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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과 오늘날 의미

이 기사는 5월 19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윤석열이 최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실질적 책임자인 공안검사 출신 이시원을 임명했다. 유우성 간첩 조작은 불과 10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므로, 간첩 조작이 1960~80년대 권위주의 독재의 유물이 아님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그런 일의 실질적 책임자가 정부 고위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현재 상황이 말해 주는 바는 무엇일까?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의 실체

유우성 씨는 2013년 1월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유우성 씨는 재북 화교 출신 탈북민으로 2004년 남한에 왔다. 막노동을 하면서 어렵게 연세대학교를 졸업했고, 2011년에는 서울시청 복지정책과의 계약직으로 고용돼 ‘탈북민 1호 공무원’이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우성 씨는 이른바 “성공한 탈북민”으로 조명받는 사람이었다. 만약 유우성 간첩 조작이 성공했다면, 도덕적 공포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남한 사회에 잘 정착한 듯한 탈북민조차 실은 간첩일 수 있다, 탈북민이 서울시에 근무하며 북한에 정보를 빼돌렸다 하면서 말이다. 마침 서울시는 우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발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하에 있었다.

증거 조작

국정원은 사실 오래 전부터 유우성 씨를 내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첩 조작이 본격 시작된 것은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가 2012년 10월 남한에 탈북민으로 오면서부터였다. 국정원은 유가려 씨를 합동신문센터에 무려 180일이나 구금한 채 남매 모두 북한 공작원임을 실토하라고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온갖 협박과 가혹 행위를 자행했고, 결국 오빠가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받아 냈다. 유우성 씨는 이 거짓 자백으로 구속·기소된 것이다.

수사부터 공판까지 이 사건을 담당했던 이시원은 국정원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이시원은 유가려 씨가 1심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려 하자 따로 만나, “이러면 당신과 오빠를 도와줄 수 없다”고 협박했다. 또, 유가려 씨가 오빠와 변호사를 만날 수 없게 하려고 일부러 입건하지 않고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남겨 뒀다. 이런 일은 이후 국정원과 검찰 문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유우성 씨와 변호인의 설득으로 유가려 씨는 자백을 번복하고 진실을 말하게 됐다. 그래서 유우성 씨는 2013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시원 등 공안검사들과 국정원은 간첩 조작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항소심에서 증거를 조작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중국 측 공문서를 세 차례나 위조했다. 또, 탈북민을 돈으로 매수해 위증하게 하고, 다른 탈북자의 진술서를 조작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공문서의 위조에 대해 당시 검찰은 물론이고 당시 법무부 장관 황교안도 “공식 외교 라인을 통해서 확보한 자료인 것이 분명하다”고 우겼다. 하지만 결국 증거 조작이 탄로났고 유우성 씨는 2014년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시원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미 불기소 처분이 난 북한 송금 건, 탈북 신고시 화교 신분을 감춘 건 등으로 다시 유우성 씨를 기소했다.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보복한 것이다. 유우성 씨는 이에 맞서서도 꿋꿋하게 싸웠고 결국 2015년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를 최종적으로 벗을 수 있었다.

면죄부

그러나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았던 이시원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검찰은 이시원을 불기소 처분했고, 법무부는 고작 정직 1개월의 매우 가벼운 경징계만을 내렸다.

당시 이시원은 국정원 수사관들이 증거 조작을 했고 자신은 속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재판 과정과 2019년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 조사 등으로 뻔뻔스런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이시원 등 검사들은 어떤 버전의 위조 문서를 사용할지 골랐을 정도로 긴밀하게 증거 조작에 관여했고, 위증을 위해 매수할 때 얼마를 줄지도 국정원과 상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의 맥락과 이시원 임명의 의미

이런 자가 5년 만에 돌아온 우파 정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이 된 것이다. 공직자들의 기강이 어찌 될지 뻔하다. 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좀 더 알려면 당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어떤 맥락 속에서 벌어진 일인지 살펴봐야 한다.

이 사건이 시작된 2012년 말과 2013년 초는 이명박 정부 말과 대선과 박근혜 정부 취임 직후 시기였다. 당시 우파는 위기를 돌파하고 우파 정권을 재창출하고자 공안 마녀사냥을 조직하고 있었다. 노무현의 남북정상회담 NLL 발언록을 대선 시기에 공개해 색깔론을 일으켰다. 이 시기에 유우성 간첩 조작이 기획되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국정원은 댓글 여론 조작을 하는 등 대선 개입 공작도 벌이고 있었다.

박근혜는 그렇게 대선을 치르고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취임 초부터 연이은 인사 실패와 복지 공약 번복,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 등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 핵심 인사 이석기 씨를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하는 등 공안 몰이를 지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우성 간첩 혐의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이시원 등 검찰과 국정원은 공안 몰이에 찬물이 끼얹어질까 봐 2심에서 중국 정부 공문서를 위조까지 하며 유우성 간첩 만들기에 매진했던 것이다.

구시대 유물이 아니다

외부로부터의 적 침투를 명분으로 국내 억압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공안 마녀사냥은 지배자들의 오랜 수법이다. 이적 행위, 간첩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마녀사냥과 조작은 권위주의 독재로 회귀하지 않아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하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냉전기에 미국에서 간첩 조작이 벌어졌던 것이 그런 사례다. 당시 미국은 소련의 위협이라는 두려움을 이용해 좌파 인사들에 대한 광기 어린 매카시즘 마녀사냥을 벌였다. 이런 정세에서 로젠버그 부부는 소련에 핵폭탄 정보를 넘긴 간첩으로 조작돼 1953년 사형당했다.

남한 지배자들은 소위 ‘북한 위협’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휘두르고 간첩 혐의를 남발하면서 민족해방계 정치조직과 혁명적 정치조직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해 왔다.

그러나 유우성 간첩 조작 같은 사건은 단순히 냉전의 그림자가 아니다. 동아시아에서 강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를 배경으로 한 사건이다. 가령 유우성 씨 사건 무렵인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소위 북한 위협과 간첩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주는 구실을 했는데, 이 북한 핵실험은 그 즈음 미국이 중국 견제를 강화하려고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한 전략의 산물이었다.

유우성 사건이 독재로의 회귀나 냉전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은, 간첩 조작 같은 일이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가 가중시키는 정치 불안정 상황에서 지배자들은 기꺼이 그런 수단을 꺼내 든다.

이렇게 보면, 이시원이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된 일의 의미도 아주 분명해진다. ‘정권과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간첩 조작과 인권 유린쯤은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이시원의 간첩 조작은 필요하고 칭찬받을 일이었다’, 이렇게 국가기관 책임자들을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출발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이것은 막연한 먼 미래 대비가 아닐 수 있다. 이시원 임명을 윤석열 정부가 민주적 권리 공격에 시동을 거는 시도로서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탈북민이 처한 현실

한편,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탈북민이 국정원 등 공안 기관들에 의해 얼마나 쉽게 속죄양이 될 수 있는지도 보여 준다.

탈북민들은 국경을 넘는 그 순간부터 매우 취약한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탈북민들이 엄격한 국경 통제를 통과하려면 브로커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빼앗기기 일쑤이다. 남한의 국정원과 북한의 보위부는 이런 브로커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으며 뒷거래를 하고 공작을 벌인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오자마자 탈북민들은 국정원의 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센터)에 감금돼 수십일 동안 간첩 여부를 가리는 고강도 조사를 받는다. 잠재적 간첩 취급을 받는 것이다. 국정원의 통제 속에 완전히 고립된 채 자신의 운명이 국정원 수사관들의 손에 달린 상황에서 탈북민들은 가혹 행위에 저항하기도 어렵고, 간첩 조작의 덫에도 쉽게 빠지고 만다.

합동신문센터를 벗어난 후에도 탈북민들은 편견과 차별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가 쉽지 않다. 통일부의 통계를 보면, 생계급여를 받는 탈북민 수는 한국인 전체 평균의 7배에 달한다. 또, 탈북민 자살률은 한국인 전체 자살률의 3배에 이른다. 편견과 차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엄청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처지 탓에 탈북민은 국정원이 간첩으로 조작하기에 손쉽고 안성맞춤인 대상이 된다. 발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우성 씨 변호인이었던 장경욱 변호사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유우성 사건은 실제 탈북민 간첩 조작 사건들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탈북민 사회는 국정원이 간첩 조작에 이용하는 ‘어장’과도 같다고 했다.

자유 왕래

남북한 자유 왕래가 보장되지 않으면 탈북민들은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국정원의 체계적인 감시하에 놓이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의 통제와 감시, 그리고 합동신문센터에서 나와서도 끊임없는 사회적 차별과 고립이 지속되는 한 탈북민이 간첩 조작에 희생되고 또 우파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탈북민이 이처럼 열악한 처지에 있고 그 수도 점점 늘어 왔지만, 남한의 좌파는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부당한 태도를 취해 왔다. 탈북민을 외교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로 여기거나 우파의 정치적 어젠다로 여겨 백안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탈북민을 우파의 품으로 떠미는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탈북민들이 우파의 마녀사냥과 간첩 조작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려면 보호를 명분으로 한 국정원의 신문을 폐지하고 자유 왕래와 실질적 정착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좌파가 그것을 지지해야 한다.

이시원 임명에 실질적으로 항의해야

유우성 씨 사건은 검찰과 국정원의 노골적인 증거 조작이 2014년에 드러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유우성 씨가 매우 불리한 처지에서도 용기 있게 싸우면서 진실을 알린 덕분이었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이나 탈북민 처지 개선이라는 점에서 지금껏 진보를 이뤘다고 할 수 없다. 사실 이시원의 화려한 복귀는 개선을 못 이룬 후과인 면이 있다. 당시 진보 세력들이 유우성 간첩 조작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면, 지금 이시원 임명에 맞서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당시 민주당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저 여당을 압박할 카드로만 여겼다. 박근혜의 직접 사과와 국정원장 해임, 특검 등을 요구했지만, 그후 누더기 상설특검법에 합의하고, 유우성 사건을 특검 1호 안건으로 만들겠다던 약속도 흐지부지했다.

당시 정의당은 정부·여당과 국정원, 검찰을 비판하면서 제대로 된 특검과 전면적인 국정원 개혁,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층 운동을 건설하는 것보다는 민주당과 제휴해서 우파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시 박근혜가 추진한 일련의 공안 탄압, 가령 이석기 마녀사냥에 적극 동조한 것을 보면, 민주당이 일관되게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웠다. 마녀사냥과 공안 탄압에 동조하며 힘을 실어 주면서, 어떻게 간첩 조작에 제대로 맞설 수 있겠는가. 지정학적 위기를 배경으로 한 북한 공포증 앞에서 정의당도 통합진보당 방어 입장에 일관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2017년 집권한 이후에도 유우성 간첩 조작 책임자 처벌이나 탈북민 처지 개선을 위해 실질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 준 데서 그쳤고, 검찰이 이시원에게 또다시 무혐의 처분 내린 것을 묵인해 줬다. 국정원장 박지원은 탈북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는데도 “유우성 사건 이후 탈북민 인권 침해 사례는 한 건도 없다”며 국정원을 두둔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하에서 간첩 조작이 시도되고 이용됐다. 남북경협사업가 김호 씨청주 F-35 도입 반대 활동가들을 간첩 혐의로 몰아 탄압한 것이 그런 사례다.

이런 사실들은 민주당에 기대어 공안 탄압과 정치적 마녀사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전혀 무망함을 보여 준다. 특히, 공동 집권을 위한 전략적 연대를 구축하려 하면 대중운동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편, 당시 노동운동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유우성 씨가 서울시 공무원 계약직이었음에도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중앙과 서울본부 모두 방어에 나서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에 젖어서 이런 예민한 정치 문제를 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안 탄압이 노동계급 조건의 개악과 노동운동 억압을 노린다는 점에서 이런 회피는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시원의 공직기강비서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운동 측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성명 발표를 넘어 만만찮은 항의 행동이 조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시원 임명은 다중의 위기 속에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주요 공안 탄압의 칼을 꺼내 들 수 있음을 뜻한다. 이에 실질적인 항의를 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하에서 민주적 권리 침해가 쉽게 벌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