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대통령이 아니면 누가 장관 결재 뒤집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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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이 윤석열의 수사 외압 의혹으로 번졌다.
윤석열이 권력을 이용해 사법 절차를 유린했다는 의혹에 직면한 것이다. 입만 열면 법질서와 자유민주주의를 운운하더니 말이다.
채 상병 순직은 윤석열 정부와 군 고위 장교들이 평범한 사병들을 그저 소모품이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채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된 병사의 어머니가 한 말)로 여긴다는 점을 비극적으로 드러냈다.
채 상병은 7월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휩쓸려 안타깝게 사망했다. “구명조끼만 입혔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채 상병의 부모는 절규했다.
폭우로 물이 불어나 급류가 흐르는 하천에 들어가는 위험한 작업인데도 해병대 지휘부는 병사들에게 기본적인 안전 장비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채 상병이 속했던 해병대 제1사단 임성근 사단장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
채 상병 소속 부대는 실종자 수색도 임무에 포함된다는 지시를 현장에 도착해서야 받았다. 그래서 애초 출동할 때 삽, 갈퀴, 고무장화만 챙기고 구명조끼는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작업 첫째 날은 일렬로 하천 옆 도로를 따라 걸으며 떠내려가는 물체를 살피는 방식으로 수색했다. 그러나 이를 본 임성근 사단장이 ‘4인 1조로 무릎 아래까지 물 속에 들어가 바닥을 찔러 가며 정성껏 탐색할 것’을 지시한다.
이 때문에 둘째 날은 내성천에 직접 들어가서 수색했다. 대대장은 임 사단장의 질책에 압박을 느꼈는지, 허리 아래까지 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결국 채 상병 등 8명이 물에 휩쓸리는 사고가 났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지금도 트라우마와 채 상병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작업을 지시한 사단장은 면죄부를 받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내성천 상류의 안동댐, 임하댐, 영주댐이 모두 방류 중이었다. 그러나 임 사단장은 이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물에 들어가 수색할 것을 지시했다.
임 사단장의 관심사는 사병 안전도, 실종자 발견도 아니었다. 그는 눈에 확 띄도록 해병대의 빨간티로 복장을 통일할 것, 방송 차량이 왔을 때 군 기본자세를 철저하게 유지할 것 등 언론 홍보에 신경 썼다.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얼룩무늬 스카프를 얼굴에 두르고 작업하라는 ‘깨알’ 지시도 있었다.
임 사단장은 사고 2시간 전, 대원들이 물에 들어가 수색하는 모습이 여러 신문 1면에 보도된 것을 보고받았다. 그러나 ‘훌륭한 공보 활동’을 칭찬하며 흡족해 했을 뿐, 구명조끼를 갖추지 않은 것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초동수사에서 이런 과정을 확인한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임 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게다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7월 28일 수사 결과 보고서를 결재했고, 유가족에게 수사 결과를 설명하라고 박 대령에게 지시하기까지 했다. 수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7월 30일에는 김 사령관과 박 대령이 함께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이종섭 국방부장관에게 차례로 수사 결과를 대면 보고하고 결재를 받았다. 다음 날 언론에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수사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국방부는 예정 시간을 1시간 앞두고 갑자기 언론브리핑을 취소했다. 그리고 국방부장관은 사건 재검토를 차관에게 지시했다. 동시에,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전화해 수사 결과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는 등 외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즉,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VIP”의 명령
박 대령은 용기있게도 이를 거부하고, 8월 2일 수사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 그러자 국방부와 해병대는 박 대령을 수사단장에서 해임하고 항명수괴죄로 형사 입건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군사법원이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했다.
박 대령이 8월 29일 국방부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를 보면, 7월 31일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연락을 받은 후 박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국방부가 돌변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 주재 회의간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 하고 되묻자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면 국방부장관이 이미 결재까지 한 수사 결과를 갑자기 수정하라고 한 일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박 대령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
윤석열이 왜 그토록 임 사단장을 비호하는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윤석열 또는 그 측근과의 이런저런 인맥이나 인연 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윤석열이 그동안 여러 참사의 책임을 하급 실무자들에게 떠넘기고 고위 책임자들의 책임은 면제해 온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채 상병 사건 직전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났을 때, 윤석열과 충북도지사 김영환은 모두 자신이 현장에 갔어도 달라질 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 말의 원조는 행정안전부장관 이상민인데, 그는 이태원 참사 발생을 보고받고도 곧바로 현장으로 가지 않았다. 이를 추궁 받자 이상민은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채 상병 사건 직후였던 7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이상민 탄핵소추를 기각해 이 정권 최고위층의 무책임에 면죄부를 줬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은 또다시 고위 장성에게 책임을 묻는 수사 결과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또, 윤석열은 유우성 간첩 조작 책임자 이시원, 경찰 첩자였던 김순호 같은 자들을 요직에 중용해 왔다. 다른 고려 없이 체제와 정권 수호에 매진하는 공직자가 중용될 거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임 사단장이 사병 안전, 실질적인 실종자 수색, 수해 복구보다 정권에 잘 보일 언론 노출에 더 신경 쓴 것도 이런 인사 정책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채 상병 참사 당시는 경북과 충북 등의 수해 참사를 둘러싼 여론이 정부에 불리할 때였다. 수해 복구에 군을 신속하게 투입한 것은 군의 이미지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여론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핵 폐수 방류 용인,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전쟁, 교육부의 징계 위협을 철회시킨 교사 운동 등과 더불어, 이 사건은 윤석열의 정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