 병원 노동자들 속에 내린 뿌리를 통해 10월 10일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을 주도하고 더 주류적인 노동조합의 일부를 거기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에서 배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연대를 건설하고, 그것을 제국주의에 맞서는 더 큰 과제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번역: 이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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