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연대임금은 임금 격차를 해소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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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임금(성과급) 협상에서 중재자로 주목받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의 초과 이익에 대한 사회적 분배 논의를 제안하고 나섰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수백조 원 규모로 초과이익을 내는 데는 ‘국가 지원, 사회적 인프라, 다른 기업 노동자들의 기여’가 있었으므로 사실상 사내유보금 형태로 축적되는 이윤 중 일부를 ‘사회적 분배’의 재원으로 쓰자는 것이다.
재계는 사유재산권과 경영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기업주들은 영업이익 처분권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벌어진 투쟁에서도 삼성전자 사용자들은 매우 완강했다. 파업을 막는 편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해 어쩔 수 없이 일부 양보했을 뿐이다.
정부 내에서도 기술 패권 전쟁 시대에 반도체 초과이익은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 등 ‘재투자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반론이 쏟아졌다.
그러자 김영훈 장관은 “정부는 기업의 정당한 이익에 강제로 관여할 권한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며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 이유를 해명했다. 김 장관이 제안한 한국형 사회연대임금과 원하청 동반 성장 등은 대기업 임금 억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스웨덴 연대임금제
김영훈 장관이 스웨덴 연대임금제를 거론하며 한국형 사회연대임금제를 제안했지만, 스웨덴 연대임금제는 노동계급이 지지할 만한 제도가 아니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는 스웨덴 사민당 정부의 개혁안 중 하나로, 1950년대에 노사정 합의로 도입됐던 제도다.
전체 산업 노동자의 임금을 산별 노사 합의로 정하되, 대기업의 고임금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평균 수준으로 동일하게 맞췄다.
생산성이 높고 지급 여력이 있어 임금이 평균보다 높은 기업은 이 제도로 더 많은 이윤을 얻었다. 반면 수익성이 낮은 ‘한계기업’은 파산했고, 대기업 노동자는 임금이 억제됐다. 살아남은 중소기업 노동자 일부는 임금이 올랐고, 소속 기업이 파산한 노동자 일부는 재취업을 위한 재교육을 받았다.
요컨대 이 제도로 스웨덴 자본주의는 유연한 구조조정, 신규 기술 투자 재원 확보 등 경제 효율화라는 이득을 얻었다. 수익성 높은 기업은 복지 지출이 소폭 늘었으나 임금 억제 덕분에 더 큰 이득을 봤다. 이는 공공 복지 강화가 개별 임금인상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이 얻은 이익은 명확하지 않다. 국가 복지는 늘었지만 임금은 억제됐고 높은 근로소득세를 부담해야 했다.
오늘날 한국은 생산성 격차와 지급력 격차로 중소기업의 임금 비용 비중이 대기업보다 더 높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 연대임금제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국형’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는 흔히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탈로 폐기됐다고 알려졌으나, 사실 갈수록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1970년대 이후 불황으로 수출 중심인 스웨덴 경제도 타격을 받았고, 사용자들은 막대한 복지(특히 실업수당과 노후연금) 지출을 줄이고 싶어 했다.
단순히 재정 적자를 막는 것이 목표의 전부가 아니었다. 복지 안전망을 줄여 노동시장의 규율을 강화하는 것이 전반적인 임금 억제에 더 유리하다고 봤다. 수익성 낮고 지급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연대임금제를 유지할 동기가 없었다.
사실 임금 억제와 높은 근로소득세는 스웨덴 복지국가 신화의 이면을 보여 준다.
스웨덴 연대임금제는 스웨덴 경제의 효율화에 목적이 있었고, 경제 상황이 변하면서 제도가 더는 도입 목적에 부합하지 않자 폐기됐다. 노동계급 다수도 그 폐기 과정에서 별다른 애착을 보이지 않았다.
노동조합 관료
김영훈 장관의 한국형 연대임금제 제안은 임금 제도나 체계 자체를 바꾸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용자들의 직무급 도입 논의가 노동운동 내 일부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김영훈의 사회연대임금 제안은 만에 하나 실시된다면 격차 해소를 명분으로(스웨덴 모델의 “정신”을 따라) 정규직 임금 억제를 통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거나, 하청·협력 업체 단가를 인상한 기업에 정부가 세제 지원을 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노조가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사측과 공동으로 사회적 연대(공헌) 사업용 기금을 조성하는 식이 될 확률이 높다.
실패로 끝난 스웨덴 연대임금제를 김영훈이 격차 해소 ‘모델’로 거론한 것은 그의 제안이 본질적으로 한국 경제의 불황 탈출을 위한 효율화와 대기업 정규직의 양보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연대론은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기에는 결국 자본가 계급을 설득해 사회 개혁을 이뤄 보겠다는 공상적 계급 타협주의의 표현이다. 이런 사상의 기반은 노동조합 관료 기구다. 노조 고위 상근간부층은 지난 30년에 걸친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안착 과정에서 그 질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안착한 노조 상근간부층은 임금 등 노동조건 협상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며 기층 노동자들과는 다른 전망과 가치관을 발전시켜 왔다. 노동자 대표로서 협상을 전담하지만, 투쟁과 교섭의 본말이 전도된다. 투쟁은 그저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일 뿐이다. 목표와 수단 자체가 애초에 자기제한적이다.
장기 불황기에 대기업 임금 투쟁은 기업 이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어 그들에게 부담스럽다. 협상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도자라는 지위를 유지하려면 노동자들의 지지도 필요하다.
그래서 정규직 양보론을 전제한 사회연대전략이나 연대임금론은 애초에 노조 상근 지도자들이 선호한 정책 담론이었다. 자신들의 무사안일성을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는 이 담론을 이용해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투쟁 압력을 완화시키고 전투파들을 배척하려 했다. 그 시도가 성공할수록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 연대 투쟁을 피하면서 협소한 부문 이익만 적당히 챙기기가 더 쉬워졌다.
이런 배경에서 정규직 양보론과 사회적 연대를 결합하는 발상이 지난 10년간 노조 운동 내에서 구체화돼 왔다. 그중 하나가 임금 인상분 일부를 재원으로 하는 기금 설립 방식이다. 양대 노총의 대형 산별노조 대부분이 이런저런 기금 재단 설립에 나섰다. 김영훈 장관도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 임금 인상분 일부를 사측과 공동 출연하는 희망철도재단을 출범시켰다.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정치는 진정한 대중 파업이나 연대 투쟁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조 조직 범위를 뛰어넘는 산별 협상, 사회적 대화 구조(거버넌스) 확립, 기금을 통한 사회 공헌 활동 등으로 대중의 수동적 지지를 얻고, 그 영향력을 활용해 제도 개혁을 성취하려 한다.
그러나 지금 사용자들은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김영훈의 온건한 중재 시도조차 불편해할 정도로 탐욕스럽고 강경하다. 반면 노동계급 내 격차 해소 염원의 본질은 상대적 저임금 부문의 임금·조건 향상이다. 즉, 사용자의 이윤 몫을 줄이는 상향 평준화를 바라는 것이다. 온건한 설득 정치로는 격차 해소 염원을 이룰 수 없는 이유다.
요컨대 노동계급 내 격차 자체가 분열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성과 투쟁 회피, 부문주의 정치가 공통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한 투쟁을 회피한 결과, 개혁 쟁취를 잘 해내지도 만족스럽게 조건 방어를 해 내지도 못했는데, 그 책임을 대기업 정규직 탓으로 돌리는 담론을 수용했다. 그 탓에 실망과 불신, 분열이 커졌다.
좌파는 노동운동 내 부문주의와 자기제한성 등 보수성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는 노조들에 연대 투쟁을 요구하는 동시에 좌파 스스로 기층에서 부문의 장벽을 넘어 투쟁과 연대를 끈기 있게 조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