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중부·동부 유럽 국가들의 반러시아 연대가 약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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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반(反)러시아 연대가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시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캘리니코스는 전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서방에서 나오는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는 중부·동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의 주도권을 장악해서 유럽연합을 러시아에 대항하도록 결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늘 과장이었다. 유럽연합의 세 주요 창립 회원국인 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여전히 유럽연합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신화가 이제 무너지고 있다. 지난주 폴란드 총리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폴란드는 동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유럽연합에서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고 경제도 성장해 왔다. 지난 두 세기 거의 내내 폴란드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았고, 그래서 폴란드에서 러시아 비난은 매우 손쉬운 정치 노선이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 앞장서 왔고,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입국을 허용했다.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국방 예산을 국민총생산의 4퍼센트 수준으로 늘리려 애쓰고 있는데, 이는 나토가 정한 목표치의 두 배에 달한다.
법과정의당 정부의 우파적 권위주의는 ‘독재 정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서방의 명분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잘 보여 준다. 법과정의당 정부는 법관들을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과 마찰을 빚고 있다.
친기업 언론 〈블룸버그〉의 지적처럼, 폴란드 정부는 “포퓰리즘적이고, 애국주의적이고, 이주민에 적대적이고, 유럽연합에 회의적이고, 의심의 눈초리로 이웃 나라들을 바라본다. 그런 폴란드 정부가 유럽연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핵심적 구실을 해 왔던 것이다.”
폴란드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갈등은 지난 7월 블라디미르 푸틴이 흑해 곡물 협정에서 탈퇴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가 중재한 그 협정에 따라, 막대한 곡물을 생산하는 우크라이나는 곡물을 바다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곡물
〈워싱턴 포스트〉는 이렇게 보도했다. “주되게 러시아의 대풍작 때문에 밀 가격은 지난 2년 새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 한편, 농업은 우크라이나 경제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외화 벌이 수단이다. 밀 수출이 막히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큰 타격이다.
“우크라이나의 막대한 수확량을 수출할 길은 이제 동유럽을 지나는 육로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그 길을 통한 수출은 과거에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의 국내 밀 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악화시킨 바 있다.
“2023년 5월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산 밀·옥수수·유채씨·해바라기씨가 불가리아·헝가리·폴란드·루마니아·슬로바키아로 수출되는 것을 금지했다. 유럽연합이 9월 22일 그 조처를 거둬들이자 그 다섯 나라 중 세 나라의 정부가 반발했다.”
우크라이나산 곡물과의 경쟁은 이미 지난봄 폴란드 농민의 저항을 촉발했다. 그리고 폴란드는 10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이주민 유입이다. 매우 인종차별적이고 이주민에 적대적인 법과정의당 정부는 동쪽 국경을 따라 장벽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법과정의당 정부는 유럽연합 정상회의 전 상임의장이자 이른바 “자유주의적” 후보인 도날트 투스크와 극우인 연맹당 모두에게서 임기 중 실적이 형편없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선거 이후의 세력균형 속에서 연맹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폴란드 정부의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은 연맹당의 공격을 받고 있고 다음해에 시효가 끝나도록 방치될 것이다.
러시아라는 불곰에 맞선 유럽의 연대는 폴란드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 사이의 설전 속에서 잊혀졌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폴란드가 러시아의 수작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모라비에츠키는 이렇게 응수했다. “다시는 폴란드인을 모욕하지 말라고 젤렌스키에게 말하고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갈수록 질질 끄는 ‘고기 분쇄기’처럼 돼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젤렌스키의 으스대는 태도는 갈수록 유럽연합 내에서 짜증을 자아낼지도 모른다.
온라인 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중부·동부 유럽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고 한탄했다. 폴란드와의 갈등 외에 또 다른 사례는 에스토니아 총리 카야 칼라스다. 젤렌스키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의 하나였던 칼라스는 현재 수세에 몰려 있다. 그녀의 남편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와 거래해 온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맞은편의 중부·동부 유럽에서 평소의 진부한 경제와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며 반(反)러시아 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