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온라인 강연: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중동에서 제국주의 질서의 새로운 변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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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6월 21일 같은 제목으로 열린 온라인 토론회에서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한 발제와 청중 질의응답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이 토론회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란의 핵시설 세 곳을 폭격하기 직전에 열렸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대표다. [ ] 안의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넣은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습니다. 사태를 이렇게 규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시작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려고 이란을 공격했지만 단독으로 그럴 능력은 없고, 그것이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얘기하겠습니다.
이번 공격은 오랫동안 예상되고 우려되던 것입니다. 그 기원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요인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는 제국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과 반혁명의 역학입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 간 국제 경쟁·지배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다시 말해, 한줌의 자본주의 열강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와 착취, 특히 노동자 착취가 공고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경쟁하는 자본들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집니다.
중동이 제국주의자들에게 전략적 요충지가 된 것은 20세기 초 그곳에서 막대한 유전이 발견됐을 때였습니다. 때마침 석유는 선박, 비행기, 자동차 등의 핵심 동력원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석유는 이른바 “전략적 상품”이 됐습니다. 석유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동을 장악하는 것은 패권을 가진 제국주의 국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영국은 이란의 석유를 통제했습니다. 그 통제는 앵글로페르시아 석유 회사(오늘날 BP의 전신)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앵글로페르시아 석유 회사는 예컨대 영국 해군의 석유 공급을 담당했습니다. 영국 해군은 영국이 세계 패권 국가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영국 군사력의 중추였죠.
미국이 지배적인 제국주의 국가로서 영국을 대체할 때 이란에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1953년 쿠데타였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 CIA와 영국 비밀정보부 MI6가 쿠데타를 모의해, 선출된 이란 총리 모사데크를 타도했습니다. 모사데크가 앵글로페르시아 석유 회사를 국유화했기 때문이죠. 쿠데타로 모사데크를 제거한 미국과 영국은 이란의 군주(샤) 레자 팔레비를 전제적인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그즈음 미국은 지배적인 제국주의 국가가 됐습니다.
1953년 쿠데타
이것이 지금 벌어지는 일의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1953년의 쿠데타는 이란인들의 역사적 기억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1970년대 초 이란의 샤는 서방 제국주의의 핵심 동맹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발표한 ‘닉슨 독트린’을 통해 미국은 베트남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핵심 동맹들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중동에서 그 핵심 동맹은 이란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미국의 동맹이었지만 이란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랬던 이란에서 1978~1979년 대중 혁명으로 샤가 타도됐습니다. 석유 산업을 중심으로 대중 파업이 벌어졌고 그 혁명은 1979년 2월 무장 봉기로 정점에 달했습니다. 잠시 후에 설명하겠지만 나중에 이란을 지배하게 되는 이슬람주의자들뿐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극좌파들도 참여한 동맹이 그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당시에 한 이란인 동지가 샤를 타도하는 데 쓸 무기를 확보하려고 막사를 습격한 일화를 제게 들려 준 것이 기억납니다.
샤의 몰락은 미국 제국주의에 엄청난 타격을 줬고,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자신의 독트린을 발표해 중동, 특히 이란을 포함한 페르시아만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이후 미국은 그 독트린을 여러번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
그러나 1978~1979년의 거대한 승리는 이란 내 반혁명의 승리로 빛이 바랬습니다. 시아파 이슬람주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이슬람 성직자들과 이슬람주의 표방 세력들 내에 있는 그의 동맹들이 혁명을 납치한 것입니다.
호메이니는 매우 영리한 정치인으로, 빈민과 천대받는 사람들의 대변자를 자처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좌파를 앞지르고 측면 공격해 성공을 거뒀습니다.(그 과정을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존 로즈의 신간 도서(Revolution Thwarted. 2025년 7월 3일 출판 예정)가 이란에서 벌어진 일을 한 장에 걸쳐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메이니는 야만적 탄압으로 이란 좌파를 파괴하고 노동자 운동의 지도자들을 제거해 오늘날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의 지배력을 구축했습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언사는 혁명적이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였고, 경제적으로는 국가자본주의와 국영 기업, 비대한 정실 자본주의를 채택했습니다. 이란은 부패가 만연하고, 정치적 최종 결정권은 이른바 최고지도자에게 있습니다. 호메이니가 첫 최고지도자였고, 하메네이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란의 시스템은 복잡하며, 이런 복잡한 시스템은 이란 정권의 생존을 가능케 한 요인의 하나입니다. 이란에는 극도로 통제되고 제한적이지만 실질적인 선거 민주주의가 있고, 이는 갈등이 표현되고 충돌을 통해 조정될 여지를 어느 정도 허용합니다. 물론 그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지배적 권력 관계에 의해 그어진 한계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말입니다.
최근 세대의 탁월한 이란 영화들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란은 매우 역동적인 사회입니다. 동시에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도전 일체가 혹독하게 짓밟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2009년의 ‘녹색 운동’이나, 청년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살해된 것을 계기로 분출한 2022~2023년의 여성 운동이 그런 사례입니다.
대(大)사탄
이렇듯 국내에서 억압적인 자본주의 국가인 이란 정권은 국외적으로는 모종의 아(亞)제국주의 구실을 지속하려 합니다. 그 노력은 과거 샤 정권하에서 시작됐지만, 현재 이란 정권도 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슬람 혁명’이라는 기치와, 자신들이 “대(大)사탄”이라고 부르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선다는 기치하에서 그러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노력은 오랫동안 큰 성공을 거둬 왔습니다.
1980년대에 이란은 이라크와 8년 동안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란 혁명을 파괴하려고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훗날 미국의 숙적이 됩니다)을 부추겨서 일으킨 전쟁이었죠. 혁명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이란과 이라크 어느 쪽도 승자가 되지 못했지만, 이란 정권은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그 전쟁 와중에 이란 정권은 레바논에 개입했습니다. 당시 레바논은 내전에 휩싸이고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았는데, 이란은 그곳에서 대중적 시아파 이슬람주의 무장 저항 운동이 등장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신의 정당’, 헤즈볼라입니다.
이란의 전략과 ‘저항의 축’
이란이 지원한 운동들에서 우세한 이데올로기는 대부분 시아파 이슬람의 일종이지만, 그 운동들에서 시아파 이슬람은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적 구실을 했습니다. 특히 헤즈볼라의 경우, 그 이데올로기는 레바논 일대를 장악하려는 이스라엘에 맞서 대중을 동원하는 구실을 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헤즈볼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한편 이란 정권은 2003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의 처참한 실패에서 득을 봤습니다. 특히,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천대받던 다수인 시아파 무슬림에 기반한 정치 세력들이 이라크 정치를 주름잡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최근 역사의 큰 아이러니의 하나로 꼽힙니다. 미국은 중동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그것은 이라크를 이란의 정치적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내전을 버틸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이란은 예멘의 저항 운동 후티를 지원하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도 지원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저항의 축’입니다. ‘저항의 축’은 이란의 보호막이자 영향권을 이루는, 더 정확히는 스스로가 그런 구실을 한다고 여기는 동맹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편 전략은 ‘평화도 없고 전쟁도 없다’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구상을 좌절시키려고는 하지만, 그들과의 직접적 충돌은 피하는 것이죠. 이는 이란 지도자들이 근본적으로는 미국 제국주의와 모종의 타협을 추구하는 것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가자지구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래 이란과 그 동맹 세력들은 극우와 파시스트가 우세한 이스라엘 정부와 대결하게 됐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를 주름잡는 극우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철통과 같다”고 확신합니다. “철통과 같다”는 바이든의 표현이지만 트럼프도 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극우는 누구든 극단적 폭력으로 군사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들은 가자 전쟁을 확대하며 안보 환상을 좇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네타냐후는 ‘하마스만 섬멸하면’, ‘헤즈볼라만 섬멸하면’, ‘이란만 섬멸하면’ 이스라엘인들이 안전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허상입니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패착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공격하고 끔찍한 인종 학살을 저지르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저항의 축’을 각개격파했습니다. 2024년 9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공격했죠. 대규모 폭격을 가하고, 각종 방법으로 헤즈볼라 활동가들을 살해하고,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살해했습니다.
2024년 12월에는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이 몰락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이 꾸민 사건이 아니었고, 평범한 시리아인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상황을 이용해 시리아 영토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이란과 러시아가 설치한 방공망을 무력화시켰습니다. 그 방공망은 이란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전쟁
이것이 현재 이란이 가자지구와 레바논처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게 된 맥락입니다. 물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종 학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폭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네타냐후는 왜 이란을 공격하기로 했을까요? 한 가지 이유로서, 오래전부터 네타냐후는 이란을 공격하고 이란의 핵개발을 무산시키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란이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에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죠. 오늘날 중동에서 핵무기를 가진 것은 이스라엘뿐이고, 네타냐후는 핵 독점을 지키고 싶어 합니다.
둘째, 네타냐후의 그간 행보를 보면, 그는 무력 사용을 기정사실화한 다음 미국의 승인을 구하는 수법을 반복해 왔습니다. 가자 인종 학살은 바이든이 시켜서 한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네타냐후가 인종 학살을 시작한 뒤 미국에 어쩔 테냐 하고 물은 것이죠.
마찬가지로, 레바논을 침공할 때에도 네타냐후는 (미국의 온갖 지원 아래) 공격을 시작해 놓고 바이든이 기정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이제 네타냐후는 트럼프에게도 같은 수법을 쓰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의 직접 참전을 바란다는 점이 다릅니다. 역내 깡패 국가로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일에 힘을 더 싣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가진 엄청난 벙커버스터 없이는 이란의 핵능력을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르주아 지정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란 정권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습니다. 전쟁 상대를 이스라엘 너머로 확대하면 미국의 보복을 부를 뿐 아니라 걸프 연안 국가들로부터도 고립될 것입니다. 그간 이란의 입지가 강해지는 듯 보였던 이유 하나는 걸프 연안의 강국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 수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란이 이스라엘에 반격하는 것을 넘어, 예컨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나 중동 내 미군 기지 등을 공격한다면, 걸프 연안국들과의 관계는 크게 나빠질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그렇게 확대하지 않으면 이란은 전쟁에서 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네타냐후는 이란 “정권 교체”를 운운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스라엘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이란 정권은 지극히 억압적이지만 이란 사회의 여러 부분들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란의 인구는 9,000만 명이 넘습니다. 미국이 2001년에 침공한 아프가니스탄의 인구가 2,000만 명, 2003년에 침공한 이라크의 인구가 2,600만 명이었습니다. 두 전쟁에서 미국은 모두 패배했습니다. 이란과의 지상전은 침략자들에게 끔찍한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트럼프 자신도, 전쟁이 계속되는 것을 원치 않는 걸프 연안 우방국들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걸프 연안 국가들은 확전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또한 트럼프는 자기 지지층의 압력도 받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트럼프는 가히 최악이라고 할 만한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내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핵심 조직자인 스티브 배넌은 이란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미국이 갈갈이 찢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혁명가들의 태도
그렇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당연히 이 전쟁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이란 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란 정권은 억압과 탄압을 자행하고 노동자와 빈민, 이란 내 소수민족을 억누른 끔찍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가자와, 간헐적으로는 레바논에서 벌인 전쟁의 연장임을 우리는 분명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이 전쟁은 인종 학살 전쟁의 연장입니다.
이스라엘의 한 병원이 공격받자(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퍼부은 위선적 비난은 정말 들어 주기 힘듭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병원을 모조리 파괴하고, 서안지구에서도 일부 병원을 파괴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우리는 이 야만적인 전쟁에 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국 스타머 정부의 전쟁 지원 시도에도 반대해야 합니다. 스타머는 한 편으로는 트럼프에게 이란을 침공하지 말라고 촉구하면서도, 영국이 중동에 군사적 “자산”을 보내고 있다고도 말합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일 경우 거기에 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전쟁 동참 시도에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기적 해법도 모색해야 합니다. 레온 트로츠키가 공들여 진술한 연속혁명론에서 그런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지배를 무너뜨리려면, 제국주의와 그 대리인들의 권력을 현지 부르주아지에게 넘기는 정치 혁명에 그칠 수 없고 현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사회 혁명이 필요하다고 트로츠키는 강조했습니다.
이란 정권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정권이고, 그래서 대중을 통제하고 억누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와 협상하려 합니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과 같은 수단, 즉 군사력과 외교적 책략, 첩보 공작에 의존합니다.
노동계급
우리는 다른 종류의 힘, 즉 노동계급의 사회적 힘에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이란뿐 아니라 이집트, 요르단, 튀르키예 등 중동 전역의 노동계급과, 더 광범하게는 모든 천대받는 자들의 사회적 힘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동 대중의 그런 힘이, 부패에 찌들고 잔혹하기 그지없는 현지 지배계급에 맞설 뿐 아니라 서방 제국주의와 그 경비견 이스라엘에도 맞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1979년 이란 혁명과 2011~2012년 이집트 혁명에서 그 잠재력을 힐끗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전망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동에서 연속혁명을 수행할 사회주의적 노동계급 세력의 성장을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혁명이 중동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절실합니다.

질의응답
중국과 러시아가 개입할까?
중국과 러시아가 개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푸틴은 러시아가 중재자 구실은 하겠지만 이란과 상호 방위 동맹 관계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갈수록 중동에 많이 개입하고 있고, 2년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수교를 중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가 실책을 거듭하며 낭패를 보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에게 득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을 구하러 나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두드러지는 현상의 하나인데, 많은 사람들의 환상에도 불구하고 ‘저항의 축’은 사실 이름 값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원이 공격당할 때 아무도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죠. 물론 가자와 연대하며 미사일을 쏘고 드론을 날린 예멘의 후티라는 훌륭한 예외가 있습니다. 그러나 후티는 비교적 작은 세력이고 예외에 속합니다.
‘저항의 축’에서 나타난 이러한 패턴은 러시아와 중국에도 해당됩니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때 러시아가 아사드를 위해 해 준 일은 모스크바로 피신할 비행기를 내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렇듯 중국과 러시아는 전쟁에 개입할 의사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노선은 미국이 최대한 낭패를 보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측할 수 없었듯이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걸린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매우 크고 거기에는 푸틴이 자신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들인 공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푸틴은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재앙적인 도박에 나선 것입니다.
반면 중국은 훨씬 신중하고 참을성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의 한 안보 보좌관의 흥미로운 영상을 봤는데, 그녀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에 100퍼센트 헌신하는 인물임에도 이렇게 인정합니다. “미국은 매번 전쟁을 일으키며 실수한다. 반면 중국은 참을성 있고 계획하고 예측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중국은 이 전쟁에 끼어드는 실책을 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러시아는 비록 중동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전쟁에 끼어들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 지배계급의 입장은 무엇인가?
미국 지배계급은 이란 문제를 두고 분열돼 있습니다. [질문자가 언급한] 존 볼턴은 크게 보면 네오콘에 속하고 조지 W 부시의 전략을 발전시킨 대(對)이란 매파입니다.
이란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볼턴 같은 인물들이 분명 있지만 미국 지배계급이 그런 입장으로 통일된 것은 아닙니다.
한편에는 오바마 같은 입장이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란과 핵협정을 맺어 상황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려 했죠. 그러나 트럼프는 지난 임기 때 그 협정을 파기했습니다.
또, 공화당 내에는 미국이 또 다른 중동 전쟁에 관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상당한 세력이 있습니다. 일례로, 한 달여 전에 마이크 왈츠가 트럼프의 안보 보좌관에서 해임됐죠. 그는 시그널 메신저에서 군사 기밀을 유출해 구설수에 올랐지만, 제가 보기에 그가 해임된 진정한 이유는 그가 대이란 강경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볼턴처럼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와 이란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였고, 그것을 반대하는 부통령 JD 밴스 같은 자들에 의해 밀려난 것입니다.
이렇듯 트럼프의 공화당 정부는 매우 심각하게 분열돼 있습니다. 그 분열은 트럼프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들(부시 1세, 클린턴, 부시 2세, 오바마 정부)의 실패(지난 수십 년간 국내에서 겪은 경제적·사회적 실패뿐 아니라 해외에서 겪은 지정학적 실패까지)를 이용하는 데서 거둔 성공에서 비롯합니다.
볼턴 같은 자들은 이란을 공격하고 싶겠지만, 미국 지배계급은 심각하게 분열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개인의 변덕에 선택이 맡겨졌습니다.
최근에 작고한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을 때는 우리 경향의 일원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쓴 책에서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 하나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소하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주 큰 사건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금의 트럼프에 딱 해당하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는 “2주 안에 결정할 것이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정신 나간 방식으로 지정학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죠. 트럼프의 변덕스러움과 경박함이 지배계급의 요구(또는 지배계급 내 우파의 요구)에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 전쟁을 두고 ‘타코’(트럼프는 언제나 먼저 꼬리를 내린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죠.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트럼프는 먼저 꼬리를 내릴까요? 개인의 심리에 달린 문제인 만큼 이를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아까 한 것처럼, 큰 구조적 요인들에 관해서 논의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우발적인 요인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항쟁의 잠재력은?
미국에서 트럼프의 국내 정책에 진보적으로 맞서는 강력한 운동이 분출할 잠재력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왕 노릇 중단하라”(노킹스) 시위는 엄청났습니다. 시애틀에 있는 노련한 노동운동 역사가인 제 친구가 전하기를, 시애틀에서만 7만 명이 모였고 인근 도시에서도 수만 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미국 도처에서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잠재력이 있는 운동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지는 저항은 실로 대단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항들에는 현재 맥락에서 큰 약점이 있는데,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크게 분노하고 있고 이는 해리스의 대선 패배를 확정지었지만, 트럼프가 국내에서 벌이는 일과 중동에서 벌이는 위험한 도박을 연결해서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워낙 괴짜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 이는 큰 실수입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사용할까?
저는 회의적입니다. 설령 이란 핵시설을 파괴하지 못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거둔 화려한 성과만으로도 중동에서 입지가 크게 강화됐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강탈과 억압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이지만, 아무리 야만적인 정책으로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살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기는 결코 해소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 전쟁과 시리아 폭격, 이제는 이란과의 전쟁으로 중동 내 입지를 강화하고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데도 핵무기를 쓴다면, 이스라엘의 핵능력이 세계 지정학의 중대 쟁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러시아와 중국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물론 당장 전쟁에 개입하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의 핵능력에 관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상당한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이는 핵무기의 고전적 문제입니다. 핵무기는 엄청난 무기이지만, 막상 그것을 사용하려 들면 여러 의미에서 재앙을 낳습니다.
이란에 대한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무슬림 공동체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이란과 일체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다른 나라들을 그토록 폭격하고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란이 반격에 나서면서 이스라엘이 적어도 피해를 입고 있으니까요.
동시에, 일부 사람들, 특히 무슬림형제단 등 순니파 이슬람 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란에 매우 적대적인 것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관점에서는 이 전쟁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을 패퇴시키는 것은 최상의 결과입니다. 그럴 공산은 (제 생각에)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요. 다시 말해, 저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의해 군사적으로 패배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란 정권을 정치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죠. 이란 정권은 반혁명적이고 매우 억압적인 자본주의 정권이고 그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꺾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선동의 차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전쟁에 반대하고 (영국에 사는 우리는) 영국의 전쟁 개입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군사적 패배를 바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전반적인 논점입니다.
자국 정부의 전쟁 지원 노력과 군비 증강 반대 운동
영국에 사는 우리는 영국(그리고 서방)의 전쟁 개입을 반대해야 합니다. 지금 스타머 정부는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번 전쟁은 이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될 것입니다. 그 재무장은 유럽적인 것, 특히 러시아를 의식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군비 증강은 영국이 글로벌 열강의 하나라는 환상을 키우는 데에 일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과 그 밖의 다른 유럽 지배계급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를 두려워하고 군비 증강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군비 증각의 목표가 정확히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놓고 혼란돼 있습니다. 군비 증강은 트럼프를 달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전까지 미국이 제공하던 안보를 대체하려는 것인가? 전략을 둘러싸고 그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고, 그것은 전쟁 위기를 키울 뿐 아니라 복지 예산 등 진정으로 필요한 데 쓰일 자원을 돌린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입니다. 그런 만큼 영국(서방) 정부의 재무장 계획을 반대하고 그것을 더 큰 위험의 일부로 봐야 합니다.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비교적 작다고 봅니다. 푸틴은 영불해협까지 탱크로 밀고 들어올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국 제국주의(상대적으로 약한 제국주의)는 더 큰 서방 제국주의의 위기와 얽혀 있고, 그 위기는 중동에서 가장 가시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반전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반전 운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건설하는 방법은 그 운동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과 밀접하게 연결시켜서 건설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내는 쟁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내일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많이 모이길 바랍니다.[런던에만 35만 명이 모이며 큰 성공을 거뒀다. — 역자] 이탈리아에서는 좌파 노조 Si Cobas가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대파업을 벌입니다. Si Cobas의 행동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 파업이 성공적이길 바랍니다.
우리는 군비 증강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인들과 더 큰 규모로 연대하고, 특히 조직 노동자 운동 안에서 이를 조직해야 합니다. 동시에 시스템 자체에 대한 반대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영국과 세계 곳곳에서 그래야 하고 중동에서도 그래야 합니다. SWP가 속한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은 중동에도 실질적인 활동을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에 수긍이 된다면 여러분이 영국에 있든 어디에 있든 우리와 함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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