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익히는 마르크스주의 3:
기술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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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두려우면서도 아주 흥미로운 기술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우리의 창의성을 무단으로 도용하고, 우리에 대한 감시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AI는 암 진단을 돕고 지식에 더 쉽게 접근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AI는 모순적인 가능성을 지닌 많은 신기술 중 최신의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바꾼 발명 중에는 증기 기관, 전기, 내연 기관과 컴퓨터와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새로운 발전이 벌어질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신기술을 체제의 미래라고 부풀리고, 다른 사람들은 실업과 비인간화를 전망한다. 지금도 AI가 생산성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와 장기 불황에 빠진 자본주의의 성장을 이룰 대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AI가 대량 실업을 가져와 노동계급이 체제에 도전할 잠재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한다.
그러나 AI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이나 비관을 피하려면 기술 발전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해 세계로 확산된 산업혁명은 인간 노동을 이전 어떤 사회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생산적으로 만든 거대한 진보였다.
그러나 기술은 또한 노동자들이 낡은 방식으로 생산한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1811년에 러다이트 운동은 낡은 방식으로 만든 상품을 헐값에 넘기게 하는 새 기계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물론 러다이트 운동이 기계를 공격한 것은 효과적인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투쟁은 기술 발전이 노동자 처지 악화로 이어지는 것에 맞서려는 정당한 저항의 일부였다.
노동계급의 급진주의자들은 기계의 도입이 길고 고된 노동에서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더욱 노예로 만든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세계를 풍요롭게 할 잠재력을 지닌 엄청난 혁신을 창조했는지 폭넓게 서술했다.
기술 변화는 단지 몇몇 발명을 둘러싼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요소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사장들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직원들의 생산성을 더 높일 신기술을 도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기계, 화학 공정과 다른 방법을 통해 생산의 기술적 기반뿐 아니라 노동자의 구실과 노동과정의 사회적 관계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많은 수의 자본과 노동자를 생산의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킨다”고도 썼다.
그러나 이 신기술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윤 창출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혁신을 통해 이루겠다는 약속이 결코 지켜지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서술했듯이 혁신을 통해 “한편에서 인간의 역사에서 이전 시대에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산업과 과학의 힘이 생겨났다.
“반면 로마 제국의 참상을 크게 능가하는 부패의 징후가 존재한다. 오늘날 모든 것이 모순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단축하고 생산적으로 만들 훌륭한 힘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는 굶주림과 과로를 목도한다. 새롭게 등장한 부의 근원은 어떤 이상하고 기묘한 주문에 의해 빈곤의 근원으로 변한다.”
경제 위기를 추동하는 기술 경쟁
마르크스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입증된다. 오늘날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AI에 대한 투자는 대규모로 늘리며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고 있다. 지난해 KT도 AI 투자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며 수천 명을 해고하려 했던 바 있다. 또, 쿠팡이나 아마존 등은 AI 기술을 이용해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사장들은 경쟁을 위해 신기술에 투자를 계속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는 가치와 자본가 이윤의 근원은 노동이라고 봤다. 그는 “불변자본” 또는 “죽은 노동”과 “가변자본” 또는 “산 노동”을 구분했다.
불변자본은 기계와 같은 고정 자산과 원자재를 포함한다. 가변자본은 노동 비용과 노동자 임금을 뜻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많은 투자가 가변자본에 비해 기술과 기계 등 불변자본으로 흘러간다. 이로 인해 이윤율은 하락하는데 새로운 가치는 노동자 착취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맨 처음 개발한 회사들은 큰 이윤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투자가 가변자본에 비해 불변자본으로 흘러갈수록 체제 전체 이윤율은 떨어진다.
실제로 기술 발전과 함께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은 장기적 하락 추세를 그려 왔다.(관련 기사: 본지 158호, ‘자본주의는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의 늪에 빠져 있다’)
사장들은 신기술 투자로 달려들지만 기술 거품이 터지는 역사는 반복돼 왔다. 2000년대 초에도 IT 거품이 터진 바 있다. 이는 2008~2009년 세계적 경제 공황의 전조였다.
또, 신기술이 빠르게 낡은 기술로 바뀔 것이라는 위험도 끊임없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중국은 훨씬 싸게 AI를 개발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사장들은 신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계급이 체제에 도전할 잠재력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신기술 부문이 성장할수록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힘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삼성전자노조의 파업이 세계적 뉴스가 됐던 이유이다. 또, AI를 활용한 노동 통제가 극심한 아마존에서도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파업에 나선 바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힘은 사장들에게서 통제권을 빼앗고,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해 사용되게 할 열쇠이다.
정선영 개작. (원작 : Judy Cox, ‘Technology should serve humanity not dominate it’ (2025.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