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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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1월 22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주가 넘었습니다. 그동안 이태원 참사의 책임 규명을 둘러싼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정한 책임자가 윤석열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참사 당일 서울 도심, 특히 이태원에서 공권력 배치는 정부 비판 집회에 대한 감시와 소위 ‘마약과의 전쟁’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참사 당시 이태원에 이태원 파출소 소속 경찰관도 아니고, 마약 수사 경찰관도 아닌 파견 경찰은 겨우 6명이었습니다. 경찰력이 거의 다 공안과 마약과의 전쟁에 투입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찰력 배치는 국가보안법 탄압과 MBC 취재 불허를 통한 언론 길들이기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위해 윤석열이 강조하고 그 자신이 세운 우선순위의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국민의힘이 통제하는 서울시와 용산구도 윤석열의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대책 내용과 인원 배치를 했고, 그래서 이태원 밀집인파 안전관리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책임 회피와 전가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책임 회피와 전가를 위해 전력을 다해 왔습니다.
윤석열은 참사 직후 연 첫 회의에서 ‘참사’, ‘희생자’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청을 통해 유가족 통제 방안과 시민사회단체 동향 보고서를 작성케 해 사건 무마에 활용하려 했습니다. 국회와 언론 사찰을 자행한 정황 등도 드러났습니다. 〈노동자 연대〉 신문도 이에 포함됐습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담당 장관 등이 모두 ‘희생자들이 놀러갔다 우발적으로 생긴 사고’라는 식으로 말하며 정부 책임을 회피해 왔습니다.
위패도 영정사진도 없는 분향소를 차리고 기만적인 관제 애도 주간을 가지더니, 그 뒤 책임을 일선 공무원들과 한두 명의 행정 관료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정부 자신이 하지 않아 민간에서 한 희생자 명단 공개를 국민의힘은 얼토당토않게 ‘2차가해’라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158명이나 죽게 만든 정부의 진정한 가해 책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정국 전환을 위해 해외 순방 성과를 강조하고, 이재명 측근들을 수사하고, MBC 외에도 YTN과 TBS 등 언론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자기네를 비판하는 언론을 국가 안보를 해치는 가짜뉴스 매체 정도로 취급합니다.
국민의힘은 퇴진 집회에 참가한 민주당 의원 7명을 어이없게도 “이태원 참사 7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윤석열과 정부·여당의 이런 사후 대응의 논리는 참사를 유발한 자신의 우선순위와 권위주의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참사 전에 하던 대로 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인 11월 19일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가 대규모로 열린 것이 이를 보여 줍니다. 윤석열이 순방을 앞세워 국면 전환에 그토록 애썼는데도 수만 명이 이 집회에 모였습니다.
현 시국에서 민주당의 역할
그러나 제1야당이자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은 윤석열과 여권의 적반하장에 대한 강력한 대항마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직후 민주당은 이태원참사대책본부를 만들었습니다. 핼러윈 당일의 마약 수사 문제도 지적했고요. 심지어 마약 수사 실적을 위해 정복 경찰 배치를 회피했던 것 아니냐는 예리한 질문도 했었습니다. 당일 경찰 배치도 민주당 의원들의 자료 요구로 자세히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의 직접 책임을 묻진 않고 있습니다.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거나 동참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대신 대통령 사과, 진상규명, 책임자 경질 등을 요구하며 국정조사에 무게중심을 두고, 범국민서명운동과 여당과의 협상을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려고 밭갈이운동본부, 개혁운동본부 등 노골적으로 친민주당적인 일부 시민단체들은 11월 19일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와 같은 시간대에 별도로 여의도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 집회에는 겨우 300명정도밖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의원 7명이 수만 명이 모인 윤석열 퇴진 집회로 와서 대통령 사과와 국정조사 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국정조사가 실시돼도 실속 없는 시간 벌기임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여당은 빠르게 이태원 참사 정국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국정조사를 못 받아들인다고 뻗대고 있지만 말입니다.
참사의 원인이 윤석열에게 있음이 진실인데도 국정조사로 진상 규명을 하겠다는 것은 그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일선에서 벌어진 세부적인 문제들은 지엽적인 것입니다. 본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결국 국민의힘과의 협상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실 등에 대한 조사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사과나 장관 해임을 요구해도 그것은 직접 책임은 없는 대통령이 그저 ‘도의적으로 미안하다, 유감이다’ 하는 수준의 막연한 사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이태원 참사에 대한 민주당 대응은 꾀죄죄합니다.
반면 정부 여당은 민주당을 강력하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검찰이 확증도 없이 이재명을 대장동 비리의 주범으로 기정사실화해 공격하고, 국가보안법 탄압, 안산시 세월호 지원금 관련 마녀사냥, MBC 배제 등 언론 길들이기 등이 이어졌습니다.
몇 주 전 윤석열 본인이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는데, 이것은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한 말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윤석열이 노리는 것은 이재명에 흠집을 내 윤석열 반대 운동의 대의를 훼손하고 대안 부재감을 심화시켜 개혁 염원 대중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정부에 대한 저항도 약화시켜서 다가오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더 쉽게 전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윤석열 반대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이재명을 공격하는 것을 모른 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반윤석열 운동 일반에 대한 공격의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군부 독재를 계승하는 여당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계승한다고 표방하는 민주당은 윤석열에게 제대로 맞서지 않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응해 별로 한 일이 없고, 당사 압수수색도 허용했고, 의원들에게 윤석열 퇴진 집회 참가 자제도 요청했죠.
돌아보건대 민주당은 1987년 매우 투쟁적이고 급진적인 노동운동이 등장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점점 온건해져 왔습니다.
1997년 최초 집권 이후 25년 사이에 세 번이나 집권을 하고, 세 번이나 총선 제1당을 해 보고, 이젠 광역-지방 정부와 의회 운영 경험도 많습니다. 민주당의 요즘 인재풀을 보면 과거와는 다릅니다. 이제 민주당은 야당일 때도 국가 기관 안에 공공연한 관료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의힘이 재벌 등 대기업 소유주들, 군장성과 경찰 간부를 포함한 국가 관료, 언론사 사주 등 지배자들에 노골적으로 유리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것에 반해, 민주당은 과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포퓰리즘적 전통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민주당이 하는 구실은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달래는 것입니다. 그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매우 제한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말입니다. 민주당도 경제 위기 고통을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 전가하는 것에 협조하며 기업 이윤과 권력 보호에 힘쓰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대중의 불만을 일부 반영하지만, 이윤 시스템과 국가 기관들이 불안정에 휩싸이는 것은 결코 반기지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라는 충격과 명백한 윤석열 책임 앞에서 민주당이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8년에 문재인 정권의 인기가 떨어지자, 민주당은 군부가 박근혜 퇴진 운동을 무력 진압하려 모의했던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하지만 군부와의 관계나 국가기관의 안정을 위해서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덮었습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한 태도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내각과 경찰은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의원과 당원들에게 집회 참가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사회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 경찰의 조처를 이해한다면서 말입니다.
최근 국민의힘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윤석열 퇴진 집회 참가를 대선 불복이고 헌법 질서 불인정이라고 얼토당토 않게 비판하는 것에 민주당이 움찔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실 국정조사가 실효가 있다고 생각할 만큼 민주당이 순진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그저 국정조사를 활용해 윤석열에게 흠집을 내는 맞불을 놓으며 대장동 수사 등 불리한 여론에 맞서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윤석열 책임임을 알면서도 그저 다음 집권에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윤석열 책임론을 활용하고 싶은 것입니다.
윤석열 퇴진 운동과 그 미래
그런데 참사에 항의하는 세력의 동향은 안타까운 면이 많습니다.
참사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그 인적 청산 문제도 다루는 일은 참극의 재발을 막고, 참사로 인한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실제적인 길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정의당, 진보당 같은 주요 좌파 단체들의 접근법은 회피적입니다. 지엽 말단 문제들로 시간 낭비하며 지나치게 타협적인 요구들을 내놓았습니다. 윤석열의 책임을 거론했어도 책임의 정도를 과소평가하는 대통령 사과 요구를 내놓았습니다.
다행히도 윤석열 퇴진 운동 조직자들이 이태원 참사의 주범으로 윤석열을 지목했습니다. 이 집회로 대중의 분노가 표현됐고, 지난 주말에는 10만 명 가까이 참가했습니다. 이 운동은 더 커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윤석열에 대한 분노와 퇴진 염원을 모으고, 이태원 참사를 부른 윤석열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더 급진화돼야 합니다.
이 점에서 지난 19일 전국 집중 집회에 대통령 사과만을 요구하는 민주당 의원을 집회 연단에 올린 것은 일관성 없는 행위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을 못 오게 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윤석열을 규탄하는 국회의원들을 운동에 동참시키는 것은 운동의 초기 국면에선 괜찮은 전술입니다.
하지만 좀 덜 선명하게나마 퇴진을 주장한 유정주 비례의원을 제외하면 그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퇴진을 염원하는 사람들 다수를 자기네 어젠다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기층 대중 운동과 좌파 내에서 퇴진을 요구하냐 마느냐가 예리한 쟁점이 된 상황에서 사과나 모호한 책임 운운하는 정치인에게 연단 연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운동 지지자들을 명확하게 만들기보다 모호함으로 이끌고 운동의 효과성을 줄이는 데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상황에선 운동의 마비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퇴진 운동 조직자들은 그들이 집회에 참가했다는 사실 정도만 집회 참가자들에게 공지하는 게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한편, 앞서 말했듯이 좌파 단체 다수는 참사에 대한 항의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면공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윤석열 퇴진론과 선을 긋고 그 대체용으로 국정조사를 주장합니다. 민주당과 함께 국정조사 요구로 국민의힘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리 투쟁보다는 의회 활동을 더 부각시켜 운동의 표적과 목표를 분산시키고 윤석열 책임론을 흐리는 비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윤석열은 이태원 참사에 직접 책임이 있습니다. 게다가 경제 위기의 고통을 서민층에 전가하는 공격을 시작했고, 그 공격을 권위주의적 수단들로 관철하려 합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좌파는 윤석열 퇴진 운동에 동참하고 이 운동이 더욱 크게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윤석열 퇴진 운동을 해 봤자 민주당에만 득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윤석열 집권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필연이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맞서 투쟁하기를 회피한 온건 좌파의 개혁주의적 지도부들이 행한 잘못된 선택(전략)이 문제였습니다.
온건 좌파의 개혁주의적 지도부들은 문재인의 역주행을 비판하다가도 우파에 유리하게 이용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금세 입을 다물었습니다. 정부와의 대결을 회피하고, 문재인과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노동 대중의 변화 염원이 더 급진화되지 못하고 대안 부재감을 느끼며 사기 저하되고 방향감각을 잃었습니다. 우파는 그 틈을 파고든 것이죠.
그런데 바로 그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이번에도 반정부 투쟁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퇴진 운동의 미래, 그리고 윤석열 퇴진 후의 미래는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미래는 앞으로 퇴진 운동과 좌파가 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