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왜 폭력과 진실 은폐가 끊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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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부패를 정상처럼 여기는 군 지휘부에게도 내세우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해 군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선택의 기회도 없이 끌려온 젊은 노동계급이 주로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걸까? 왜 그들도 학대와 부패의 사슬에서 그 일부가 될까? 그건 “다 옛날 얘기”고 “요즘 군대”는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 운동과 군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유자와 운영자는 부자와 권력자다. 둘은 아예 한 몸이거나 혈연과 혼인, 이권으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종종 국가와 기업의 고위직을 오가면서 부와 권력을 더욱 쌓거나 유착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잘 알고 있다. 사석과 공석에서 그것을 “국익”이라 부른다. “우리”라는 말로도 기업, 정부, 국민의 이익이 하나인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불평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정치나 통치도 개의치 않는다.
요컨대 덜 억압적이고 더 민주적으로 사회 곳곳을 바꾼 것은 그들이 아니다. 거대한 사회 운동이 사회 곳곳으로 도미노처럼 영향을 전파한 덕분이다.
군대도 그래서 일부분 변한 것이다.
따라서 군 당국에게는 “요즘 군대는 좋아졌다”고 내세울 자격이 없다. 군대의 폭력과 은폐로 여전히 병사가 죽고 가족이 고통받는데 감히 그럴 수 없다.
불평등과 차별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은 군대에도 반영되거나 더 심한 편이다.
“아버지가 영관급, 5급 공무원 이상, 언론 또는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병사들은 다 적습니다.”
2016년까지 병영생활기록부에는 부모의 직장, 직위, 학력, 월수입, 주거 형태(자가/전세/월세), 주택 형태와 면적까지 기록했다.
이후 일부 교정됐지만, 부모의 경제력과 지위에 따라 병사들을 대하는 풍토는 건재한 것 같다. 최근에도 힘 있는 부모를 둔 병사가 누리는 “황제복무”가 폭로됐다.
이러한 불평등은 전시에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전쟁에서 부유층은 병역을 면제받거나 안전한 곳에 배치됐다.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동자인지 농민인지 하여간 힘없는 사람의 아들들임이 분명했다.” 통역장교였던 리영희 씨의 회고에 따르면, 틀림없이 죽으러 가는 고지에 배치되는 신병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힘없는 집 자식들이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을 이끈 미국의 정치인들도 자식들을 사지에 보내지 않았고 대신 노동계급의 자식들을 보냈다. 교전에 참가한 미군 병사의 약 80퍼센트는 블루칼라 출신이었다. 나머지 20퍼센트는 아버지가 화이트칼라였지만 대개는 단순 반복 노동에 종사했다.
반면 조지 W 부시는 베트남 전쟁 당시 아버지가 하원의원인 텍사스주의 공군이 됐다. 징집 12일 전에 지원해 낮은 점수를 받고도 합격한 것이다.
같은 시기 도널드 트럼프도 입영을 5번 연기하고 재검을 신청해 징집을 면제받았다. 호전적인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베트남 전쟁 징병 직전, 주방위군에 지원했다. “아시아의 논바닥에서 죽기 싫어” 그랬다고 한다.
“전쟁 불사” “핵무장”을 외쳐대는 윤석열도 이들처럼 “매처럼 구는 닭 chicken hawk”이라 불릴 만하다.
국가와 군대가 전시에 부자들의 자식을 보호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뿐 아니라 소련(러시아)이 벌인 전쟁들에서도 만연한 일이었다. 미래에도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여성 차별과 성소수자 핍박에도 군대는 적극적이다.
2021년 공군 이예람 중사는 강제추행을 당한 뒤, 모든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수차례에 걸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나 군은 신고를 배신으로 여겼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합의하길 종용했고, 대놓고 가해자를 감싸는 대신 피해자를 괴롭혔다.
“81일간의 지옥” 속에 절망한 이 중사가 자살했고 언론이 크게 보도했지만, 군 경찰과 군 검찰은 수사를 지연했고 군 지휘부는 사건을 조작했다. 2차 가해는 관련 법이 없어 처벌 못 한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군 지휘관이 사법권과 수사권을 다 갖는 군 사법체계가 지탄받았지만, 폐지되진 않았다.
반면, 군 수사기관은 성소수자 핍박에는 신속했다. 2017년 육군은 대대적인 성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를 벌였다. 군형법은 합의된 동성애 관계를 처벌할 수 있는데, 이것은 헌법에 반하는 악법이 군법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외부와 내부
앨빈 토플러는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총 2340주 동안 전쟁이 없었던 때는 단 3주(0.1퍼센트)였다고 추산했다. 자본주의 시대는 전쟁이 정상 같은 시대다.
하지만 국가는 외부 전쟁이 아닌 내부 전쟁에도 군대를 사용한다. 시위와 파업이 지배 질서를 위협할 때 군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목적으로 군대가 투입된 도시의 목록은 너무 길다 : 워싱턴, 모스크바, 베이징, 베를린, 런던, 파리, 프라하, 부다페스트, 바르샤바, 멕시코시티, 리우데자네이루, 산티아고, 자카르타, 소웨토, 뭄바이, 테헤란, 도쿄, 제주, 여수, 순천, 서울, 부산, 마산, 광주, 양곤, 방콕….
국가가 지진·쓰나미·허리케인 같은 재해 현장에 군대를 투입할 때도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보다 부자들의 재산 보호와 체제의 지배 질서 유지를 훨씬 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종종 드러났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뉴올리언스 상륙 전후,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부자들의 이익을 우선해 주민 대피와 구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군대를 보내 간신히 살아남은 가난한 자들을 감시·경계하고 사살하기까지 했다. 구조와 구호 활동은 전국에서 모여든 평범한 사람들이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대화재 때도 군대는 약탈을 막기 위해 투입됐다. 잔뜩 긴장한 군인들은 구조를 약탈로 오인해 생존자와 구조 인력을 사살해 버렸다. 멕시코시티 대지진 현장에 투입된 군대는 주민이 아니라 기업 재산인 공장을 지켰고 노동자가 아니라 기계를 구조했다. 아이티 대지진 복구를 위해 파병된 유엔군은 학대를 일삼았고, 쓰나미가 덮친 아비규환 속에서 인도네시아 군대는 구호품 하나 없이 생존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상점의 식료품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사격을 가했다.
이는 자본주의의 군대가 무엇보다 체제를 지키는 조직이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들이다.
국가와 폭력
이처럼 계급 차별과 대립이 극심한 사회 체제에서 군대를 보유하는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순수한 중립자인가? 계급을 초월하는 심판관인가?
국가는 계급 지배를 위해 탄생했다. 적어도 인류사의 97퍼센트 동안 계급은 없었고 따라서 국가도 없었다. 계급과 국가와 여성 차별이 등장한 것은 대략 5000년 전쯤이다.
자본주의 시대는 훨씬 더 최근에 시작됐다. EBS 〈다큐 프라임〉에 따르면, 인류가 등장하고 지금까지 24시간이 지났다고 가정할 때 자본주의의 출현 시각은 23시 59분 56초가 된다.
4초에 불과한 자본주의는 나머지 23시간 59분 56초에 비해 엄청난 수준의 부를 창출했다. 그런데 부와 부의 창출 수단은 한층 더 극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 극소수가 대다수를 지배하려면 반드시 국가의 억압적 폭력 수단이 필요하다.
바로 군대가 그것이다. 군대는 국가의 폭력을 상비하고, 국내외에 과시하고 행사한다.
따라서 군대 조직의 내부 역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질서로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긴장과 모순
그런데 여기에는 항상 긴장과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피지배계급의 일원인 사병들은 무기를 들고 소수의 지배계급에게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에는 왕과 영웅의 따분한 이야기 말고도 하층민이 일으킨 도전과 반란의 이야기도 많다.
이를테면 1918년 12월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에서 제9대대는 4일간 반란을 일으켜 장교들을 공격했다.
제주도민을 학살하게 될 출동 명령에 항명해 1948년 10월 19일 반란을 일으킨 여수의 제14연대도 있었다.
이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 군대는 민주주의를 가장 멀리한다. 그리고 장교와 사병 간에는 물론이고 사병들끼리도 일상적으로 서로를 압박하게 만든다.
항명 또는 명령불복종이 군대에서 중죄인 이유다. 전시에 불복종하는 군인은 사형까지 시킬 수 있다.
요컨대 군대에서 청년이 ‘괴물’처럼 변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본성의 음영 때문이 아니라 군대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수행하는 구실 때문이다.
폭력은 자본주의 국가가 보유한 군대의 역할이고 성질이다. 세상에는 물론 정당한 폭력도 있다. 하지만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 수호의 최후 보루로 기능하는 군대의 폭력은 정당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는 근본적·획기적으로 변혁될 수 없다. 언제든 사회 체제를 뒤엎는 아래로부터 혁명과 함께 현재의 국가와 군대는 해체돼야 한다. 과도기적으로는 혁명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민주적 민병대가 조직될 수 있다.
그런 조직은 1980년 광주항쟁의 시민군, 1974년 포르투갈 혁명을 시작한 병사들, 1935년 스페인 혁명과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고 운영된 노동자 민병대와 닮은 데가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