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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긴 글

미·중 갈등에서 자신을 거들라는:
트럼프 정부의 위험한 요구

한미 간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또 다른 ‘청구서’를 한국에 들이밀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면 한국도 역할을 하도록 한미동맹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7월 18일 미국 국무부 부장관 크리스토퍼 랜다우는 한미 외교차관 회의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확대 적용하는 등 동맹을 ‘현대화’하자고 요구했다.

그리고 25일 미국 국무부는 〈조선일보〉에 “한반도에서 미군과 한국군 간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미가 협의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주한미군의 임무를 조정하려 한다. 즉, 대만 해협에서의 위기 대응에 주력하도록 주한미군의 역할을 확대하고 그에 따라 군 편성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에서 한국의 기여를 확대하는 것도 원한다. 미국이 중국에 더 집중하려면 한국군이 북한 위협에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안보 비용도 한국이 알아서 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랜다우 부장관은 한국이 국방비를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2.3퍼센트 수준(약 61조 원)에서 GDP 대비 5퍼센트(약 132조 원)까지 늘리라고 요구했다.

위험한 청구서 트럼프의 요구에 타협하면 복지, 교육, 기후 위기 대응에 쓸 돈을 무기에 써야 할 것이다 ⓒ출처 공군

더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한국이 미군을 지원해 주기를 원한다. 즉, 대만 해협 위기 시 주한미군의 출동을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국이 미국을 직접·간접으로 지원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동맹 태세를 정비하고 있으며, 그 재정적·군사적 부담을 동맹국들이 훨씬 더 많이 나눠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동맹 관계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가령 7월 21일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필리핀과의 상호방위조약이 남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 전역에 적용된다며 유사시 필리핀이 그곳에서 미국을 지원해야 함을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동중국해(대만)·남중국해를 하나의 전구(戰區, 전쟁을 치르는 구역)로 묶는 구상도 논의하고 있다. 그리되면 한국은 서태평양 전선 전역에서 미국·일본·호주 등과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요청을 더 크게 받게 될 것이다.

미군은 한국을 꼭 필요한 대(對)중국 전초 기지로 여기고 있다. 지난 5월 주한미군 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붙박이 항공모함 같다.” 미 해병대에서 작전 기획을 맡은 브라이언 커그 중령도 7월 10일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 기고한 보고서에서 한국을 “역내에 전력을 투사할 플랫폼”으로 보며, 미 해병대 전력을 추가로 한국에 배치하고 중국·북한과의 전투에 필요한 탄약 등 물자를 한국에 저장하자고 제안했다.

한미동맹 조정은 평화를 바라는 평범한 한국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다. 게다가 미국의 바람대로 된다면 한국은 국방비와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모순

동맹국들에 부담을 떠넘기려는 트럼프 정부의 이런 계획은 커다란 모순과 위험을 동시에 낳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같은 트럼프 정부 고위 인사들은 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미국과의 국방 협력을 동시에 모색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며, 중국과 거리를 두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로 먹고살아 온 한국은 여전히 최대 수출 상대인 중국을 경시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대만 간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부 출범 직후부터 그의 “실용 외교” 노선은 심각한 난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열 배로 늘리고 국방비 지출도 갑절 이상으로 늘리라는 트럼프의 요구도 부담스럽다. 이런 지출 증대는 복지, 교육, 기후 위기 대응 예산 등을 크게 압박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 애쓰며 트럼프 정부의 요구에 타협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달 초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방비를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 조금 늘려가는 쪽으로 [미국과] 협의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안보 분야 패키지 협의가 다른 분야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미국의 요구를 더 받아들일 공산이 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관세 협상 카드로 대규모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트럼프 정부에 제안했다. 중국과의 해양 경쟁을 위해 자국 조선업을 재건해야 하는 미국을 한국이 대규모 투자와 기술 협력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한·미·일 연합 훈련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한·미·일 전투기 공중 훈련이 실시됐다. 7월 11일에는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고, 8월에는 한미연합훈련 ‘을지 프리덤 실드’, 9월에는 한·미·일 3국의 다영역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놓고 북한의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은 “한미동맹에 대한 맹신과 우리와의 대결 기도는 선임자[윤석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이재명 정부를 꼬집었다.

이재명 정부는 역내 강대국들 사이에서 나름으로 균형을 추구하겠다고 하지만, 증대하는 지정학적 위기와 모순은 한국이 외교적 곡예를 부릴 여지를 크게 줄이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가할 압력 속에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도 한미동맹 강화에 타협할 공산이 큰 까닭이다.

그 가능성은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부담과 위험이 될 것이다. 거기에 맞서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해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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