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파업:
구조조정 내세워 임금 삭감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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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연말을 넘겨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임금이 줄어 온 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리고 사측이 또다시 실질임금을 억제하려는 데 항의하고 있다.
르노삼성에서는 2017년부터 생산량과 더불어 잔업·특근이 줄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큰 폭으로 삭감돼 왔다. 반면 사측은 매해 수천억 원의 이익을 냈음에도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2년 연속 동결하려 한다. 또 젊은층 노동자들의 기본급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지만 상여금을 월별로 쪼개 기본급에 산입하는 식으로 법만 피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에 맞서 부산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20~31일에 전면파업을 했다. 노조는 1월 2일에 복귀하며 사측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시간 끌기만 하자 1월 3일(금)부터 부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생산 라인이 멈춰 서거나 생산 속도가 크게 느려지는 효과를 냈다.
이정덕 르노삼성자동차노조 대의원은 파업 분위기가 좋았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조합원들이 두 개 조로 나뉘어서 각 공장별로 라인 투어를 했어요. 라인이 다 서 있는 것을 보니까 조합원들도 기분이 좋지요. 우리는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같이 합시다’, ‘같이 갑시다’ 하고 말했어요.”
지난해 연말, 일부 노동자들은 국내외 노동운동의 ‘피켓라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 (피켓라인은 노동자들이 공장에 집결해 대체 인력 투입을 저지하고 파업 동참을 설득하는 것을 말한다.) 12월 27일 도장부의 한 지역구(선거구) 노동자들이 팻말을 들고 파업 참가 호소 활동을 벌였다. 이 소식이 번져 나가면서 30일에는 8개 가량의 선거구로 행동이 확대됐다. 이런 노동자들의 열기가 연초 파업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일부 이어진 것이다.
1월 3일과 7일에는 전국 10개 사업소에 흩어져 있는 영업지부 노동자들도 파업을 했다. 자동차 서비스와 정비를 담당하는 영업지부 노동자들도 임금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고 한다.
김준규 르노삼성자동차노조 영업지부 대의원은 말했다. “서비스 쪽은 기본급 자체가 생산직보다 적어요. 잔업 특근도 없어서 연봉이 1500만 원 정도 더 적어요. 인원도 780명 정도에서 430명 정도로 줄었는데, 일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확 뒤집어 버리자’는 조합원들 목소리가 큽니다.”
인력 감축 압박
르노삼성 사측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다. 최근 교섭에서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크게 못 미치는 임금 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구조조정도 압박했다. 현재 운영되는 주야 2교대제를 주간 근무만 하는 1교대제로 전환하고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정규직을 대규모 전환배치하면서 수백 명을 정리하겠다고 한다.
사측은 한 해 20만 대 수준이던 생산량이 2020년에 12만여 대로 줄 것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00년대 초중반에는 5500여 명 가량이 차량 11만여 대를 생산했다. 현재는 인원이 400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그동안 노동강도는 악명 높을 정도로 세졌고 산업재해도 해마다 증가해 왔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고된 작업 조건에 대한 불만이 높다. 정종훈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장은 “사람들 내보내지 말고 오히려 더 충원해 노동강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측은 ‘파업하면 구조조정, 전환배치 1순위’라고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다. 간사하게 노동자들을 위축시켜 파업 참가율을 떨어뜨리고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일부 노동자들은 억울하고 분하지만, 고용불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임금 투쟁은 포기하고 파업에서 발을 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경험은 임금·조건 양보가 결코 고통의 끝이 아님을 보여 준다. 가령, 지난 몇 년간 조선업과 한국GM 등에서 노조 지도부가 임금·조건을 양보했지만 그것은 일자리를 지킬 대안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측은 그것을 디딤돌 삼아 대규모 인력 감축의 칼을 빼들었다. 악마에게 손가락 하나를 내주면 몸통을 요구하는 법이다.
지금 투쟁 대열에서 이탈한다고 나만은 앞으로 구조조정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단결이 흐트러지고 투쟁이 약화되면, 사측이 물량 감소를 이유로 인력 감축을 감행할 때 이에 맞서는 데도 어려움이 빚어질 수 있다. 그럴 때 설사 나 하나만은 소나기를 피한다 해도, 계속되는 고통전가와 양보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단호하게 저항할 때만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르노삼성 노동자들이 지난 수년간 “양보한다고 얻는 것 없다”는 것을 직접 체감해 왔다. 양보를 할수록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임금은 줄었다. 호봉제도 폐지됐다. 임금피크제도 타 작업장보다 더 이른 54세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노동자를 쥐어짠 결과 사측의 배만 불러 왔다.
연대를 확대하자
일부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우리도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좋겠다” 하고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기습적 부분 파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측도 이에 대처하려 할 것이다. 사측이 강경한 자세를 지속하면, 다시 전면파업으로 수위를 높이고 피켓라인 등 파업 효과를 높이기 위한 행동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파업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르노삼성 파업이 벌어지자 사장들의 신문인 경제지들과 보수 언론들은 파업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연말 이들은 파업 때문에 협력업체가 망했다는 얼토당토않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이 하청업체는 르노삼성이 위탁 제작하던 닛산 ‘로그’의 부품을 만들던 곳인데 로그가 단종되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영 위기의 책임을 엉뚱하게 노동자들에게 돌린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마치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양 호도하려고 그런 보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반대다. 오히려 르노삼성 노동자 투쟁은 더 열악한 하청 노동자들이 조건 개선 요구를 하는 데도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원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하청 노동자들이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주들이 웬만해선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강하게 달려든다. 이런 조건에서는 ‘우리끼리 싸우자’는 식으로만 해서는 한계가 있다. 투쟁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고 지지·연대를 광범하게 모아서 대응하는 게 승리로 나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르노삼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많은 노동자들의 공감을 일으키며 연대를 확대할 잠재력이 있다.
지난 연말 현대중공업 분과동지연대회의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활동가 조직들(노동자의 힘, 더불어 한길노, 노동자연대 기아차 모임)이 르노삼성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르노삼성 투쟁이 자기 사업장에서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통·불만과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좌파 활동가들이 이런 연대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최근 한 집회에서 금속노조 위원장은 자동차 산업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에 맞서야 할 필요성을 얘기하면서 르노삼성을 한 사례로 제시했다. 그런 만큼 현재의 르노삼성 투쟁에 대해서도 적극 지지와 연대를 표명해야 한다. 르노삼성자동차노조는 상급단체가 없지만, 임금과 구조조정 공격에 맞서 정당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소속 노조와 상관 없이 지지와 연대가 조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