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팔레스타인 해방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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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7월 영국에서 있었던 강연과 토론 정리를 녹취·번역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 인종청소를 전개하고 있는 지금, 이 강연은 인종청소의 역학과 팔레스타인 해방 전략에 관해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것을 넘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전략을 다뤄 보려 합니다.
소리 높여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그런 활동에 자긍심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혁명적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세 가지 사항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적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이 무엇이고, 이스라엘이 왜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오늘날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체제—역자]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아군을 알아야 합니다.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는 세력이 중동 수준과 세계적 수준에서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셋째,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주체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날마다 저항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개별적으로 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티파다”라고 불리는 거대한 항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 거대한 항쟁들은 팔레스타인인들 자신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힐끗 보여 줍니다. 최근에는 2021년 5월에 일어난 ‘단결 인티파다’가 그런 사례였습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위의 세 주제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적,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고 했죠.
이와 관련해 지난 2~3년 사이에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꽤 주류적인 단체들조차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를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하는 중요한 보고서들이 잇달아 발표됐습니다.
가장 먼저 발표된 것은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입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인권 단체의 하나죠. 그들은 이스라엘의 실상을 조사한 뒤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다음 앰네스티의 보고서가 있습니다. 앰네스티가 어떤 단체인지는 다 아실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권 단체의 하나죠. 그들도 이스라엘의 실상을 조사한 뒤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대단한 일입니다. 앰네스티 변호사들은 허투루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용어를 쓰는 것의 함의를 분명하게 알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인권 단체인 벳첼렘(B’Tselem)도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입니다. 오랫동안 급진 좌파와 팔레스타인 운동만이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라고 규정해 왔는데, 이제는 더 많은 주류 단체가 그 용어를 씁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의 어떤 모습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걸까요?
여러분이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이라면 여러분은 수많은 검문소 때문에 생활이 수시로 중단되고 차질을 빚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장을 보러 가든, 가족을 만나러 가든, 등하교를 하든, 출퇴근을 하든 그 모든 일이 이스라엘인 정착촌과 검문소 때문에 방해받는다는 거죠. 이것이 서안지구에서 나타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이 동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이라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강제 퇴거 위협에 시달릴 것입니다. 2021년 ‘단결 인티파다’가 시작된 셰이크 자라 마을도 그런 곳입니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인 정착촌 건설 시도 때문에 끊임없이 퇴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것이 동예루살렘에서서 나타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모습입니다.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 200만 명이 아주 좁은 땅덩어리에 갇혀 지내고, 이스라엘이 그곳을 드나드는 식량, 물, 전기, 물자 등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대부분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국제 구호 단체에 의존해서 생존합니다. 이것이 가자지구에서 나타나는 아파르트헤이트입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 다시 말해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역사적 팔레스타인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이라면 차별적인 법률에 줄곧 직면하고 콩나물시루 같은 주거 지역에 사는 데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아파르트헤이트는 자신의 고향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
여기서 물어야 할 물음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왜 이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사악하다,” “우파 정부이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 다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국가 자체의 성격이 문제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이스라엘의 기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흔히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나 ‘적대자들에게 둘러싸인 피난처 국가’로 일컬어지지만 그것은 신화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존재가 제국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극소수의 지지를 받은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유대인만의 조국을 만들겠다는 정치 운동인 시온주의가 중동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갖는 이해관계와 딱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모로코나 이집트 등지에서는 식민 지배에 맞선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중동에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지켜 줄 경비견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그저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진보’ 신문 〈하아레츠〉가 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경비견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미국과 영국의 바람을 거스르면서 아랍 국가들을 적대하는 정책을 펼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 반면, 어떤 이유에서든 서방 열강이 모르는 체하기를 선호하는 때가 오면, 이스라엘은 정도를 넘어선 결례를 서방에 범한 이웃 국가들을 응징하는 일을 듬직하게 맡을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가 ‘이스라엘은 경비견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또다른 점은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려면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거 쫓아내는 인종청소를 벌여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국 과정에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테러가 자행됐습니다.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 인종청소》[국역: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교유서가, 2024]라는 훌륭한 책에서 팔레스타인인 인종청소의 역사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다들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이것은 일란 파페나 저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모세 다얀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 마을은 아랍인 마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당신들은 그 아랍인 마을들의 이름조차 모를 것이다. … 지도책도 없고 … 아랍 마을들도 거기 없기 때문이다. … 원래 아랍 사람들이 없던 곳에 건설한 터전은 우리 나라에 한 군데도 없다.”
이렇듯 그들도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죠. 모든 마을이 어느 특정 시점에는 셰이크 자라와 같은 처지였던 것입니다. 모든 동네가 한때는 다 팔레스타인 마을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에는 엄청나게 잔혹한 강제력과 테러가 수반됐습니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1948년 데이르 야신 학살에 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밤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마을을 완전히 파괴했고 남성, 여성, 아이 107명을 죽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 내고 땅을 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최소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역사를 통해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애초 건국될 때부터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와 긴밀히 결합돼 있었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청소, 강탈, 억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치경제학
그것이 오늘날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잔혹한 건국 역사와 별개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어떻게 작동할까요?
단지 1948년에 벌어진 일을 이유로 오늘날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규정하는 게 아닙니다. 저뿐 아니라 아까 언급한 각종 보고서들과 많은 사람들이 최근 지적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의 작동 방식이 예나 지금이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말하는 “나크바”(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는 1948년에 벌어진 인종청소를 가리키는 말인 동시에 재앙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크바는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재앙입니다.
왜 그런지 알려면 이스라엘 국가의 정치경제학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경제의 특징 하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 부문에서 배제돼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1948년 이후 미국이 해외 원조로 이스라엘 경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체결한 양해각서라는 것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당이 집권하든 높은 수준의 지원을 이스라엘에 계속 제공해야 합니다. 유효기간이 20년인 것도 있습니다. 그 동안에는 누구도 못 건드리는 정책이라는 거죠. 미국의 지원 규모는 막대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경제는 최첨단 기술 중심의 고도로 군사화된 경제로 변모했습니다. 이스라엘만큼 안보, 전쟁, 군사, 사이버 보안 부문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안보 위협 요소이므로 그들은 경제의 핵심 분야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런 핵심 분야에서 어떤 일자리도 얻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탓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용감하게 저항하고 때로는 파업을 벌여도 그 경제적 파장은 제한적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용기를 깎아 내리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팔레스타인인들이 경제의 핵심 부문에서 배제돼 있어서 경제적 파급력이 막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다른 점입니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하에서 경제를 지탱한 것은 남아공의 흑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흑인들에게는 거대한 경제적 힘이 있었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일어난 거대한 대중 파업 운동은 결국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종식시켰습니다. 흑인 노동계급이 조직화해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이와 다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경제에서 배제하는 것이 인종 분리 체제의 한 요소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의 둘째 요소는 인종청소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종청소는 1948년에 75만 명 혹은 그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국가의 바탕이 된 사상을 보면 됩니다. 그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유대인 가족이 있는 사람은 출신지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48년에 쫓겨난 팔레스타인인과 그들의 자손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배타적 민족 국가가 되는 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근본 목표입니다. 이스라엘은 2018년에 이를 법률로 명문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유대인만의 국가이고, 국경 너머 요르단과 레바논 등지에서 평생을 난민으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반면, 유대인 조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른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 성격에 따라 이스라엘에서는 1948년 팔레스타인 인종청소 이후 새 정착자들의 유입 물결이 거듭 일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소련에서, 1960년대에는 미국 등지에서 많은 정착자가 왔고, 특히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에는 옛 소련에서 정착자가 많이 유입됐습니다. 매 정착자 유입 물결은 이스라엘 국가를 강화했고, 인종청소를 강화하고 지속하라는 압력을 낳았습니다.
새 정착자들은 그저 쫓겨난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없는 ‘귀환권’을 행사한 것일 뿐 아니라, 자신들이 살 공간을 마련하려고 정착촌을 확대해 기존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을 더 먹어들어갔습니다.
왜 이스라엘에서는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 퇴거시키고 정착자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는 것일까요? 이스라엘로 새 정착자들이 들어오고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확장하는 데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인종청소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내 정치 스펙트럼에서 가장 극우적인 정치인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소련이나 동유럽에서 온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일절 반대하고 정착촌 확대를 가장 강경하게 지지하는 것도 이들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는 시온주의의 핵심 모순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어떤 모순이냐 하면, 이스라엘은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중동에서 서구적 가치를 지키는 모종의 보루를 자처하지만, 건국 자체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억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없었고, 팔레스타인인 억압 없이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런 모순 때문에 지난 몇 달 사이 이스라엘 사회는 커다란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 우파는 대법원을 약화시켜 더 빠르게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정착촌을 확대하기를 바랍니다. 반면 시온주의자들 가운데 소위 ‘자유주의자’들은 대법원의 권한을 지키고 싶어하죠. 그래야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울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회가 겪는 위기는 시온주의의 핵심 모순과 직결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단지 이스라엘 우파 정부나 네타냐후 정부 인사들만 문제인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이스라엘이 생겨날 때부터 그 국가의 DNA에 아로새겨진 그 국가의 본질입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탈과 억압에 바탕을 두고 있고 거기에 의존하는 국가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략
이것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운동에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의 적이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 적은 미국한테 천문학적인 액수의 지원을 받고 고도로 군사화돼 있는 이스라엘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입니다. 그들의 힘에 관해서는 굳이 더 말씀드릴 필요 없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들의 저항에 관해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계속 저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놀랍다는 말이 뜻밖이라고 얕잡아 보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곳 영국에서 벌이는 투쟁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국가에 맞서서 벌이는 투쟁을 비교해 보세요. 전 세계 언론이 그들을 외면하고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지 않을 때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저항하고 있고, 굴복하지 않고 있고,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고 있음을 거듭 우리에게 상기시켜 줬습니다. 정말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투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른바 ‘평화 프로세스’와 ‘두 국가’ 방안의 본질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이 속임수이고 해결책이 못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이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롭게 지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그 역사적 순간을 계기로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돼 ‘두 국가’의 공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중단되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됐습니다.
정착촌 건설과 토지 강탈이 더 가속화됐습니다. 1967년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의 변천을 나타낸 지도를 보면, 팔레스타인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 대부분은 지난 30년 사이에 잠식된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팔레스타인인 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슬로 협정을 “항복 문서”라고 일컬었습니다. 오슬로 협정은 유엔의 승인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됐습니다.
그런 만큼 평화 협상이나 유엔 같은 기구나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기대를 거는 것은 무망하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가 보여 준 바이기도 합니다. 오슬로 협정 이후 세 차례의 인티파다가 일어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슬로 협정과 ‘두 국가’ 방안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오히려 명문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제기됩니다. ‘두 국가’ 방안도, 평화 협정도 소용없다면 과연 무엇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저의 고려 사항은 첫째, 팔레스타인 난민의 돌아갈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결코 정의로운 방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나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인이 지금 1000만 명 넘게 있습니다. 1948년에 쫓겨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수많은 후손들이죠.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일부는 난민촌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방안도 해법일 수 없고, 그런 방안은 해법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저는 “범죄”라는 표현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둘째, 팔레스타인인에게 이스라엘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인이 주택과 의료, 직업, 교육 등에서 법적으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하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가 유지돼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두 조건이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팔레스타인인들이나 그들의 저항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입니다. 배타적 유대 국가라는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과,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의 동등한 권리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스라엘을 떠받쳐 주고 있고 중동 평화의 최대 장애물인 제국주의 지배 질서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마어마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단일 국가가 이뤄질 때에만 중동의 평화가 가능할 겁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실현할 힘
그렇다면 문제는 그런 대안이 어떻게 가능하고 그런 대안의 함의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답하려면 먼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용기가 정말 대단한 것임을 다시 짚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혼자 싸우게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싸우는 상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가장 군사화 돼 있고,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장 저항만으로는 해방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저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할 권리를 지지합니다. 셰이크 자라처럼 공격받는 마을이 있으면 저는 그에 맞선 저항을 무조건 지지할 것입니다. 저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지합니다.
그렇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홀로 싸운다면 승리하기 힘든 싸움이라는 것도 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막강한 상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저항할 때 그들을 지지하고 진정한 연대를 건설할 세력이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중동 지역의 역학을 이해해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학의 하나는 제국주의의 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계급 역학입니다.
아까 저는 팔레스타인인 노동계급이 이스라엘 경제에서 배제된 탓에 경제적 힘이 제한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 동안 팔레스타인인 노동계급은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힘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특히 2021년 5월 ‘단결 인티파다’ 때 여러 번 총파업이 일어났죠. 팔레스타인에서 총파업 지침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많은 경우 팔레스타인 당국(PA) 등에서 상명하달식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나 ‘단결 인티파다’ 때는 달랐습니다. 당시 활동가들이 쓴 글을 보면 당시의 총파업은 아래로부터 시작됐고 어느 정도 파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이 경제에서 배제된 탓에 그 엄청난 용기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뒤흔들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관건은 팔레스타인 내의 투쟁, 즉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의 투쟁이 더 광범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노동계급의 투쟁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축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그 지역 지배계급들의 지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독재자 엘시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죠. 엘시시는 말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을 배신하고 이스라엘과 협정을 맺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그렇죠. 모든 정권들, 심지어 팔레스타인인들의 편을 자처하는 정권들까지도 실제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제국주의 지배 질서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지난 10~15년 사이에 혁명과 거대한 항쟁들이 잇달아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수단에서는 지난 3년 동안 혁명이 일어났고 알제리에서도 거대한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레바논과 이라크에서도 [2019년에—역자] 거대한 항쟁이 일어났죠. 뉴스에 잘 보도되지 않지만 크고 중요한 항쟁들입니다. 한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같은 나라들에는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그 나라 노동계급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동에서 일어난 거대한 투쟁들은 아랍 노동계급이 자국 지배자들을 끌어내리는 데까지 나아가면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진정한 연대를 건설할 수 있음을 힐끗 보여 줬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다들 2011년 아랍의 봄을 기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나 아랍 세계 전체로 혁명이 들불처럼 번져 이스라엘을 이롭게 하던 아랍 독재자들을 내쫓아 버렸죠. 그러면서 서로 한통속에 있는 부패한 독재자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스라엘 주변국들을 장악한다면 어떤 일이 가능한지를 힐끗 보여 줬습니다.
2011년 혁명 당시 이집트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기 위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여러 차례 라파흐 국경을 개방했습니다. 그것은 중동의 운동이 팔레스타인인들과 가장 가까이 연대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중동에서 그런 반란들이 일어나는 데에서 줄곧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에 관한 멋진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감옥에 있는 2011년 이집트 혁명의 주요 활동가인 알라 압델 파타는 그 혁명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카이로가 해방되던 날 우리는 예루살렘이 가깝게 느껴졌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카이로를 거치는 것 같았다. …
“내가 속한 세대는 어릴 때 제2차 인티파다를 보며 자랐고 팔레스타인 연대 학생 시위를 계기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 운동이 또 다른 운동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그 세대가 혁명을 이끌었다. 그렇다. 이 혁명의 뿌리는 제2차 인티파다와 연대하는 시위에 있다. 우리는 아랍인이고 팔레스타인은 항상 우리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아랍의 봄을 일궈 낸 혁명가들의 핵심 네트워크가 팔레스타인 연대 투쟁에서 형성됐던 것입니다.
이는 다른 해법과 전략을 모색할 때, 중동에서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 싸우는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단지 자국 지배자들을 몰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지배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와 함께 이스라엘 국가를 무너뜨리는 것에 진정한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관건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2011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집트 혁명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국에 있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국제 연대가 중요합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광범한 시도가 있습니다. 켄 로치, 제러미 코빈 등이 공공연히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연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시온주의 반대는 유대인 혐오가 아님을 강조해야 합니다. 유대인 혐오는 실재하는 위협입니다. 유대인 혐오를 없는 문제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혐오가 늘고 있습니다. 유대인 혐오자들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있고, 프랑스의 마린 르펜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도 유대인 혐오자들입니다. 스페인의 극우 정당 복스(Vox)와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도 유대인 혐오자들이 있습니다. 유대인 혐오는 극우에서 오는 것입니다.
시온주의 반대는 이스라엘이 하는 일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점을 계속 지적해야 합니다.
각종 기관에서 BDS(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를 채택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지금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죠. 이스라엘 보이콧 시도를 차단하고 우리에게 침묵을 강요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노동당원인 사람은 그러다 당에서 쫓겨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것과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대표—역자]와 연대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요? 그리 어렵지 않은 질문이죠.
이처럼 연대는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혁명적 전략을 모색해야 하고 그러려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억압이 중동의 제국주의 지배 질서 전반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제국주의 지배 질서라는 감옥의 문을 열어 제치는 데서 핵심 열쇠인 것이 바로 팔레스타인입니다.
그 점을 명확히 이해할 때, 우리는 연대를 건설할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을 가져올 대안을 위해서도 투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토론 정리
먼저, 남아공에 관한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남아공과 이스라엘의 아파트르헤이트를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더 나빴는지 따져 보는 것은 그다지 유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아공 흑인의 경험과 팔레스타인인의 경험, 둘 다 너무나 끔찍한 억압이고 우리는 둘 모두 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용기를 찬양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제가 발제에서 하고자 한 말은 남아공에서는 경제가 조직되는 방식 때문에 남아공 흑인들에게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설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파업을 벌여서 남아공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 변화를 강제한 힘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남아공의 기업가들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가 바뀌어야 해. 백인만의 지배는 지속될 수 없어.” 그것이 백인 지배자들이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협상에 나서고 그 결과 ANC가 집권하고 많은 대기업이 이를 지지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들에게는 그런 무기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용감하지만 이스라엘 경제의 구조 때문에 팔레스타인들은 남아공 흑인들과 달리 경제를 마비시킬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경제가 미국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지원은 사이버 보안, 아이언 돔, 군사 부문 등 온갖 부문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사이버 보안 부문에서 이스라엘은 세계적인 수출국입니다. 미국이 그 부문 전반에 자금을 대주어 이스라엘의 수출 능력을 육성한 셈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한 상황입니다.
남아공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한쪽이 더 어려운 처지라거나 어느 쪽 사람들이 더 취약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두 아파르트헤이트의 속성이 다르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저항 이상의 더 광범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영웅적이고 감동적인 저항은 중동의 더 큰 힘과 만나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파업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파업이 레바논이나 시리아, 수단에서 벌어지는 파업과 연결된다면, 진정한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둘째, 종교에 관해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는데, 예루살렘에서 유대인과 무슬림, 그리스도인과 무슬림은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00년 동안 예루살렘에는 세 종교가 공존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기 동안 평화롭게 공존했고, 문제가 생긴 때는 식민 지배나 제국의 정복을 받을 때였습니다. 십자군 전쟁도 명백히 그중 하나였죠. 이스라엘의 건국도 분명 종교 간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이것은 영국이 아일랜드에서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분열을 부추긴 것과 유사합니다. 제국은 언제나 종교의 차이를 이용해 피지배자들을 반목하게 만듭니다. 이간질해서 각개격파하라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유명한 말도 있죠.
다음으로 유대인 혐오에 관해 말하고 싶은데, 저는 우리가 이 쟁점에 관해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와 관련된 비판을 삼가지 않겠습니다. 유대인 혐오에 대한 입장이 형편없는 일부 좌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유대인 혐오 세력으로 매도한다고 해서 유대인 혐오를 문제가 아닌 것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 혐오는 실재하는 위협이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를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유대인 혐오는 오늘날 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좌파 내의 유대인 혐오에 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시위나 모임에서 누군가 유대인 혐오 발언을 한다면 저는 못 본 체하지 않고 문제 제기하고 논쟁할 겁니다. 여러분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설사 보수 언론이나 노동당 우파가 이 행사를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유대인 혐오적이라고 매도한다고 해도, 누군가 실제로 유대인 혐오적 발언을 했다면 저는 거기에 문제 제기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발언은 없었죠.
표현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로비에 관해 말씀하신 분이 있었는데 저는 그런 정식화에 동의하지 않아요.
영국이나 미국의 정치인들과 이스라엘 정치인들 사이에 연계가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연계는 이스라엘에서 비롯하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죠. 영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유대인 정치인들이 영국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영국 정치인들이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통해 얻는 제국주의적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인데, 이스라엘 로비라는 말은 음모론 같은 더 해로운 관점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음모론은 유대인 로비설과 이어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유대인 혐오로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배후 공작 때문이 아닙니다. 영국과 미국은 자신의 물질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로비의 구실을 중요하게 보는 견해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가 독특한 정착자 식민지 체제라는 분석은 고수해야 합니다. 그 분석은 제 발제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학은 독특합니다. 물론, 저는 이스라엘 외에도 무너졌으면 하는 많은 정권들이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세계의 모든 정권이 무너져서 국경 없는 세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바라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영국의 구실에 직면하고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 탄압에 맞서는 것이 핵심 전장이 돼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가 무엇에 맞서 싸우고 있는지 명료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역사를 살펴보며 이스라엘의 성격과 오늘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두 가지만 더 말하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팔레스타인 당국(PA)에 관한 한 발언자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PA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의해 설립된 이래 사실상 이스라엘 국가의 지원군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PA는 팔레스타인 경찰을 동원해 팔레스타인인들을 체포하고 살해하기도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런 짓을 해 왔습니다.
핵심 물음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스라엘에 용감하게 맞서 싸웠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훗날 PA의 핵심이 됩니다)가 어쩌다 그런 부역 기구로 변했느냐는 것입니다. 아까 발제에서 저는 백악관 잔디밭에 서 있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팔레스타인들의 정서와 용기를 대표하던 영웅이 어쩌다가 이스라엘 국가와 화해하는 것으로 나아간 걸까요?
그 이유는 PLO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순전히 민족 문제로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들의 목적은 제국주의 지배 질서 내에서 일정한 몫을 인정받는 것이 된 것이죠. 한 발언자가 말했듯이 PLO는 요르단 지배자들과 이집트 지배자들을 불안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미니 국가에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기존 지배 질서 내에서 일정 지분을 얻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발제의 핵심 내용으로서 말씀드렸듯이 문제는 그 지배 질서 자체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팔레스타인 해방은 그 지배 질서, 즉 중동의 제국주의 지배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인데, 이곳 영국에 관한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모든 것이 오늘날 영국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죠.
먼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만든 게 영국임을 지적해야 합니다. 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서였죠. 밸푸어는 ‘유대인 얼스터’를 만드려 했습니다. 영국은 아일랜드 사람들을 분열시키려고 아일랜드 북부 얼스터에서 벌인 일[아일랜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개신교 신자들을 그곳으로 이주시켰다—역자]을 중동의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려 했습니다. 그것이 밸푸어의 구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영국제라고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영국이 현재 이스라엘에 많은 무기를 판매하는 국가의 하나라는 점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들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사용하던 무기에 영국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수세에 있습니다. 시온주의자들과 이스라엘 지지자들의 공격이 성과를 꽤 내고 있습니다. 특히 전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이 유대인 혐오자라는 비방으로 많은 성과를 거뒀죠.
그런데 노동당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서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노동당 우파는 왜 한사코 제러미 코빈을 당 대표직에서 끌어내리려 한 것일까요? 왜 유대인 혐오라는 무기를 동원했을까요? 무엇이 가장 두려웠던 걸까요?
그들은 국민건강서비스(NHS)나 학교, 교육 제도에 관한 코빈의 국내 정책을 두려워 한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보다는 제국주의에 대한 코빈의 태도를 우려했던 것입니다. 코빈이 반전 운동 출신이고 팔레스타인인들의 편인 것이 가장 큰 우려를 자아낸 것입니다. 총리가 될 사람이 영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반대하고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지원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을 진정으로 두렵게 했고, 그래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코빈을 끌어내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편이 유대인 혐오라는 비방에 지나치게 후퇴했다고도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지는 유대인 혐오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주장했어야 했는데 좌파가 충분히 맞서지 않고 너무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왜 당신들은 그 문제로 나를 공격하는가?” 하고 코빈은 맞받아쳐야 했습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팔레스타인은 일종의 리트머스 테스트입니다. 팔레스타인은 모든 정치 쟁점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보여 줍니다. 노동당에서 쫓겨나거나 노동조합 모임에서 추방당하거나 대학에서 징계받는 일을 피하려고, 세계에서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을 기꺼이 저버리는 사람은 솔직히 말해 다른 어떤 문제에서도 비슷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실로 너무 많은 노동당원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저버렸습니다. 노동당 국회의원이나 노동당 활동가들이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하는 성명서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까요? 또는 어떤 유대인 사회주의자가 이스라엘을 비판하다가 노동당에서 제명당하면 그것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까요?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것입니다.
오늘 저는 팔레스타인 저항에 관해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제국주의가 문제의 원인이고, 계급적 요소를 분석하고 중동 전체를 보면서 그곳의 평범한 사람들이 거듭 반란을 일으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팔레스타인들은 반드시 다시 저항에 나설 것입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결 인티파다’는 다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좌파도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고 함께 저항할 만큼 세력과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동의한다면 우리와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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