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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무역협상의 부담을 전가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무역협상이 타결된 뒤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핵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승인, 대미 투자 매년 200억 달러씩 10년간 분할 납부, 대미 투자의 ‘상업적 합리성’ 보장 등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11월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며 “관세 협상을 타결해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국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고 보고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외교 천재,” “엄지척,” “최대 성과” 등 찬사가 나왔다.

반면, 위선적이게도 국민의힘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며,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으려면 국내 산업 보완대책, 재원 조달 방안 등을 함께 제출해야 하므로 처리를 훨씬 늦출 수 있다.

물론 국힘이 “국민 부담” 운운하며 “굴욕” 외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트럼프의 관세 인상 압박을 받고 한미 무역협상에 재빨리 응한 게 바로 한덕수·최상목이 권한 대행을 하던 국힘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4월 협상 때부터 한미 무역 불균형 해소, 미국 제조업 부흥 협조, 대미 조선업 투자 확대, 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 등을 제시해,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 회의를 했다”는 반응을 들은 바 있다. 국힘의 비판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국힘 의원 몇몇은 협상 결과에 만족한다는 뜻을 ‘소신껏’ 표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만족하고 있지만, 노동자에게 전가될 위험과 부담은 커지고 있다 ⓒ출처 백악관

주요 기업주 단체인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제인협회(옛 전경련), 경총 등도 경쟁자인 일본·EU와 동등한 수준으로 관세가 확정되고, 대미 투자 분할 납부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완화됐다며 흡족해하고 있다. 현대차 회장 정의선은 10월 31일에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관세와 관련해 너무 감사드린다. 제가 빚을 졌다”고 각별히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는 한미 무역협상 타결의 후속 조치로 기업 지원 방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10일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한화, HD현대 등 주요 대기업 총수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한 민주당은 정부 지원을 위해 국회 비준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대미투자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대미투자특별법에는 대미 투자를 지원할 기금 설치뿐 아니라 에너지·조선·방산 등 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방안이 포함된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가 기업들과 협조 분위기를 형성하는 사이에 노동자 등 서민층의 위험과 부담은 이미 커지고 있다. 우라늄 농축과 핵잠수함 확보 시도 등은 동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을 더욱 격화시켜 한반도와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미 해군력 강화에 협조하는 ‘마스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예컨대, 내년 예산안에서 AI 투자나 R&D·산업·중소기업·에너지·SOC 등 기업 지원 예산은 대폭 늘어났고, 국방비도 8.2퍼센트나 늘어났지만, 복지 예산은 대부분 자동 증가분에 머물렀다. 민주노총의 비판처럼 “불평등 완화나 민생 회복으로 이어질” 예산은 전혀 아닌 것이다.

앞으로 대미 투자 자금을 마련해야 할수록, 혹은 투자 실패가 커질수록, 그 부담은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전가될 것이다.

진보 정당들의 비일관성

한미 무역협상 타결 전에 조국혁신당은 3,500억 달러 투자 요구가 “수탈과 예속을 강요하는 것,” “투자 협정의 외피를 두른 불평등 조약”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되자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결과로 바꾸었다고 평가받는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며 금세 태도를 바꿨다.

반면, 진보당과 민주노총 지도부 등은 협상 결과를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의 약탈적 요구를 수용한 협상,” “을사국치 시일야방성대곡”(진보당)이라거나 “참담한 사대굴욕”(민주노총)라는 것이다. 진보당은 협상 지연으로 이재명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수도 있는 국회 비준 동의를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10월 31일에 열린 APEC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 참석해 “APEC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애쓰는 이재명 정부를 칭찬했다. 바로 전날 발표한 진보당 브리핑에서 “약탈적 요구를 수용한 협상,” “을사국치”라고 비판하더니 말이다.

민주노총은 10월 30일 성명에서 “정부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대미 협상의 카드로 삼은 것을 단호히 규탄[했]다.” 그러자 얼마 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민주노총을 방문해 양경수 위원장을 만나 정년연장뿐 아니라 초기업 교섭, 작업중지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민주노총을 달랬다.

그러나 좌파적 색채를 가미했을지라도 국익론에 기초해서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 세력과의 동맹을 추구하면, 노동자들이 계급(적) 투쟁에 나서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국익’을 위해 한국 자본주의의 이익도 중요하게 고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금 진보당이나 민주노총은 대미 투자 철회와 국내 투자 증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 투자를 늘리려면 수출을 더 늘려야 한다. 그러면, 수출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들도 (임금·복지 등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국민적’ 압박을 뿌리치기가 어려워진다.

정의당도 무역협상을 “경제수탈”이라고 비판하며, 진보당과 마찬가지로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없는 외교무역질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다만, “공공주도의 강력한 국내 산업정책”을 주장해 사회민주주의와 케인스주의 지지 경향을 드러내는데, 이는 중도계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적 대외정책(반도체 등 경제 안보)로 포섭될 위험도 있다.

한편, 노동당은 한미 무역협상이나 대미 투자 약속으로 한국 정부와 자본이 피해만 본다는 주장을 옳게 거부한다. “그 이익은 미국 및 국내 대자본이 주로 가져가지만 역으로 손실이 나면 이는 대부분 한국 정부 즉 실제로는 전 국민이 함께 부담하자는 것[이다.]”

또한 “무조건 트럼프 등 미국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하면서 미국을 규탄할 뿐 현 정부의 문제에는 침묵하는 일부 친정부적 민족주의자들의 대응은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비판이다. 대미 투자로 이득을 보려 하고 만약 손해를 보면 그 부담을 전가하려 하는 한국 정부와 자본도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은 계급투쟁이라는 대안 대신에 국내 투자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마 다른 좌파 민족주의 진보 정당들처럼 미국의 투자 요구가 “강탈”(또는 “수탈” 또는 “약탈’: 모두 강제로 빼앗는다는 뜻임)이라고 보기 때문에 국내 투자를 대안으로 거론하는 듯하다. 노동당의 국내 투자 요구는 혼란스러운데, “공공투자 및 공공서비스 대폭 확대”처럼 노동계급을 위해 돈을 쓰라는 올바른 요구를 내놓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국내 투자 및 수출 다변화와 피해 기업 지원”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자의 기업 지원 정책은 계급 협조주의를 키울 요구이다.

물론 한국 정부와 자본이 한미 관계에서 생기는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떠넘기려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아무튼 모든 진보/좌파 정당들은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과 긴축 재정으로 삭감당한 생활수준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미 투자의 부담을 전가하려는 지배자들에 맞서 싸울 힘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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