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해병 사망과 수사 외압 책임 규명:
대중 투쟁이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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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훈련병 사망에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책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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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쳐진 해병대원 특검법이 부결됐다.
언론은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며 바람을 잡았으나 이탈은 거의 없었다. 윤석열 정부를 지키려고 여당도 똘똘 뭉친 것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6월 1일(토) 각각 서울역,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정부 항의 집회를 열고 새 국회에서 다시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6월 1일 민주당 주최 집회에는 3만 명(주최측 추산)이 모였다. 그만큼 공분이 큰 것이다. 민주당 집회 종료 후 참가자 수천 명이 윤석열 퇴진 촛불행동 집회로 행진해 갔다.
민주당은 5월 30일 새 국회에서 바로 새 해병대원 특검법을 발의했다. 새 법안은 수사 범위를 공수처 수사 외압 의혹으로까지 확대했고, 특검 추천에 민주당이 아닌 야당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야권 공조를 이어 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여당의 단합 태세를 보면, 야권 공조를 해도 윤석열이 다시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 재의결하기가 쉽지 않다. 각종 개혁 입법도 마찬가지다.
법안 통과에만 집착하면, 여당 의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이유로 내용을 삭감하라는 압박만 더 커질 것이다. 오히려 우파에 끌려다니게 될 수 있다.
채 해병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책임 규명은 특검 도입 자체가 아니라 대중 투쟁이 얼마나 활발하게 벌어지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2016년 말 박근혜를 궁지로 몬 것은 특검이 아니라 거대한(12월 초순경 230만 명)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였다. 정권에게 불리해진 세력관계를 본 검찰이 박근혜에게 등을 돌리자 박근혜는 검찰 수사를 일단 중단시켜 시간을 끌려고 야당의 특검 요구를 수용했다. 그 특검은 퇴진 시위의 압력 속에서 몇몇 진실을 밝혀냈다.
대중 동원
민주당은 화전양면 작전을 계속 구사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6월 1일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회에서 제도 내에서만 싸우기에는 힘들다. 이제 안에서 밖에서 함께 싸우겠다. ...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길거리에서 밤낮없이 쉬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
민주당은 8일 전북을 시작으로 지방 순회 집회도 열겠다고 한다.
동시에, 지난주 민주당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 대한 정부의 반대를 수용해 보편 지급 원칙을 포기했다. 부자들을 달래려 종합부동산세 완화 주장도 내놓았다. 3일에는 윤석열의 저출생 대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저출생 대책 여야정 협의기구를 제안했다.
이런 모순된 신호는 사람들이 거대한 대중 투쟁에 나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국혁신당이 개헌 의제를 뜬금없이 꺼내든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촛불행동이 옳게 비판했듯이, 지금 국면에서 개헌 추진과 윤석열 탄핵 추진은 모순된다.
진보당·정의당·민주노총 등의 지도자들은 민주당의 비일관성과 기회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있다. 대중 동원에도 만만찮게 나서지 않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는 좌파가 계속되는 존재감 부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실 의혹이 아니라 대통령 의혹으로
대중 항의가 벌어지고 윤석열의 지지율 위기가 지속되면서, 수사 외압 의혹의 진실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과 이종섭(당시 국방부 장관)이 수사 외압 시기에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폭로됐다. 그동안 둘 모두 이를 부인해 왔다.
의심이 사실로 바뀌고, 대통령실이 아니라 대통령의 수사 외압 의혹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이른바 “VIP 격노설”은 사실무근이고 자신들은 수사 외압과 무관하다던 대통령실이 말을 바꿨다. 윤석열이 국군통수권자로서 얼마든지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동안 정당한 지휘권 행사 사실을 부인하고 지시 내용을 감췄을까?
채 해병과 박정훈 대령은 윤석열을 보호하기 위한 속죄양이다.
이제 해병대원 사망 관련 의혹은 ‘윤석열 게이트’가 돼 가고 있다.
잇따른 훈련병 사망 사고는 군국주의 강화 때문
최근 육군 신병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충격적 사고들이 일어났다.
5월 23일 강원도 인제군 제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입소 9일 차인 훈련병이 40킬로그램 완전 군장을 하고 가혹 얼차려를 받다가 쓰러져 25일 사망했다. 그 나흘 전(21일)에는 충남 세종시 육군 제3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실전용 수류탄으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다가 실수로 훈련병이 사망하고 교관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들은 정부와 군의 권력자들이 강제 징집된 평범한 사병들의 안전과 생명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보여 준다.
국가는 스무살 남짓한 평범한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는 그저 죽음을 불사하고 적을 살상하라는 명령에 따를 도구로만 여긴다. 그에 걸맞게 상명하복하고, 살상에 적합하게 훈육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군 안전사고는 제대로 진상이 밝혀지기도 힘들다.
따라서 이런 사고들은 그 본질이 채수근 해병 사망 사고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군인권센터를 제외하면 야당들은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윤석열 책임으로(법적으로) 직결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계급 문제로 보지도 않는 듯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가혹행위 사망 사고를 언급하긴 했지만, 채 해병 사고만큼 열의는 없다.
진보당은 “군이 장병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를 고쳐야 한다”는 비판 논평을 한 차례 냈지만, 채 해병 특검 관련 논평을 하루에 두 번씩도 내는 것과는 비교된다. 정의당은 논평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의 성격과 그 맥락을 보면 윤석열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군기 강화의 지정학적 맥락
미·중 갈등 격화로 안보 위기가 심화된 상황에서 집권한 윤석열은 대내외 안보를 강조하며 군국주의를 강화해 왔다.
그에 따라 윤석열은 대통령 집무실도 청와대에서 국방부 건물로 옮겼다. 윤석열은 채 해병 사망 사건에서도 군 수뇌부(에 속한 지휘관) 보호를 더 우선시했다.
반대로 사병들에게는 강한 훈련과 정신 무장을 강조했다. 윤석열은 지난해 국군의날에 “평소 엄정한 군기를 통해 실전과 같은 교육훈련에 매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발맞춰 국방부는 “[사병들의] ‘즉응 전투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실전적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것을 2024년 주요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이런 기조는 징집된 사병들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의 강요)이 가중된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숙련된 사병들도 거의 하지 않는 실전 수류탄 훈련을 훈련병에게 시킨 것이고, 신병교육대 입소 9일밖에 안 된 훈련병에게 공수부대나 견딜 법한 가혹 얼차려를 ‘군기 훈련’ 명목으로 강요한 것이다. 2022년 12월에는 자대에 막 배치된 신병을 준비도 없이 곧바로 혹한기 훈련에 내몰았다가 신병이 급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이 ‘군 통수권자’로서 훈련병들 사망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이 가혹 행위 지시의 근거가 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의 군기 훈련 규정이 신설된 것은 2019년 11월이다. 원인 모를 수류탄 폭발 사고들로 2015년 하반기에 중단됐던 훈련소 수류탄 훈련이 재개된 것은 2019년 3월이다.(원인 규명은 끝내 못한 채로 훈련이 재개됐다.)
북·미간 정상회담이 결렬돼 한반도 정세가 갈등 국면으로 돌아선 것이 2019년 2월이었다. 문재인 정부와 군 수뇌부는 곧바로 군기 강화 등 대응 조처들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윤석열이 더욱 확대·강화하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 시스템과 그것에서 비롯하는 군국주의는 평범한 청년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 체제 내 개혁 노선은 이런 시스템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