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을 진보 지향으로 견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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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한계를 비판하면서도 투쟁을 통해 민주당을 진보 개혁 쪽으로 견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진보적 민주당 견인론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 정치적 심연이 있다고 가정하는 듯하다.
매스컴도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 심대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지배 계급의 정당이다. 비록 국민의힘(그리고 그 전신들)에 비해 차선책이지만 말이다.
사회운동가 출신들이 민주당에 입당하기도 하지만, 민주당의 핵심 인적·재정적 기반은 기업주들과 김진표나 한덕수 같은 국가 관료 출신자들이다.
민주당 내 정치 스펙트럼을 보면 국민의힘과 가까운 성향의 인물들이 즐비하다. 이미 10여 년 전쯤에 조국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에는 지금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의 강령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치 자금의 상당 부분도 기업인들로부터 나온다. 기업의 정치 자금 후원이 불법이라서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기업인들은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액수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정치 후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가령 케이티(KT) 당시 임원들이 주류 양당 국회의원 99명을 불법 후원했다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 탄핵 뒤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전임 정부와 본질적으로 같은 친기업 정책들을 실행했던 것은 민주당의 이런 기반과 관련 있다.
물론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전혀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국민의힘과는 달리, 민주당은 당내 진보파를 통해 사회운동의 온건한 경향을 포섭하는 전략(‘진보적’ 포퓰리즘)을 취한다. 이 때문에 사회운동 내 개혁주의자들 가운데는 민주당을 정치적 대안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안별로(노란봉투법 등 개혁입법 등에서) 민주당과의 제휴를 일절 거부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경직된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가피한, 전술적 타협을 해야만 할 때조차 민주당의 일관성 없음과 배신을 비판해야 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둘 다 한국 자본주의의 효율화를 핵심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 비하면 두 당의 차이는 결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충격 흡수 장치
민주당을 견인하려면 민주당과의 연대를 제한성과 한시성을 넘어 일관되게 중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대중 운동을 확대하기보다 대중 운동에 브레이크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민주당은 1980년대 말 이래 거대한 대중 운동이 분출할 때마다 기성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충격 흡수 장치 구실을 해 왔다.
특히, 운동 명망가들, 총학생회 출신자들, 참여연대와 여연 등 주요 엔지오 지도자들, 주요 변호사들이 앞장서서 그런 구실을 했다. 이들이 바로 민주당이 민중주의(포퓰리즘)를 추구해 올 수 있게 해 주는 인재들이다.
이들은 ‘사회를 바꾸려면 운동만으로는 안 되고 정치권에서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런 당내 진보파들을 앞세워 아래로부터의 투쟁 잠재력을 길들이려 하고 체제를 반대하는 좌파들에게 허무감을 주는 효과를 내고자 했다.(본지 406호에 실린 최일붕의 ‘이재명을 찍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민주당 정치를 지지하는 것은 안 된다’를 보시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민주당 진보파들이 민주당을 개혁하기는커녕 기성 정치 체제의 일부가 되는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비판과 냉소도 만만치 않다. ‘386’ 운동권과 주요 엔지오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이 위선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곤 한다.
민주당 견인론은 투쟁을 강조하는 경우 아마도 민주당 진보파의 이런 한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민주당은 그 성격상 결코 서민층(노동계급이 다수를 차지하는)의 이해관계를 진지하게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모할 수 없다. 민주당 견인론은 민주당이 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감에 근거하는 것이다.
윤석열에 맞서 투쟁하면서도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대중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민주당이 껄끄러워하는 쟁점들(이윤을 잠식하는 사회적·경제적 요구 등)을 포함하면서 윤석열에 맞서야 한다.
이런 독립적인 대중 투쟁이 최근 한국 역사에서 진보적 변화를 가능케 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런 투쟁들이 벌어질 때마다 민주당은 행동하기를 거부하거나 기껏해야 미온적이었다.
투쟁하는 민주대연합?
투쟁을 통한 민주당 견인론은 민주대연합(역사학의 용어로 민중전선) 전략의 한 형태다.
민주대연합은 국민의힘 등 수구 적폐 세력에 대항해 일부 친자본주의 정치 세력(민주당)까지 포함한 모든 민주진보개혁 진영의 대연합을 이루자는 전략이다.
다만, 노동계 정당들과 민주당이 상층에서 선거 협약을 맺는 방식과 동시에, 기층 투쟁을 통한 민주당 압박·견인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대연합의 좌파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중엽 프랑스 사회당의 좌파인 마르소 피베르는 이를 “투쟁하는 민중전선”이라고 불렀다. 피베르는 노동자들 속에서 ‘혁명적 행동위원회’ 운동을 벌였다.
그와 동시에 피베르는 민중전선 정부를 견인하겠다며 정부에도 참여했다.
프랑스 민중전선 정부는 사회당과 자유주의자들에 정치적 기반을 둔 급진당이 공동으로 구성하고, 공산당은 민중전선 정부에 부담을 주지 말라는 스탈린의 지령에 따라 정부 밖에서 정부를 지지하고 있었다.
1936년 공장 점거 운동이 고양되자 급진당은 겁을 먹었고, 공산당과 사회당은 급진당과의 민중전선 정부를 유지하려고 노동자 점거 물결을 억눌렀다.
공산당 대표 모리스 토레즈는 “파업을 시작했으면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며 투쟁에 제동을 걸었다.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인류)는 “공산당은 질서를 뜻한다”라는 표제를 실었다.
피베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정부 수반인 레옹 블룸의 홍보 보좌관이 됐다.
그래서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는 이렇게 꼬집었다. “마르소 피베르는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혁명적 투쟁에 찬성하면서도 … 쓰레기 같은 국수주의자와도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가르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