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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하는 AI 경쟁:
미래는 AI의 시대가 될 것인가?

아래는 크리스티아노 사비유 서울시립대 천체물리학 연구교수가 2월 6일 어느 토론회에서 했던 발제를 보완해서 기사화한 것이다.

인공지능, 즉 AI에 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AI와 기계학습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하면서 시작하고 싶다.

AI 기초지식

기존의 프로그램 알고리듬은 컴퓨터에게 처리 방식을 명시적으로 지정한다. 예컨대 A가 입력값이고 B가 결과값일 때 B=2×A라고 말이다. 반면 AI와 기계학습에서는 사용자가 처리 방식을 제시하지 않는다. AI의 경우, 입력값 A를 잔뜩 제공하고 올바른 결과값, 즉 참값 B를 함께 제공한다. 그러면 컴퓨터가 입력값에 이런저런 연산을 해서 나름의 추측값 G를 만든다. 만약 컴퓨터가 제대로 추측했다면 그 추측값이 참값과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 과정에서는 추측이 틀릴 수밖에 없고 추측값 G와 참값 B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고 이른바 손실함수는 0이 아닐 것이다. 즉 (G-B)≠0. 이는 모순이고 컴퓨터 내의 긴장을 낳는다. 하지만 이후 컴퓨터는 입력값에 대해 다른 추측 연산을 반복하면서 손실함수가 0에 가까워진다. 즉 (G-B)≈0. 그래서 AI는 일반적으로 학습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AI는 크게 두 가지로 이뤄진다. 첫째, ‘구조’. 둘째, ‘학습데이터’. 구조는 기계학습 프로그램의 코드를 가리킨다. 첫 기술 혁신은 신경망 네트워크였고, 그다음은 합성곱 네트워크, 이제는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의 기반이 된 트랜스포머 모델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편, ‘학습데이터’는 이름 그대로 AI ‘구조’ 속 매개변수들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들이다. 챗GPT를 학습시키기 위해 투입된 데이터는 어마어마한데, 인류가 현재까지 남긴 문서 중 디지털화 된 것들을 거의 다 아우를 정도다!

학습데이터가 장차 더 많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AI의 발달은 대체로 구조 부분을 얼마나 혁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컴퓨터 하드웨어 발달로 AI 발달이 촉진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중국 연구자들이 일궈 낸 최신 AI 개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딥시크’ 충격

지난달, 한 중국 기업이 ‘딥시크’라는 새로운 AI 언어모델을 발표했다. 딥시크는 각종 성능 테스트에서 챗GPT를 비롯한 여타의 거대언어모델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IT업계를 더욱 충격에 빠뜨린 것은 개발비였다. 딥시크는 고성능 하드웨어와 전력을 훨씬 덜 사용한 덕분에 미국 기업들이 보통 지출하는 금액의 몇 분의 1만 사용했다. 시장에서 그 충격이 신속하게 나타났다. IT 기술 주가가 약 1조 달러 가까이 증발했고, AI 경쟁에서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실리콘밸리 CEO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AI 경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성격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출처 픽사베이

이에 대응해 많은 IT 경영진들은 중국에 대한 고성능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기로 한 미국 정부의 조처를 환영했다. 구글 CEO였던 에릭 슈미트는 오래전부터 기술 경쟁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미국과 중국이 지식 우위를 놓고 벌이는 전투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투가 될 것이다.” 이런 견해가 이제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반도체법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 대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했다. 앞서 말한 에릭 슈미트는 이를 통해 중국의 AI 개발을 10년은 뒤처지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딥시크의 성공으로 그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한 미국이 중국보다 “몇 년 앞서 있다”는 에릭 슈미트의 진단이 처참하게 틀렸음이 입증됐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보조금이 필요하다며 지금 트럼프 정부에게 로비를 하고 있다. 이른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투자 방안에 따라 오픈AI, 소프트뱅크, 오라클, 투자기업 MGX는 2029년까지 AI 기반시설에 5000억 달러를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이런 투자 사업이 (핵무기 제조 프로젝트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와 비교되며 국가의 생존을 건 사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절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은 새롭고 대단한 혁신의 물결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실시간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AI 거품이 터졌고, 그러자 빅테크 기업들은 국가의 권력을 동원해 거품을 다시 키우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셔널리즘(이하 국가주의) 정서를 동원하면서도 이론상으로는 “자유 시장”을 운운하고 있다.

이런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AI는 자유로 충만한 새 시대를 열 것인가 아니면 불평등, 제국주의, 억압으로 점철된 위기를 더욱 키울 것인가? 나는 세 가지 렌즈를 통해 이 주제를 다룰 것이다: 첫째, 제국주의. 둘째, 자본주의의 모순. 셋째, 사회주의하에서 AI.

제국주의와 AI 무기 경쟁

딥시크를 둘러싼 갈등은 흔히 미·중간 기술 우위를 놓고 벌이는 경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은 더 심원한, 제국주의의 역학을 놓친다. 그런 역학은 민간 자본과 국가 권력의 상호작용 때문에 생겨난다. 거대 기업의 수익성이 위협받으면 정부가 각종 관세, 보조금, 금지 정책을 들고 개입하고, 기업들도 자신의 요구를 정부에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주의에 기대며 “안보 위기” 운운한다. 크리스 하먼이 ‘오늘날 국가와 자본주의’에서 쓴 것에서 인용하겠다. “일단의 자본들과 그들이 연계된 국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 국가와 개별 자본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런 패턴은 전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을 상당히 많이 차지했다. 당시 제너럴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는 로비를 벌여 정부가 수입 제한을 놓고 협상하도록 했다. 그들은 “사업의 자유” 운운하면서도 “바이 아메리카”[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공공사업에 미국산 철강과 공산품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보호무역주의 조항 — 역자] 적용을 통해 국가주의를 부추겼는데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크리스 하먼은 이렇게 강조했다. “서로 격렬하게 경쟁할 뿐 아무런 조율도 이뤄지지 않는 세계에서 홀로 남겨지기를 바라는 자본가는 아무도 없다. … 국가는 그런 붕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구명보트 노릇을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기업들은 이론상으로는 자유 시장을 예찬할지라도 실천에서는 국가의 능동적 지원을 요구한다.

이런 역학은 단지 경제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군사적·정치적 지배력을 확립하는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차세대 전투 기술, 감시 기술, 노동 통제를 위해 AI가 결정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미국은 이미 AI를 군사작전에 통합시키고 있고, 미 국방부는 AI 무기, 사이버 전쟁, AI에 의존하는 전술 판단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수조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구글과 오픈AI는 카메라 앞에서는 “윤리적 AI”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군사적 용도로 AI를 개발하는 것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아마존과 우버는 AI를 이용해 자사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규율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 억압에 AI를 사용하는 것은 AI 기술에 따라 갈등과 억압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이다.

AI 개발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군사용이다 ⓒ출처 미 국방부

중국도 권위주의 강화를 위해 AI를 이용하고 있다. 안면 인식 기술을 통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특히, 신장 위구르 지역 위구르인 등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데 AI가 쓰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AI 개발을 추동하는 것은 정부 우선순위와 자본주의 기업들이 융합된 것의 결과이다. 바이두나 텐센트 같은 중국 AI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는데, 이는 미국 기업들이 미 국방부 계약으로 이윤을 얻는 것과 꼭 마찬가지다.

궁극적으로 말해, 제국주의는 단지 국가간 전쟁에 관련된 것 이상이다. 바로 자본가들이 자국과 해외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AI 기업들이 보조금으로 수조 달러를 지원받는 동안 공공서비스는 예산 부족으로 허덕인다. 각국 정부는 국민건강서비스 지원이나 임금 인상을 허용하기에는 “재원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매번 AI 개발, 군사적 응용, 기업 회생 방안을 위해서는 돈을 무제한적으로 잘도 찾아낸다.

한편, 자본주의는 자신의 위기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보조금이나 관세, 군비 경쟁 등을 통해 지배력을 회복하려 애쓸수록 자본주의가 비틀거린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AI가 경쟁을 격화시키고 첨단기술 시장의 숨겨진 취약성을 드러낼수록, 자본주의는 더한층 위기에 처한다. 그것이 미국 자본이든 중국 자본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더 강화된 군국주의, 착취 강화, 세계 노동계급이 직면한 위기가 더 커지는 것 말이다. AI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의 대외적 대결과 내부적 쇠퇴가 둘 다 악화될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AI와 자본주의의 모순

최근 한 연구를 보면, 한국에서 일자리 300만 개가 AI 자동화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주되게 고학력, 화이트칼라 일자리였는데 의사, 회계사, 변호사, 금융분석가 등이었다. 이는 전통적 생각, 즉 자동화로 타격받는 것은 주되게 저임금 육체노동이라는 관념을 뒤집는 것이다. 현실에서 AI는 공장 노동자부터 소프트웨어 개발자까지, 모든 분야의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AI의 충격을 결코 평등하게 떠안는 것이 아니다. IT 기업 이사진들이 수조 원을 긁어모으는 동안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정이 심해지고,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구조조정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하 자동화의 핵심 모순이다. AI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우리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도 있지만, 생산이 사람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 이뤄지다 보니 일자리 감소, 탈숙련화, 경제 불안정 같은 결과를 낳는다. 노동자들을 고된 업무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기술이 오히려 그들의 착취를 강화하는 데에 쓰인다.

이런 모순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노동자들이 불완정 하게 고용돼 일하는] ‘긱 경제’, 그리고 알고리듬에 따라 업무 지휘를 받는 경우이다. 이런 부문에서 AI는 단지 노동자들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끌어올리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아마존 창고 노동자들의 경우, 그들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는 AI의 통제를 받고, 무지막지한 업무 속도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다. 우버 택시 운전사들은 비공개 알고리듬이 주는 대로 돈을 받고 알고리듬이 시키는 대로 노동시간과 행동 양식을 따라야 하지만, 전통적인 고용 관계에 따른 법적 보호는 받지 못한다. 그 결과 새로운 디지털 프롤레타리아가 출현했는데, 이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도전하지도 못하는 AI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AI의 감시 속에서 일해야 하는 아마존 노동자들 ⓒ출처 Scott Lewis(플리커)

최근 딥시크 발표 후 미국 IT기업의 주식이 1조 달러어치 사라진 것은 AI 거품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한 지반 위에 있음을 보여 준다. 과거의 모든 자본주의 거품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정부 보조금을 이끌어 내고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기 위해 AI의 단기적 경제적 잠재력을 크게 과장해 왔다. 그러나 크리스 하먼이 지적하듯 “자본주의가 노화하면서, 부진과 깊은 위기를 부르는 여러 압력을 극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자본주의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 체제의 모순이 켜켜이 쌓여간다는 것이다. AI의 경우에도 “투자 규모가 이윤의 원천(노동력)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기 쉬워, 이윤율 저하를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불균형 탓에 수익성 있는 시장은 제한적인데 너무 많은 자본들이 이를 좇는 과잉 축적의 가능성이 생겨나고, 바로 그런 과잉 축적이 그간 투기 거품을 거듭 일으켜 왔다. 닷컴 거품 붕괴와 최근의 암호화폐 가치 폭락 등 “위기는 단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자본이 이윤율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 확장하려고 할 때 겪는 심층적인 갈등이 표현된 것이다.” AI에 대한 낙관이 많지만 AI의 가치는 현재 꽤 부풀려져 있고 또 값싼 신용에 의지하고 있다. 장차 이윤율이라는 엄격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면 오늘날의 장밋빛 전망들이 빠르게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된 역학은 더 광범한 위기를 낳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 AI 기반 자동화가 진척되고 그에 따라 노동(잉여가치의 유일한 원천)을 줄이게 되면 노동자의 구매력이 줄게 된다. 하먼은 이렇게 지적한다. “체제의 근본적 모순은 투자 규모가 이윤의 원천(노동력)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기 쉽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AI로 노동자들을 대체함으로써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줄이고 그에 따라 과잉 축적 가능성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분석을 멈춰선 안 되는데, 하먼은 이런 과잉 축적 경향을 상쇄할 주된 요인을 세 가지 지적한다. “첫째, 간헐적 위기로 일부 자본들이 파괴돼 없어지면 다른 자본들이 득을 본다. 둘째, 제국주의 덕분에 구래의 자본주의 발전 지역으로부터 새 지역으로 투자가 흘러간다. 셋째, 투자 가능 잉여가치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자본의 특정 부분 간 경쟁을 도우면서도 생산적 축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식으로 사용된다. 예컨대 마케팅 비용이나 군비 같은 분야가 그 사례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로 갑작스러운 불황이 닥치는 것을 지연시킬 수는 있을지라도, 근저에 깔려 있는 긴장 자체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투기성 투자, 금융 거품, 정부 보조금에 대한 의존 증대라는 새로운 시기로 들어서고 있다. 각국 정부는 AI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개입하고 있지만, 그것이 AI가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여겨서라기보다는 자본 축적의 새 첨병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는 악화되는 자본주의 모순의 일시적 해결책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이 체제가 엄청난 위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 준다. AI는 사람들을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에서 해방시키지 않는다. AI는 자동화로 인한 모순 문제, 이윤율 하락 문제, 사회 불평등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자본가 계급은 자동화를 온전하게 수용할 수 없는데,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을 착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가 계급은 자동화를 멈출 수도 없는데, 기술 개발을 위한 경쟁 때문에 어느 기업도 투자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뒷전인 채로 말이다.

사회주의하의 AI

AI는 자본주의가 위기를 피하게 할 수 없다. 인간 해방을 위한 도구가 되기보다는 착취를 강화하고, 대량 실업을 일으키고, 경제의 불안정성을 더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자체적인 권능을 갖고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AI가 개발되는 사회적·경제적 체제에 달려 있는 것이다. 쟁점은 단순하다. 누가 AI를 통제하며 이득을 얻는가? 자본주의하에서 AI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제국주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감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사회주의하에서 AI는 다른 목적으로, 즉 노동시간을 줄이고, 빈곤을 몰아내고, 인간의 필요에 맞게 생산을 조직하도록 이용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AI를 단지 규제나 윤리 문제, 사회복지 정책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불충분한 것이다. 자본가 계급은 AI가 노동자들에게 이롭게 쓰이는 체제를 결코 자발적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기본소득처럼 비교적 진보적인 제안도 노동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AI로 인류가 불필요한 노동에서 진정으로 해방되는 세계는 정부 정책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오직 계급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야만 한다.

위기 시기에는 투쟁도 벌어진다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AI가 어떤 미래를 선사할지가 정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AI를 앞세운 착취에 맞서 반격에 나서고 있다. AI 알고리듬에 따라 배달 경로와 임금이 정해지는 배달의민족 라이더들은 긱 경제 플랫폼 상에서 업무량이 늘고 임금이 줄어드는 것에 맞서 노조를 조직했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이렇게 말한다. “위험한 노동 환경 때문에 라이더들은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등을 무시하고 안전하지 않은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반면 라이더들의 안전은 전혀 보장되고 있지 못합니다.”

이런 저항은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AI 사용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노동자들이 AI 자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AI가 기업 이윤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 필요를 위해 쓰이도록 말이다. AI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고된 일에서 해방시키는 수단이 돼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감시 체계 구축에 반대하는 것뿐 아니라 AI의 활용 방식을 (억만장자나 빅테크 독점 기업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결정하는 세계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AI가 지배계급의 수중에 머문다면 어떤 미래가 닥칠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런 미래의 세계는 AI로 억압이 자동화되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본주의적 쇠퇴가 가속될 것이다. 그러나 AI를 노동계급이 차지한다면 해방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고된 일을 없애고, 인간의 자유를 신장하고, 모든 기술 발전을 그저 착취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이 체제로부터 마침내 단절할 수단으로 말이다.

서두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AI는 자유로 충만한 새 시대를 열 것인가 아니면 불평등, 제국주의, 억압으로 점철된 위기를 더욱 키울 것인가?” 아주 엄혹한 선택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하겠다. 자본주의하의 AI는 감시와 실업이 만연한 미래, 자율 살상 드론이 동원되는 제국주의 전쟁의 미래다. 그 대안인 사회주의하 AI가 가리키는 미래는 기술 발전이 인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직장과 그 너머에서 노동자들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미래다. 이것은 먼 미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투쟁의 성격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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