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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미사일 공격, 대인지뢰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고지전’에서 병사들이 자주 하는 대사가 있다. “휴전은 언제 된답니까?” 아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병사들이 참호 안에 웅크려 겨울 바람을 피하며 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을 넘긴 가운데, 전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혹독하고 잔인해지는 듯하다.

11월 18일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제 미사일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가했다. 잇달아 영국도 자신들이 준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가해 줬다.

서방과 러시아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이 오가며 전쟁이 더 위험해지고 있다. 미국제 에이태큼스(왼쪽)와 러시아제 오레시니크 미사일(오른쪽) ⓒ출처 (왼)미 육군/(오른)러시아 국방부

바이든은 내년 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해도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 제공은 러시아를 자극하며 확전을 부추기는 위험한 결정이다.

이 결정 직후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의 에이태큼스(ATACMS)와 영국의 스톰섀도 미사일로 러시아 브랸스크와 쿠르스크 등지를 공격했다.

이에 반발해 러시아는 핵교리를 개정하고, 11월 21일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 ‘오레시니크’를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 발사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러시아가 미사일을 발사한 목적은 공포를 심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리가 원한다면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러시아 측은 ‘오레시니크’ 미사일을 앞으로 계속 발사하는 등 공격을 확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상전과 드론 공격 위주이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는 전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상에서도 격돌이 격화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종전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빼앗으려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1월 25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의 전투가 근래 들어 최고조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군이 병력을 보충해 진격하고 있고, 우크라이나군도 정예 병력을 투입해 점령한 영토를 사수하려고 애쓰면서 양측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소모전 양상이 격화되는 가운데 전체 전황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쿠르스크의 절반 이상을 수복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달 동안 러시아는 공격을 강화했고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전선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2022년 이후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진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병력 부족으로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고 시인했다.”(〈파이낸셜 타임스〉 11월 13일 자)

올해 러시아군은 총 2700제곱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우크라이나 땅을 더 점령했다. 서울 면적의 4배가 넘는 크기다. 우크라이나의 한 안보 연구소는 12월이 되면 동부 전선이 서쪽으로 30~35킬로미터 더 밀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전이 연상되는 우크라이나 전쟁 ⓒ출처 우크라이나 군

러시아군도 병력 보충과 병참 지원에 어려움이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필요한 병력의 3분의 1만 배치된 부대가 허다하고, 전선의 병사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2022년 봄에 입대한 한 우크라이나 고참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남자들이 이제 입대를 사형 선고로 여기고 있어요.” 그 병사는 여태껏 휴가 한 번 가지 못했다.(〈파이낸셜 타임스〉 11월 13일 자)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음은 명백한 듯하다. 하지만 미국과 서방은 돈과 무기를 계속 보내고 있다. 러시아의 힘이 더 소모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11월 20일 바이든 정부는 대인지뢰가 포함된 2억 7500만 달러(약 3850억 원) 규모의 추가 군사 원조를 발표했다.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로 꼽히는 대인지뢰까지 보내 러시아군의 진격을 방해하겠다는 것이다.

23일 프랑스 외무장관도 “정당방위 논리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프랑스가 준 미사일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전 협상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히려 확전되고 있다. 그리고 동·서 제국주의의 힘겨루기 속에 이번 겨울 우크라이나 들판은 또다시 피로 물들고 있다.


전쟁 끝낸다는 트럼프 앞에 놓일 난관들

대선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물론 트럼프가 종전을 위한 구체적인 구상을 밝힌 적은 없다. 이는 실제 협상이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지난해 7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모두 압박해 협상 테이블에 앉히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는 ‘협조를 안 하면 더는 지원하지 않겠다’고 압박하고, 러시아에는 ‘협상이 성사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리겠다’고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의 역량이 우크라이나로 분산돼서는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제대로 상대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부통령이 될 JD 밴스는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만이 우크라이나보다 더 중요하다.”

미국 정치권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회의감이 커져 왔다. 도무지 승리할 전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래서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하자는 것은 트럼프만의 생각이 아니다. 11월 4일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포린 어페어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모든 영토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무장시키면서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협상하도록 압박하는 불편한 단계를 밟아야 한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영토 20퍼센트가 러시아에 의해 장악된 상태에서 종전은 서방 제국주의의 위신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다. 많은 미국 지배자들이 이 결과가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까 봐 우려한다. 미국 기성 정치권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자는 의견이 만만찮은 까닭이다.

따라서 ‘대선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의 처지는 다를 것이다. 그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신속하게 빠져나오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미국 제국주의의 체면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

그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이다. 즉, 협상이 벌어져도 미국과 유럽 강대국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를 하는 데는 난관이 많을 것이다.

당장 트럼프 측근들은 전선을 그대로 동결해 전쟁을 끝내되 우크라이나를 중무장시키자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가 서방에 의한 우크라이나 중무장을 얼마나 받아들일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노력이 되레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인터뷰가 보여 주듯이, 트럼프는 상대를 협박해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자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해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고려 중단하라

11월 초 윤석열 정부가 나토에 참관단으로 보낸 군인 5명이 우크라이나에 갔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그 참관단 군인들 중에 탄약 정책 담당관이 있다고 폭로했다. 군인 파견의 목적이 우크라이나로의 무기 제공 논의라고 의심받는 까닭이다.

정부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을 빌미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의향을 밝혀 왔다. 그렇지만 파병설을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는 지금껏 제시한 적이 없다.

11월 7일 윤석열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여도에 따라 단계별로 지원 방식을 정하겠다며, “무기를 지원하면 방어 무기부터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들도 북·러 군사 협력의 진전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하겠다고 해 왔다.

지난해 7월 젤렌스키를 만난 윤석열 ⓒ출처 대통령실

그러나 ‘방어 무기’와 ‘공격 무기’를 구분하며 방어 무기는 덜 위협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상황에 따라 ‘방어’ 무기는 얼마든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가 된다. 사람의 발목을 자르는 대인지뢰도 방어 무기로 분류되고, 전투기 조종사를 해치는 대공 미사일도 방어 무기로 불린다.

물론 트럼프가 재선되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한 국내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자, 최근 정부 관계자들의 언행이 다소 신중해지기는 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려는 것을 계속 경계해야 한다. 11월 22일 국가안보실장 신원식은 러시아가 평양 방공망을 보강할 장비와 대공 미사일을 북한에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의 특사가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에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미 한국의 대공 무기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런 만큼 우크라이나 특사가 한국에 소위 ‘방어’ 무기 지원부터 요청하고 논의할 공산이 있다.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계획에 반대해야 한다. 이는 제국주의간 갈등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한반도에서도 긴장을 높이는 위험한 선택이다.


서방과 한국 정부 반대가 우선이다

11월 20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을 넘겼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서방 제국주의의 대리전 성격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여전히 러시아의 침략 전쟁으로만 보는 곳도 있다. 사회진보연대가 그런 사례다. 사회진보연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도 지지한다. 지난 10월에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윤석열 정부의 무기 지원 움직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상 한국 정부의 서방 제국주의 지원을 지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성격이 갈수록 분명해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 왔다. 최근 촛불행동은 매주 여는 집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계획과 참관단 파견을 꾸준히 비판한다.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10월 하순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펼치고 있[고] … 이런 제국주의 전쟁에 우리가 끼어 들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물론 그는 러시아를 제국주의적 국가로 보지 않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와 서방을 “동일한 저울에 올려” 비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김민웅 대표가 친서방 국가인 한국에서 서방 제국주의와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분명히 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다.

무엇이 주된 것인가?

반면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는 김민웅 대표의 이런 주장이 “무지한 소리”이고 그와 같은 “민족주의적 선동가들”에게 “너무 경멸감이 들어서 ⋯ 상종도 하지 않”으려는 감정이 든다고 힐난했다.

그러나 홍명교의 견해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서방과 한국 정부에 대한 반대를 우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1월 5일 홍명교는 플랫폼C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에서 북한의 러시아 지원과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둘 다 비판한다. 그러나 그 글에는 서방과 윤석열 정부의 지원을 반대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이 언급되지 않는다.

이는 홍명교 자신과 플랫폼C의 실천과도 관련 있다. 2022년 전쟁 발발 직후 플랫폼C는 참여연대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 평화행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 연대체는 ‘국제 사회’의 중재와 협상을 촉구하면서도 사실상 러시아를 규탄하는 데 좀 더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서방 제국주의와 자국 정부에 우선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