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쿠르스크 배치설, 전쟁 프로파간다, 확전 위험:
정부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계획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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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요한 최신 사건은 북한군의 러시아 쿠르스크 파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한군이 쿠르스크에 파병됐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군복과 러시아제 무기를 지급받고 러시아 위조 신분증을 발급받은 “1만 2000명의 북한군”이 정말 쿠르스크 전선으로 갔을까?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북한군 파병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전투병 파병을 확인해 주지는 않았다.)
이 ‘정보’의 유통 흐름은 다음과 같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앞장서서 주장과 평가를 내민다. 윤석열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확인한다. 그리고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 내에서 북한군 동선을 확인한다. 러시아는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
그러나 파병 ‘증거’라고 내놓은 사진과 영상은 촬영 주체, 일시, 장소 등이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도 미국 등 서방 지도자들은 북한군의 쿠르스크 배치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10월 28일 북한군 쿠르스크 배치 소식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북한군 부대들이 쿠르스크 지역에 배치됐다는 걸 확인해 줄 수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10월 28일 윤석열과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군이 … 파병[되고] … 북한이 러시아에 점점 더 많은 살상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심각한 확대를 의미하고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마침내 미국 국무부 장관 앤터니 블링컨이 10월 31일 “북한군 8000명이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으로 파병됐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군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국 무기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쟁에서 프로파간다, 진실 은폐, 조직적인 거짓말은 늘 중요한 구실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2003년 2월 5일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라크가 생물‧화학‧핵무기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추정으로도 이미 100~500톤의 화학무기 재료를 보유하고 있다.”
한 달 반 뒤인 3월 19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 민간인 20만 명이 숨졌다(미군은 4431명 전사). 그러나 미국은 침공의 명분으로 댄 대량 살상 무기(WMD) 프로그램의 증거를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
파월은 2년 뒤 자신의 유엔 안보리 연설이 중앙정보국(CIA)의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개발 증거라는 것들은 모두 이라크인 망명자들이 만들어 내고 재활용한 추정과 가정들이었다.
북한군 파병설을 대북 압박에 이용하는 윤석열 정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보’의 출처는 국정원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군 파병설을 띄워 서방 “국제 사회”가 북한을 더욱 세게 압박하기를 원한다.
최근 들어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 6월 북·러 전략 동반자 협정이 체결됐다. 이 협정에는 상호 방위 지원 규정이 포함됐다. 푸틴은 북한과의 군사 기술 협력 심화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는 즉각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진작부터 우크라이나에 155밀리미터 포탄을 우회 지원해 왔다. 현재 육군 탄약정책담당관이 나토에 출장 가 있다.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 발표에 바로 “환영” 입장을 밝혔다.
10월 31일 한미 국방·외교 장관 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양국 장관들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규탄했다. 이 회의에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고한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했다.
한편, 남북 관계 악화로 인해 당장 남북한 접경 지역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우익적인 일부 탈북민 단체들은 (정부의 묵인 속에서) 대북 전단을 북한에 살포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해 오물 풍선을 남한으로 보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모든 확성기를 가동해 대북 심리전 방송인 ‘자유의 소리’를 재송출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 정부는 남한 무인기의 평양 상공 침범을 이유로 (사용되지 않던)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를 상징적으로 폭파했다.
진정한 우크라이나 전황
젤렌스키가 제시한 “증거”라는 것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을 살펴보면, 북한군의 쿠르스크 전선 파병설은 전쟁 프로파간다일 공산이 클 듯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김정은의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다. 푸틴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따름이다.
젤렌스키는 푸틴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겠다는 허황한 목표를 가지고 8월에 우크라이나군을 쿠르스크로 진격케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쿠르스크 면적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8월에 약 1300제곱킬로미터를 점령했지만, 지금은 약 600제곱킬로미터로 축소됐다.
러시아군 약 5만 명이 쿠르스크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실제 ‘전선’은 뚜렷하지 않다. 러시아의 주된 전투 양상은 전투기에 의한 폭격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 점령 지역을 수호이-34 전투기가 투하하는 활공 폭탄으로 공습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군 1만 2000명”이 쿠르스크에서 러시아를 위해 제공할 것은 별로 없다.
물론 병력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에 큰 문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의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러시아는 군대의 낮은 사기에도 불구하고(러시아 청년들은 불의한 전쟁을 위해 해외에 나가서 죽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매달 약 3만 명을 모병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토는 러시아군이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보다 병력 규모가 15퍼센트 더 커진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러시아군이 하루에 1200명, 한 달에 3만 6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고 추산했다(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 11월 1일 자).
따라서 북한군 1만 2000명을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한다 해도 약 열흘 치 사상자를 대체할 수 있는 규모다.(물론 러시아가 북한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인적 자원을 사실상 거의 소진했다. 전쟁 발발 초기와 달리 자원 입대자는 감소했고, 병역 기피 시도가 늘고 있다.
그래서 젤렌스키 정부는 지난 4월 징집 기피자 처벌을 강화하고 징집 대상 연령을 ‘27세 이상’에서 ‘25세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재소자도 징집하기 시작했다.
지금 젤렌스키의 유일한 희망은 “전쟁이 국제화”되는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을 넘어 전쟁이 확대되는 것 말이다. 젤렌스키가 “1만 2000명의 북한군” 정보를 계속 유포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지원을 반대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를 거듭 위협하지만 그저 우크라이나의 즉각적 패배를 막기 위해 돈과 무기를 끊임없이 보낼 뿐이다. 결국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보다 러시아의 소모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