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민중전선의 경험으로 보는 민주대연합의 허점
〈노동자 연대〉 구독

대선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김문수 국힘 후보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를 무섭게 좁히고 있다.
물론 아직 이재명이 여론 조사에서 앞서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승리하더라도 극우의 위협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진보당과 민주노총 지도부 등 주요 좌파 지도부들은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조와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로 극우를 저지하고 개혁을 추진한다는 민중전선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프랑스 신민중전선(NFP)의 경험은 이런 전략에 관해 유익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프랑스 신민중전선은 지난해 갑작스러운 조기 총선과 극우 국민연합의 집권 가능성에 대응해 결성된 좌파 선거 연합이다. 프랑스 최대 노총 노동총동맹(CGT)과 급진 좌파 ‘불복종 프랑스’(LFI)가 사회당 등 중도 좌파를 끌어들인 연합이었다.
한국의 민주당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정당이다. 그 때문에 신민중전선을, 좌파 정당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당의 전략적 연합을 뜻하는 고전적 민중전선 전략과 예리하게 구분하는 주장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실행하고,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며 친자본주의 자유주의 정당 구실을 해 왔다.
또,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신민중전선 전략의 논리는 결국 신민중전선을 중도 우파와의 동맹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6월 초 마크롱 정부는 자신의 정치 위기를 타개하고자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그 직전에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이 1위를 차지했다. 조기 총선을 선언한 마크롱은 국민전선이 승리하면 그들과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그로써 극우의 집권이 매우 가까운 전망으로 제기되자 좌파 정당들은 신속하게 선거 연합을 꾸리기로 했다.
이들은 매우 일찍부터 ‘신민중전선’이라는 명칭을 채택했다. 이것은 1936년 6월에 들어선 민중전선 연립 정부가 당시에 극우의 전진을 저지했다는 신화에 호소하려는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1936년 프랑스에서 극우를 수세로 몬 것은 좌파 정부 구성을 위한 협약이 아니라, 그로부터 2년 전에 일어난 거대한 반극우 대중 시위와 행진이었다. 민중전선 정부의 등장은 그 급진화의 효과였다.
파시즘은 노동계급이 수동성과 사기 저하에 시달릴 때 대중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노동계급이 대중 저항으로 투지와 집단적 자신감을 키울수록 파시스트들은 더 고립됐다.
1934~36년 극우에 맞선 투쟁이 성공을 거두자 노동계급은 1936년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요구를 걸고 공세적인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민중전선 정부는 그 투쟁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했다. 이는 파시즘에 맞선 투쟁도 약화시켰다.
결국 1936년에 선출된 의회는 1940년에 나치 지지자인 페탱 장군에게 권력을 넘겼다.
이런 재앙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신민중전선의 결성은 극우에 맞서 단결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신민중전선은 극우에 맞서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초점이 됐다. 6월 15~16일 신민중전선 지지 집회에는 8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그 후에도 1차 투표 때까지 거리 동원이 꾸준히 유지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민중전선의 유인물 반포와 가가호호 방문 활동에 자원했다. 여성, 생태 등 운동의 여러 의제들을 다루는 집회들도 함께 열렸다.
이런 동원은 국민연합이 공들여 세탁해 온 이미지(나치 본색을 숨기고 ‘점잖은’ 보수 정당 행세를 하는 것)를 벗겨내는 것이 가능함을 금세 보여 줬다. 이미지 세탁은 파시스트들이 홀로코스트라는 나치의 끔찍한 유산과 결부되는 것을 피하면서 품격 있는 세력으로 인정받고 세력을 키우는 핵심 전략이다.
그런데 신민중전선은 그 에너지를 파시즘에 맞선 행동이 아니라 선거에 집중시키려 했다.
신민중전선 전략의 옹호자들은 파시즘 지지자들이 “분노한 사람들이지만 파시스트는 아니다”(fâchés mais pas fachos)라고 주장했다. 파시즘 지지자들은 불평등 심화와 생계 위기에 분노해서 파시즘으로 넘어간 것일 뿐, 그들을 좌파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대중에게 이로운 개혁을 제시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개혁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극우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 자체가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2023년 프랑스에서 연금 개악에 맞선 전 사회적인 투쟁이 벌어졌음에도 극우가 부상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극우에 맞선 투쟁을 선거로 축소하는 전략에 따라 신민중전선은 행동을 위한 단결을 지도부들의 강령 합의로 대체했다. 게다가 그 합의는 대중 투쟁을 키우기보다는, 기존 국가에 도전하지 않아 사회당 우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강령에는 임금 인상과 연금 개악 폐기 등의 개혁 조처들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무기 지원을 지지하고 프랑스의 군사 주권을 긍정하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반면 이민자 문제와 관련된 요구들, 특히 지난해 1월에 통과된 인종차별적 이민법을 폐기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그 법은 국경 통제, 체류 자격 요건 등을 강화할 뿐 아니라 복지나 사회 서비스에 대한 “국민 우선”을 명문화한 것으로, 극우의 오랜 의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팔레스타인 연대도 부차화됐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반대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불복종 프랑스’가 직전 유럽의회 선거에서 팔레스타인을 핵심 쟁점으로 삼은 것에 한참 못미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민중전선의 어느 주요 세력도 극우에 맞선 대항 행동(맞불 집회 등)을 조직하지 않았다. 거리로 모인 에너지는 오로지 선거를 위한 홍보 활동에 동원됐다. 모든 거리 집회, CGT의 대대적인 홍보전 등 모든 활동의 메시지는 신민중전선에 투표하라는 것에 한정됐다.
전장을 선거로 한정하는 것은 극우 분쇄 투쟁을 대등한 상대들 간의 경쟁으로 만드는 효과를 냈다. 이는 파시스트 정당이 품격 있는 세력으로 인정받는 데 일조했다.
결국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좌파의 거리 동원이 유지됐음에도, 국민전선은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고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국민연합은 1065만 표를 득표했는데, 이는 지난 2022년 총선 득표를 갑절 이상으로 불린 것이다. 이번 총선 때 추가된 유권자 1000만 명 중 절반 이상이 국민연합에 투표했다.
그럼에도 좌파는 전략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전략의 논리에 따라 신민중전선은 3위를 한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사퇴시켜(3위임에도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는 것은 상당한 득표를 했다는 뜻이다) 마크롱을 지지하는 중도 우파와 사실상 동맹을 맺었다.
그 대상 중에는 앞에서 언급한 이민법이나 연금 개악을 추진해 대중의 크나큰 원망을 산 마크롱 정부의 장관들도 포함돼 있었다.
국민연합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권력 핵심부에 맞서는 유일한 세력을 자처할 수 있었다.
좌파의 이런 선거 책략 덕분에 선거 결과 자체는 좌파에 유리하게 나왔다. 즉, 국민연합은 결선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신민중전선은 다수 의석을 획득할 수 있었다. 신민중전선에 참여한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지도자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이를 승리로 자축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의 잠재적 위험을 축소하고 다른 전략의 필요성을 흐리는 평가다.
특히, 의회가 좌파, 중도, 극우로 거의 비등하게 나뉘자 마크롱 정부는 자신을 도와 준 좌파를 저버리고 극우와 손잡았다. 게다가 마크롱 정부의 보수적 정책과 위기는 오히려 극우에 더 힘을 실어 주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파시즘의 위협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당장 대선이 열린다면 국민연합 당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승리할 공산이 크다. 원래 국민연합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마린 르펜은 법원 판결로 대선 출마가 가로막혔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르델라는 르펜을 성공적으로 대체했다(5월 21일 ‘프랑스 여론 연구소’(IFOS)).
이처럼, 신민중전선은 선거를 통한 사회 개혁을 파시즘에 맞서는 방벽으로 제시하는 것에서 출발해, 수주 만에 프랑스 지배계급의 가장 신자유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일부와 협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 전략은 극우의 지지를 잠식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동안 극우가 성장할 토대를 마련해 준 세력을 살려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그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윤석열 퇴진 이후 진보당과 민주노총 지도부 등 주요 좌파들은 한사코 민주당과의 전략적 공조를 유지하며 그저 선거를 통해 극우를 물리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선거 논리에 따른 민주당의 우경화(우클릭)에 맞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재명의 우경화는 오히려 우파가 자신의 명분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김문수가 지지를 늘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신민중전선의 경험은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이후의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이에 대처할 진정한 동력을 구축하려면 극우에 맞선 대중 행동이 필요하다.