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증보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 띄우며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하는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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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정부와 언론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을 보도하자, 한국 정부가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하고 북한과 러시아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한국 국방부는 최근 입장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 위해 북한군 파병설 띄우기에 나선 듯하다.
10월 3일 우크라이나의 언론들은 도네츠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러시아군 20여 명 가운데 북한군 6명이 포함됐다고 보도한 데 이어, 러시아군이 북한 병력으로 구성된 3000명 규모의 특별대대를 편성 중이라거나 북한이 러시아에 이미 1만 명을 보냈다는 등 우크라이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잇따라 파병설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정부 기관은 러시아 연해주 세르기예프스키 훈련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배치에 대비하는 북한 군인들이라며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북한 말투의 한국어가 들린다.
한국 정부와 언론들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했다.
국가정보원은 10월 18일 북한군 특수부대 1500여 명이 러시아 군함 등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사실을 정찰위성으로 포착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직후 윤석열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고, 21일에는 주한 러시아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우크라이나 정부가 제시한 파병 ‘증거’들의 진위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시한 동영상에서 북한 말투의 한국어가 들리지만, 정작 발언자의 입 모양이 촬영되지 않아 음성 편집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넘어가지 말라”는 등의 지시가 들리지만 화면 속 군인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어색하다. 이 때문에 “이 영상은 과거 러시아-라오스 합동훈련이 출처임이 확인됐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나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이 영상 속 군인들이 실제 북한군인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이 제시한 위성 사진도 실제 북한군 파병 사실을 입증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미군의 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이런 탓인지 한국·우크라이나 정부와 달리, 미국 등 서방 정부와 나토 등은 실제로 북한군이 파병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군 파병이 사실이라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말이다.
서방의 주요 언론들도 한국이나 우크라이나의 보도를 전달하고 있을 뿐 파병 사실을 확인했다는 보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반면, 러시아나 북한 측은 북한군 파병설을 “가짜뉴스”라고 일축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러시아군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극동지역에 북한 사람들이 들어온 사실은 확인됐지만, 대부대가 조직되고 있다는 징후는 자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 언론 MBN도 단독 뉴스로 “입국한 북한 관련 명단을 확인해 본 결과 군인 신분은 없었다”며, “북한군이 투입되면 30명당 1명꼴로 러시아 통역관이 필요한데 100명에 달하는 통역관을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러시아 소식통의 말을 보도했다.
이처럼 한국과 서방 정부, 우크라이나 정부가 확인되지도 않은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하는 까닭은 뭘까?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더 받아 내고자 하고, 북·러의 관계 개선을 못마땅해 하는 한국 정부도 여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일본 정부가 제안한 ‘아시아판 나토’ 구상에 대해 한국 정부는 기본 취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는데, 북한군 파병설은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러시아가 무기 공급을 위해 북한에 의존하는 것은 인도·태평양과 유럽·대서양간 안보가 얼마나 상호 연관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보건대, 북한인의 러시아 유입은 파병보다는 노동자 파견일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지난 6월 19일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을 체결했을 때,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은 예견된 일이었다. 북한의 외화 벌이에서 노동자 해외 송출은 매우 중요하고, 러시아 또한 건설업 등에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한국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이미 이렇게 예측했다.
“북한 노동자 파견은 러시아의 대북 경협에서 가장 핵심 사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국제 통신사 대표들과의 대화에서 북한 노동자 파견을 제재와 무관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러시아는 노동력이 필요하다. 인구와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위해, 또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4개 지역의 전후 재건을 위해 북한 노동자를 활용해야 한다는 러시아 사회 내의 요구가 최근 들어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현승수, ‘푸틴의 평양 방문과 러·북 관계 전망’, 통일연구원)
또,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북한은 노동자 송출 사업을 군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군인의 파견이더라도 실체는 노동자 파견일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점들은 상황을 과장하려고 애쓴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발언에서도 암시적으로 드러났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의회 발언에서 북한 인력들을 군인으로 특정하지 않고 ‘러시아 공장 대체 인력과 군 인력’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사실들을 한국이나 미국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파병설에 동조하며 동아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적 갈등에 적극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