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이란 전쟁, 한국군 파병 논란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글은 3월 19일 노동자연대가 주최한 동명의 토론회(영상)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글로 옮긴 것이다.
오늘로써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이 개전된 지 20일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개전 이래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있고, 그중에는 미나브의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도 있죠.
개전 직후 트럼프가 꺼낸 호언장담과 달리, 전쟁은 쉽게 끝날 성싶지 않습니다. 전쟁의 파장은 즉각적으로 전 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세계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해운 물류가 마비됐고, 자본주의의 새로운 중심지인 걸프 연안 지역이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이제 트럼프는 주일미군 해병대와 강습상륙함을 걸프만으로 보내는 등 전쟁의 수위를 높이려 합니다. 급기야 백악관의 한 참모가 이스라엘이 전술핵을 쓰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언급했죠. 그만큼 지금은 위태로운 시기입니다.
트럼프는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보내어 자신들을 도우라고 압박하고도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큰 시험대에 오르게 됐어요.
많은 전문가들이 이란을 공격하기로 한 트럼프의 무모한 선택을 비난합니다. 〈한겨레〉의 정의길 선임기자는 트럼프의 “멍청한 공명심”이 문제라고 했는데요.
물론 이번 전쟁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서, 트럼프 개인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체제, 즉 제국주의입니다. 가령 미국의 허드슨연구소는 이란 전쟁이 모두 중국과 관련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전쟁을 단지 이란을 제압하는 것뿐 아니라 중국이 중동에서 구축한 입지를 약화시킬 기회로도 보라는 것이었죠. 지금 트럼프는 약화된 미국의 패권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재확립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중동은 미국·중국·러시아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곳입니다. 그 각축전은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같은 지역 강국들의 경쟁과 맞물려 중동의 혼란을 더 깊어지게 만들어 왔죠. 이번 전쟁은 그런 제국주의적 각축전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이번 전쟁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그리고 한국의 전쟁 지원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제국주의와 석유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려면 먼저 제국주의를 알아야 합니다.
제국주의는 복수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지정학적·경제적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는 경쟁적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동학에서 비롯합니다. 세계 시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경쟁이 국가들의 군사적·영토적 경쟁과 맞물리는 것이죠.
20세기 초 유전이 발견되면서 중동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전략적 요충지가 됐습니다. 석유는 자본주의에서 전략적 상품이 됐고, 석유를 통제하는 국가는 다른 국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동 장악은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른바 ‘녹색 전환’이 강조되는 오늘날에도 중동 석유의 위상은 변함없습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에너지 중 80퍼센트 이상이 석유 등 화석연료입니다. 자본주의는 화석연료 중독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고, 그래서 제국주의에게 중동은 여전히 중요하죠.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중동에 비공식 제국을 건설해 지배력을 행사했습니다. 미국은 서방의 경비견을 자처한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한편, 현지 미군 기지 건설과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같은 중동 국가들과도 손잡는 방식으로 중동을 통제했죠.
그리고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 즉 지역 강국들의 성장은 20세기 후반 중동에서 벌어진 중요한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튀르키예 등이 지역적 수준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싶은 국가들로 떠올랐죠.
그런 지역 강국들의 출현은 북미와 유럽이 아닌 체제의 중심부 밖 일각에서 독자적인 자본축적의 중심이 형성된 데서 비롯했습니다. 산업 발전에 힘입어 몇몇 국가들이 군사력을 키워 자기 동네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 한 것이죠.
중동에서 지역 강국들의 성장은 미국 제국주의의 전략 변화와도 관련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있던 때인 1969년 미국 정부는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내놓는데요. 이 정책은 제3세계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이익을 지키는 부담의 일부를 지역 강국들이 맡도록 하고 그 대가로 그들에게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그 전략의 수혜자 중 하나가 바로 팔레비의 이란이었습니다. 당시 이란은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서 미국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였는데요. 1970년대 이란은 F-14 톰캣 전투기 같은 상당수의 첨단 무기를 미국에서 들여왔습니다. 닉슨과 그의 참모인 키신저는 이란을 이용해 걸프만의 석유를 지키려고 했죠.
그런데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비록 혁명 자체는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주의 세력에 의해 중도에 가로채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란 혁명은 미국의 중동 지배를 뒷받침하는 핵심축 하나를 부러뜨려 버렸죠.
이란을 상실한 것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베트남 전쟁 패배에 버금가는 타격이었습니다. 이후 미국 지배자들은 중동 통제를 위해 가장 믿을 만한 동맹인 이스라엘을 더 지원하는 한편, 중동 국가들 간에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1980년, 당시 미국 대통령 카터는 새 독트린을 발표해 걸프만에서 미국이 직접 무력을 쓸 수도 있다고 천명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그 독트린을 여러 차례 실행에 옮겼죠.
이런 역사를 보면, 중동의 각축전에서 세계적 강대국들뿐 아니라 지역 강국들도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중동 질서의 변화
1989년 동구권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미국은 냉전 경쟁의 승자가 됐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패권은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점차 약화되고 경쟁자들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자국의 패권을 재천명하기 위해 압도적 군사력을 이용해 중동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1991년 이라크 공격과 2001년~2003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인 까닭이었죠.
그러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실패로 끝났고, 중동 상황은 미국의 의도와 다르게 바뀌었습니다.
아이러니이게도, 이란이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돼 중동 내에서 그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에도 이란은 압제적인 자본주의 국가이자, 대외적으로 지역 강국 구실을 지속하려 했는데요. 다만 1979년 이전과는 다르게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선다는 기치를 들었죠.
미국이 전쟁 수렁에 빠진 사이에, 이란이 이라크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반혁명적 구실도 했습니다.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도 지원하며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이른바 ‘저항의 축’이 형성된 것이었죠.
2011~13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분출한 혁명은 제국주의와 현지 독재 정권에서 해방될 가능성을 힐끗 보여 줬습니다. 하지만 미국·러시아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지역 강국들이 관여한 반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반혁명은 군사적 모험주의, 종파 분쟁으로 얼룩지며 중동 상황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죠.
이처럼 전쟁 실패,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며 미국의 중동 통제력이 약화되는 와중에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의 입지가 중동에서 강화됐습니다.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중동의 석유·가스 생산과 수출 인프라가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이 나타났죠.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약 70퍼센트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고, 중국은 걸프만 지역의 가장 큰 투자자이자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첨단 기술 제공자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중국에게 이란은 일대일로의 주요 거점이자 중동 진출의 발판이 됐으며, 이란에게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활로가 돼 줬습니다. 이란산 원유 수출의 80퍼센트 이상이 중국으로 가고 있죠.
이처럼, 중동은 세계적 수준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단층선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스템 중심부에서 벌어진 세력 관계의 변화를 틈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튀르키예, 이스라엘 등 지역 강국들도 책략을 부리며 나름의 이익을 차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동에서 지역 강국들 사이에 쟁투도 치열해져 온 것입니다.
2023년 10월 이후
중동의 이런 각축전에 대응해 근래 들어 미국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대응했습니다. 우선, 중동을 통제하기 위해 갈수록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이스라엘에 더 의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아랍 동맹국들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개선해 중동 통제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2020년 트럼프 1기 정부가 주선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했어요.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기습 공격은 미국이 추진하던 중동 전략에 다시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인종학살 전쟁을 벌였지만, 이에 맞서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지원한 서방 정부들은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었고요. 이스라엘도 하마스의 저항을 아직 다 분쇄하지 못하고 있죠.
하지만 이것이 그림의 전부는 아닙니다. 가자에서 인종학살 전쟁을 하며,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끌어들여 전쟁의 확대를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이스라엘의 극우 재무장관인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한 세대에 한 번뿐인, 역사를 바꾸고 세계의 세력 균형을 바꿔서 미래를 새롭게 그릴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왔다. 머지않아 우리는 새롭고 더 나은 중동을 만들어 갈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극우들이 이참에 서안지구를 병합하고 레바논 남부 같은 다른 나라 영토를 더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네타냐후 정부는 가자 전쟁을 확대해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를 중심으로 중동을 재편하고자 하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확전으로 미국의 지원을 계속 끌어들이려 했고, 미국도 이에 점차 호응했습니다.
그럼 ‘저항의 축’ 중심인 이란은 무엇을 했을까요?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편 전략은 ‘평화도 없고 전쟁도 없다’였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구상을 좌절시키려 하지만 그들과의 직접적 충돌은 피하려 했던 것이죠. 이는 이란 정권이 근본적으로는 미국 제국주의와 타협을 추구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란은 정작 가자에서 인종학살이 일어나는 동안 실질적으로 싸우지 않았어요.
이는 이란의 패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혈낭자한 전쟁을 벌이며 ‘저항의 축’을 각개격파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2024년 9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공격해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많은 활동가들을 살해했죠. 그리고 지난해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은 ‘12일 전쟁’으로 이란도 공격했습니다.
게다가 2024년에 이란이 후원해 온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급격히 몰락해 버렸어요. 이스라엘이 일으킨 일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일련의 일들을 거치며 2~3년 새 이란의 대외적 힘은 전보다 약화됐습니다. 동시에 이란 정권은 내부에서 커다란 대중 항쟁에도 부딪혔죠.
그래서 네타냐후 정권은 이란 정권이 대내외적으로 약해진 지금이 다시 공격할 때라고 봤습니다. 이란을 무력화시켜서 레바논, 팔레스타인, 예멘 등의 저항 세력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항 세력들이 재건돼 이스라엘을 위협할 가능성이 차단될 것이라는 계산이겠죠.
유대인 역사학자인 일란 파페는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에 대해 이렇게도 지적했습니다. “현재 이란이 표적이지만, 그 메시지는 모든 중동 국가를 향한다.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 추구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 감히 맞서지 말라는 것이다. 전자를 달성하면 이스라엘은 후자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면책권을 얻게 될 것이다.”
분명 네타냐후가 이번 전쟁을 하려고 트럼프를 열심히 설득했던 듯합니다. 그렇지만 전쟁의 주도권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국에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으로 미국이 그동안 겪어 온 패배와 패권 약화를 되돌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란에 대규모 파괴를 저지르고 얼마 전까지 이란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왔을 수많은 이란인들 머리 위로 미사일과 폭탄을 퍼붓고 있는 것이죠. 트럼프는 그게 47년 전에 진작 해야 했을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란 전쟁은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아마 베네수엘라처럼 단기간에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전쟁을 시작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힘들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란 정권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기만 해도 승리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란 정권은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한 비대칭전을 벌이며 버티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국제 유가가 치솟고 금융 지표가 요동쳤습니다.
최근 들어 트럼프는 매우 호전적인 위협과 함께 시장을 달래는 듯한 말도 꺼내고 있는데요. 이는 이란을 완전히 제압하기 전에 시장이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을 그가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전쟁은 미국 안팎에서 커다란 반대 정서에도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전쟁 지지가 30퍼센트 미만인데요. 미국 현대사에서 개전 직후부터 이토록 전쟁 지지 여론이 낮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상처 입은 야수가 더 무서운 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트럼프는 미국의 패권을 다시 관철시키려고 몸부림치고 있고, 이를 위해서라면 아주 위험하고 정신 나간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지상 작전을 준비하는 등 전쟁의 수위를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 작전을 시작했죠. 전쟁은 이미 확대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쟁이 장기전으로 발전해 광범한 지역에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대대적인 파괴가 벌어질 위험을 목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분명 지금 전쟁은 세계적 강국인 미국과 지역 강국인 이란이 격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와 모즈타바 하메네이 둘 다 매우 억압적인 자본주의 정권의 수장들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이 전쟁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해선 안 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 노력이 실패하기를 바라야 하고, 이를 위해 반전 운동을 최대한 크고 강력하게 건설해야 하죠.
트럼프는 앞서 베네수엘라에서의 성공에 도취돼 이란과의 전쟁을 선택했는데요. 이란을 상대로도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협박과 무력 행사로 미국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시도가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쿠바에서, 또 그다음에는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고조될지 모르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란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공세적인 인종학살과 팽창주의를 추구하며 더 잔혹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미국은 그런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할 것이고, 중동은 더욱 불안정해지겠죠.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의도가 좌절되도록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과 같은 저항 운동의 활동 공간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쟁 반대가 곧 이란 정권을 지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란 정권은 불과 두 달 전에 대중 항쟁을 잔인하게 유혈 진압한 권위주의 정권으로, 자국민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이란 권력자들은 미국에 맞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고 싸울 뿐이고, 그래서 이 전쟁에 이란 대중을 동원할 능력도, 의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데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한 군사 전문가는 걸프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안보 협력을 확대해 온 반면 그 나라 국민 대중은 이스라엘의 공세에 여전히 반감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 장기화되면 그 지역에서 “정부와 사회 사이의 취약한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죠. 이미 미군이 주둔하는 바레인 내부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란 권력자들이 아니라 다른 사회집단의 힘에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이란뿐 아니라 중동 전역의 노동계급과 빈민의 저항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저항은 부패에 찌든 현지 지배계급뿐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 반전 운동이 바로 중동에서 민중이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한국 정부의 전쟁 지원에도 반대해야 합니다. 전쟁이 장기화될 듯하자 트럼프 정부는 한국 등 동맹국들에 파병을 요구하고 나섰는데요. 곤경에 처하자 그동안 미국을 등쳐 먹는다고 비난해 온 동맹국들에게 손을 벌려 전쟁을 도우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단호하게 거절하면 될 이 제안을 두고 이재명 정부는 “한미 간 긴밀히 소통 중이며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여당인 민주당 지도부도 말을 삼가며 정부의 결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일각에서는 세계적으로 비난이 심하고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도 선뜻 동참하지 않는 이 전쟁에 이재명 정부가 참여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기대하나 봅니다. 하지만 미국 싱크탱크들의 여러 전문가들은 안보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트럼프 앞에서 쉽게 NO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예상합니다.
역대 한국 정부의 권력자들은 대중의 의사보다는 제국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득실이 무엇인지를 우선시해 핵심 대외 정책을 결정합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도 지지층이 실망하며 대거 이탈하는 것을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중심을 잡고” 가겠다고 말했어요. 당시 NSC 사무차장이었던 이종석은 회고록에서 노무현의 그 결정을 통치자로서 내린 고뇌에 찬 선택이었다고 옹호했는데요. 그가 지금 이재명 정부의 국정원장이고, 그와 함께 NSC에서 일했던 위성락이 지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입니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은 ‘국익’, 즉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우선해 미국의 중동 전쟁에 동참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편승해 온 한국의 대외 정책을 계승하는 데 무게 중심을 잡아 왔어요.
앞서 주한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대규모 차출되는데도, 이재명 정부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죠. 한국이 침략 전쟁의 발진 기지가 됐는데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구현되도록 용인한 것입니다.
지금 이재명 정부는 시간을 끌면서, 파병할 때 생길 반발과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국익’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벌써 안철수 같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정부가 파병을 결단해야 한다고 성화죠.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2020년 청해부대의 독자 파견과 같은 우회적 동참이나 병참 지원 같은 카드부터 꺼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미국을 지원하는 파병입니다. 노무현 정부도 처음에는 이라크에 의료부대와 공병부대를 보냈다가, 그다음에 자이툰 부대를 보내어 파병 규모와 수위를 높인 바 있습니다. 한국의 파병은 어떤 형태로든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침략 전쟁에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중동과 전 세계가 더 위험해지는 데 일조하는 결정이 될 것입니다.
트럼프의 파병 요청에 국내 좌파들은 당연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가령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한국이 트럼프의 요청에 응하는 것은 “전략적 자살”에 가깝다고 비판했는데요. 그런데 그는 미국의 압력에 맞서 한국은 일본과 인도 등 “중견국 연대”를 결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UAE 같은 중동 국가들에 방어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파병보다 국익에 더 이롭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중견국 파트너로 꼽은 일본이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서 아시아에서 대중국 봉쇄의 선봉을 자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종대 전 의원의 제안은 벌써 빛이 바래 버리죠. (일본이 중견국이라는 말도 넌센스입니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제국주의 국가입니다.) 인도도 극우가 집권한 핵보유국으로 불안정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는 지역 강국입니다.
중동에 방어 무기를 제공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전장에서 방어 무기냐 공격 무기냐의 구분은 완전히 부차적이에요. 방패가 있어야 검으로 상대방을 잘 찌를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한국이 보내는 무기는 걸프만의 노동자와 빈민이 아니라, 걸프의 지배자들을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의 지배자들은 모두 미국의 우방으로 이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들이죠.
특히, 한국은 10여 년 전부터 UAE와 특별한 유착 관계를 맺어 왔고, 이 전쟁 발발 전에도 이재명 정부는 UAE와 350억 달러 규모의 방산 협력을 약속했는데요. 그런데 UAE는 앞서 언급한 아브라함 협정의 당사자이자 예멘에 군사 개입해 그곳을 생지옥으로 만든 국가입니다.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에 협력하는 그런 통치자들에게 한국이 “무기 공급선”이 돼 주는 게 과연 용인돼야 할까요?
지금 좌파들이 주력할 일은 이재명 정부에 외교 정책을 고언하거나 정부가 미국의 압박을 거절할 만한 명분을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보다는 독립적이고 단호한 반전 운동, 파병 반대 운동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트럼프의 전쟁은 미국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반영하는 전쟁입니다. 쇠퇴하는 패권을 부여잡으려는 노력이죠. 그러나 승리를 위해서라면 트럼프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피가 뿌려져도, 대중이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위험이 커져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저들의 폭주를 막아야 합니다. 전쟁 반대, 파병 반대 구호가 거리와 캠퍼스, 직장에서 더 널리 퍼지도록 조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키우는 생계비 고통에 대한 불만을 운동과도 연결하는 게 필요하겠죠.
우리가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전쟁을 패퇴시킬 수 있다면,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향한 동력도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