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파시즘을 갖고 불장난을 하는 서구 극우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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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국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의 난민 공격은 극우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브래버먼의 이 공격이 더 큰 위험의 일부라고 지적한다.
영국 보수당 정부의 내무장관 수엘라 브래버먼은 지난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규제되지 않는 불법 이민은 서구 정치·문화 제도에 대한 실재적 위협”이라고 연설했다.
이것은 자유 시장을 지지하는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에서 소수 청중에게 한 연설이었다. 이 연설은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 같은 미국의 주요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브래버먼은 그저 총리 리시 수낙의 보수당 대표 자리를 뺏겠다는 야심으로 입에 발린 소리를 한 게 아니었다.
브래버먼은 이미 그녀 자신과 우익 황색언론들이 고약하게 만든 이민 정책 논쟁의 지형을 결정적으로 극우 쪽에 유리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다.
브래버먼은 최근 유럽으로 오는 이민자들의 규모와 파괴적 영향을 터무니없이 부풀리고는 다음과 같은 핵심 주장을 했다. “문화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폭이 크면 기존 문화가 희석되고 결국 사라져 버릴 것이다.”
사실상 극우의 “대교체” 음모론을 공식 지지한 것이다. 이 음모론은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유럽과 북미에서 백인을 소수 인종으로 만들려고 이민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브래버먼은 1951년 유엔난민협약도 비난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 작성된 이 협약의 취지는 나치 독일이나 파시스트 치하의 이탈리아 같은 폭정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지 못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브래버먼은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6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생겼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캅카스 지방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 거의 전부가 아제르바이잔에 강제 합병되는 것을 피해 아르메니아로 피신했다.[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이지만 인구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계이다. 두 나라가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할 때부터 분쟁 지역이었고, 아제르바이잔은 자치권을 인정해 왔다. ─ 편집자]
브래버먼은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는 이유가 대개 빈곤임을 간단한 언급으로나마 인정한다. 그러나 그 빈곤이 미국기업연구소 같은 곳들이 부추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세계적으로 증대한 심각한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한 것임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프리카의 많은 곳들 같은 곳에서 생활 수준이 너무나 열악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차라리 살던 곳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를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의 하나다.
브래버먼은 난민법을 현대화하겠다고 떠들면서도,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성차별적인 극우 청중에게 이렇게 구애한다. “단지 동성애자이거나 여성이어서, 출신국에서 당할 차별이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난민으로 보호받을 자격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난민 체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극우의 세계적 공세
브래버먼은 영국에서 난민 공격 수위를 가차없이 높이면서 극우의 세계적 공세에 동참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조만간 선거 승리 1주년을 자축할 것이다. 멜로니는 “불법” 이민을 저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그 수는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12만 8600명에 이르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 6만 6200명의 갑절이다.
리비아에서는 경쟁 정부들의 전쟁과 데르나 시(市)의 끔찍한 홍수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중해 너머 유럽으로 내몰고 있다.
멜로니는 유럽연합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멜로니의 부총리이자 경쟁자인 마테오 살비니는 프랑스의 파시스트 지도자 마린 르펜과 손을 잡고 멜로니보다 더한 우익이 되고자 한다. 살비니는 이민 증대가 “전쟁 행위”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음모론자가 아니지만 숙명론자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일은 기존 방식을 따르지 않는 현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누군가 강력히 바라고 조직하고 계획하고 돈을 댄 일일 것이다.”
한편 다가오는 폴란드 총선은 이미 고약한 이민 정책을 펴고 있는 현 여당 법과정의당(PiS)을 더 우경화시키고 있다.
이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든 그 정당은 유대인·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성차별적인 연방당의 캐스팅 보트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연방당은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 난민 100만 명의 입국을 허용한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로써 지금은 다소 고립된 신세인 유럽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 헝가리 총리 오르반 빅토르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다.
오르반은 자신의 동맹자인 슬로바키아 전 총리 로베르트 피초코를 도우려고 이민자들이 헝가리를 거쳐 슬로바키아로 입국할 수 있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피초코의 정당 스메르당은 지난주 9월 30일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6년 총리 시절에 피초코는 슬로바키아에서 “무슬림 이민자를 단 한 명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의 다니엘 헤게뒤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중부·동부·남부 유럽에서 반(反)자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들로 이뤄진 중심축이 더 성장할 수 있다. … 폴란드에는 권위주의적 심층 국가가 고착돼 있다.”
트럼프
하지만 극우가 이민 문제를 무기로 삼는 것은 유럽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브래버먼은 자기 연설에서 민주당 소속의 뉴욕 시장 에릭 애덤스의 말을 인용한다. 애덤스는 “이민자 위기가 뉴욕시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 봄 이래로 11만 8000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뉴욕시로 들어왔다. 부분적으로 이는 공화당 소속의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벗이 추진한 정책의 결과다. 〈뉴욕 타임스〉는 애벗과 그의 부주지사를 “텍사스주 최근 역사에서 가장 강경하기로 손꼽히는 우경화를 추진한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애벗은 미국 남쪽 국경을 넘어 텍사스로 건너온 사람들 1만 5800명을 버스에 태워 뉴욕시로 보내 버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썼다. “애벗이 뉴욕으로 수출한 위기는, 한때 서로를 믿었던 민주당의 동맹자들이 일관된 대응을 내놓는 데서 고전하는 가운데 서로를 비난하게 만들었다.
“이는 또한 전국민의 이목을, 공화당이 묻어 버리고 싶은 쟁점인 임신중지권 문제에서 공화당이 선호하는 쟁점인 이민 문제와 남쪽 국경의 혼란상으로 돌렸다.”
애벗은 2021년에 주지사 재선에 도전할 때 도널드 트럼프의 공식 지지를 받았다. 애벗은 트럼프가 공약했던 국경 장벽을 [멕시코와 접한] 국경에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한편, 트럼프 자신은 숱한 소송에도 불구하고 2024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의 나머지 주자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보다 앞서고 있다.
트럼프가 재선될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이며, 이는 서방 제국주의의 결속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다차원적 위기
브래버먼은 “경제학적·인구학적” 현실을 근거로 들지만, 선진 자본주의 경제가 감당 못할 “이민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난민이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유럽의 부국들과 미국은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충분한 자원을 그들을 지원하는 데로 돌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과거의 이주 경험이 거듭 보여 줬듯이, 새롭게 유입된 이민자들은 이들을 수용하는 사회를 물질적·문화적으로 풍요롭게 한다.
두 세기 전 최초의 산업혁명 이래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저렴하게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인구를 공급하기 위해 이민 물결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카를 마르크스가 1860년대에 포착했듯 이런 구조적 현실은 ‘정주’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의 경제적 경쟁이 인종 간 적대로 바뀔 수도 있는 위험을 낳는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7~2009년 금융 공황으로 선진국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중국으로까지 번진 경기 침체와, 가속되는 기후 재앙, 증대하는 미·중 간 제국주의 갈등이 결합되고 있다.
바로 이 다중 위기가 사람들을 국경 너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응해 지배계급 정치인들은 세계적 생계비 위기 등이 낳은 대중의 분노를 이민자들에게로 전가하고 있다.
브래버먼이 수낙을 우경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낙은 수낙대로 보수당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이주민 적대를 부추겨 왔다.
정부 안의 극우든 거리의 극우든 이들에 맞선 정면 대결이 필요하다.
이주민·난민에 대한 연대를 최우선으로 삼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 그러나 브래버먼·멜로니·트럼프 같은 자들의 공세에 맞선 유일한 적절한 대응은 계급 정치다.
다시 말해, 극우가 이용하려는 분노를 그것의 진정한 근원, 즉 자신의 부와 이윤 체제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용자 계급에게로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2022년 봄부터 영국 전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임금 투쟁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새 세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파업이라는 무기를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효과적 행동은 국적·피부색·종교 등의 차이를 모두 뛰어넘는 계급 연대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마르크스가 아일랜드 문제에 관해 주장했듯 노동자 투쟁은 착취를 지탱하는 제국주의·인종차별에 맞선 국제적 투쟁으로 발전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