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안보 합의 후속:
국방력 증대, 대미 투자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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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무역·안보 협상 합의를 담은 ‘공동 팩트시트’가 발표된 뒤, 한미 양국은 합의 이행을 위한 논의와 후속 절차를 이어 가고 있다.
팩트시트에는 한국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대신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관세 등을 인하하고,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핵잠수함 도입을 승인하는 내용이 담겼다.
12월 4일 미국 정부는 한국의 대미 자동차 관세를 15퍼센트로 인하한다고 관보에 게재했다. 관세 인하는 11월 1일부터 소급 적용된다. 당초 미국은 한국이 한미 무역 협상 이행에 필요한 법안을 발의한 달의 첫날부터 관세를 인하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에 여당인 민주당이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을 지난달 26일 발의하자 관세 소급 일자를 11월 1일로 맞춘 것이다.
관세 인하가 확정되자 한국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 등의 기업주 단체들은 일제히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환영했다. EU는 8월 1일, 일본은 9월 16일부터 15퍼센트 자동차 관세를 적용받고 있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핵잠수함 건조 같은 국방력 증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2월 1일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크리스토퍼 랜도 국무부 부장관이 만나 팩트시트의 이행 문제를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핵잠수함 건조 등을 위한 실무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하자고 미국 측에 촉구했다고 한다. 미국 측이 대미 투자와 조선업 협력 등을 강조한 것과는 대비된다.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핵잠수함 건조는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관리하고 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국가안보실이 주관해 농축 우라늄, 핵 추진 잠수함, 국방예산을 협의하는 3개 TF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가시적 성과는 내년 전반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만큼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로 한국의 국방력을 키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사안들은 미국 내에서도 이견이 꽤 있는 사안인 만큼,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지지가 없으면 이 합의가 추진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 국방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이스라엘, 폴란드와 함께 한국을 꼭 짚어 “모범 동맹들”로 칭하고 “우리로부터 특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5퍼센트를 핵심 군사 지출에 쓰고, 재래식 방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로 약속했다”며 말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중 경쟁에서 미국을 확고히 편들겠다고 선언하고,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핵잠수함 건조 등으로 군비 경쟁에 불을 붙이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만 유사시 일본 자위대 개입 가능성을 두고 중일 간 갈등이 격화되자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핵잠수함 건조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무역 협상 분야에서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과의 협력을 경쟁력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다. 이는 단지 대미 관세를 낮추는 문제만이 아니다.
예컨대, 조현 외교부 장관은 관세 협상 후속 조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점은 3,500억 달러 중에 결국은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얼마나 잘하고, 수익을 얼마나 많이 내고, 우리 기업의 시장점유율도 높이고 테크놀로지도 더 확보하느냐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유튜브 ‘삼프로 TV’에 출연해 2,0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을 늘리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분야로 [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핵발전소, 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 영구자석, 인공지능 등 최근 국제적 경쟁이 치열해진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기회를 잡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 지원 정책을 강화하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을 비롯한 7개 그룹 재계 총수들을 만나, “규제 완화 또는 해제, 철폐 중에서 가능한 것이 어떤 게 있을지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신속하게 정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한국 정부는 한미 협상을 계기로 미국 제국주의를 지원해 자체 국방력을 강화하고 기업 경쟁력을 높여 국가적 위상을 높일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비용과 전쟁 위험 등의 부담은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 전가될 것이다. 핵잠수함 건조와 국방비 GDP의 3.5퍼센트로 증액 등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결국 노동계급의 노동조건 개선, 주거, 의료, 교육, 복지에 쓸 수 있는 예산을 잠식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전쟁 위협을 키운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한미 관계에서 생기는 부담을 노동자 등 서민에게 떠넘기려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을 명심하고 강조해야 한다. 즉, 미국 측의 협상 압박으로 결국 한국 자본가 계급은 이익을 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