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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과 동시에 도전 과제를 제시한 르노삼성 파업

1월 23일 르노삼성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지난해 12월 20일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 사측이 1월 10일 직장폐쇄를 한 지 보름 만이다.

노조는 1월 21일부터 파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측은 2월 14일까지 교섭이나 파업을 하지 않는 “평화 기간”을 갖자고 억지를 부리다가 결국 노동자들의 복귀를 허용했다.

물론, 파업이 중단된 상황에서 재개될 임단협 협상은 녹록치 않을 수 있다. 협상장 바깥의 세력관계가 협상장 안의 지형을 결정짓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이번 투쟁 과정에서 보여 준 상당한 분노와 투쟁 잠재력은 곱씹어볼 의의가 있다. 르노삼성 노동자 대부분은 박근혜 퇴진 촛불운동이 승리한 이후 분위기 속에서 처음 투쟁에 참가한 새 세대 노동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은 지난해 상반기에 최장기 파업을 벌인 데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파업에 나서며 생산에 타격을 가하는 저력을 보여 줬다.

이에 대응해 사측이 직장폐쇄를 들고 나온 만큼, 이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발전시킬 과제가 있다.

노동자들은 힘이 있다: 생산 타격 효과

르노삼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임금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사측은 지난 수년간 노동자들에게 양보와 희생을 강요했다. 가령, 2018년에는 잔업·특근이 줄어 임금이 그 전해에 비해 무려 1100만~1400만 원이나 삭감됐다. 매해 ‘희망퇴직’을 실시해 5700여 명에 달했던 인력은 4000명가량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사측은 기본급을 2년 연속 동결하겠다고 나왔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젊은층의 시급을 억제하려고 ‘상여금 월별 쪼개기’도 원했다. 사실상 임금 삭감을 요구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에 분통을 터뜨리며 투쟁에 나섰다.

근래 노동운동 내에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투쟁을 경시·폄훼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위축시키는 악효과만 낼 것이다. 그러면 연관 부품사·하청 노동자들도 임금 요구를 내세우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점을 알기에, 〈노동자 연대〉는 르노삼성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이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지지·연대하고자 했다.

1월 16일 서울 본사 앞에서 열린 르노삼성 파업 집회 ⓒ정선영

특히 이번 투쟁은 르노삼성에서 지난해 상반기 벌어진 파업에 비해 여러모로 전진했다. 한 번의 투쟁 경험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음번 투쟁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르노삼성자동차노조와 금속노조 르노삼성자동차지회는 지난번 투쟁 때 8개월가량 1주일에 한두 차례 2~4시간 파업을 했었다. 노동자들은 최장기 파업으로 가능성을 보여 줬지만, 생산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뜨문뜨문 하는 파업으로는 생산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가 힘들었다. 파업 효과가 약한 가운데 투쟁이 길어지면서 파업 참가자도 점점 줄었다. 노조가 뒤늦게 전면 파업에 나섰지만 사측의 직장폐쇄 공격에 가로막혔다.

이번에 노조는 더 효과적으로 사측에 타격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파업에 돌입했을 초기부터(지난해 12월 20일부터 31일까지) 전면 파업을 해서 생산량이 30~4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사측이 대체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파업 불참자들을 모아 일부 라인을 돌렸지만, 평소 생산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는 노조가 기습적으로 순환 파업을 하면서 파업 효과를 더 끌어올렸다. 한 개 라인이 멈춰도 공장 전체가 멈추는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을 이용해서 기습 순환 파업을 벌였다. 공장 가동률은 1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사측은 지난해 연말에 르노삼성의 QM6가 한국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중 판매 1위를 하며 연말연시 생산량을 늘려야 했고, 곧 출시되는 신차 XM3 생산도 시작해야 했다. 이런 조건에서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커지자 사측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몰렸다.

이번 투쟁에서는 기층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발의해 파업 참가 호소 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체인력 투입에 맞선 효과적인 전술을 다룬 본지 기사 “피켓라인의 중요성”을 보고 한 노동자가 ‘우리도 해 보자’고 제안했다. 한 대의원이 이런 제안을 민주적으로 받아 안았고, 실제 행동으로 조직했다.

도장공장에서 출근 시간에 팻말을 든 노동자들이 파업 참가 호소 활동을 했고, 이 행동은 다른 공정들로도 확대됐다. 이후 기습 순환 파업을 벌일 때도 노동자들이 “라인 투어” 행진을 하며 파업 참가 호소 활동을 벌였다. 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이 같은 행동은 파업 대열의 결속력과 사기를 높였고 몇몇 노동자들의 파업 동참을 끌어냈다.

반복된 직장폐쇄, 다음번엔 어떻게?

이처럼 노동자들의 투쟁이 효과를 발휘하자, 사측은 야비하게도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직장폐쇄는 파업 대열의 공장 출입을 막아 파업을 무력화하는 공격 방법이다. 파업 대열을 공장 밖으로 밀어내고, 대체인력과 파업 불참자 등을 모아 생산 라인을 가동하려는 것이다.

사측은 지난번 투쟁 때도 직장폐쇄를 단행해 효과를 봤었다. 노조가 전면 파업에 나서자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는데, 직장폐쇄 하루 만에 노조가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도 사측이 또다시 직장폐쇄 공격을 해 올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 노조는 직장폐쇄 공격에 바로 무릎 꿇지 않고 얼마간 파업을 지속했다. 두 차례 서울 본사 앞 집회와 부산시청 앞 집회도 했다.

그럼에도 파업 노동자들이 일단 공장 밖으로 밀려나자 불리한 처지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사측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주간조로 모아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공장을 가동했다. 게다가 잔업, 특근을 늘리거나 생산 속도를 높이겠다는 협박을 하며 파업 노동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직장폐쇄 공격에 처했을 때 공장 밖으로 밀려나지 않고 공장을 점거하는 점거파업 전술을 사용했다. 직장폐쇄가 감지되거나 공고되면 그 즉시 노동자들이 일하던 자리에서 연좌를 시작해 생산 시설을 장악해야 생산 타격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장 점거파업을 하면 사측과 보수 언론이 “불법” 운운하며 비난하겠지만, 사측의 파업 파괴 행위야말로 부당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로 연대의 초점을 만들면, 이런 비난에 함께 맞서며 르노삼성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늘어날 수 있다.

본지는 이런 점을 들어 지난번 투쟁 때 이미 직장폐쇄 공격에 공장 점거로 맞서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경기 침체기 효과적인 투쟁 방법: 연대 모으기

르노삼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 보수 언론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파업 때문에 부산 지역경제에 타격이 크다는 협박성 기사를 쏟아 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주들이 웬만해선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강하게 달려든다. 이런 조건에서는 노동자들도 투쟁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지지·연대를 광범하게 모아서 대응하는 게 승리로 나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비롯해 주요 노동운동 단체들이 르노삼성 투쟁에 지지를 표명하고 연대를 건설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기업주들과 보수 언론, 권력자들이 한 데 힘을 합쳐 노동자 파업을 비난하는 만큼, 이에 맞서 노동계급의 연대도 발전시켜야 한다.

실제 가능성은 있었다. 파업 초기에 좌파 활동가들이 발의해 현대중공업 분과동지연대회의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현장활동가 조직들(노동자의 힘, 더불어 한길노, 노동자연대 기아차 모임)이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르노삼성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연대의 바람이 적지 않았다. 노조 지도부가 집회 연단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함께 연대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노동자들은 환영의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투쟁” 하고 답하기도 했다.

르노삼성의 일부 활동가들은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노조 내 일부의 반대 목소리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조 내 분열을 우려하다가 더 큰 단결을 건설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광범한 연대 건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이고 사측을 더 크게 압박할 수 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말처럼, 르노삼성 노동자들은 이번 투쟁 속에서 의식과 경험이 성장했다. “이번 투쟁을 거치며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노동운동의 토양이 생긴 것 같습니다.”(이정덕 르노삼성자동차노조 대의원)

이번 투쟁 경험이 다음 투쟁이 한 발 전진하는 밑거름이 되려면, 활동가들이 투쟁의 교훈을 잘 돌아보고 앞으로의 실천에 적용해 보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또한 효과적인 전술을 제대로 실행하고 연대를 전진시키려면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투쟁하는 혁명적 좌파가 미리 현장에 조직돼야 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