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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정착자 식민 지배의 잔혹한 역사

이스라엘을 분석할 때 정착자 식민지라는 용어가 다시금 거론되고 있다. 그 용어의 의미와 팔레스타인 독립 전략에 함의하는 바를 찰리 킴버가 살펴본다.

이스라엘을 식민 정착자 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그저 학술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다. 그런 규정은 이스라엘의 본성을 설명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독립할 수 있을지 전망하도록 해 준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고향에서 쫓겨나 피란길에 나선 팔레스타인 난민들

저술가 일란 파페는 이렇게 지적했다. “시온주의가 정착자 식민 운동이라는 규정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960년대부터 팔레스타인인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영국이나 미국의 여느 식민지와는 다르며, 세계의 다른 곳에서 나타난 현상에 해당한다고, 즉 정착자 식민지라고 봤습니다.

“정착자 식민 운동이 갖는 가장 핵심적인 논리는, 유럽 바깥에서 식민 정착자 사회를 성공적으로 수립하려면 정착지의 토착 원주민을 말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착자 식민 운동이 언제나 토착 원주민을 말살하려 한다는 지적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캐나다에서 펼쳐진 끔찍한 역사와 잘 부합한다.

그곳에서 정착자 식민주의자들은 의식적으로 토착 원주민을 말살하다시피 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새 국가”를 세웠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원주민의 멸절과 노예화, 토착 원주민 광원들의 매몰, 동인도 제도의 정복과 약탈, 인신매매할 흑인을 포획하는 사냥터가 된 아프리카, 이런 광경들이 자본주의적 생산 시대의 여명을 알렸다.”

주류적 관점의 오스트레일리아 박물관조차 이렇게 인정한다. “국가가 승인한 학살 등 식민주의 인종 학살의 결과로, 침공 전 100만~150만 명이던 토착 원주민 인구가 1900년대 초에는 10만 명 이하로 줄었다.”

토착 원주민을 모두 살해하지 못한 경우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을 척박하고 비좁은 땅에 몰아넣어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그들의 언어를 없애려 했다.

제국주의자들은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 내거나 억압자들의 우월함을 가르치는 교육 제도를 강요했다. 팔레스타인이 “땅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임자 없는 땅”이라는 시온주의자들의 주장은 제국주의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통을 답습한 것이다. 태즈메이니아[오스트레일리아 동남쪽의 섬 — 역자], 캘리포니아, 나미비아에서 자행된 토착 원주민 인종 학살도 그 땅이 “비어 있다”거나 “임자가 없다”는 공통된 거짓말과 함께 시작됐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국은 무주지(“주인 없는 땅”) 원칙을 내세우며 그런 땅은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라고 주장했다. 나미비아에서 식민주의자들은 “지도상에 깨끗하게 밀어 버린 지역을 만드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스라엘과 꼭 마찬가지로, 과거의 정착자 식민주의자들은 풍요로운 토착 문화를 쓸어 버리면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토착 원주민들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거나 열등한 인간이라는 인종차별적 거짓말을 퍼뜨렸다.

인종 학살 역사가인 벤저민 매들리는 이렇게 썼다. “태즈메이니아에서 토착 원주민 아이들을 납치해 두개골에서 뇌가 쏟아져 나오도록 구타하거나, 토착 원주민들을 일렬로 세워 사냥총 연습 과녁으로 쓴 식민주의자들에게 그들은 인간 이하의 존재였을 것이다.

“백인들은 토착 원주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끔찍할 정도로 역겹다’, ‘인류와 원숭이의 중간 단계’, ‘신체와 지능 면에서 인간 가운데 최하의 존재임이 틀림없다.’”

“캘리포니아의 많은 백인 정착자들은 유키(아메리카 토착 원주민 집단의 하나)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겼다.

“정착자 드라이덴 라콕이 유키 학살에 일상적으로 가담했다고 으스대고 그의 이웃 행크 라라비가 손도끼로 유키 어린이 60명을 살해했다고 우쭐댄 것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859년에 “인디언 킬러”로 악명 높은 월터 자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키 사람들을 두고 “인간으로 분류되는 생물 중에 가장 저열하고, 역겹고, 도둑질이나 일삼는 가장 한심한 무리”라고 썼다.

나미비아에서 활동한 엘거라는 선교사는 이렇게 적었다. “평범한 독일인은 원주민을 고등 유인원과 비슷한 존재로 깔보고(‘개코원숭이’라고 부르길 가장 좋아한다) 그들을 짐승처럼 대한다. 정착자들은 원주민이 백인에게 유용할 때에만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

물론, 정착자 식민 운동만이 인종차별로 정당화되는 대대적 폭력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자들이 멀리 떨어진 본국에서 토착 원주민을 지배하며 (모두 학살하는 게 아니라) 착취하는 경우에도(이를 “비정착 식민주의”라고도 한다) 그런 범죄가 자행된다. 이런 형태의 식민 지배는 인도에서 특히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1876~1878년 인도 대기근으로 인도인 600만 명 이상이 아사하는 와중에도 인도에서 식량을 수출해 갔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그로부터 30년 전 아일랜드 빈농을 상대로도 똑같은 사악한 범죄를 자행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저서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국역: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2008, 이후)]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1875~1900년 사이(인도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 닥쳤던 시기다)에 연간 곡물 수출량은 300만 톤에서 1000만 톤으로 늘었다.” 2500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다.

“20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인도는 현지의 식량 안전을 희생하며 영국 밀 소비량의 5분의 1 가까이를 공급했다.”

인도 총독인 리턴 경은 마드라스[첸나이의 옛 지명] 일대에 사는 수많은 소농들의 고통을 덜 조치가 필요하다는 촉구를 모두 물리치고, 빅토리아 여왕의 인도 황제 즉위식 준비에 몰두했다.

그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고위 관리 6만 8000명이 일주일 동안 성찬을 즐기면서 인도를 “행복하고 부유하고 안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여왕의 약속을 듣는 자리였다.

마드라스 주변 농촌에서 사람들이 기아와 갈증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여왕의 손님들은 세계 각지에서 값비싸게 수입한 최고급 먹거리들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식민 정착자 국가가 언제나 토착 원주민을 철저하게 도륙하길 바라고 그들을 강도 높게 착취하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남아프리카연방(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그곳에서는 식민주의자들이 흑인들을 도륙할지, 노예로 삼을지, 임금 노동자로 부려서 가치를 추출할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쟁투를 벌였다.

종국에 제국주의적 자본가들은 흑인들에게 광산 노동을 강요했다. 이는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줬으나, 흑인들이 조직을 갖추고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들고 일어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종말로 이어졌다.

토착 원주민은 수동적 존재이거나 그저 피해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반격에 나선다. 그리고 정착자 식민 운동은 이 사실을 이용해 자신들의 대량 학살을 “자기 방어”라고 정당화한다.

미군 장군이었던 필립 셰리든은 그런 학살 정당화의 전문가였다. (셰리든은 “착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라는 역겨운 말로도 잘 알려진 자다.) 그는 1870년대에 이렇게 썼다. “어느 인디언 마을이 공격당하고 그 여성과 아이들이 살해당하면 그 책임은 병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공격을 불가피하게 만든 범죄를 저지른 인디언들에게 있다.”

1886년에 역사가 제이컵 P 던은 인디언 여성과 아이를 죽이는 것이 “복수”이며, 미국인 식민지 확장에 맞선 인디언 전사들의 투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정당화했다.

정착자 식민 운동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스라엘도 단순하게 분류하기에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러나 시온주의 식민주의자들은 효과가 입증된 정착자 식민주의의 몇몇 수단들을 차용해 팔레스타인을 차지하려 했다.

악마화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땅에 정착하고 있다고 스스로와 남들을 속였다. 시온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상대로 인종차별을 자행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억압하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내쫓는다. 그러면서 그들을 악마화하려 한다. 그리고 10월 7일 이후에도 그랬듯이 자신들의 인종 학살 정책이 “자기 방어”라고 주장한다.

19세기에는 이런 주장들이 먹혔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보면서 거기에 자신들과 똑같은 염원이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 인종차별적이고 지독하게 불평등한 세계 질서에 맞서 저항하려는 염원 말이다.

각국 총리나 대통령, 점잖은 야당 지도자들은 ‘자기 방어’ 운운하는 주장이나, 이스라엘 비판이 유대인 혐오라는 비방에 갈채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는 그런 주장에 수긍하는 이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최악의 참상을 강요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안팎에서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출처 UNRWA

그런 이유로 일란 파페는 지금 국면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향후 2년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최악의 참상을 강요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엄혹한 순간에도 우리는, 와해 중인 정착자 식민지 프로젝트가 언제나 최악의 수단을 동원해서 그 프로젝트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저 희망 사항을 전망과 혼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정치 활동가로서 하는 주장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전문적이고 냉철한 조사 결과를 기초로, 지금 시온주의 프로젝트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순순히 와해되지 않을 것이고,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제국주의자들도 중동이라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유용한 구실을 하는 ‘경비견’ 이스라엘을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방의 모습은 현실과 사뭇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독립의 세 기둥 — 팔레스타인인들 자신의 용맹한 저항, 더 광범한 중동 지역 노동자·빈민의 혁명적 반란, 서방[과 친서방] 국가들 내의 맹렬한 저항 — 은 승리할 수 있다.

정착자 식민 지배 체제는 자본주의 지배 질서의 가장 끔찍한 사례의 하나다. 이스라엘의 혁명적 타도는 모두가 본받을 선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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